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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부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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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리곰
작품등록일 :
2012.11.30 20:45
최근연재일 :
2012.12.12 15:56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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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13,670

작성
12.12.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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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프롤로그 - 2 [ 허무한 박명민 ]

DUMMY

나는 점쟁이와 탁자를 사이에 둔 채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흑발에 갈색 눈동자를 하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점쟁이와.

아마 4년 전만 하더라도 이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 난 안절부절한 채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만 있을 것이 분명했겠지. 아름다운 여인을 눈 앞에 두고서 어쩔줄 몰라 하면서 눈도 제대로 두지 못하고 눈동자만 데구르르 굴리고,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더듬거리면서 툭툭 끊기게 말했을 게 분명했다.

2년 전이었다면 나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점쟁이를 하는 것인가', '아름다운 외모와 점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남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사이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을지도 몰랐다. 그 지독한 의심은 돈을 내고 점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게 만들고, 집에 돌아와서도 돈이 아까워서 찝찝한 기분이 계속해서 유지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며칠동안이나 계속 쭉 이어지며 한동안 짜증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었겠지.

하지만 그건 몇 년 전 까지의 이야기.

지금 나는 이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서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물론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좋아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미인의 조건에 걸맞는 여인을 좋아했으며, 어린아이나 할머니같은 극단적인 나이의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 또래의 젊은 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눈 앞의 여자에게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름답다는 생각조차도 '아! 아름답다!' 같은 감탄의 느낌이 아니었다. '여자', '20대', '점쟁이' 와 같은 똑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수많은 조건들중의 하나로 '아름다움' 이 존재한다는 느낌 뿐이었다.

나는 눈 앞의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서도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다는 것에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그 시간만에 내가 이토록 변했다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점괘를 봐주십시오."

"어떤 점을 원하십니까?"


나는 그녀의 물음에 점집 안을 쓱 훑어보았다.

재물운, 연애운, 사업운…….

어떠한 점집을 가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혹시 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점을 볼 수 있겠습니까?"

"미래요? 가능합니다. 대신 돈을 많이 지불하셔야 합니다. 다른 운이라면 십만원이면 됩니다만, 미래에 대해서 점을 보고 싶다면……100만원입니다."

"100만원이라, 비싸군요."


비싸다.

점 한 번에 100만원이라니.

내가 점을 잘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런 가격이 정상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2년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지독히도 의심을 많이 하던 성격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다.

하지만 이윽고 그것은 가라앉았다.

100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그게 어떨까 싶었다.

어차피 이제는 쓸 일도 없을텐데, 뭐 그게 중요한 거라고 아낀단 말인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미래, 미래라……."


툭.


그녀는 탁자에 놓여져 있는 점을 치는 도구들 중에서 카드뭉치를 하나 집더니 가볍게 섞은 후 나에게 내밀었다. 뒤집어진 카드들은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있어 나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홀린듯 카드뭉치에 손을 가져가 뽑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세 장.


그렇게 세 장을 뽑고나서 카드 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첫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첫번째 카드에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길을 걷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길을 걸어가는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하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왕관을 쓰고 있는 사람들도 전부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


"보통 사람들은 하나, 아니면 두 개의 운명의 길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세 가지의 운명의 길을 가지고 있군요. 당신의 운명의 길 중 하나, '명예' 입니다."


명예.

나의 눈은 카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왕조차도, 부자조차도 예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명예.


"이 카드는 명예를 뜻해요. 당신은 축복받은 운명을 가졌군요. 누구든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은 죽어서도 찬사를 받게 되겠죠. 대기업의 회장이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어도 당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하게 될거에요. 역사는 당신의 이름을 기록해 찬란하게 빛나게 하겠죠. 이게 당신의 첫번째 운명의 길이에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두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이번에 뒤집은 카드에도 한 남자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져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 카드와는 느낌이 전혀 틀렸다. 아까의 명예 카드가 길을 걷고 있는 남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면, 이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높은 곳에 있는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의 것이 자발적인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강제로 하는, 공포로써 만들어낸 상황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카드는 절대권력을 뜻해요. 그냥 가벼운 권력이 아닌, 절대권력을 말하죠. 이 카드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면서 왕좌에 앉아있는 왕에게 인사를 해요. 그리고 그 왕의 위에는 신을 뜻하는 문양밖에 존재하지 않죠. 단 하나만을 위에 둔 채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절대권력.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던가요? 이것이 바로 당신의 두번째 운명의 길이에요."


절대권력.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려서까지 얻고자 하는 가치였다.

그런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 웃음만 나왔다.

기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헛웃음이었다.


"자, 세 번째 카드입니다."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이번에 뒤집은 카드에는 아까와는 다른 평범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평범한 주택과 평범하게 생긴 중년 부부 한 쌍과 아이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고, 카드에 그려진 그림의 하늘조차도 맑아 너무나도 밝고 행복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마지막 카드는 행복을 뜻해요. 명예 카드의 길을 걷는 남자에겐 미소가 없었고, 절대권력 카드에서의 남자는 비웃음이 있었죠. 하지만 이 카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어요. 이 이상 있을 수 없는 최고의 행복. 평범하지만 너무나도 행복하기에 지어지는 미소에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얻기를 갈구하는 행복을 얻게 되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거에요. 아쉬움과 후회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되겠죠. 많은 사람들이 부나 명예에 매달리다가 잊어버리지만 너무나도 기본적인 그들의 욕망이었던 행복. 당신은 그것을 얻을 수 있어요. 이게 당신의 세 번째 운명이랍니다."


행복이라…….

카드를 보면서 슬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카드의 그림은 행복하게 웃고 있는데,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내 운명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꿈과 같은 그림 같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잘 들었습니다. 결제해주십시오. 100만원 맞죠?"

"아뇨. 조금 깎아드릴게요."


그녀는 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윙크를 했다.


"이렇게 멋진 운명들을 가진 분은 정말 오랜만에 보거든요. 너무 좋은 운명만 나오셔서 그런지 저도 기분이 좋아졌어요. 10만원 깎아드릴게요."

"하, 그렇습니까."


기쁘지 않았다.


"그럼……그 깎아주신 10만원으로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야 좋죠. 어떤 점을 원하세요?"


나는 허무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정말로 당신이 말한 카드대로의 운명의 길을 걸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스스로 금칠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저는 점괘를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걸요. 제 점괘는 100%에요. 믿어도 좋아요."

"그래요……?"

"못믿으시겠어요? 자, 아까 그 카드뭉치에서 한 장 더 뽑아보세요."


나는 그녀의 말에 홀린듯 한 장을 더 뽑았다.

한 장을 뒤집어진 채로 뽑아 탁자 위에 올려놓은 나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떤 카드가 나왔을까?'


궁금했다.

너무나 궁금했다.

오랜만에 욕망이라는 게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곧 그 욕망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저 점을 들어서 무엇할까?

점괘에서 말한 운명의 길 세 개 중 어떤 것도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집으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결제를 끝마친 그녀에게서 카드와 영수증을 받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점집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어느정도 점집에서 멀어지자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해가 하늘에 떠 있었다. 하지만 슬슬 붉은빛을 띄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어두워질 것만 같았다.


'내가 산 정상에 도착하면 완전히 깜깜해지겠군.'


하지만 아무렴 깜깜해지면 어떠랴.

나는 허무하게 웃으며 부지런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산 근처에 있던 점집에서 나와 산 정상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걸어 계속 올라갔다.

운동을 하지 않은 신체에선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고, 숨은 너무나도 가쁘게 내뱉어지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리도 후들거렸으며 몸이 물 먹은 솜마냥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결코 멈추는 일 없이 끝없이 산으로 올라갔다.

옛날의 나였다면 이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건 옛날일 뿐이다.

어차피 앞으로 쓸 일도 없는 신체, 조금 혹사시킨다고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

나는 계속해서 쉬지 않고 산책로를 걸어갔다.

하산을 하는 사람들이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너무 힘들어보이는데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배낭도 하나 없고, 머리에 매는 랜턴도 없이 올라가는 게 더더욱 이상하게 느껴졌음이라.

하지만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계속해서 하산했다. 아무리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결국 남의 일이고, 자신이 참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겠지.

나는 그렇게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지나쳐가며 산 정상에 도달했다.


"허억, 허억."


산 정상에 도달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드넓은 풍경.

회색의 빌딩들이 솟구쳐있고, 그 위에 석양이 져가며 세 가지의 색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방금 전 낮의 색이었던 하늘색과 석양의 색인 붉은색, 그리고 앞으로 올 검은색!

나는 그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지막에 볼 풍경으로는 충분한, 아니 차고도 넘치는 풍경이었다.

이미 욕망은 사라지고 허무함밖에 남지 않은 나조차도 감탄하게 만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했다.

가쁘게 몰아쉬는 호흡을 가라앉히려 함이 아니었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함도 아니었다.

오로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후우우."


어느정도 가라앉자 나는 아래를 쳐다보았다.

까마득한 절벽.

나무조차도 듬성듬성 존재하는 바위산이라 그런지 회색빛 바위가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것을 보자 아까 점쟁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 당신은 세 가지의 운명을 가지고 있군요.


점쟁이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퍼진다.

살아있는 한 남들이 원하는 것들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처럼.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란색과 검은색. 그 둘의 경계에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세 가지의 색이 뒤섞여 있는 하늘은 마치 나의 마음과 같았다.


- 명예. 누구든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은 죽어서도 찬사를 받게 되겠죠. 대기업의 회장이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어도 당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하게 될거에요.


들린다.

아까 점쟁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들린다.


- 권력과 돈. 일인지하만인지상이라고 하죠. 당신은 위에 단 한 명만을 둔 채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될 거에요.


그녀가 아까 했던 말들을 머릿속에서 녹음해뒀다가 재생해놓는 것 같다.


- 행복.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얻기를 갈구하는 행복을 얻게 되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거에요. 아쉬움과 후회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되겠죠.


유혹하는 것 같았다.

당장 나의 선택을 취소하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 점쟁이, 진짜 미래를 보고 말한 것 같군.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나는 웃었다.

이제와선 너무 늦었어.

단지 그 생각만이 들었다.


탓.


그리고 절벽에서 뛰었다.

절벽에서 뛰자 기묘한 부유감이 온 몸을 지배했다.

바람은 칼처럼 미친듯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고, 풍경은 미친듯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치 비디오 테이프를 빨리감기 하는 느낌이었다. 거꾸로 뒤집힌 세상은 미친듯이 흘러가며 나의 눈을 어지럽혔다.


후우우웅.

'시끄럽군.'


나는 귀에서 느껴지는 소음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바람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면서 내는 소리가 상당히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곧 영원한 침묵을 맞이하게 될텐데.

그 어떤 소음도, 그 어떤 빛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나는 가게 될 텐데.


후우웅.


나의 몸은 미친듯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순간이 되자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 이제 끝이구나.'


죽음이 코앞에 왔다.

그 느낌이 온 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주마등은 없었다.

그냥, 끝이라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이제 난 허무하지 않겠지?'


쿵!

커다란 굉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나의 시야가 순간 검게 변했다가 다시 색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듯 세상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아프지 않다. 이상하군.'


높은 산에서 떨어져 머리부터 바위에 부딪친 후에 처음 든 생각이 이것이라니.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 이제 점점 흐릿해지는군. 정말 끝인가본데.'


기분탓일까?

나의 손에 무언가 잡혀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보기에는 책 같은데…….

내가 잡을 책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가?


'아무렴 상관 없겠지.'


이제 곧 나는 죽는걸.

자, 허무한 세상이여.

작별이다.


* * *


"특이한 손님이네."


희미는 혼자 남겨진 점집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개중에는 특별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도 방금 나간 손님같이 이상한 손님은 없었다.


"그렇게 좋은 운명이 나온 것은 정말 오랜만인데, 그런 것을 듣고서도 그런 미소를 짓다니. 믿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희미는 방금 나간 남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반응.

점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시큰둥한 반응을, 그리고 믿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기뻐하는 기색이 보여야 하는데 방금 그 남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어떤 점괘가 나오든지 상관이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뭘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탁자 위에 뒤집어져 있는 카드 한 장을 쳐다보았다.

'점괘대로의 운명의 길을 걸을 것인가' 의 점 결과였다.

특이하게 카드 결과도 보지 않고 가버리긴 했지만 그 카드는 아직 탁자에 있었다. 희미는 아까 그 남자에 대한 흥미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카드를 뒤집어보았다.


"어머……?"


카드를 보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카드에는 한 남자가 미친듯이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중앙에서 미친듯이 웃고 있다.

그 남자의 위에는 끊어진 실들이 매달려 있는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거대한 손.

그리고 남자의 뒤에는 수많은 시체들!


"왜 이런 카드가 나왔지……?"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남자의 뒤에 있는 시체들은 각기 다른 옷들을 입고 있었고, 남자의 뒤에 시체가 아닌 채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해골 얼굴의 사신 뿐이었다.

카드 안의 남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죽음 외의 모든 것에게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자유 카드."


죽음 외의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뜻의 카드.

결코 나쁜 뜻은 아니었다.

운명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의 카드이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나쁜 운명의 길들이 나온 사람도 이 카드가 나온다면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좋은 의미의 카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까 남자가 뽑았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명예, 절대권력, 행복.

전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이 운명들에게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희미는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운명에서 자유로워졌다!'


카드 안의 남자가 미친듯이 웃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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