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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고스티움(Ghostiu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11.16 17:13
최근연재일 :
2023.11.19 06:00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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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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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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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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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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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5화 <잿빛 세상>

DUMMY

5화 <잿빛 세상>



경찰서 밖으로 나온 팀장과 경찰들은 이 잡듯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는데도 불구하고 종철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모습은커녕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은, 팀장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 정도였다. 아니, 어떻게 경찰서 안의 그 누구의 시선에도 들키지 않고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력으로 수갑까지 풀고. 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팀장님! 팀장님!!!”


경찰서에서 헐레벌떡 뛰쳐나온 수진은, 핸드폰을 들고 곧장 팀장을 향해 달려왔다. 흡사 흥분한 멧돼지 같은 그녀의 모습. 그녀의 위협적인 발걸음에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몸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순환보직 중이리고 해도, 어쩌면 저렇게 형사답지 않은 걸까. 그렇게 사리분간 못 하고 어린 애처럼 날뛰는 수진을 보고 있자니 더욱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가 마음속에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사이, 잔뜩 흥분한 듯한 그녀는 점차 팀장 쪽으로 가까워져 갔다.


“뭐야, 또.”

“이거요, 이거!”


뭔가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팀장에서 핸드폰을 내미는 수진.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팀장의 입술에서는 신경질적인 음색만 흘러나왔다.


“넌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종철이를 찾으라니까 핸드폰이나 만지고 있어?”

“그게 아니라, 이걸 보시라니까요!”

그러나 수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열어 직접 팀장의 얼굴 앞에 들이댔다. 더욱 어두워진 그의 표정. 제멋대로 행동하는 그녀를 향해 일갈의 호통을 치려던 바로 그때, 그의 시선이 핸드폰 속 영상에 꽂히고 말았다.


“이거 종철이 맞지? 얘 왜 이래?”

“지금 SNS에 난리가 났어요. 경찰서에서 뛰쳐나온 피투성이 남성으로.”


팀장은 이어서 동영상을 시청했다. 그 순간,


“잠깐, 이거 요 앞이잖아!!”


문득 장소가 어딘지 깨달은 팀장, 그는 지체할 틈도 없이 서둘러 도로 쪽으로 맹 돌진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서 수진 역시 재빠르게 뛰어갔다.


“이게 지금 다 뭐야...”


도로에 도착해 보니, 현장은 더 가관이었다. 흥건히 고인 피, 그리고 그 피에서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역하고 비릿한 냄새. 마치 며칠 묵은 사체에서나 풍겨올 듯한 피비린내가 도로 한복판에서 느껴졌다.

팀장은, 수진에게 도로 통제를 맡기고 피 웅덩이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 그의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피 웅덩이 근처 만쯤 뭉개진 손. 반이나 형체를 잃었음에도 손은 마치 갓 잡은 생선 마냥 퍼덕이고 있었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인 거야...”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이 연거푸 이어지자. 그는 완전히 미칠 지경이었다. 억지로라도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종철뿐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그는 더욱 종철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종철을 찾아 주변을 둘러봤을 때는, 너무나 늦어버린 모양인지, 도로 주변 그 어디에도 종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팀장은 작은 단서라도 찾으려 핸드폰 화면에 집중했다. 영상 속에는 완전히 피 칠갑이 된 종철이 도로 한복판에 서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라진 종철. 그러나 그의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기루처럼 다시금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뭐냐... 갑자기 왜 사라져? 이거 영상에 손댄 거야?”

“그건 저도 모르는데...”


어느새 팀장의 주변으로 다가온 수진. 도로로 달려온 건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팀장은 형사들에게 도로 위 상황을 맡기고, 온전히 핸드폰에 집중했다. 이어지는 장면 속, 주변의 승용차로 달려가 차를 빼앗아 달아나는 종철. 팀장은 그 모습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차를 뺏어서 도주까지. 미치겠다, 미치겠어!!”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핸드폰을 돌려주는 팀장.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얼굴에는 뭔가를 단단히 각오한 듯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수진, 가서 종철이 지명수배 때려.”

“네? 지명수배요?”

“지가 지입으로 살인했다고 했고, 탈주에, 차까지 훔쳐 도주했어. 앞에 일들은 뭐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차를 훔친 건 명백한 사실이잖아. 가서 때려.”


단단히 각오한 듯 낮게 내려앉는 팀장의 목소리. 수진은 그를 따라 진중한 표정을 짓고 경찰서로 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했다.


“아, 그리고.”

“네?”


팀장의 말에, 다시금 그를 돌아본 수진. 수진의 눈에 비친 팀장의 얼굴은, 무척이나 비장했지만,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동료를 뒤쫓아야만 하는 현실이 끝내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CCTV 뒤져서 어디로 갔는지 좀 추려내 봐. 이번엔 절대 놓치면 안 되니까.”


나지막한 팀장의 명령에, 순간, 수진은 종철이 상혁의 핸드폰을 물어봤던 것이 떠올랐다. 핸드폰에 집착하는 듯한 그의 태도가 조금 마음에 걸렸던 수진. 그녀는 자신의 느낌에 확신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그녀만이 겪은 한 가지 확실한 사건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핸드폰이요.”


그가 철민의 핸드폰에 관심을 보이며, 그 핸드폰을 잠시 주면 진술을 하겠다고 한 사실. 이것은 둘 사이에 일어난 명백한 일이며 또한 진실이었다.

수진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팀장을 바라봤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간과할 수도 없다. 그녀 또한 선택해야 했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건지.


“응? 핸드폰? 방금 돌려줬잖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마도 핸드폰을 가지러 간 거 같습니다. 상혁 경사의 핸드폰을.”


팀장의 말에 자신의 느낌을 피력한 수진. 그 모습을 본 팀장은 그저 가만히, 진중하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


한편, 복도를 거닐던 시우는, 그대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화난 듯 상기된 그의 얼굴. 그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 것인지, 연신 회의실 책상을 내려쳤다.


“그렇다고 부서지겠어?”


그런 그의 모습을, 미소까지 띠며 바라보는 은채. 시우의 뒤를 따라 들어온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사뿐사뿐 회의실 주변을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회의실 안을 가로지르는 하이힐 소리. 시우는 짜증 나는 그 소리에 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은채를 바라봤다.


“잡것은 빠져 있어.”

“빠질 수 있어야 빠지지. 이미 한배를 탔는데.”


은채는 그녀의 느긋한 걸음을 회의실 안쪽까지 이어갔다. 어느덧 회의실의 끝에 다다른 그녀. 이어서 그녀는 그 희고 아름다운 손을 살며시 앞으로 내밀었다. 누군가의 끈끈한 피부에 맞닿은 그녀의 손가락. 그 손가락은 천천히 피부를 타고 올라가 그의 얼굴로 향했다.


“이 정도 보상은 받아야 하지? 그렇지 철민 씨?”


그녀의 손끝이 입술에 닿자, 맥없이 풀려버린 철민의 동공. 그의 쩍 벌린 입에서 하염없이 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껏 와서 한다는 짓거리가 먹이 주기라니.”


그의 핀잔에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은 채, 그저 철민의 뺨만을 어루만지는 은채. 그녀는 충분히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철민에 대한 보상도, 그리고 시우가 내뿜는 짜증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당신이 만든 거니까, 당신이 책임져야지.”


서로를 향한 싸늘한 시선이 오고 갔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철민. 그의 꼿꼿이 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쾌락이 취한 듯 나지막이 잔뜩 흥분한 신음을 입에 올렸다.


“돼지 새끼 먹이는 그만 줘.”

“어머 돼지라니. 그럼, 이번 일 확실히 마무리 질 거야?”


철민의 뺨을 매만지던 그녀의 손가락이 살며시 멈춰 섰다. 점차 힘이 들어가는 그녀의 손가락. 그녀의 손톱 끝 철민의 피부에서 서서히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철민의 뺨에서 새어 나온 피는 이내 그의 침과 함께 뒤섞여 한 방울 두 방울 그의 가슴으로, 그의 다리로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져 흘러내렸다.


“다음번엔 안 놓쳐.”

“그럼 이번만 믿어볼까.”


은채는 철민에게서 사뿐히 손을 뗐다. 그러자, 철민은 다리가 풀린 듯 맥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시우는 그런 철민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어머 너무 가지고 놀았나? 미안해, 주인.”

“쓸데없는 몸뚱아리.”

“그래도 애착이 있지 않아? 당신의...”

“할 말 끝났으면 나가.”


은채는 시우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옅지만 강한 눈빛. 그리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어우러져 미묘한 분위기가 그녀에게서 풍겨 나왔다. 무언가 복합적인 의미가 담긴 듯한 그녀의 미소. 그 의미를 잘 아는 듯한 시우는, 눈가를 씰룩이며 그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리를 떠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


종철은 자동차를 몰며 어디론가 하염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잔뜩 긴장된 얼굴 속, 그의 표정에서는 단 하나의 여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호등 앞에 정차할 때마다, 그는 조금 전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들을 곱게 되씹어 봤다. 멀어져가던 하나의 뒷모습, 그리고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괴물 손. 어쩌면, 하나를 만나는 것에만 그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를 품에 안고 버틴다면, 아니 그 작은 손만 꼭 쥐기만 한다면 하나를 세상으로 데리고 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 삭막하고 절망적인 세계에서 말이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다른 욕심이 자리를 단단히 잡았다. 단지 하나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를 살리고 싶다. 하나를 자신의 세상으로 다시 되돌려놓고 싶다. 이런 희망이란 예쁜 포장지에 싸인 강한 욕망이 그의 마음을 꽉 움켜쥔 채 결코 놓으려 하지를 않았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일까. 서서히 멈추는 자동차 바퀴. 종철의 얼굴은 결연한 의지를 고스란히 머금은 채, 눈앞의 경비실 초소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헉!!”


초소의 경비원은 저절로 말문이 턱 막혔다. 초소 밖, 운전석 창문 뒤편으로 보이는 피범벅이 된 사내. 혼자 전쟁이라도 치르고 온 것일까. 경비원은, 순간 덜컥 겁이 나고야 말았다.


“저, 저, 괜찮으세요?”


그런 그를 묵묵히 바라보는 종철.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이어서 천천히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저는...”


***


그 시각, 수진과 팀장을 태운 차량은 내부순환로를 빠져나와 월드컵대교에 진입하고 있었다. 긴장한 듯 운전대를 꽉 잡은 수진과 진지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팀장. 그때, 몇 번의 대답을 마친 팀장의 표정이 더욱 경직되어 갔다.


“목동 맞아? 정말 목동 근처에서 잡혔어?”


목동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수진. 그녀는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것을 망각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시선을 팀장 쪽으로 두었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오로지 팀장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수진. 그러자,


“수진이 너는 운전이나 똑바로 해.”


결국, 팀장에게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수진은 겸연쩍은 듯 시선을 돌려 정면을 응시했지만, 그녀의 오른쪽 귀는 여전히 팀장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추고 한껏 볼륨을 높여놓았다. 작은 소리 하나, 하찮은 정보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그러나, 이런 수진의 노력이 들킨 것일까. 팀장은 서둘러 통화를 마치고 정면을 응시했다. 차 안에 팀장의 입술처럼 무거운 침묵이 낮게 내려앉았다.

그렇게 대교를 건너 양천구로 들어서게 된 자동차. 팀장은 자신의 눈으로 ‘과학 수사 연구소’라고 적힌 도로 이정표를 확인하고서야, 그제야 낮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 말대로 국과수로 간 모양이야. 그쪽에서도 연락이 왔었데. 피투성이인 경위가 찾아왔다고.”

“그럼, 지원을 받는 게...”


팀장은 짜증이 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입으로 지명수배까지 내린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종철은 자신과 10년을 넘게 같이 일을 해온 동료. 그의 머리는 과감하게 지원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가슴은 극구 그 결단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냥 우리끼리 가자. 말하면 들어 처먹을 놈이니까.”

“네.”


그렇게 대화가 끝나자, 어느덧 과학 수사 연구소 정문까지 오게 된 자동차. 그런데 느낌이 싸하게 다가온다. 어찌 된 영문인지 사람이 있어야 할 경비 초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팀장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경비 초소로 향했다.

초소 안을 들여다보자, 손발이 묶인 채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경비원들이 보였다. 팀장은 생각할 틈도 없이 초소 안으로 들어가 경비원들의 안위부터 확인했다. 만약, 이 모든 게 종철의 행동이라면 그가 더는 죄를 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팀장은 서둘러 다가가 맥박을 확인하자, 다행히도 모두 맥박이 잡혔다. 그러나 얼마나 호되게 당한 것인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그들은 결코,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설마, 두 사람 다...”

“안 죽었어. 기절한 것뿐이야.”


초소로 달려온 수진은 경비원들이 죽지 않았다는 팀장의 말에, 가슴속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은 서둘러 그들을 묶고 있는 케이블 타이를 끊더니, 그들을 모두 바르게 땅 위에 눕혀 놓았다.


“수진아 119 부르고.”


수진은 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 대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한 수진. 그녀는 간략하게 통화를 마친 뒤, 다시금 초소 앞에 서 있는 팀장에게로 다가갔다.


“네 말대로라면, 저기 이공학과 건물로 갔겠지?”

“아마도 그런 거 같은데요.”

“가자.”


그렇게 천천히 눈앞의 건물로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따르르릉!!!!!!!]


귓가로 갑자기 화재 경보 사이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건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가까워져만 갔다. 팀장과 수진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종철아!!”


팀장의 입에서 가슴속에 담아 잇던 울화통이 끝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듯 살짝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진. 두 사람은 그저 종철이 야속할 뿐이었다. 안타까울 뿐이었다.

건물 앞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연구원이 건물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건 비단 사람들뿐만은 아니었다. 건물 안쪽에서부터 점차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검은 연기. 팀장과 수진은 눈앞의 기가 막힌 상황에 도무지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진짜 화재야?”

“어떡하죠 팀장님?”


그의 눈동자에 갈등이 비쳤다. 난감한 듯 인상을 쓰며 입술을 깨물던 팀장. 그러나 그의 얼굴에 쌓여 있던 착잡한 고민도 이내 굳은 결심으로 바뀌어 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넌 여기 있어.”

“팀장님?!”


수진만을 남겨 둔 채, 그대로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팀장. 그는 연신 종철의 이름을 외치며 건물 안을 배회했다.

1층을 빠르게 탐색한 뒤, 2층으로 진입한 팀장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주목했다. 물건과 비닐이 부딪히며 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뭔가를 뒤지고 있는 듯한 그 소리에, 팀장은 다시금 복도 끝의 방으로 발걸음을 내달렸다. 분명 종철이라는 굳은 확신과 함께.


“야! 김종철!!”


그의 예상대로 물건을 뒤지고 있던 사람은 종철이었다. 그것도 완벽히 피 칠갑이 된 종철.


“너 그런 모습 오늘만 두 번째다. 그거 아냐?”


팀장의 너스레에도, 종철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물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오직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켜는 단순한 일만 하는 그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팀장. 그런 그에게 종철이 나지막이 경고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더 다가오시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지금 여기 불바다야!”

“상관없어요.”

“뭐?”


무심하게 핸드폰만 만지는 종철과 그런 종철의 모습에 너무나 당황한 팀장. 정말 미쳐버린 걸까. 팀장은 슬슬 종철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바로 그때, 갑자기 종철의 분주했던 움직임이 멈췄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저 핸드폰만을 바라보는 종철. 그 모습을 마주한 팀장은 등줄기에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거 뭐야? 너 뭔데 그렇게...”

“하나야, 곧 아빠가 갈게.”


본능으로 위협을 직감한 팀장은, 재빠르게 몸을 날려 종철의 손을 내려쳤다. 그러자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핸드폰. 종철의 시선도 핸드폰을 따라 밑으로만 내려갔다. 이미 동공이 풀린 그의 눈동자. 그런 종철을 바라보는 팀장은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피부로 다가오고 있었다.


“종철아, 정신 차려!”


팀장의 외침에도, 종철은 그저 어기적어기적 떨어진 핸드폰을 향해 다가가기를 반복했다. 그런 종철을 향해 달려간 팀장은 있는 힘껏 그를 막아섰다. 그런데 무슨 어찌 된 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점차 뒤로 밀렸다. 마치 쓰러지는 돌부처를 온몸으로 막는 것처럼, 팀장의 몸은 조금씩 짓눌려만 갔다.


“팀장님!”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수진이었다.


“야 너 왜 왔어?!”

“그럼 가만히 있어요?!”


수진도 달려와 종철을 막아섰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그의 움직임. 수진 역시 점차 조금씩 뒤로 밀렸다.


“이렇게까지 힘이 좋은 사람이 아닌데...”

“수진아, 핸드폰! 저기 핸드폰 잡아! 빨리!”


팀장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 수진은,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의 뒤편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발견한 그녀. 수진은 그의 말에 따라 재빠르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동자가 이상하다. 완전히 넋이 나간 채로 핸드폰만을 바라보는 그녀.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녀의 손이 점차 핸드폰의 정중앙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수진아 뭐해?!!”


팀장의 외침에도 전혀 미동도 없이, 그저 핸드폰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 수진. 눈빛이 돌아온 건 오히려 종철이었다. 아득해졌던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던 종철은, 그제야 수진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그 핸드폰이.


“수진아, 안돼!”


종철이 다급하게 수진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가로막고 있던 팀장의 손에 걸려 그만 그녀에게까지 닿지 못하였다.

그렇게 그대로 핸드폰 화면에 손가락을 올리는 수진. 그녀가 손가락을 올리자, 주변에 차오르고 있었던 연기가, 마치 언제 불이 일어났었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어졌다. 하지만, 그 연기 대신 점차 주변에 가득 차는 파리의 날갯짓 소리. 종철은 있는 힘껏 팀장을 뿌리치고 수진에게 달려갔다.


“수진아, 괜찮아?!”


아무리 불러도 미동도 없는 그녀. 그녀는 그저 자신의 손에 있는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종철아, 저게 뭐야?”


그때, 떨리는 팀장의 목소리가 종철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무척이나 끔찍한 것을 본 듯 파르르 떨리던 그의 목소리. 종철은 그가 무엇을 봤는지, 그리고 어떤 심정인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팀장님, 달려야 합니다!”


수진을 들쳐 맨 종철은, 그대로 복도로 돌진했다. 팀장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종철의 뒤를 따라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그들의 뒤로 맹렬하게 쫓아오는 무수히 많은 손과 머리통을 피해서.

천장, 바닥, 벽, 앞뒤 가릴 것 없이 사방에서 달려오는 손과 머리통. 팀장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저 종철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겨우 건물을 빠져나온 종철과 그 일행은, 거친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다시금 무작정 내달렸다. 그들을 쫓아오던 손과 머리통이 안 보일 때까지.

얼마나 뛰었을까. 이제는 국과수 건물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귓가를 간지럽히던 파리 떼 소리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그제야 업고 있던 수진을 내려놓은 종철은, 뒤따라 달려온 팀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종철아, 저것들 뭐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종철의 손을 잡는 팀장. 그러나 팀장의 대답에 돌아오는 건 그저 무음의 대답이었다.

팀장은 도로 위에 가지러니 누워있는 수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뭔가에 홀린 듯, 그녀의 두 눈동자는 완전히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얘는 왜 이러는 거야?”

“홀린 거예요. 핸드폰 앱에.”

“핸드폰 앱?”


종철은 수진이 쥐고 있는 핸드폰을 자연스럽게 낚아챘다. 그러더니 애처롭게 핸드폰만을 바라봤다. 그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기회. 그 기회가 지금 허망하게 날아갔다. 그것도 같은 팀의 동료 손에. 착잡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이대로 끝나버린 것일까. 더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저것들이 다 저지른 일이란 거야?”


종철은 팀장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종철의 대답에, 팀장도 머리가 아픈 듯,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오늘 종철이 언급했던 한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연신 입에 올렸던 그 이름, 하나. 팀장은 불신 가득한 눈초리로 종철을 바라보았다.


“너, 정말 네 딸을 본 거야? 하나? 하나를 만난 거야?”

“네.”


담담하고 민만(悶懣)한 목소리가 종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때,


“아빠!!!”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익숙하고 애틋한 그 목소리에 종철은 이성을 잃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목소리. 바로, 하나였다.

분명 주변에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싹터버린 그는, 그렇게 팀장과 수진을 등지려 했다. 종철은 그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지금도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을 하나를 생각하니 분노와 걱정이 동시에 일렁였다.


“너, 어디 가는 거야?”

“조금만 있으면 현실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파리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뛰세요. 그것들이 달려온다는 신호니까.”


냉정하게 돌아서는 종철. 그는 곧장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사력을 다해 뛰어갔다. 골목을, 그리고 낮은 경사로를 미친 듯이 달려, 앞으로 또 앞으로만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 자그마한 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는 하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종철에게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공원 어딘가에 분명 하나가 있다는 확신이.

그의 지친 발걸음이 다시금 힘을 내던 그때였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하얀 원피스의 소녀. 빛나는 광채를 뿜어내는 소녀, 하나였다.


“하나야!!!”


피로가 단번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드디어 하나를 만나게 된 종철은, 무작정 그 어린 소녀를 꽉 끌어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인 듯,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각오인 듯,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떨어지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아빠.”


하나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닿자, 종철은 그녀를 꽉 껴안고 있던 손을 놓고,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 피로 얼룩진 그의 얼굴 위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눈물. 하나는 말없이 그저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나야, 이제 집에 가자.”


하나는 살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철은 행여나 하나를 놓칠까, 그녀를 등에 업고 천천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아직도 머리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잿빛 하늘. 하나를 만났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세계에서 도망치는 그 순간까지.

그가 그렇게 경사로를 내려오던 그때, 갑자기 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종철 주변으로 몰려드는 묘한 긴장감. 그는 다부진 의지를 얼굴에 나타내며, 서서히 걸음의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달려들 손과 머리통에 주의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의 귓가에 터벅터벅,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과 수진인 걸까. 이 잿빛 세계에서 빠져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는, 그들에게 언질이라도 줄 겸, 발걸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머리와 팔이 없는 창백한 나체의 뒷모습. 순간, 종철은 걸음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점차 고조되는 위기감. 급박한 긴장감 속,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괴물이 아직 종철을 발견하지 못한 것.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찰나,


[터벅.]


멈춰버린 괴물의 발걸음. 멀찌감치 보이던 괴물의 뒷모습이, 서서히 종철을 향해 방향을 틀어 앞모습을 보이려 했다. 이내 그의 시야로 괴물의 정면이 사로잡혔다. 마치 비너스 조각상의 상체와 다비드 조각상의 하체를 가진 듯한 괴물의 앞모습.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눈치를 챈 걸까. 괴물은 천천히 종철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종철은 마음으로, 그리고 얼굴로 도망칠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한 걸음, 두 걸음. 점차 종철에게 가까워지는 괴물. 분명 저 멀리 보였던 모습이었지만, 어느새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도망칠 시간도 여유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종철의 코앞까지 다가온 괴물. 종철은 숨을 죽이며 그저 괴물을 주시했다. 달콤한 향기가 점차 괴물과 함께 그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머리통과 손들의 본체가 이 괴물이었던 것일까. 달려들면 어떻게 뿌리칠까. 과연 이 괴물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종철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이런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순순히 그의 옆을 지나가는 괴물. 종철은 서서히 몸을 돌려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괴물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행여나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그러나 괴물은, 종철의 뒤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버렸다. 어느새 저 먼발치까지 가버린 뒷모습에 종철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하나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뜨인 종철. 그런 그의 눈앞에 창백한 시체빛 피부가 들어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저 뒤에 있어야 할 괴물이 자신의 눈앞에, 아니 코앞에 있다.

이내 괴물의 배가 세로로 갈라지더니, 검고 누런 이빨이 종철을 향해 모습을 드러냈다. 배의 입에서 다리로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누런 액체. 땅으로 떨어진 그 액체는 마치 먹잇감을 찾는 듯 주변으로, 아니, 종철 쪽으로 흘러 다가왔다.

위험을 직감한 종철. 그는 어깨로 있는 힘껏 괴물을 밀치고 앞을 향해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종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괴물. 그의 배가 입맛을 다시듯 이빨을 딱딱거리며 그를 맹렬하게 추격해 왔다.

이제 탈출까지 남지 않은 상황에,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는 일. 종철은 하나를 업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하나둘씩 모이는 괴물의 손과 머리통. 머리 위로는 무수히 많은 파리 떼가 빙글빙글 돌며 그를 노렸다.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오로지 하나와 함께 돌아가기 위해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달리던 도중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의 동료들, 수진과 팀장.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쪽 상황도 종철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있는 수진. 그리고 그런 그녀를 필사적으로 지키는 팀장. 팀장은 자신의 겉옷을 이용해, 다가오는 손과 머리통을 있는 힘껏 쳐내고 있었다.

도움을 받기는커녕 도움을 줘야만 하는 상황. 이런 모습을 목격한 종철은 갈등에 휩싸였다. 하나를 데리고 가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달릴까. 이대로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워 보이는 괴물들. 그렇다고 해서 괴물들 한가운데로 하나를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그는 가슴만 아파 왔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을 쫓아오던 괴물의 발걸음이 완전히 멈췄다. 그러더니 이내 팀장을 향해 그 누런 이빨을 딱딱거리는 괴물. 그러자, 종철을 향했던 모든 괴물의 시선이 일제히 팀장과 수진을 향했다.

현 상황도 벅찬 팀장에게, 자신을 쫓아오던 괴물까지 붙게 된다면 죽는 건 명백한 사실. 하지만 더욱 험난해진 상황에 하나를 데리고 간다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그의 괴로움을 알아챈 것일까. 하나는 종철의 등에 기댄 채 손을 뻗어 팀장을 가리켰다. 하나의 작은 행동에 갈피를 못 잡던 마음이 단단히 굳어졌다. 이내 그는 하나를 업은 채, 무작정 팀장 쪽으로 달려갔다.


“종철아, 너...”

“팀장님 조금만 버티면 끝납니다!”


종철은 수진의 곁에 하나를 내려놓고는, 달려오는 손과 머리통을 있는 힘껏 부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찢겨나가는 살점과 머리 위로 용솟음치는 핏물. 팀장이 겨우 내쫓기만 하던 손과 머리통을, 종철은 무지막지하게 도륙하고 학살했다. 어느새 팀장과 종철의 발밑으로 핏물이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누렇고 검은 이빨을 부딪치며 달려오는 거대한 괴물. 마치 종철을 단번에 물어 짓이길 것처럼 달려오는 그 움직임에, 그는 이를 꽉 다물었다.

그는, 마치 자신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듯한 그 배의 입을, 있는 힘껏 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이빨의 딱딱거리는 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도리어 이빨과 이빨 사이가 닿지 않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위기를 느낀 것일까. 주변에 흩어져 있던 손과 머리통들이 일제히 종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종철의 온몸이 물리고 찢겨나갔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그의 손. 오히려 그는 괴물의 입을 점점 더 벌리기 시작했다.

괴물 향해 부라린 두 눈동자에는, 분노를 넘어선 광기가 이글거렸다. 점차 그 괴물의 입에서는 누런 액체가 아닌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머리통들로부터 괴로운 듯한 비명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종철을 붙잡고 있던 손들도 고통을 못 이긴 모양인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비명을 응원 삼아, 더욱 힘껏 입을 잡아 벌리는 종철. 이내 그의 손은 천국을 향한 대문을 열어젖히듯 활짝 양옆으로 입을 펼쳐 버리고 말았다.


[푸슈슈슉!]


하늘 높이 뿜어져 나오는 핏물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살점들. 팀장의 머리 위로, 수진의 온몸을 향해 피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팀장은 마치 지옥에 온 죄인처럼 몸을 벌벌 떨며 종철을 바라보았다.

괴물이 죽어서일까, 아니면 시간이 끝난 것일까. 주변 세상이 점차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점차 그 끔찍한 손과 머리통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회색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자, 종철은 서둘러 하나를 찾았다.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하나를 되돌릴 확신이.

지난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반 토막 난 손을 떠올린 그는, 이번엔 하나를 꼭 끌어안고 있을 심산이었다. 이제 끝이 다가왔다. 행복한 결말만이 남은 이 여정의 마지막이.

그런데 어찌 된 걸까,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자신의 주변에, 수진의 근처에 꼭 붙들어 두었던 기억이 있지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팀장님, 여기 제 딸 하나 못 보셨어요?”

“하나? 아니. 난 못 봤는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고 원한 상황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종철은 빠르게 주변을 찾아봤다. 점차 색이 돌아오는 상황 속, 종철은 미친 듯이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손과 머리통을 일일이 들추며 하나의 이름을 연신 외쳤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하나의 존재. 그의 시야에서 회색빛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의 손에 남은 것이라고는 반파된 머리통과 축 늘어진 손뿐이었다.


종철은 손에 쥐고 있던 사체들을 집어던지고, 서둘러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앱을 확인했다. 그러나 지난번 핸드폰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린 앱. 그 순간, 시우가 말한 이용료라는 것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오늘 자신이 사용한 두 핸드폰은 모두 희생자의 핸드폰. 한번 사용하고 앱이 사라졌던 자신의 핸드폰과 달리, 그들의 핸드폰에는 앱이 사라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앱의 유지 조건은 인간의 목숨이었던 걸까. 그는 그냥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제 그 사실을 알아낼 방법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앱이 깔린 핸드폰도 남지 않은 상황. 하나를 만날, 아니 구할 방법은 더는 남지 않는 듯했다. 절망감과 허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 무게를 못 견디고 다리가 풀려버린 걸까. 종철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말, 이제 정말 더는 방법이 없는 걸까. 그는 절망 속에 희망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소방차 소리일까, 아니면 경찰차 소리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지금 막 깨어난 수진과 피범벅이 된 팀장이 서로 핸드폰을 붙잡고 다급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절망에 짓눌린 종철은 그대로 하늘을 올려봤다. 사이렌 소리가 진해지는 걸 그저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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