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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티움(Ghostiu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11.16 17:13
최근연재일 :
2023.11.19 06:0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64
추천수 :
12
글자수 :
144,628

작성
23.1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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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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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9화 <진실>

DUMMY

9화 <진실>



허겁지겁 밖으로 나온 종철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있는 주변 환경. 이미 잿빛 세상은 완전히 깨져버렸지만, 건물 안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괴기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 그리고 그 액체 위에서 하나둘씩 태어나는 손과 머리통. 역겨운 그 움직임이 사방에서 펼쳐졌다. 머리 위로 다시금 파리 떼가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벌레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우의 저주일까. 어쩌면 은채가 꾸민 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할 여유는 없다. 저기 어딘가에 하나가 있을지 모르니까.

종철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손과 머리통을 짓밟아가며 앞으로 내달렸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나지 않는 흉측한 세계를.

피와 살점이 내뿜는 고약한 비린내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숨은 거칠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졌다.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 이 더럽고 끔찍한 공간이 자신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쭉 빨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런 그를 향해 달려오는 손과 머리통들. 파리 떼와 벌레들도 종철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로 그때, 다시금 들려온 비명. 종철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는 없다. 하나, 하나만은 구해야 한다. 그의 머릿속은 단 하나만 생각했다. 그의 가슴은 단 하나만 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괴물 같은 포효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종철. 그는 다가오는 손과 머리통들을 으깬 뒤, 그대로 소리가 들려온 그곳으로 달려갔다. 벌레에게 뜯겨도, 손과 머리통이 그에게 달려들어도, 그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려갔을까. 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출구. 출구로부터 유황 냄새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출구가 아니라 지옥의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그런 도중에도 갑작스레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멀리서 종철의 눈길을 빼앗은 단 한 사람. 지옥 같은 이곳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단 한 존재.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토록 원했던 그 아이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었으니까.


“하나야!”


종철은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오직 하나만을 구하기 위해.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눈빛이 이상하다. 어딘지 모르게 넋이 완전히 나간 듯한 눈동자. 창백한 얼굴에서는 기괴함이 풍겨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로 그때, 하나의 머리 위로 살며시 올라오는 창백하고 하얀 손. 그리고 주변에 퍼지는 달큰한 향기. 너무나 익숙했다. 조금 전에도 맡았으니까.


“성은채!!!”


서서히 올라가는 은채의 입꼬리.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그녀의 표정은, 종철의 분노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어두운 공간 속 유독 서슬 퍼렇게 빛나는 그의 도끼날. 마치 그의 눈빛 같았다. 종철은 가슴속에 끓고 있는 그 감정을 더는 참지 않았다. 달렸다. 그녀를 향해. 그리고 하나를 위해.

그러나 이런 종철을 지옥의 입구는 반가워하지 않는 것일까. 성채와 종철 사이로 숱한 괴물들이 몰려들었다. 오직 그, 종철을 막아 세우기 위해서.

파리 떼 소리가 거세졌다. 벌레의 무리가 그를 덮쳤다. 손에서 얼굴로. 코와 귀 그리고 입으로 무작정 파고드는 벌레들. 괴물들도 합세해 그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피와 살점. 그의 비명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은채는, 하나를 끌고서 천천히 반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점점 멀어지는 하나. 이렇게 끝인 걸까. 절망감이 몰려오는 듯했다.

그 순간, 하나의 눈동자가 종철의 시야 안에 들어왔다. 의식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희미한 눈빛. 그는 다시 한번 도끼를 꽉 쥐었다. 멈출 수 없다. 아니 멈춰서는 안 된다. 하나가 이대로 끌려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온몸이 잘게 잘려나가도. 상관없다.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오직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종철은 도끼를 휘둘렀다. 힘없이 돌아가던 그 도끼날은 점차 빨라지고, 또 강해졌다. 하나 그리고 둘, 그의 도끼질에 갈려 나가는 괴물과 벌레들. 사방으로 피와 진액, 그리고 살점과 벌레 사체가 흩날렸다.

그러나 지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잘려나간 괴물들은 이내 보충되었고, 뭉개진 벌레들의 자리도 금세 새로운 벌레들이 기어와 채웠다. 이 와중에도 은채는 하나를 끌고 자꾸만 그리고 자꾸만 멀어져갔다. 의지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종철은 도끼를 강하게 쥐더니, 곧바로 은채의 등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에게 다른 생각은 없었다. 오직 하나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도끼는, 정확히 은채의 등에 깊숙이 박혔다. 그 순간, 갑자기 멈춘 벌레 떼와 괴물들. 기회였다. 하나들 데리고 도망칠 기회. 종철은 남은 힘을 다 짜내서 벌레와 괴물들을 밀치고 하나를 향해 달렸다.

그가 다가와도 여전히 멍한 눈빛의 하나. 종철은 그 눈빛에 머뭇거릴 틈도 없이, 하나를 앉고 무작정 반대편으로 달렸다.


“잡아! 저놈 잡아!”


그런 그의 등 뒤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지금 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는 한 여자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종철은 달려오는 벌레 떼와 괴물들을 피해가며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가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고 핏물이 흐르는 비상계단. 그는 계단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도 오직 하나만큼은 다치지 않게 온몸으로 그녀를 보호했다.

피의 비상계단을 뚫고 나와 드디어 로비에 도착한 종철. 그는 눈앞에 보이는 출구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런데,


[푸욱.]


갑자기 목 뒤에서 밀려온 거대한 충격. 정신이 아득해진다. 도대체 뭐가 일어난 것일까. 종철은 왼손으로 목 뒤를 만져보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끌미끌하고 차가운 감촉. 그의 머릿속에 한 물체가 떠올랐다. 바로 그가 던졌던 그 도끼가.


“그냥 나갔으면 좋았잖아.”


은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큰한 향기와 함께. 눈이 감긴다. 눈이 감겨도 하나만은 지켜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하, 하나야... 달려...”


하나를 내려놓은 종철은, 몸을 돌려 은채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점점 멀어져갔다. 손끝의 감각부터 서서히 죽어갔다. 이게 죽음이라는 것일까. 죽음은 상관없다. 하나만, 오직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하지만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의 안전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행복을 향한, 단 한 걸음을 눈앞에 남겨 두고.


***


여긴 어디일까. 머릿속이 멍했다. 난생처음 보는 공간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편히 숨을 쉬고 싶지만, 숨이 거칠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 걸까.


“이제야 정신이 드냐?! 종철아! 종철아!”


바로 그때, 시야 안으로 들어온 한 남자, 익숙한 그 얼굴, 팀장이었다.


“여긴...”

“병원이야, 임마! 너 거의 죽어있었다고!”


죽어있었다는 말에, 종철은 두 눈만 끔뻑거렸다. 죽어있었다니. 죽은 게 아니었나. 분명 기억의 마지막에는...


“하나! 하나는요?!”


순간 그의 머릿속에 피어난 이름, 하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철컹.]


그의 행동을 가로막는 쇠사슬 소리. 그의 양손에는 범법자들이 차고 있어야 할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서너 개가 각각 양쪽 팔에.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너 기억 안 나?”

“기억이요? 무슨 기억이요?”


종철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핸드폰을 종철의 앞에 꺼낸 팀장. 이내 팀장은 그에게 한 동영상을 틀더니 곧바로 내밀었다.


“너, 이랬어.”


영상 속 장소는 바로 이 병실. 병실 안에서 종철은 온갖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그것도 대여섯 명의 장정들을 등에 업고서.


“네가 아무리 힘이 좋아도 그렇지. 장정 열 명이 못 막는 게 말이 돼?”

“제가 이랬다고요?”

“못 믿겠지? 나도 못 믿겠다. 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팀장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종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비친 종철은 당황한 듯 연신 눈동자를 움직였다.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는 것일까. 쓰러진 이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하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어느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단 한 조각도.


***


한편, 팀장의 옷 심부름으로 종철의 아파트에 오게 된 수진은,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종철의 집. 하긴, 집주인이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워 뒀으니, 사람 냄새가 옅어진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깔끔하긴 하네. 내 집보다.”


깔끔하게 치워져 있는 모습에, 자꾸 어디에 사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흡사 마구간에서 사는 듯한 바로 근처의 그 여자가.

천천히 거실을 둘러본 수진은, 이제 발걸음을 움직여 안쪽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들어온 건 바로 작은방. 그녀는 서슴지 않고 문을 열어 내부를 살펴보았다.

보통의 방과 다를 건 없었다. 아이의 방이었는지 인형과 장난감 상자가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여기가 하나 방인가?”


수진은 방에 쌓여 있는 장난감 쪽으로 다가가 살며시 훑어보았다. 그런데,


“어... 뭔가 이상한 데...”


위화감이 느껴진다. 깨끗한 장난감 상자에서 왜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수진은 상자를 들고 면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매서운 눈빛이 장난감 상자를 훑고 지나갔다. 그 찰나, 그녀에게 포착된 위화감의 원인. 바로, 장난감 상자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장난감 상자뿐만 아니라, 방 안에 있는 모든 상자가 밀봉된 채로 놓여 있었다.


“아니, 샀으면 가지고 놀아야지...”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 집에 아무도 없는 걸까. 아이가 있다면 결혼을 했다는 말인데, 왜 집에서는 사람 사는 느낌이 없었던 것일까. 마치 예전 철민의 집처럼. 순간 불길한 느낌이 수진을 엄습해왔다. 그것도 익숙한 불안감이.


“뭐, 뭐 별거 중이겠지. 별거 중일 거야.”


수진은 혼잣말을 늘어놓으며 불안감을 떨쳐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떨치려고 해도 떨칠 수 없는 불안감. 그녀는 그냥 빨리 심부름을 끝내겠다는 생각 하나로, 안방 문을 열었다.

안방 문을 열기 전,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철민의 집처럼 동물 사체가 널려 있으면 어떡할까. 어쩌면 더 엽기적일 지도 모른다. 걱정 위에 걱정이 쌓여갔다.

하지만 이런 걱정들과 다르게, 안방은 너무나 깔끔했다. 그녀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제 남은 건 팀장의 심부름뿐. 그녀는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곧장 안방의 옷장을 열고 옷가지 몇 개를 간단히 챙겼다. 종철이 퇴원 시 입을 옷이었다.

간단히 옷을 챙긴 그녀는 옷장 문을 닫고 빠르게 방을 떠나려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작은 종이. 장롱문 안쪽에 붙어 있던 종이는 불에 탄 듯 검게 그을려 있었다.

다시금 불안감이 몰려왔다. 데자뷰일까. 아니다. 이건 엄연한 현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익숙한 불안감에 공포마저 느껴버린 수진. 검게 탄 종이를 집을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야 말았다.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그런 그녀의 발뒤꿈치에 침대 프레임이 닿았다. 반사적으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를 보자, 종철이 철민의 집에서 보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베갯잇을 뒤져서 부적을 찾았던 종철의 모습이. 설마 그 행동 전부가 경험에 의한 게 아닐까. 그녀는 밀려오는 공포감에 무척이나 두려웠지만,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수진은 마른 침을 삼키고 수 없이 심호흡하더니, 그대로 베갯잇을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손에 집힌 두툼한 종이 뭉치. 불길함이 현실로 바뀌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공포감에 그녀는 종이 뭉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뛰어 아파트를 떠났다. 뛰어가는 내내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은 누군가의 웃음소리. 무서움에 몸이 떨려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파트를 떠나가는 내내.


***


종철은 병원 침대에 누워, 그저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양손에 채워진 서너 개의 수갑들. 움직이는 게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본인이 사고 치는 영상을 봤기 때문에.


“종철아, 괜찮냐?”


바로 그때, 종철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팀장. 병실로 들어온 그는, 머리맡에 쇼핑백을 두더니, 담담한 눈빛으로 종철을 바라보았다.


“살만하냐?”

“조금 뻐근한 거 빼면 그럭저럭 살만합니다.”


멋쩍게 웃는 종철. 그런 그를 향해 팀장은 나직이 웃었다.


“여기 옷 받아. 그리고 제수씨 예쁘던데. 왜 말을 안 했어. 우리가 알고 산 지 몇 년인데.”

“자랑할 만한 건 아니라서요.”


종철은 다시금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팀장은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는 심각하리만큼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종철아. 우리가 함께한 지 10년이다, 10년.”

“그렇죠. 10년이죠.”

“너, 언제 결혼했니?”

“그야...”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종철. 하지만 더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충격이 컸었나? 왜 생각이...”

“그래, 그럼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왜 네 호적에 하나가 없는 거냐. 딸 이름이 없는 거냐고!”


팀장은 쇼핑백 안에서 종이를 꺼내 종철 앞에 내밀었다. 그가 내민 건 가족관계 증명서. 증명서에 적힌 가족관계란은 이상하리만큼 깨끗했다.


“아니, 아니, 이건 말이 안 돼요! 팀장님도 알잖아요! 하나 알잖아요!”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도대체가 떠오르지 않아! 얼굴도! 목소리도! 이게 왜 이런 거야? 왜? 왜? 도대체 왜?!”


팀장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뭔가 착각이 있을 거야... 착각이...”

“착각이 아니야! 넌 결혼한 적도, 딸이 있던 적도 없다고!”


종철의 눈동자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하나의 존재. 그런데 딸이 없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천천히 하나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본인 딸의 얼굴을 자신이 모를 리 없다. 떠오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데,


“왜... 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딸과 보낸 단 하나의 추억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착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곧장 정신 감정을 의뢰했지만, 큰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찝찝한 사실만을 알게 된 채 퇴원 날이 다가왔다.

마중 나온 이는 팀장이 전부였다. 목숨을 구해준 수진과 동료 형사들은 그에게 안부 전화조차 하지 않았었다.

퇴원 수속을 받기 전, 잠시 로비에 앉아 대기하게 된 종철과 팀장. 담담히 앞을 바라보던 그의 시야에 사뿐사뿐 걸어가는 어린아이가 들어왔다.


“저 아이 보이세요?”

“응. 보여.”

“나도 분명 있었는데...”


종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딸이 있다고 믿게 된 것일까. 아니 어떻게 모두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좀 앉아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종철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수납 창구로 발걸음을 옮긴 팀장. 종철은 그가 자리를 비운 지도 모른 채, 그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가 떠나자, 멀리서 사뿐히 걷던 아이가 종철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치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저씨?”

“응?”


아이의 부름에 종철은 고개를 들어 살며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똘똘하게 생긴 아이. 아름다운 미모 때문에, 여자아이로 보였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워낙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들도 많으니까.


“하나가 전해 달래요.”

“하, 하나?”


아이의 말에 동공이 떨리기 시작한 종철. 그는 위험을 직감했다. 처음 보는 아이가 하나를 언급하다니. 공포심이 가득 차오른 종철은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혼자 살아나가면 좋아?”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날카로운 목소리. 달큰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종철의 주변으로 잿빛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고스티움 앱이 발동된 것처럼.

그의 주변으로 수많은 벌레와 괴물들이 득실거렸다. 말을 걸어온 아이는 다름 아닌 은채. 그녀는 두 눈을 희번덕이며 종철을 노려보았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레들과 괴물들이 종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그 순간,


-Exsurge, filium meus.-


어디선가 속삭이듯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떨리던 종철의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목소리가 들린 후로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돌아왔다. 도끼에 맞아 쓰러진 후 그가 어떻게 살아나게 됐는지.


***


게임회사 로비에 쓰러진 종철. 그를 향해 누군가가 달려왔다. 바로 그가 그토록 찾으려고 애썼던 하나가. 도망치지 않고, 종철의 귓가에 입술을 가지고 간 하나. 이내 그녀는 그의 곁에서 나직이 속삭였다.


“Exsurge, filium meus.(일어나라, 나의 아들아.)”


그 목소리는 매력적이고 또 웅장했다. 어린아이, 그것도 여자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귓가로 목소리가 퍼지자, 그대로 두 눈을 뜨게 된 종철. 그는 목 뒤에 박힌 도끼를 직접 뽑아 들고 그대로 괴물들에게 달려갔다. 이어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되었다. 종철의 일방적인 살육. 그의 눈빛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흩날렸다. 그의 살육은 계속되었다. 샛별이 지기 전까지.


***


머릿속 음성으로 기억이 전부 돌아온 종철. 이내 그는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눈동자는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영접한 것처럼.


“네, 아버지.”


그의 입에서 짤막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서서히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 나직한 웃음소리가 서서히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 모습에 섬뜩함을 느낀 건, 그 누구도 아닌 은채. 날카롭기 그지없었던 그녀의 인상은,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재수 없는 것. 죽어버려.”

[퍽!]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괴물들에 의해 얼굴의 반쪽이 뜯겨 나가는 종철. 수많은 손과 머리통이 그의 머리를 향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뼈가 으스러지고, 피와 뇌수가 한여름의 분수처럼 터져나갔다.


[쩝쩝... 쩝쩝... 쩝쩝...]


게걸스럽게 살점을 뜯어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낱 괴물들의 먹이가 된 그 모습에 안도감이 든 것일까. 은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흐흐흐흐.... 흐흐흐...”


어디선가 들려오는 섬뜩한 웃음소리. 그 기분 나쁜 소리를 흘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종철의 입술이었다. 눈 한쪽과 입만 남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얼굴이 완전히 사라질 지경에 놓였지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진해질 뿐.

바로 그때였다. 괴물의 손가락이 그의 입술을 탐하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 주변으로 다가갔다. 부드럽고 가볍게 다가가는 괴물의 손길.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종철이 아닌, 은채에게.


“그! 그만!”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은 은채. 하지만 이미 늦었었다. 이미 그 가느다란 손가락은 종철의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와그작... 와그작...]


종철의 입속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도 함께 들려왔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 액체와 함께 짓이겨진 살점들이 한 점 그리고 두 점 툭툭 떨어졌다. 다름 아닌 괴물의 살점이.


“흐흐흐흐...”


섬뜩한 웃음과 함께 남은 한쪽 눈알에서 광기가 쏟아졌다. 미소를 머금은 그의 입은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붉었다. 살점을 머금은 게걸스러운 광인 마냥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모자랐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얼굴 위를 기어 다니는 다른 손을 잡아, 그대로 입으로 가지고 갔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비명과 함께, 살점과 핏물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양 볼 가득 살점을 채웠다. 으드득으드득 뼈 갈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들려왔다. 사라졌던 얼굴 반쪽이 점차 부글거리며 살이 차올랐다. 마치 비누 거품이 일어나는 듯이.

종철은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에 넣었다. 손, 머리 심지어 주변에 날아다니는 파리까지. 이런 그의 행패에 누군가가 떠오른 것일까.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새파래졌다.


“이, 이럴 순 없어... 내 주인님께서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으흐흐흐흐...”


종철은 괴물들의 살점과 뼈를 질겅질겅 씹으며 은채를 바라봤다.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한 미소에 그만, 자신도 모르게 점차 뒷걸음질 치고 마는 은채. 이내 종철은 그런 그녀를 향해 서서히 달려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광기와 본능을 미소에 고스란히 녹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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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진실> 23.11.19 16 0 22쪽
9 8화 <결착> 23.11.18 4 0 18쪽
8 7화 <습격> 23.11.18 4 0 20쪽
7 6화 <절망, 그리고> 23.11.18 5 0 46쪽
6 5화 <잿빛 세상> 23.11.18 4 0 33쪽
5 4화 <고스티움> 23.11.17 5 1 45쪽
4 3화 <오직 하나뿐인> 23.11.17 6 1 38쪽
3 2화 <착각> +1 23.11.17 18 2 49쪽
2 1화 <불행> +1 23.11.17 23 3 26쪽
1 0화 <프롤로그> 23.11.16 76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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