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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 님의 서재입니다.

광해록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조휘
작품등록일 :
2014.10.21 12:38
최근연재일 :
2014.12.13 19:58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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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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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452

작성
14.11.0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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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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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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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광해록 12

DUMMY

이혼은 최흥원을 보았다.

그리고 최흥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의 위엄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라는 말이었다.

꾸민 위엄은 오히려 상대에게 반감을 산다.

오랜 시간 군림해온 경험과 생득권(生得權)이 주는 자연스러운 위엄만이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감화시켜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혼에게는 그게 없었다.

고작 십여 명의 연구원을 지휘해본 경험이 다인 그에게 몸에서 풍기는 자연스러운 위엄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어불성설과 같았다.

단 하나, 이혼이 기대할 건 그가 이마에 단 간판이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조선의 임금에게 정식으로 책봉 받은 세자였다.

이혼은 군마의 배를 가볍게 때렸다.

따각!

말발굽소리가 정적을 깨며 긴장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따각따각!

말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어느새 국경인 앞에 우뚝 섰다.

말안장에 앉아 햇볕을 크게 등진 이혼은 국경인을 내려다보았다.

세자는 결정을 내렸다.

또, 그 의사를 명확히 드러냈다.

내 앞에 무릎을 꿇던지, 아니면 나를 베라고

이제 국경인이 답을 할 차례였다.

세자를 베든지, 아니면 그 앞에 무릎을 꿇던지 결정해야했다.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손의 힘줄이 불끈 튀어나왔다.

모두가 숨죽이던 그 순간.

털썩!

석상처럼 굳어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거 같던 국경인이 허물어졌다.

“토관진무 국경인이 세자저하를 배알하옵니다!”

국경인이 먼저 무릎을 꿇자 국세필도, 정말수 등도 무릎을 꿇었다.

“소인들이 세자저하를 배알하옵니다!”

그리고 이어 세자를 둘러싼 4천여 명의 토병이 일제히 엎드렸다.

이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천 명의 사람이 그를 향해 엎드려 절을 올렸다.

목에 흐르는 땀을 살짝 훔친 최흥원이 다가와 조언했다.

“저들의 인사에 답를 해주십시오.”

“어떻게 말이오?”

“그냥 손을 흔들어줘도 저들은 안심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이혼은 칼을 쥔 오른팔을 하늘로 치켜 올렸다.

“와아아아!”

그 순간, 귀를 먹먹하게 하는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회령에 진동했다.

마침내 국경인과 함경북도 토병이 이혼에게 복종한 것이다.

이혼과 최흥원 등은 회령부사 문몽원의 안내를 받아 동헌을 찾았다.

한데 동헌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국악을 연주하는 듯했는데 간간히 노랫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이혼은 최흥원에게 물었다.

“영상대감은 저게 무슨 소린지 아시겠소?”

“풍악소리인 듯합니다.”

“풍악소리라니? 설마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아!”

이혼은 동헌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너른 마당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 커다란 전각과 대청이 있었다.

한데 그 대청에서는 한창 흥겨운 주연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회령의 관기(官妓)가 춤을 추는 동안, 악공은 북으로 장단을 맞췄다.

원래 회령부사가 앉아 있어야할 의자에는 채 약관을 넘지 않은 날카로운 인상의 젊은 청년 하나가 드러누워 있다시피 앉아 있었다.

눈꼬리가 길게 찢어져 있었는데 눈의 흰자가 검은자보다 훨씬 커서 기이한 느낌을 주었으며 얇은 입술은 분을 칠한 듯 붉었다.

허준이 다가와 속삭였다.

“저하의 동복형님이신 임해군마마입니다.”

이혼은 신하와 장수를 대동한 채 섬돌을 지나 대청으로 올라갔다.

술기운이 올라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임해군이 입 꼬리를 비틀었다.

“오, 세자동생이 아닌가? 너도 같이 재미 좀 볼 테냐?”

임해군의 버릇없는 말에 영의정 최흥원이 앞으로 나왔다.

“마마, 세자저하는 마마의 동생이기 이전에 조선의 국본이십니다. 아랫사람이 보는 중이니 체통을 지켜주십시오. 통촉 드립니다.”

“크크, 영상대감도 놈의 혓바닥에 놀아난 모양이군.”

“이럴 때가 아닙니다, 마마. 왜적의 대군이 코앞에 당도했습니다.”

임해군은 광해군을 보며 이죽거렸다.

“그까짓 왜놈들이야 영상 옆에 있는 그 잘난 동생이 쳐부수면 될 게 아닌가? 내가 물려받을 나라도 아닌데 왜 신경을 써야하지?”

“왕실의 일원으로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 어차피 망한 나리에 왕실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최흥원이 다시 뭐라 하려는 순간.

손을 들어 제지한 이혼은 작전참모 이호의를 불러 명했다.

“형님이 많이 취하신 모양이니 자네들이 가서 처소에 모셔다드리게.”

“예, 저하.”

이호의의 눈짓을 받은 병사들이 뛰어가 임해군을 부축하려하였다.

한데 그 순간.

“네놈이 세자가 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갑자기 일어난 임해군이 수중의 술잔을 이혼에게 던졌다.

“저하를 보호하라!”

소리친 익위사 기영도가 앞으로 나와 이혼 앞을 막아섰다.

캉!

급한 김에 칼집 째 휘두른 기영도의 칼이 잔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술이 튀어 옷을 버린 이혼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는 역사에 적혀 있는 내용보다 더 심한 말종이구나.’

이혼은 어금니를 물었다.

“형님을 뇌옥에 가둔 후 간수를 배치해라!”

임해군은 곧 병사들에게 팔이 잡혀 뇌옥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끌려가는 와중에도 악담을 고래고래 퍼부었는데 거의 저주에 가까워 최홍원, 정탁 등이 이혼을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임해군에게서 시선을 거둔 이혼은 주위에 명을 내렸다.

“패악을 부리던 임해군의 종자들을 찾아 매질을 가하게.”

“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순화군을 찾아오게.”

잠시 후, 장독에 숨어있던 순화군이 잡혀왔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임해군보단 확실히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그 동안 해온 일이 있으니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장독에 숨어 제 한 몸 지켜보려 한 것이다.

끌려온 순화군은 이혼 앞에서 계속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혼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는 나이가 어림에도 벌써 임해군과 같은 악명을 떨치는 중이다. 나중에 싫은 소리를 듣겠지만 지금은 가둬두는 게 좋을 것이다.’

순화군을 거처에 연금한 이혼은 병사를 배치해 감시했다.

이혼은 그 날 밤 사람을 모았다.

“왜적이 이미 회령 근처에 당도했으니 계속 정찰병을 보내도록 하시오. 곧 왜적이 대거 몰려와 이 회령을 손에 넣으려 할 것이오.”

“예, 저하!”

대답하는 신료와 장수들을 보며 이혼은 재차 입을 열었다.

“내가 오기 전에 회령성에서 불행한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소. 그러나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데 그들이 더 이상 그대들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니 국난을 극복하는 일에 충실해주시오. 지금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두 아리라 생각하오.”

“예, 저하!”

신료와 장수들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지는 건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임해군과 순화군의 횡포에 시달리느라, 안으로는 왕자의 비위를 맞추는 한편, 밖으로는 왜적을 막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해왔던가.

한데 세자가 왕자들을 가두어버리더니 현재에 충실하라 한다.

이 얼마나 시기적절한 처사이며 현명한 방도란 말인가.

말석에 앉아 있던 국경인이 고개를 땅에 닿을 듯 숙였다.

그는 이혼에게 항복할 때 머리가 잘려 성문에 효수당할 거라 믿었다.

아니, 가문 전체가 이번 일로 멸문지화당할 거라 믿었다.

한데 세자는 그릇이 작지 않았다.

그를 용서해준 건 물론이거니와 벼슬마저 유지하게 해주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은 국경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론, 갈등이 봉합된 건 아니었다.

거사 직전까지 갔었던 만큼,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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