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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뱅크
작품등록일 :
2024.03.05 13:08
최근연재일 :
2024.05.07 17:20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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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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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
글자수 :
378,301

작성
24.03.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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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추천
10
글자
12쪽

29화 나는 이미 심지(心地)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DUMMY

29화


(나는 이미 심지(心地)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족히 은자 50냥은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너희는? 너희는 뭔데 안 내놓는 거냐?”


주곡정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던 광명교의 무인들을 향해 혁우련은 우미도로 가리키고 돈을 내놓을 것을 재촉했다.

그들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주머니를 뒤져 한 명에게 돈을 모아줬다.

그는 석마가 내려놓은 곳에 돈을 내놓았고 그걸 다시 성진이 거둬들였다.

약 은자 열 냥의 돈으로 이동하며 가지고 다니는 최소한의 돈만 가지고 이곳에 온 듯한 모습이었다.


“공자님. 우리 한몫 제대로 챙겼어요.”


뒤에 산채의 주인인 석두가 있는데도 장소소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한가득 쌓인 보따리를 들고 거처에서 나오며 웃고 있었다.

석두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에이는지 앞을 못 보고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어? 여기도 한바탕 털었나 보네요. 공자님. 혹시 숨기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 제가 옷 안을 좀 살펴볼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략질을 왜 하냐고 하던 아가씨는 어디 갔냐?”

“글쎄요. 그 아가씨 바쁘다고 먼저 갔어요.”

“그럼 지금 있는 아가씨는 어떤 아가씨냐?”

“이게 천직이 아닐까 심히 깊은 고민을 하는 아가씨예요.”


한마디도 지지 않는 장소소는 석두에게서 뜯은 물건이 쏟아지지 않도록 보따리를 다시 한번 살피고 허리춤에 단단히 묶었다.


“우리는 챙길 만큼 챙겼으니 가자.”


혁우련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산채에 들어왔던 길을 따라 다시 밖으로 나갔다.

혁우련은 나가며 눈에 들어오는 장두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는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나를 이곳에 데려와 줘서 살려주는 것이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으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장두이는 서 있던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게 절을 했다.

혁우련은 그런 그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고 산채 밖으로 나갔다.

혁우련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모두 떠나는 혁우련을 향해 다행이라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성진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냥 가시는 건가요?”

“너는 다른데 신경 쓰지 말고 내 옆에 붙어서 혹시 올지 모르는 광명교의 놈들을 주의해야 한다.”

“사숙조?”

“가만히 있어. 아직 산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아직도 허리춤을 매만지며 즐거워하는 장소소와 달리 성진은 혁우련의 말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사숙조의 몸에 이상이 있구나.’


이런 식으로 그냥 떠날 리가 없는 혁우련이었다.

몇 달 동안 같이 지내고 몇 번 혁우련이 손을 쓰는 것을 본 성진은 이런 식으로 물러나는 혁우련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을 곁에 두는 것을 보고 혁우련에게 이상이 있음을 깨달았다.


“공자님.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요?”


장소소는 눈치를 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마치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즐거워만 했다.


“사저. 사숙조의 오른편에서······.”

“너만 있으면 된다. 소란 떨지 말아라.”


성진은 장소소에게 혁우련의 오른편을 부탁하려 한 것인데 혁우련이 먼저 나서 성진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왜? 왜 그러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산 아래 부근까지 내려가야 한다. 너는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내려가며 묵을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봐라. 노숙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냥 내려오지 말고 거기 산채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지 그러셨어요?”

“이미 내려왔으니 그런 걸 따져봐야 소용없다. 어서 주변을 살펴라.”


장소소는 입을 삐죽거리며 머물만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산을 반쯤 내려왔을 때 해는 이미 져 어둑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산을 내려가는 것은 무리라 여긴 혁우련이 장소소가 찾은 자리에서 노숙하기로 결정했다.


“너는 여기 있고 소소. 네가 돌아다니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와라.”

“아니. 공자님. 왜 성진이는 옆에 두고 제가 나뭇가지를 꺾어와요? 제가 요리를 할 테니 성진이보고 나뭇가지를 꺾어오라고 시키세요.”

“솥도 없는데 요리는 무슨 요리? 너는 그럼 아이에게 나뭇가지를 꺾어오라고 시킬 셈이냐?”

“치. 아이는 무슨 아이. 콧수염도 시꺼멓게 나고 있구먼.”


장소소는 투덜거리며 마른 나뭇가지를 구하기 위해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숙조. 불을 피우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닌가요?”


어두운 산속에서 불을 피우면 연기와 함께 불빛이 그들의 위치를 노출할 것이 분명했다.

적이 내습할지도 모르는 것을 걱정하며 불을 피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성진이 생각했다.


“이런 때는 더 우리 위치를 노출할 필요가 있다. 허장성세를 보일 필요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올 놈들이었으면 진작에 왔겠지. 이 정도쯤 되면 반은 안심해도 된다.”


아직까지 산채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이 아무래도 혁우련을 공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혁우련은 덤벙대는 장소소보다 성진을 곁에 두고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너는 먹을 것을 꺼내도록 해라. 네 사저가 왔을 때 아무것도 없으면 또 투덜댈지 모를 일이다.”


성진은 봇짐에서 마른 육포와 잡곡과 꿀로 잘 엉겨 만든 벽곡단을 준비했다.

성진이 먹을 것을 내놓았을 때 마침 장소소도 장작으로 사용할 나뭇가지를 한가득 품에 안고 돌아왔다.

장소소가 가지고 온 나무로 불을 피워 한기를 몰아내고 건량으로 배를 채웠다.


“공자님은 안 드세요?”

“나는······ 우웩.”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있던 혁우련에게 육포 한 조각을 장소소가 내밀었다.

혁우련은 그 모습에 괜찮다고 말하려다 말고 피를 한 사발 게워내고 말았다.


“공자님.”

“사숙조.”

“소란 떨지 말아라. 괜찮다. 괜찮아.”


어떻게든 참아내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혁우련이 내상으로 피를 토하고 만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몸이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아직 쓸만한 것이 아니었어.”

“마지막에 쓴 초식 때문에 그러십니까?”

“흐흐흐. 눈썰미가 좋구나. 그래 마지막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뭐 그 전에 탈혼검인가 뭐시기인가와 부딪쳐서 내기가 울렁거린 것도 이유이기도 하고······.”

“사숙조. 마지막에 그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안 그래도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성진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혁우련을 바라봤다.

곤륜의 섬전분광검도 대단했지만 성진이 보여준 초식에는 조금 밀리는 감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검법을 도로 펼쳐 보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로 펼치기에 무언가 어색한 도법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생각이 맞는다면 혁우련은 생각보다 엄청난 고수라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직접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예상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찌르기에 특화된 검법을 베기에 적합한 무기로 펼쳐 보였으니 실제 초식이 가지고 있는 것의 반의 반밖에 펼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눈이 부셨고 가슴이 떨렸으며 손에 땀이 났다.


혁우련은 말을 하고 있는 성진의 눈 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서라. 네가 탐낸다고 하여도 너는 익힐 수 없는 것이다. 너는 네 것인 섬전분광검 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사숙조. 저는 알려달라고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처럼 얼굴을 붉히는 성진이었다.


“왜? 마지막이 뭔데?”

“내 걱정은 벌써 다 잊어버린 것이냐?”

“괜찮다면서요? 그리고 이야기하시는 것 보니 괜찮은 것 같은데요?”


혁우련이 괜찮다는 말하자마자 혁우련에게 내밀었던 육포를 입에 문 장소소였다.

마치 걱정은 할 만큼 다 했다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혁우련이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그래야 너답지. 나는 괜찮다. 응혈을 뱉어 낸 것이니 이제 가슴이 좀 나아진 것 같구나.”

“그런데 혈음마도인가 뭔가는 도대체 뭐예요?”


육포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는 장소소는 혁우련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내가 광명교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냐?”

“이상하죠. 안 이상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사제. 안 그래? 이상하지 않아?”


성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감히 사숙조인 혁우련에게 그에 관해 물어보지 못해 그저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성진과 달리 장소소는 꺼리낌없이 혁우련에게 질문했다.


“나는 무공에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그게 광명교의 무공이 되었건 정파의 무공이 되었건 사람이 익힐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익히려 했고, 그렇게 익힌 것 중의 하나가 혈음마도이다. 왜? 가르쳐주랴?”

“아니요. 배우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사부님께서 그러셨거든요. 광명교의 무공을 깊이 익히다 보면 마음이 무공에 잠식되어 심지(心地)를 잃어버린다고요.”

“그럼 네 눈에는 내가 심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냐?”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정파 인들은 광명교의 무공을 안 익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여전히 장소소는 우물거리며 혁우련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의심의 빛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 말대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궁금증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의심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의심이 다른 식으로 혁우련을 바라보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광명교의 무공을 익힌다고 하여 심지를 잃어버린다면 나는 이미 심지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내가 익히고 있는 것이 혈음마도 하나만 일 것 같으냐? 성진이 네가 궁금해하던 마지막 무공은 어떠냐? 그건 정파의 무공 같더냐? 아니면 광명교의 무공 같더냐?”


갑작스러운 혁우련의 질문에 성진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혁우련이 펼친 검에서 현기(玄氣)가 느껴졌기에 정파의 무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광명교의 무공이라는 혈음마도에서 현기가 보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사숙조. 제자는 감히 무엇이 정파의 무공이고 무엇이 광명교의 무공인지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모르는가? 그런데 네 사저는 아는 것 같구나. 그래 너는 알겠느냐?”

“제가 아는 것은 하나예요. 광명교의 무공은 사특한 것이어서 몸을 갉아먹는다는 거요. 그러니 공자님도 웬만하면 쓰지 마세요. 익히는 거야 공연대사님의 뜻이 그러니 익히셨다지만요.”


장소소의 말에 혁우련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전형적인 정파 인의 생각.

장소소가 보여주는 생각이 바로 정파를 곪게 했던 생각이었다.

혁우련은 굳이 장소소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가부좌를 틀었다.


“나는 내기를 다스릴 테니 너희는 알아서 쉬도록 해라.”


평소라면 아이들이 가부좌를 트는 것을 확인하고 내공 수련에 들어갔을 터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내공 수련에 들어가는 혁우련이었다.

혁우련이 가부좌를 틀고 눈을 반개하자 성진이 손을 털고 곁에서 같이 가부좌를 틀었다.

장소소는 육포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다가 둘이 모두 삼매경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지 못해 자리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


산을 내려간 혁우련 일행은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걸으면서도 혁우련의 지시에 성진과 장소소는 보법을 쓰며 이동을 했다.

며칠 동안 이와 같이 움직이던 장소소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혁우련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공자님. 정말 괜찮으세요?”

“네가 떠드니까 안 괜찮은 것 같다.”

“그럼 쉬었다 가요. 네?”

“너는 내가 하는 말은 듣기나 하는 거냐? 네가 안 떠들면 괜찮을 것 같단 말이다.”

“그래요. 좀 쉬었다 가요.”


장소소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서 한쪽에 비켜서서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바로 신고 있던 가죽신을 벗어 던지고 발바닥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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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화 주(蛛)를 피해 광(狂)에게 가려 하나? NEW +1 19시간 전 122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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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3화 광명교가 하늘 아래 사라지기를 바란다 24.05.04 272 6 14쪽
62 62화 내가 혁우련이다 24.05.03 275 4 14쪽
61 61화 의성(醫聖)을 찾아라 24.05.02 277 6 14쪽
60 60화 의미를 부여하는 놈들에게나 의미가 있다 +1 24.05.01 300 8 14쪽
59 59화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을 기억해 내라 24.04.30 296 7 14쪽
58 58화 너는 나랑 놀자 +2 24.04.29 303 9 12쪽
57 57화 이제 협상을 시작해볼까? 24.04.28 323 8 13쪽
56 56화 정파를 이끌어 달라 24.04.27 318 8 13쪽
55 55화 계획했던 일을 해봐라 24.04.26 319 8 12쪽
54 54화 선물을 준비했다 24.04.25 341 8 12쪽
53 53화 임소념의 등장 24.04.24 354 8 12쪽
52 52화 상대에 대한 원한과 증오는 남이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4.04.23 346 8 13쪽
51 51화 내가 돌덩이로 보이나? 24.04.22 375 8 12쪽
50 50화 나는 판을 깔아주는데 마다하는 사람이 아니다 24.04.21 404 6 11쪽
49 49화 태상노군이 누굴 좋아하는지 아느냐? +1 24.04.20 427 7 12쪽
48 48화 어둠 속의 등이 되겠다 24.04.19 455 8 12쪽
47 47화 난 무정한 사람이 아니다 24.04.18 458 8 12쪽
46 46화 부탁 하나를 쟁여 놓으라 +1 24.04.17 455 8 12쪽
45 45화 저게 어째서 포위지? +1 24.04.16 447 9 12쪽
44 44화 완벽한 계획 24.04.15 493 8 12쪽
43 43화 어떻게 될까? 24.04.14 536 7 12쪽
42 42화 광명교보다 더 껄끄러운 자 +1 24.04.13 519 7 12쪽
41 41화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거다 24.04.12 498 8 12쪽
40 40화 네놈이 감히 내걸 건드려? +1 24.04.11 512 8 11쪽
39 39화 만곡상가 그늘아래 머무르고 있다 +2 24.04.10 518 9 12쪽
38 38화 그 협객 내가 다 쓸어 버렸다 +3 24.04.09 53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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