퀵바

ρ( ̄ヘ ̄ メ)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최근연재일 :
2024.09.19 22:5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3,372
추천수 :
107
글자수 :
47,057

작성
24.09.13 00:59
조회
647
추천
19
글자
12쪽

2화

DUMMY

“축하드립니다.”


변호사가 싱긋 웃으며, 묵직한 서류를 종이봉투에 통째로 집어넣었다.


“이제 백유진 씨가 이 건물의 법적······.”


귀가 먹먹해진다.

몇 번이고 상상한 순간이지만, 평정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다.


취득세만 자그마치 4억.

평생 만져본 적도 없는 거금이, 고작 건물 소유의 전제 조건이 된다. 그 돈도 대신 처리해줬으니 망정이지······.

유진은 얼굴조차 뵌 적 없는 외할머니께 속으로 절을 하며 숫자를 곱씹었다.


연면적 1239㎡, 5층 상가 건물.

매매가 추산······ 약 95억.


······ 취한다.


“아, 제가 하나 깜빡했네요.”


한껏 건물주가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던 유진에게, 변호사가 뒤늦게 가방을 뒤적거리다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건물 열쇠입니다.”

“어, 도어락이 따로 없나요?”

“오래된 건물이니까요.”


유진이 열쇠를 받아 살펴보았다.

외형이 퍽 특이했다.


모양 자체는 평범한 열쇠였지만, 뒤집으면 앞과 뒤의 색이 달라지는 식이었다.

앞은 푸른색, 뒤는 노란색.

원색임에도 색감이 묘하게 고급스러운 게, 촌스러움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장식? 무슨 장식이지?’


끝에는 도통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의 열쇠고리가 달려있었다.

이렇게 보면 문 같기도 하고, 저렇게 보면 달 같기도 하고······ 오묘한 마력이 있었다.


‘꼭 다른 세계에서 가져온 것 같네.’


유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열쇠를 품에 넣었다.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 뭔가 특히 더 잘 간수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건물의 소유주가 되었지만, 정작 유진은 아직도 그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일이 너무 바빴던 것이다.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유진은 망설임 없이 회사에 퇴사 의향을 전했고,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측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까지만 기다려달라며 간곡히 부탁해왔다.

하여 원활한 인수인계를 도울 겸 이것저것 정리하며 밤낮없이 살다 보니······ 금세 3주가 훌쩍 지나가버렸던 것.


- 부장님, 근데 백 대리 나가고 나면 그 일은 누가 맡는 거예요?

- 일단 새로 한 놈 뽑고, 업무 적응할 때까지는 내가 직접 컨트롤해야겠지.

- 어······ 백 대리가 혼자 맡던 업무량 확인은 하고 말씀하시는 거죠?

- ······ 둘, 아니 셋을 뽑는다면?


그 과정에서 유진이 혼자 처리하던 일의 양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모두가 경악했지만, 어차피 떠날 사람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알아서 잘들 하겠지!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면 되겠다.”


아무튼, 그런고로 유진이 건물을 확인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궁금하다.’


유진이 버스에서 내린 후 네이버 지도로 길을 확인하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하루아침에 건물주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그였다.


‘돈은 젊고 건강할 때 아껴야 한다!’


오래도록 백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만큼, 유진은 그 누구보다도 명확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늙어서 고생하는 것보다 젊을 때 고생하는 게 백 배는 낫다는 것!


확고한 가치관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날이라도 택시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비가 오고 눈이 쏟아지는 날이라도 배달 대신 포장을, 아니 그런 유혹조차도 이겨내고 억지로 냉장고에서 남은 재료들을 꺼내 비비거나 볶거나 끓여서 먹고는 했다.


- 어, 그럼 어쩔 수 없이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야만 하는 상황에는요?

- 전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편이라.

- 그래도요. 만약에 그렇다고 하면!

- 저런.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요?

- ······.


하지만 건물주가 된 이상, 어쩌면······ 앞으로는 종종 소소한 일탈 정도는 허락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가령 배달비가 3000원이나 하는 치킨을 고민 없이 시킨다거나?


‘음, 그래도 그건 역시 아닌 것 같다.’


유진이 빠르게 의견을 철회했다.

마침 목적지에 거의 다 온 참이었다.


“여긴가?”


대로변 바로 뒤쪽의 골목길.

유진이 몇 번이나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야······.”


유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 크다.

단순히 5층 건물이라고나 생각했는데, 건물의 한 층 한 층이 기대 이상으로 넓었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 그 면적이 족히 배는 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하지만, 유진을 정말 놀라게 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상태가 왜 이래?”


쾌적하다 못해 휑하다.

오랫동안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은 흔적이 역력한 건물. 사실상 통째로 버려진 뒤였다.


“상가는 이미 다 나간 모양인데.”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5년간 별다른 소식이 없을 시 외손자 백유진에게 건물을 증여하라는 전언. 반대로 해석하면 외할머니가 잠적하신 지도 벌써 5년이 넘게 지났다는 소리다.

건물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을 리 없었다. 관리인도 따로 고용하지 않으셨다고 하니.


‘마스크라도 쓰고 왔어야 했나.’


유진이 건물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지가 많아 절로 기침이 나왔다.


엘리베이터 옆에 각 층의 간판이 있었다.

1층부터 위로 식당, 다방, 한의원.

4층은 한참 전에 나갔는지 간판이 아예 없었다. 글자의 흔적을 보아하니 사무실이었던 듯했다.


건물 벽과 바닥에는 전단지가 가득했다. 출입문이 열려있어 아무나 막 들어왔던 모양.


“흠.”


짧고 굵게 요약하면, 총체적 난국.

유진이 코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이러면 내 계획이 좀 틀어지는데.”


처음 유진이 생각했던 건 굉장히 단순했다.


하나, 일단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를 따박따박 받아먹다가.

둘, 목돈을 모아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주택 하나,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건물 하나, 장기적 성장이 기대되는 우량주, 배당주 매입에 더해 채권과 보험,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해 은행 예금도 잊지 말고······ 이런 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게 유진의 원대한 은퇴 계획이었는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겨버린 것.


‘건물이 어느 정도 노후됐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세입자가 한 명도 없을 줄은 몰랐는데.’


임대인 없는 건물은 마치 슈크림 없는 붕어빵이나 다름없다. 아니면 파인애플 없는 피자라거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 유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팔아버려?’


불가. 그 안은 곧바로 폐기했다.

아무래도······ 도의적으로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걸 돈만 좇아서 냅다 팔아버리는 건 좀······.’


싹퉁바가지가 없지 않은가.


물론 세상이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이 건물만큼은 품에 안고 죽을 테다, 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 팔면 제값을 못 받잖아.’


같은 상품이라도 포장이 중요한 법.

세입자가 층마다 전부 들어오고, 건물 외관이나 내부나 깔끔하게 잘 빠져줬을 때 비로소 제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계실 외할머니도 손주가 덤탱이를 맞는 건 원치 않으실 게 분명했다.


“후, 그래. 일단 해보자.”


유진이 잠깐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건물은 보수하면 되는 거고, 세입자는 또 들여오면 되는 거고. 상권이 죽은 건 아니니까 단장 좀 하면 뭔가 입질이 오겠지.”


대학동.

번화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오면서 둘러보니 주변 상권 자체는 멀쩡했다. 문을 닫거나, 임대 문의를 내건 상가는 하나도 없었다.


새 단장에 돈이 좀 깨지긴 하겠지만······ 다행히 유진이 그간 모은 돈이 조금 있었다.

은퇴를 위해 악착같이 모아온 돈이지만, 유진은 쓸 때 쓰고 아낄 때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럴 때가 바로 지갑을 열 때였다.


백수가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


‘당분간 여기서 살아야겠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지만, 사실 건물주라는 게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통장에 돈이 박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건물의 크고 작은 일들을 직접 처리해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관리인을 따로 고용한다면?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건물 계단과 복도를 청소하고, 설비를 점검하고, 노후된 곳을 보수하고, 종종 세입자와 벌어지는 마찰이나 문제를 해결하고······.

그런 것들을 도맡을 관리인 말이다.


‘절대 안 되지!’


물론 유진에겐 턱도 없는 이야기였다.


직접 하면 되는데, 굳이?


“아예 여기로 짐을 다 옮길까?”


유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잡았던 원룸. 굳이 더 넓은 집을 두고 거길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 월세가 아깝기도 하고.


‘5층은 주거공간이라고 했지.’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만큼 어지간한 주택보다 훨씬 넓게 빠진 방이라고.

적어도 원룸보단 낫지 않을까. 오가는 교통비도 아낄 수 있고.


“일단 방 상태를 좀 봐야겠다.”


유진이 계단을 오르며 한 층씩 둘러보았다.

1층부터 4층까지는 다들 상가의 흔적만 조금씩 남아있지, 딱히 건질 만한 건 없었다.


그리고 5층.

묘하게 위압적인 철문. 유진이 가까이 다가가 열쇠를 꽂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 오.”


유진이 다시 감탄했다.


한 층을 통째로 쓴다고 하니 못해도 100평은 넘어가려나? 정말 넓긴 더럽게 넓었다.

중앙의 거실과 주방을 기점으로, 비슷한 크기의 방 5개가 양옆으로 붙어있다.

테라스나 베란다가 따로 없는 게 아쉽긴 했지만, 2개 있는 화장실에 전부 커다란 욕조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아쉬움마저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인테리어에 외할머니의 취향이 듬뿍 담겼는지 다소 토속적인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상관없었다.


“곰팡이 봐라. 벽지 다 뜯어야겠는데······.”


유진이 짧게 혀를 찼다.


오래 사람이 들락거리지 않았던 탓인지, 어째 내용물에 영 하자가 많다.

그래도 그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더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청소만 좀 하고 입주하면 될 것 같은데?


“오케이. 그럼 오늘은 이 정도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유진이 집을 구석구석 꼼꼼히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 건물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고민하는 데 집중해야 할 듯했다.


‘아, 맞다. 내 휴대폰.’


한참 계단을 내려오던 유진이 뒤늦게 빈 주머니를 뒤졌다.

구경하는 동안 휴대폰을 식탁 위에 두고 나온 것을 깜빡한 모양.

유진이 다시 계단을 올라가 열쇠를 꽂았다.


‘······ 어느 쪽이더라?’


뭐, 어차피 한쪽으로만 돌아갈 텐데.

유진은 별생각 없이 열쇠를 왼쪽으로 돌렸다. 철컥, 하고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열렸다.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응?”


분명 방의 구조는 같은데······ 다르다.

짐이랄 것 하나 없이 휑하던 공간이 이런저런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하물며 그 물건 하나하나가 묘하게 낯선 것들뿐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 떨어진 듯한 기분.

유진이 분명 조금 전에는 없었던 거실의 화분들을 보며 벙찐 와중, 벌컥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 어?’


유진은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잠깐 당황하다, 그가 생각했던 곳 아래에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방에서 나온 남자는 유치원에 막 들어갈 즈음의 또래와 신장이 비슷했다. 하지만 생김새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 수염이 배꼽 언저리까지 났던 것이다.


‘난쟁이? 아니, 애야 어른이야?’


유진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순덩어리에 그만 말문이 막힌 사이, 상대가 이쪽을 보고 선수를 쳤다.


“도둑이다!”

“도둑 아닙니다!”

“원래 도둑은 다 그렇게 말하는 법이지.”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9화 NEW +1 7시간 전 62 5 10쪽
8 8화 NEW +2 9시간 전 89 5 12쪽
7 7화 +1 24.09.18 156 9 12쪽
6 6화 +1 24.09.17 233 11 10쪽
5 5화 +2 24.09.16 349 11 12쪽
4 4화 +1 24.09.15 482 14 12쪽
3 3화 +1 24.09.14 592 14 12쪽
» 2화 +1 24.09.13 648 19 12쪽
1 1화 +1 24.09.13 762 1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