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후기
우리들이 저마다 이상을 품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보석과도 같이 반짝거리고 소중하면서, 동시에 언제 사라질 지 모를 불안정한 것이기도 하지요.
다만, 이상을 품는다는 것은 자신을 모종의 모양으로 가둬놓는 틀로 작용되기도 합니다.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들은 언제까지고 저마다의 모양으로 남아있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틀에서 벗어나 다른 모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시퍼런 사과를 새로 연재하면서 종종 목청이 터질새라 비명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연재했던 시기는 2016년 말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굉장히 즐겁게 시퍼런 사과를 써내려 갔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하더라도 글을 쓰면서 내면의 공백을 채울수만 있다면 그걸로 상관없다.
정말로 그때만큼은 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며 만족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가지지 못하고, 가질 수 없는 것에 커다란 고통을 느껴버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면 저마다 감성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겠지만, 특히나 제가 가진 감성은 남들보다 조금 더 일그러지고 특이하다는 것을 자주 느껴왔습니다.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고, 잃고 싶어도 잃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여겨왔던 독특한 감성이 지금은 여기저기가 닳고 너덜너덜해진 상태입니다.
감성을 잃고, 재능을 잃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지도 모를 좋은 사람을 잃고, 외모 역시 점점 변해갑니다.
품어왔던 이상마저 사실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도 들지만, 지금으로썬 딱히 불안하지도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근사한 일이지만, 이상이 있기에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변화를 받아들이며 소중한 것을 잃고, 하나씩 아픔을 새겨나가며, 앞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상.
그 틀은 우리들을 속박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을 품고, 그것을 관철해나가는 것 역시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은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요.
이 시퍼런 사과라는 작품이 여러분들께 어떤 식으로 다가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재미라는 감상을 너머 여운을 불어넣었다면 아주 조금은 기쁠지도 모르겠네요.
아무쪼록 부족한 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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