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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부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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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리곰
작품등록일 :
2012.11.30 20:45
최근연재일 :
2012.12.12 15:56
연재수 :
3 회
조회수 :
2,113
추천수 :
11
글자수 :
13,670

작성
12.12.01 14:46
조회
856
추천
4
글자
7쪽

프롤로그 - 1 [ 살육의 사령술사 핀 ]

DUMMY

철퍽.


장화가 피웅덩이를 밟고 지나가며 기묘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비가 내린 후 물웅덩이를 밟는 것과는 다른 소리.

물보다 조금 더 묵직하면서 끈적이는 듯한 이 소리.


철퍽.


나는 피웅덩이를 걸어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감고 냄새를 맡는 것을 집중했다.

피 냄새는 코를 찌를듯하고 철퍽거리는 소리는 나의 귀를 어지럽힌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곳의 풍경이 느껴졌다.

초록빛 잡초들만 무성했던 이 평원은 이제 아름답게 시체들이 차곡차곡 쌓여 초록빛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는 웅덩이들을 이루고 잡초를 물들여 평원 전체를 새빨갛게 만들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피 냄새와 함께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 그리고 온갖 벌레들이 몰려들어 이 평원을 새까맣게 물들이게 되겠지.

나는 이러한 것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역겨운 초록빛을 붉은색으로 물들인다는 것은 내가 인간에게, 자연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이자 최고의 예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풍경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재료인 인간에게 찬사를, 그리고 이 인간들을 제물로 한층 더 생명력을 얻게 될 자연에게 예의를 표하며!


철퍽.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띄며 세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진동하는 짙은 피내음과 아름다운 핏빛의 풍경.

이것이 계속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도저히 가라앉지를 않는다.

미소가 지워지질 않고, 호선을 그리는 눈이 결코 펴지지 않는다.

운명이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다.

나에게 이런 운명을 내려준 세상에게 다시 한 번 예의를 표한다.


"하하하하하!"


나는 미소 띈 얼굴로 살짝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 까아악!


멀리서 까마귀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이 넘치는 시체들을 먹으러 왔으리라.

이 넓은 평야 전체를 가득 메운 이 시체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파티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니, 파티라는 말로도 모자란다.

축제!

그렇다.

이것은 까마귀들에게 축제였다.


"살아서는 별 쓸모 없는 녀석들이 죽어서는 이렇게 도움이 된다니까.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나는 바닥을 메우고 있는 시체들을 쳐다보았다.

검붉게 말라붙은 피로 인해 도저히 금속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색을 가지고 있는 갑주들을 입은 인간 시체들, 그리고 초록빛의 머리카락을 하고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숲의 요정의 시체들, 어린아이 키 밖에 되지 않는 땅의 요정의 시체들. 그리고 요정들이 부리던 동물들의 시체들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시체들이었다.

나는 이들이 나에게 덤비게 된 원인을 쳐다보았다.

왼손에 들려있는 책.

표지가 없는 기묘한 책이었다.

딱 중간부분부터 시작하는 책으로, 앞부분이 분리되어버려 얼핏 보기에는 '책' 으로서는 별 다른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물건 같아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중간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물건이었다. 아니, 무궁무진하다는 말조차도 부족한 물건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보물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지만, 나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보물, 나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고 싶어했던 엄청난 보물이었다. 나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해도, 설령 영혼마저 위험하다고 해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최강의 보물!

영혼의 서!

700년 전 세상을 지배했던 악의 정점, 광기의 대마도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클리언 테 리드비안 세트렘의 마법서!

역사상 최강, 최악의 천재였던 클리언 테 리드비안 세트렘이 세트렘 학파의 마법, 다른 학파의 비기, 온갖 생명체들에게 했던 생체실험에 대한 결과 등을 기록한 최강의 마법서였다.

내가 이것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나는 악명을 떨치는 사령술사이기는 했지만 오로지 본능적으로 익힌 마력 저장법과 그냥 단순하게 영감이 떠올라서 창안했던 몇 가지 기술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형편없는 사령술사였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나는 천재였지만,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한 비운의 천재이기도 했다.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한 번도 없었고, 정식으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냥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그냥 나 스스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은 부러워할지 모른다.

세상에는 배울 기회도 창안할 능력도 없어서 무능력한 이들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나는 그들과는 달리 배울 기회는 없지만 무능력하진 않으니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그들보단 괜찮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런 삶에 만족해야 하는가?

배울 기회가 없지만 천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마법을 창안해서 사용하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란 말인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봤자 훗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줄까?

[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와 운을 타고나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한 불운의 천재 ]

이 이상 평가를 받을 수나 있을까?

나는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공격 기술이라곤 하나밖에 없는 형편없는 학파였던 세트렘 학파 출신으로 세상을 지배했던 클리언 테 리드비안 세트렘처럼 되고 싶었다.

그렇게 수없이 갈망에 빠져있을 때 나에게 들어온 것이다.

바로 그 클리언 테 리드비안 세트렘의 영혼의 서가!

비록 후반부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의 천재적인 머리는 후반부에 적혀있는 다른 학파의 비기와 생체실험의 결과물만 보고도 수많은 마법들을 창안하고, 그것을 나에게 맞게 변화시켰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적이나 다름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부족하다.

내가 영혼의 서를 얻은 것을 알게 되자 세상 모든 종족들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좀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조금 더 강한 힘이.

나는 끝없이 쌓여져 있는 시체들을 쳐다보았다.

지평선 너머까지도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시체들.

나의 힘이 되어줄 사랑스러운 나의 재료들!

저것들을 이용해 힘을 더더욱 불릴 것이다.

그렇게 힘을 늘리고 또 늘려서!


"흐흐흐."


무적이 되리라.

앞부분도 찾아내 클리언 테 리드비안 세트렘의 진전을 완벽히 이어 또 다른 무적의 존재가 되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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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 - 2 [ 허무한 박명민 ] 12.12.02 767 2 18쪽
» 프롤로그 - 1 [ 살육의 사령술사 핀 ] 12.12.01 857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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