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얼마야? 당신 목숨 값이 (1)
“아!”
그제야 네리아는 자신의 실수를 떠올렸다. 비록 거리가 있었지만 이수호가 들어갔던 막사와 그들이 서 있던 공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즉, 두 사람의 대화를 이수호가 모두 들었다는 뜻이었다.
약간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수호가 그만큼 자신을 배려한다는 게 네리아는 좋았다.
“네! 마스터!”
네리아의 밝은 대답과 함께 환한 빛 무리가 일행의 시야를 채웠다.
“앗! 가, 갑자기 빛이!”
엘리시아가 뾰족한 소리를 내는 사이, 빛 무리는 금세 가셨고, 그런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막사가 늘어선 진영이었다.
물론 완전히 같은 곳은 아니었다. 막사 주변에 꽂힌 깃발의 문양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곳은······.”
엘리시아가 또다시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에 이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는 동쪽이었고, 여기는 가운데니까, 바이든인가?”
“아니요. 바이든은 서쪽이고 가운데는 스트림이에요.”
“아! 그런가? 뭐, 사람이 헷갈릴 수도 있지. 그나저나 이번에는 몇 개야?”
“잠시만요.”
지그시 눈을 감았던 네리아가 금세 눈을 뜨며 대답했다.
“중앙의 큰 막사에 하나, 그 오른쪽과 왼쪽 막사에 둘. 모두 세 개에요.”
“호오! 세 대 씩이나? 그럼 내 몫은 두 대겠네?”
무언가 신이 난 듯한 표정을 지은 이수호가 말을 이었다.
“금방 다녀올 게!”
탓!
땅을 박찬 이수호의 몸이 금세 막사들 사이로 사라졌다.
“저······. 네리아 님?”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들었던 엘리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타이탄 마스터키는 모두 세 개라고 하셨는데, 그 분께서는 왜 두 대라고 하신 거죠?”
“그야 두 대만 얻어갈 거니까요.”
당연한 듯한 네리아의 대답을 엘리시아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저토록 쉽게 타이탄을 빼앗을 수 있는데 굳이 한 대를 남겨둔단 말인가?
그런 엘리시아의 표정을 읽은 네리아가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
“세 곳의 영지에서 그들이 가져온 타이탄을 전부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으음······. 가장 중요한 전력이 사라졌으니, 제 생각에는 병력을 물릴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런데, 한 대가 남는다면요?”
이어진 네리아의 질문에 엘리시아가 탄성을 터뜨렸다.
“아!”
“아시겠어요?”
친절한 가정 교사 같은 네리아의 물음에 엘리시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싸우게 만들 생각이로군요!”
엘리시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정답!”
돌아보니 흐뭇한 표정을 짓는 이수호가 보였다. 그런데 그의 표정에서 마치 어린 딸을 대견해 하는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어 엘리시아는 어쩐지 속이 상했다.
‘치······.’
왜 그렇게 속이 상하는지. 또, 왜 갑자기 분한 마음이 드는지. 엘리시아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Chapter 6. 얼마야? 당신 목숨 값이
세 영주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각자의 앞에 놓인 수정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다.
여기서 섣불리 말을 꺼내는 것이 곧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미 피해를 당했고, 아직 정확한 흉수를 모른다.
수정구에 비친 둘 중 하나가 분명해 보이기는 하는데, 콕 집어 비난할 수 없었으니, 그저 노려보는 수밖에.
문제는 세 영주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는 점이었다.
“빌어먹을!”
“젠장!”
“정 그렇게 나올 셈이요?”
세 영주가 각자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물론 서로의 말에서 접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아니, 딱 하나의 가정이 있기는 했다.
‘설마, 다 같이 당한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낮았다.
‘데미안 놈이 감히 그러지는 못할 테지. 놈이 데려왔다는 놈이 아무리 대단해도 철통 같은 경계가 이루어지는 곳에 침투해 기사를 기절시키고 마스터키만 쏙 빼갈 수도 없는 노릇이겠고.’
자고로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었다.
“본인이 한 가지 제안하겠소.”
수정구를 노려보던 더르티 루메인이 먼저 말을 던졌다.
“선봉을 양보하겠소.”
“그게 무슨!”
“아니,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게요?”
남은 두 영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에 더르티 루메인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선봉의 이권 역시 같이 넘기겠소.”
더르티 루메인은 말과 함께 다른 두 영주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다른 영주를 떠보기 위한 말이었다.
‘여기서 먼저 나서는 놈이 범인이다.’
데미안이 데려온 두 남녀의 정체와 실력을 알 수 없었기에, 세 영주는 그들을 먼저 맞이할 선봉에 상당한 이권을 넘기기로 약속했었다.
브레인 영지가 보유한 트롤 넷과 오우거 한 마리 중에서 선봉을 맡은 영주가 트롤 두 마리를 가진다는 약속이었다.
고작 한 마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 있는 트롤의 추정 가치가 최소한 5만 골드에 달할 것을 생각하면 결코 작은 이권이 아니었다.
따라서, 다른 영주의 타이탄을 습득해 전력을 강화한 영주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더르티 루메인이 던진 제안이었건만, 두 영주중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그저 서로 눈치만 볼 따름이었다.
‘젠장! 쉽게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면······.’
더르티 루메인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콰쾅!
갑작스레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고, 호위 기사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 휘장 너머로 소리쳤다.
“영주님! 큰일입니다!”
내용까지 말하지 않음은, 더르티 루메인이 다른 영주들과 대담을 나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크흠! 통신은 이만 끊겠소.”
폭발음은 상당히 컸기에 이미 다른 영주들에게도 들렸을 테지만, 더르티 루메인은 최대한 태연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때, 다른 수정구에서도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바이든 영주의 수정구에서였다.
“대체 무슨 일들이오?”
스트림 영지의 영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폭발음이 들려오지 않은 유일한 곳.
스트림 영주는 마치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다른 두 영주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크흠!”
“큼!”
더르티 루메인과 바이든의 영주가 불편한 헛기침을 터뜨리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흉수를 확정한 두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냐?”
통신을 끊은 더르티 루메인이 막사 밖을 향해 물었다.
“마법이 날아왔습니다! 하지만 조준이 부정확했는지, 진영에 조금 못 미친 곳에 떨어져 병력의 피해는 없습니다.”
“방향은?”
“북서쪽이었습니다.”
데미안 영지를 중심에 두고, 루메인 영지는 동쪽, 스트림 영지는 북쪽, 바이든 영지는 서쪽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병력이 주둔한 곳도 그곳의 경계였으니 루메인 측에서 볼 때, 북서쪽은 스트림 영지의 주둔군이 있는 방향이었다.
“역시······.”
더르티 루메인의 눈빛이 한층 매서워졌다.
“제르트 스트림. 그 놈이 흉수였군!”
비록 피해는 없었다지만, 상대방 진영에 마법을 날린 것은 엄연한 도발이었다.
또한, 더르티 루메인은 통신을 종료하기 전 바이든 영지 쪽의 폭발음도 들었다.
동시에 두 영지를 도발한 상황.
전력이 엇비슷했던 세 영지 중, 하나가 다른 두 영지를 도발하는 상황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다른 두 영지와 동시에 맞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후우······. 침착하자. 여기서 흥분하는 것은 오히려 그 놈을 도와주는 꼴이야.”
호흡을 길게 내쉰 더르티 루메인이 통신용 수정구 중 하나에 손을 얹었다. 수정구가 은은한 빛을 발한다 싶더니, 곧이어 바이든 영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폭발하기 직전으로 보였다.
“바이든 영주. 혹시 그 쪽도 마찬가지요?”
이미 얼굴이 말해주었음에도 더르티 루메인이 물었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제르트 스트림! 이 씹어 죽일 놈이!”
“어떻게 할 생각이오?”
더르티 루메인이 재차 물었다.
“당연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이미 영지에 남은 병력을 모조리 이끌고 오라고 기별했소.”
당연한 듯한 대답에 더르티 루메인이 곤란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영주성에서 병력을 끌어모아 이곳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사나흘이 걸린다. 그리고 사나흘은 이미 스트림 영주가 브레인 영지를 침공해 몬스터를 모두 차지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럼, 너무 늦을 텐데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요?”
더르티 루메인이 고심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백했다.
“본인이 먼저 솔직히 말하겠소. 우린 한 대 남았소.”
“본인도 마찬가지요.”
이어 수정구를 통해 눈을 마주친 두 영주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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