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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성 님의 서재입니다.

신님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현대판타지

우이성
작품등록일 :
2021.05.01 19:57
최근연재일 :
2021.10.06 20:45
연재수 :
7 회
조회수 :
139
추천수 :
0
글자수 :
124,358

작성
21.05.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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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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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1쪽

step3.하지만 그 것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걸 알게되었으니까요

DUMMY

또. 꿈을 꾸었다..


새하얀 순백의 꽃들이 수놓인 정갈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흐릿하게 비춰지는 청동거울을 보며 머리를 단정히 뒤로 묶었다.


왼손에는 저울(움직일때마다 방울소리가 들렸다)을 들고 또 다른손에는 칼을 손에 들고 경건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빛 한줄기만에 들어오는 그 천막밖으로 걸어나온 그녀를 발견한 흰 옷입은 수많은 사람들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가자. 환인께 예물을 드릴 시간이구나"


그녀의 뒤를 따라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288인의 사람들은 한걸음 한걸음 걸음을 내딛으며 행렬을 만들었는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하늘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기쁜마음으로 노래 부를때. 마음을 담아가는 수레가 되어 하늘에 상달되도록 오늘도 나아가세"""


"""창세 이전부터 계시었고, 하늘지혜를 내려주시는, 모든 만물의 근본이신 아버지시여, 생명되는 빛과 비와 공기를 허락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처음은 감사를.


"""생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즐거운맘으로 향을 올릴때. 향연을 옮기는 바람 되어 구름과 하나되도록 향연을 피워보세"""


"""창세 이전부터 계시었고, 하늘지혜를 내려주시는, 모든 만물의 근본이신 아버지시여, 생명되는 빛과 비와 공기를 허락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둘째는 회개를


"""부귀영화 쫓아가는 사람들은 굳은마음으로 땅에 떨어질때. 우리들은 갈대처럼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늘만 바라보세"""


"""창세 이전부터 계시었고, 하늘지혜를 내려주시는, 모든 만물의 근본이신 아버지시여, 생명되는 빛과 비와 공기를 허락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셋째는 다짐을


"""소망이 가득한 사람들이 경건한맘으로 무릎 연할때. 끊이지 않는 나팔소리 온 천지에 들려오니 이것이 소망이라"""


"""창세 이전부터 계시었고, 하늘지혜를 내려주시는, 모든 만물의 근본이신 아버지시여, 생명되는 빛과 비와 공기를 허락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마지막엔 영광을

하늘에 올리듯이 하나하나의 동작에 의미가 있는듯이 하나하나의 가사에 깊이가 있는듯이 느껴졌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절도있으면서도 나비가 날아들듯이 부드러웠고, 선녀와 같이 아름다우면서도 고유의 멋이 있었다. 상상으로도 그려보지 못한 웅장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그들과 함께 사람들이 모여있는 한가운데를 지나 하얗고 네모처럼 반듯한 반석위에 올라 사람들을 바라볼때 본 광경이었다.


"모진환난 시험당해도 흔들리지아니하고 고난또한 인내하리"


그녀는 입을열어 천지가 울릴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를 내었다. 내가 모르는 소리 모르는 노래를 부르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지못할..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오직한뜻 잊지않고 나아가리니 어서 오시옵소서"


그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하늘에서 환한 빛이 허공을 밝히며 거대한 빛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환상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크나큰 함성소리와 박수소리와 및 하늘에서 하얀빛을 입고 내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올려다보면서 두팔을 벌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이루 표현할수없는 감정이 맴돌다못해 솟아오르는과정속에서 눈이 마주친순간(누구인지는 알수없었다) 환희에 가득찬듯한 감정을 주체하지못했다.


"드디어.. 만났네요."

"..."


"정말로 만났어요."

고개를 살며시 들어.. 정면을 바라보자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것이 아닌가.


'환!?'

내가 알고있는 환이 맞나? 내가 아는 그는 저런표정을 지은적이 없었는데??


"나는 이제 두번다시 내려오지 않을것이다."

"그래요.."

줄곧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약속이었다."

"그렇네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토록 기다린다고 말했던 그녀의 얼굴은 웃고있지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찌르는것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짓는듯한 감각에 나의 정신은 차갑게 식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대화가 흘러가는것조차 듣지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 생각한 말도안되는 가정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것이 선결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 가정은 내 안에서 확고히 자리잡아갔다.


지금 내가 보고있는 이 상황은 내머릿속에서 나왔다고는 할수없는 그런 모습들이었고, 몽롱한상태에서 무언가를 보는게 아닌. 분명히 만져지고 선명히 들리는 이 상황은 누군가의 기억을 엿보고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한다.


등을 돌리는 환의 모습 그리고 환을 잡으려지만 끝내 붙잡지못하고 허공을 맴도는 그녀의 손. 머뭇거리면서도 힘겹게소리내었지만.. 진심을 입밖으로 내는 일은 없었다.


"하나만 물을께요. 당신이 보기에 저는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나요?"

"그렇다."


"그렇군요. 그것참 다행이네요"


"마지막으로 하고싶은말은 더 없는건가?


"ㅇ. 아니..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는 다시 등을 돌렸다.


아아.. 또나가는구나. 더이상 내손에 닿지않는곳으로..

드디어 끝이나는 구나..

이제 모든걸 내려놓고싶다.


그래도 되겠지.


많은사람이 흩어지고 홀로남은 그녀는 낭떠러지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

그녀는 정면에서 불어오는 역풍에 맞아 엉덩방아 찧었다.


"하하..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그리고 시간은 급격하게 흘러가며 보인 광경은.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방금전까지만해도 함께 기뻐했던 사람들이 그녀를 구덩이에 빠치우고는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고있었다


"모든게 다 저년때문이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않고 돌을 맞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증오 경멸 그리고 두려움이 깃들어있었다.


"부디 나의 아가들을 부탁드립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한문장을 끝으로

눈부신 빛이 시야를 가리며 암전되었고, 내앞에는 앞전에 보았던것과는 비교도 되지않을정도로 커다란 청동거울이 앞에 있었다.


"이곳은.."


[드디어 왔구나. 기다리고있었어.]


거울처럼 비취는 그곳에서 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확히는 거울너머의 내 몸을 빌려 누군가가 말하고있다는 착각마저 들게했다.


"누구세요?"

[나는 네 선조이자 대대로 나의 피를 이은자에게 축복을 주고자 남아있는 원혼이기도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흰옷을 입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그녀와 똑닮았다. 내가 상상하던 그 설마가 맞는것일까 생각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조요?"

[그렇다.]


[실은 이곳까지 오게되는데 짧게는20년 길게는 60이 넘어가건만 너는 참으로 이질적이구나]

"여기가 도대체 어디길래 그렇게 말하는거죠?"


[이곳은 대대손손 나의 후손들을 불러 앞으로 일어날 위기를 피하게 하기위해 이전에 있었던일과 이제있는일 그리고 앞으로 있게될일들을 보고 미리 대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장소다.]

"저는 이질적인건가요?"


[내 후손들중에 너처럼 말하는 아이는 처음이구나..]


[그래. 너는 이질적이다. 하지만 안좋은 의미는 아니란다]


[너는 살아있는 상태로 나를 만났다 그것이 신기할뿐이란다]

그럼.. 다들 죽은뒤에 이곳에 왔다는건가!?


[호기심이 많구나. 아니.. 그나이대라면 그럴만도 한가...]


[앞서말했지만 나의 목적은 여태껏 이뤄지지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줄 알았지. 이것이 내가 너를 이례적이며 이질적이라고 말했던이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더이상 너에게 꿈을 보여줄수도 도와줄수도 없는 상태이니.. 신께서도 참 무심하시지...]


[그러니 너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도록 하마. 너에게 위기가 닥쳐올때 해쳐나갈수있기를 바란다.]


[마음.. 을. 강...하게 ㅁ.....]


헉!!


그동안 꿈꿨던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것이아닌가...

믿기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생각나던 꿈들이 선명한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즉시 이 기억들을 노트에 기록했다.

마지막에 들었던 충격적인 사실과 오늘 본 꿈이 믿겨지지는 않았지만, 중요하다는 것만은 알수있었기때문에.


이 노트를 다시 들춰보게 될일이 그렇게 빨리 찾아올줄 지금의 나는 알지 못했다.



이사당일이 되기까지 약 한주라는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일을 떠올리자면 망설임없이 말할수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환이 우리반 담임선생님으로 부임한것이다.


나 또한 같은 반 여학생들과 같이. 학기중에 담임선생님이 바뀌는, 거의 일어날일 없는 일에 의문을 품고있었다.


순간, 나는 어제 새아버지를 만나러가기전에 들었던 한마디를 떠올려보았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했었는데..'

분명 이곳에 부임한다고 들었지만 그게 내가 있는 반일 확률은 없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교실 앞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드르륵..


저벅 저벅 저벅...


여유롭게 걸어들어온 환은 지연과 눈이 마주치자 환은 지연을 향해 얄미운미소를 잠시 짓고 단상에 서서 몇년이고 부임한 교사마냥 깔끔한 필체로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있었다.


웅성웅성...


지연을 제외한 2학년 1반의 학생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는듯이 눈을 크게 떴다.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담임이 변했다는것에 한번. 그리고 눈이 호강할듯한 외모에 한번. 그녀들에게있어 매력이 사람이 되어 나타난것같은 그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도 눈이 따라 가는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닐까.


그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정말 황당했다.

"앞으로 2학년 1반을 담당할 환 이다."


"앞으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체육, 미술, 도덕 수업을 담당하니 잘부탁한다."

그녀는 진짜로.. 잘못들은 줄 알았다.

한사람이 전과목을 전부 가르친다는건.. 솔직히 상상해본적도 없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지모른다.. 무의식중에 입에서 말이 나올정도였으니..



"거짓말.."


작게 중얼거린 그 말은 하필이면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교실안을 전부 울렸고 그 반증으로 모두의 시선이 지연에게 모였다.


....


지연은 빨리 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에게 눈빛을 보냈다.


비록, 지연이 예상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네?"


"거짓말이 아니라했다."


"정말.. 로요? 매일 모든수업을 환 아.. 선생님이 가르치시는게 맞다고요??"

"지연, 내가 전에도 말했을텐데? 자꾸 똑같은 말을 하게 하지말라고."

"넵!"


"그럼.... 궁금한점은.. 없나보군. 오늘하루는 앞으로의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적어줄테니 잊지 말도록"



문제는 정확히 이 시점부터였다.

준비물을 준비하고 다음날.


궁금증을 참지못한 학생들이 지연에게 몰려들었다.


"지연아, 물어보고싶은게 있는데."

"선생님이랑 아는사이?"

"뭔데뭔데??"

평소에는 말한번 해본적없는 아이들의 호기심은 거리감을 잡지못하는 그녀에게 있어 곤란한 상황임은 이미 자명한바였다


"그게..."


"부럽다~ 저렇게 잘생긴 선생님이랑 아는사이라니.."

"나 소개좀 시켜주라~ 친구잖아?"

"혹시 선생님이랑 사귀는건아니지??"

환에게 크게 호감을 느낀 세명의 학생들이 질문의 주를 이뤘고 그와함께 그녀를 둘러쌓은듯이 모여있는 교실의 학생들과 교실밖에서는 각자의 생각을 마음속에 숨겨둔채 기회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물론.. 그녀에게는 눈앞의 학생들만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말이다. 갑작스럽게 모인 관심에 크게 당황한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계속 늘어만 가는 질문들에 머리가 어지러울무렵.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연학생?"

웅성이던 학생들의 시선도 전부 그녀에게 쏠렸다.


"천사쌤?"

"무슨일이세요?"

지연이 대신 대답하는 그녀들을 지나 천사쌤이라 불린 그녀는 지연에게 교무실로 따라와달라는 말을 듣고 뒤따라 교실을 나섰다.


그리고 들어간 교무실에서 지연은 알수없는 불안감에 휩쌓인체 자리에 앉았다.


"축하해."

"네?"


"이번에 천진인상을 수상받게됬어."

"제가요?"


"그럼 왜 내가 너를 불렀겠니? 지연아 네가 받는거야"

"..무슨상인데요?"


"뭐? ..아. 그렇지 모르겠구나,,"

"천진상은 쉽게말하면 명예교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명예교사의 추천을 받은자 혹은 그에 준하는 자에게 수상하는 상이야"


"엄청 대단한 거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상이라는 것 하나는 알것같았다.


"명예교사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이 학교에 이사장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있는 분들을 칭하는 명칭이야. 하나같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계신분들이지만.. 사실 알려진것들이 거의 없는 신기한 분들이야"


천사쌤이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무척이나 친절하고 다정하신 분이지만.. 나는 그 친절이 너무나도 불편하게느껴졌다...


대가없는 친절은 없다는 것을 나는 싫어도 부정할수없을만큼 겪어보았기때문에...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전교생들앞에서 상을 받게되니까 옷도 단정하게 입고, 등교시간 늦지말고. 일단 전달사항은 이걸로 끝~"


"지연아. 개인적으로 부탁하고싶은게 있는데"

".네?"


"환 선생님이랑은 무슨관계니?"

"..그냥 선생님이랑 학생의 관계인데요."


"그렇구나~"

미소짓는 사람에게 침뱉지 않는다지만.. 천사처럼 환하게 웃는 선생님을 보며 나는 적지않은 불쾌감을 느꼈다.


"그런데요,"

"그럼 환선생님이랑 이번주 토요일에 시간되시면 같이 식사하고싶은데.. 대신 전해줄수있니? 조금 부끄러워서 말이지."


"저기.."

"그럼 여기. 가능하면 연락해줘 알았지?"

생각을 정리할 틈조차 주지않는 선생님의 명함을 받자마자 선생님은 급한일이 있다며 파일을 집어들고는 교무실을 먼저 나가셨다.


'강은지 010-ㅇㅇㅇㅇ-ㅇㅇㅇㅇ'

이걸어쩌지...


하는수없이 다시 교실에 돌아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환선생님과 같이 걸어가는 하교길에서도 풀리지 않고 엉켜있는 실타래처럼 내마음이 엉망이되어가고있다는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어제 있었던 일들에 깜짝놀라서였을까.. 아무래도 나는 관심을 받는것이 무서운것같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있을때였을까. 엄마가 일어났다.


"왠일이니? 지연이 니가 이렇게 빨리일어나고?"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혹시 남친생겼니??"

"그런거아니거든!"


"정말? 정말이려나~?"

"아니라니까!!"


"알았어.알았어.."

뭔일이 있는거 같긴한데.. 엄마의 혼잣말을 못들은 척하며 마저 머리카락을 말리고있는데.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됬네! 엄마 일하러 가니까 늦지않게 학교가고. 알았지?"

"네.."


쾅!


문이 닫히자 시간이 멈친것처럼 조용해졌다.


이대로 있으면 정말 시간이 멈추지 않을까?



...

정말로 시간이 멈춘다면.. 좋을텐데.


그러면 학교가서 애들한테 시달릴일도없고 상받으러 여러애들에게 주목받을 필요도없을텐데...


그래도 환. 선생님이 도와주지않을까? 그런 미약한 기대를 품으면서..


.....


.....


"김지연! 김지연!!"

"네!?"


언제 나타났지!?

어제는 집에 얼굴한번 보이지도 않더니..


"무슨일있느냐? 고민이 있는 얼굴이구나."

"그.."

그순간 내가 잊고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가능하면 연락해줘 알았지?'

명함을 받으면서 들었던 어제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말할까? 말까? 나는 어떻게 해야되지??

가능하면이라고 했으니까 별로상관없을지도.. 하지만, 부탁받아놓고 아무것도 하지않는것도....


"음...."


"됐다. 내게 말하기 어려운거라면 굳이 묻지않으마"

"ㅇ.ㅏ.."

환은 지연의 얼굴을 보고 안쓰럽게 웃었다.

'그렇게 눈치보지 않아도 되건만...'


"그대신. 힘든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거라 힘이 되어주마"

"네.."


지연을 안심시키고싶은 환의 말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지연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린것 같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지연의 표정이 풀어질줄 몰랐다.





쉬는시간..

작디작은 목소리들이 이리 저리 섞여 눈앞에서 말해도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정도로 시끄러운 교실안에서

유독 눈에 띄는 지연의 모습이 보였다.


지연이는 많은 학생들에게 둘러쌓여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보았다면. 인기가 많구나.. 하고 넘어갈 만큼 그녀의 자리를 둘러쌓은 학생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많았다.


환 선생님이 부임하시기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지연이의 표정이 더 좋지 않은것같았다.

주변의 소문으로는 우리반의 전과목을 가르치게된(정말로 전과목을 다 가르쳤다) 환이라는 선생님이 도시전설로만 남아있던 천진학교 명예교사라는 이야기가 우리반 뿐만아니라 전교생에게 알려진것같다고들었다.


명예교사라는 사실을 알린것은 천진학교 이사장이었다는 말이있다.


만약 아무도 모르고있었다면. 이렇게 지연이에게 사람들이 몰려드는일이 없었을텐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걸까??


음모의 냄새가 난다고 윤수정은 생각했다.


교실 가운데 앞자리에 앉아있는 민주를 보면서 생각했다.

처음 중학교로 올라왔을때, 둘은 무척이나 사이가 좋았고, 둘을 절친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민주와 지연은 크게 다투었고 그것을 많은 학생들이 보았다.


아무래도 수상했다.

민주가 이사장님의 딸이라는 것은 천진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그런데 그 민주에게서 지연이 거리를 벌리자마자 두명의 친구가 붙어다닌다??


그때부터 지연의 입장이 난처해졌었다.

민주의 남자친구를 지연이 빼앗았다는 말도 있었지만.. 과연 그랬을까?


같이 이야기 나눴던 지연은 순수하지만 겁이 많고, 나쁜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남의 남자친구를 빼앗는다는 것은 아무리보아도 어려워보였다. 소문이 났다는 것은 그 소문을 퍼트린 사람이 있다는 거다. 차라리 흑막이 지연이를 괴롭히려한다는게 더 현실적일만큼 지금의 상황은 매우 미묘하게 흘러가고있었다.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확실한 증거가 없기때문에...

그래도 하나 알게된것은 지연이와 민주가 같이 있을때는 안좋은일이 벌어지고 있다는것 정도일까.. 알게 모르게 지연이에게 무슨일이 벌어지면 민주가 연관되있다는 말이되는데...


전에 비해 지연이를 괴롭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무일도없었다는듯이. 정말로 이걸로 끝인걸까?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걸까..? 잘모르겠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항상 괴롭힘을 받던 지연에게 지금이 상황은 전환점 같았다.


물론 그동안 괴롭힘과 방관속에서 갑자기 관심을 받게된다는것은 실제로 느껴본사람밖에 모르겠지만 기분은 엄청 나쁘지않을까.


그녀가 다른학생들을 용서하고 친하게 지내는것도 방법중하나이지만.. 내가 그녀였다면 혼자있으려고하지않을까?


괴롭힘당했는데 갑자기 친하게 지내자고한다면 나라도 배신감을 느낄것이다.. 그런데 지연이는 나와 달랐다. 내게 말을걸어주었다. 이것조차 엄청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연에게


힘이 되어줄수 없는걸까?

그래서 용기를 내어 움직였다.



"지연아!"

"수정아.."


덮썩.!


손을 잡아당겨 교실밖을 빠져나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원래 옥상 잠겨있지않아?"


"경비실 아저씨랑 친해져서 옥상 복사키를 받았거든~"

뭔가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은 수정이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올수있는 학생은 나뿐이라는 말씀! 다른애들이 올 걱정은 안해도되~"

"하아.."

'반애들이 몰려있으면 답답하고 힘들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과감한 시도를 한것이지만.. 마음에 안들었나..?'


"무슨일이라도 있는거야? 한숨도 쉬고.."

"그게.."

말하려는 순간 목이 턱, 하고 막힌것처럼 소리가 나오질않았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말은 입까지 가지않았다.


"괜찮아. 지금은 말하지못해도. 나중에는 말해줄수있을까?"

"수정아 고마워.."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텐데.. 미안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분명 호기심이었다. 말을 걸어볼 용기는 없었지만.. 지연이가 당하는 모습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나는 그모습들을 내눈에 담았었다.


지금은 어떨까.. 눈앞에 있는 내게 마음을 열어줄수있을까?


아니.. 나였다면,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전학을 가고싶다고 했을지도 모르니까. 나랑 있을때는 좀더 편하게 있을수있도록 도와주고싶어.



"아니야. 앞으로도 잘부탁할께."

"응!!"


둘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둘의 마음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만큼 훈훈했다.





'어떡하지?'

무슨연유인지 민주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지지않았다.


며칠전부터 소식을 들었다. 아버님을 무시하고 우리반으로 부임하겠다고 통보한 명예교사가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명예교사는 수수깨끼처럼 그 속을 알수없는 사람들이라는것이 정론으로 통하고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것 그런것이아니었다.


지연이에게 나말고 다른 친구가 생겼고 지연이의 친구는 매번 나를 매섭게 노려보곤했는데 아무도 없는 교사 모퉁이에서 만나게 됬다는것이 문제였다.


"김민주 맞지?"

"그런데?"


소리는 없었지만, 지금당장이라도 터질것만같은 폭탄을 눈앞에 마주한 것마냥 둘의 표정에는 긴장이 어려있었다.


먼저 입을 연것은 수정이였다.



"너랑 지연이 정말 친구였던거 맞아?"


"그게.. 무슨소리야?"


"정말 친구였던고 맞냐고!"

"...."


"못들은 척 하지마! 니가 정말로 지연이를 생각했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됬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았어! 무엇을 잘못했다는거야!?"

"아무것도 하지않은거. 그게 잘못이야"


"..."

"이해가 안된다는 얼굴이네."


"너 다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은 착한사람이라고 생각해? 나쁜사람이라고 생각해?"


"착한 사람이겠지?"


"그럼 그냥 지나쳐버린사람은?"


"나쁜사람?"


"대놓고 다친사람에게 장난치는 사람은?"

"나쁜사람이잖아. 이런걸 왜 물어ㅂ..."


"그냥 보고있는 사람은?"

"...."


"멈출수있었는데도 멈추지않았어. 분명 도와줄수 있었을텐데 도와주지 않았어 그러니까 더 나쁜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건..."


"너도 아무것도 안했잖아! 아픈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었던건 너도 마찬가지야! 자기는 아닌척 말하지마!"


"..아니야!!"


"나는 너랑 달라."


"너는 친구를 보고도 아무것도 안한거지만, 나는 아니었잖아"

"!!!"


"너!"

"그래. 솔직히 말할께. 나 겁쟁이야. 하지만! 너처럼 친구를 버리진 않아."


"다시는 지연이한테 다가오지마!"

"뭐.. "


"뭐야그게.. 다가오지말라니..."


"멈출수있었는데 멈추지않았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하지 말라고!"


'내가 할수있는게 없는데 뭘하라는거야..'


"너는 나랑 달라."

"뭐?"


"너는 모르니까 그렇게 말할수있는거야."


그말을 끝으로 민주는 등을 돌렸고, 그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수정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한편, 인적이 드문 또 다른 복도에서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있었다.





"자네는 누군가?"

"지연이랑 무슨 관계이십니까!?"


"내가 먼저 물었네만"

"농담하려고 온게 아닙니다! 대답해주시죠!"


"농담.. 이라... 예를 갖춰 자신을 소개하기는 커녕. 자신의 감정 하나 주체하지 못하고 7살 어린아이처럼 흥분한다면 내가 말해줄건 하나도 없다. 대화를 하고싶다면 예의를 갖추도록"


"..."

"..."


"저는 천진중 남교사 2학년 A반 은준우입니다."

"나는 천진중 여교사 2학년 A 반을 맡게된 환이다."


"..."

"그래서 본론이다만, 나와 지연의 관계에 대해서 인가?"

빨리말하라는듯 재촉하는 눈빛이었다.


이건참.. 황당하구나.

"교사와 학생이다."


그게 무슨말도안되는 소리냐는 표정이 눈앞에 다 드러났다.

"뭘 당연한걸 묻는지 모르겠다만, 다음에는 조금더 대답하는 입장을 배려해보는건 어떻겠더냐. 다음에 보자꾸나."

"잠깐만!!"


"뭐지?"


오싹... ..딸꾹!

마치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에 온몸이 곤두섰다.


"은준우.. 그래. 지연학생에게 들었던적이 있는 이름이군. 은준우학생은 지연학생을 힘들게 했다고 들었는데."

"뭐라고!?"


"이제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지연학생이 얼마나 괴롭힘당하고있었는지도 말이야."


"설마.준우학생은 이미 힘들어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취미라도 있나? 좋아하는 아이를 괴롭히는 어린애도 아니고"

"그럴리가 없어!!"


"뭐가 말이지?"

"나는 한번도 지연이를 괴롭히지 않았어! 그래!! 뭔가 사정이 있었을꺼야. 지연이가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않았던 이유가, 지연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허.. 참 대단하구나."


어떤 머리구조를 가지고 있길래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지못할 망발을 지껄이고있는것인지 한번 뜯어보고싶구나.


내말은 듣지도 않고 원하는것만 찾는다라..


"그럼 내가 알려주마. 어디에 살고있는지. 그대신 내기를 하나 하자꾸나."


"내기?"


"그래. 네가 정말 네 생각을 믿고 있는것같아 하는 말이다만. 지연학생이 니 말을 듣고 너를 용서해준다는 말을 한다면 너의 승리다."


"너와 지연학생의 관계와 및 여러 장해물을 해쳐나가는데에도 도움을 주도록하지. 그.러.나. 내가 이겼을경우에는 너는 두번다시 지연이의 눈앞에 나타나지 말아야할것이다."


"두고보라고!"


"잠깐."


"내가 뭘믿고 자넬 그냥 보내겠나. 계약서정도는 적어야되지 않겠나?"

"계약서?"


"왜? 두렵더냐?"

"말도안돼는 소리."


"물론 조건이 있다. 지연이에게 어떠한 접촉도 허용하지 않겠다. 그상태에서 너의 그 잘난 진심으로 용서를 받아보거라"

"그럴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내손위에 자네의 손을 올리게나. 그러면 계약성립이다"

그말에 은준우는 손을 위로 올렸고, 환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문장을 입에서 내었다.


[환인께 이 맹세를 올려드리오니 공의공도하신 그 존안으로 저희의 이 맹세가 반드시지켜지도록 도와주소서]


은준우는 알고 있을까. 두번두시 돌이킬수없는 일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알았더라면 결코 일을 벌이지 않았으리라.






"그렇구나.. 그럼 어쩔수없네. 내가 따로 말씀드려보는수밖에 그래도 신경써줘서 고마워~"

"네.."

떨떠름한 기분.. 이걸로 된건가? 정말로??


은지선생님께 거부의 말씀을 드리고나서 교무실을 나오는데 나의 손을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지연아!"

"김.. 민주?"

이제는 더이상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무슨일이야?"

냉랑하게 내뱉은 내 말에 몸을 움추리면서도 꾹다물고있던 입술이 열렸다



"우리 친구 맞지?"

"..뭐?"


"아직 친구인거 맞지? 지연아.."

지금당장 내 치맛자락이라도 붙잡을것처럼 간절해보이는 민주를 보고 나는 내 머릿속에 남아있던 온기가 하나도 남김없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될까.

그토록 말하고싶었을때는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때 깨달았다.

지금 민주의 저 모습은 혼자 도망치던.. 과거의 나와 똑닮았다는걸. 그리고 아침마다 비몽사몽하면서도 설교나 다름없는 환의 말중 기억나는 한마디.


..희생과 노력이 있어야 사람을 모을수있다. 그런사람을 사람들은 존경하고 따르는것이다


노력이라함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상처를 감내하는것이고 희생이라는것은 더 나아가 그사람의 감정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것이라는 사실을 지금 알게 된것같았다.


그래서 나는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물론이지."

내생각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정신과는 반대로말이다.





"지연."

"무슨일이세요? 환. 선생님??"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상황에서 호출을 받았다.


"할말이있다."

"무슨말인데요."


"이번주 토요일.."

"!!"


"은준우 학생이 너를 만나고 싶다고하더군."

"아.. 준우요?"


"그래. 괜찮겠느냐?"

"어차피.. 한번은 만났어야됬어요."

'민주도 만났으니까요.'


"그렇군."

"그보다. 들었어요? 은지 선생님이 만나고싶어하던데"


"그러고보니.. 이번주 토요일에 같이 식사는 어떻냐고 어제 물어보더군"

'왠지.. 미리 말해놨던거구나...'

은지 선생님이 태연하게 대답했던 이유를 알것같았다.


"역시 그랬던 거네요."

"그래. 내일 힘들겠지만, 잘해내길 바란다"


"...지연?"

"아..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실.. 같이 있어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할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있었으니까...


직접듣기 전까지 그것도 모르고 멋대로 기대하고 있었던 거구나.. 조금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슨일이 생기면 말하거라."

"알았어.. 아얏!"


"어른에게는 똑바로 경어를 쓰라고말하지 않았더냐"

"윽..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거거든..요"


"그건 알고있다만.. 잘못된건 잘못된거다."

"쪼잔해."



"나중에 가서는 알게될거다. 누가 너를 위하고있는지"

"뭐라고요?"


"아. 갑자기 가지말고 말해봐요! 뭔데요?? 네~??"

나는 안중에도 없는걸까.


하아..

"기다려요~"

허나.. 다른 사람을 만날때까지 내가 있는지 모를줄은 몰랐나보다.




[무슨일이냐.]

"진정해.. 신위는 넣어 두라고. 친구잖아?"


[나는 너같은 놈 친구로 둔적없다.]

"정말? 네가 아끼는 아이가 큰일을 당할거같아서 미리 이야기해주려했는데?"


[뭐라고!?]

"설마 몰랐던거야?"


"뭐.. 모를만도하지. 최근 내 추종자중 하나가 말썽이라서 말이야"

[나에게 뒷처리를 하라고?]


"무섭게 왜그러실까..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뿐이라고."

[결국 피해를 보는건 내가아닌가]


"그건 아니지. 니가 아끼는 아이가 힘들어할때 영웅처럼 등장하면 얼마나좋아? 너없이는 살수없게말이야"


"그 아이도 그.때.처.럼. 떠나보낼건가? 네 마음에 솔직해지지그래?"


"보아하니 대용품으로 보이는데.."

[나를 시험하려들지마라.]


멱살잡힌 그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을 하고는 도망쳤다.


"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물론, 너를 쫓아온 저아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야."

[지연..]


그녀를 찾아야되는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부터 들었던 아주작은 의심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나를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졌다.


그래도 버림받았던 나를 필요로 해주었기에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세 망가져버렸고, 쓰레기처럼 버려졌던것을 잊고있었을뿐이야. 나는 누구인가?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


난 행복 할수없어.


내가 누군지 확실히 안다면 그 누가 뭐라할지라도 흔들리고 무너질리가 없는것이다.


당연한것이었다. 그런대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걸까.


신은 죽었다고 말한 유명한 외국학자가 있었다.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악해지고 사람들의 사상조차 미쳐버린 세계 대전의 시대가 그것 뒷받침한다고하였으나 신은 존재하듯


부정하고싶어하는 마음은 나와 같았다.

사실.. 신이 나타나서 해결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던것은 아닐까? 지금의 나와같이.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축약하면 이렇다.

집을 지은사람이 있듯이 만물또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주 뇌리에 박히게 설명하자면. 씨가 없으면 열매가 맺지 않는것처럼 결국 만든 존재를 부정할수없다는 것이다.


결국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생겨난것이다.

그 사실 속에서 행복한 결과를 바라는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으니까.


"그런거였어요?"

[지연..]


"그런거였냐고요!!"

[...]


"어떻게.. 어떻게 그렇수있어요!!!"

[잠깐.]


"난 정말 믿었었는데."

[기다려봐라]


"정말로.. 내 편이 생긴거. 같아서.. 엄청 행복했는데..."

[..]


"차라리! 이런감정! 모르는게 나았어요!!"




지연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미안하구나.. 나는 신이지만, 전지전능하지 않구나. 네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슨생각을 하는지 전부 알수가 없구나"


"나도 사람과 같다. 울기도하고 웃기도하고 아픔을 느끼고 그리움또한 가지고있다."


"네가 웃을때 나도 웃고, 네가 울고있을때 나도 울고싶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느냐"

"그런게 아니에요!"


'당신은 내가 홀로 남겨졌을때 유일하게 나를 도와주었고, 나에게 용기를 주었어요.'


'당신이 나의 등을 밀어주었기때문에'


'나. 다시 일어날수있었어요.'


라는 말은 입에 담지 못한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대답하는것이 최선이에요'


'행복해지고싶은 욕심쟁이라 미안해요'

지연의 눈에 이슬같은 물방울이 맺혀졌다.






드디어 이사 당일.

5일의 시간이 지나, 비좁고 불편했지만 정들었던 집을 떠난다. 하나하나 신경쓰며 조금씩 또 조금씩 꾸미며 흘러갔던 시간이 다시 되돌아간것만같이 가구하나없는 살풍경한 방을 보는 내 마음 어딘가가 콕 하고 찔린것만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있을곳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나를 품어주던 이 장소를 이제는 추억으로밖에 떠올릴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한가지 알 수 있는것은 이곳을 떠나는 내발이 쉽게 띄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현관 밖에 쌓여있는 나의 수많은 추억들은 크지도 작지도않은 박스 하나에 담겨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의 손에 의해 새로운 집으로 가게되겠지..


아무리 많은것들을 쌓아 올려도 내가 가져갈 수 있는것은 커다란 산에 있는 돌 하나. 그리고 해변가에 넓은 모래사장에서 모래한 줌을 손에 움켜쥐는것처럼 한정된다는 사실을 싫어도 떠올리게된다.


내가 옮기지 않는다고하면. 옮기기 싫다고하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살짝 고개를 들어올려 뻥 뚤린듯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에는 각양 각색의 구름들이 저높은 하늘을 누비고있었다.


매미들의 성원에 힘입어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구름들은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며 나아갔다.


바람이 잦아들으면 잠시 쉬어가고, 어쩔때는 말라버린땅을 적셔주는 비를 내려주면서, 때로는 화를 내기도하겠지..


산들바람을 반기는 잎사귀들의 뒤로. 몸이 뒤로 밀릴만큼 더욱 거센바람이 몰려왔다.


"ㅇ.."


내가 바라지 않아도 몸은 당연하다는 듯이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햇빛으로부터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주던 구름들도 어느세 거센 바람에 이끌려 저 멀리 떠나갔고 눈부신 햇빛에 나는 눈을 감았다.


"지연아! 이삿짐 다 실었어! 얼른 내려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갈께요~"


현관에 있던 이삿짐은 이미 바람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그렇다. 이제는 나아가야할때라는것을 알고있기에..

그동안 마음깊은곳에 감추어둔 그리움을 홀가분히 내려놓아야만 했기때문에...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괴로웠기에..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약하게나마 집에 남아있는 언니의 내음이 더이상 내곁에 없게된다는 사실을. 언니를 더이상 볼수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일수있지 않을까?


그래.. 이제 잊어버리자.

언니는 내가 계속해서 마음에 두고 슬퍼하는 모습대신 웃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앞으로 나아가자. 비록 그길이 내가 바라던 길이 아닐지라도 그 길이 최선임을 나는 알고있으니까.



갑작스러운 고요가 찾아왔다

마치 잊어버리고싶었던 것이 내게 찾아올것처럼...


어째서 이럴때만큼은 예감이 벗어나는 일이 없는걸까..


"지연아!"

"..."


"지연아!!"

"..."


"지여.."

"그만말해. 다들려."


"..."

"..."



"..나 보고싶지 않았어?"

"....."


뭐라고 말해야 되는걸까?


보고싶다고? 기다리고있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라는건가?


순정만화속의 여주인공처럼 한사람만을 간절히 그리고. 어떤 어려운일이 있더라도 오로지 그만을 바라보는 사람이길 바라는걸까..


나는 그렇지않았다. 아니, 그럴수없었다.


나는 특히 이 6개월동안 혼자 나자신을 돌아보아왔다. 그러면서 알게된 사실이 하나.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거다.


배려심이 넘치는것도. 다른사람들을 이해해주는것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일.. 나는 무너져가는. 아니, 정확히는 내안에서 망가지려는 무언가를 임시방변으로 부여잡고있는것 밖에 할수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것은 나 하나뿐.

나를 제외한 모두는 그것을 알지못한다.. 믿지못할것이다. 자신이 그려왔던 나에 대한 환상이. 지금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않는 결말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것이다.


지금과 같이.


"지연아. 못믿을지도 모르지만, 나 정말 아무것도 하지않았어"


"민주랑 있었던것도 정말 어쩔수없는 일이어서 그랬어"


"나도 그렇게 하기 싫었어. 같이 있게된다면 너에게 오해 받을거라는 것을 알아서 더 싫었어."


"그래서 항상 거리를 두고있었고, 항상 조심하면서 그랬는데 그때만 그랬던거야. 정말이야!"


"네가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때 바로 뛰쳐나가서 말리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데.."



그의 고해성사와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남은것은 그에게 느꼈던 배신감도. 분노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저 무관심. 이제는 그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가져다 줄수 없는 사람인것이다.


나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말을 해보았다.

나의 잘못을 전하고, 진심을 전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돌아봐주지 않았다.

그누구도 알아주지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이유를 알것같았다.


결국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세상 속에서 나는 광대와 같은 짓을 했던것이라고, 바보나 하는 짓을 하고있는것이라것을 이제야 알게됬다.


그리고 나 또한 나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이세상에 속한 일원중 하나라는 사실과는 다른 사실을 하나 더 알게되었다.


벽에 온힘을 다해 말한다해도. 결국 벽은 벽일 뿐이다.

그무엇도 전해지지않고, 그무엇도 닿지않는 무의미한 짓일뿐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왜.. 내 가슴은 저려오는걸까.

어째서 이리도 나의 가슴이 타오르는걸까.


지금당장 입을 열어 가슴속의 뜨거운 울분을 토해내자고, 눈에 쌓인 눈물을 떨어뜨리자고 나에게 속삭이듯이 내 온몸은 잎사귀가 흔들려 떨어져내리듯 파르르 떨렸다.


이내. 그 거대한 감정 속에서 고립된것만 같은 기분이들었다.

그 고통이 점차 익숙해졌고, 더이상 아무런 감정조차 느끼지못하게 되었다.


그런 나는 거대한 감정을 쏟아내려는 나자신을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어 나 스스로를 달랬다.


그제서야 소용돌이처럼 크게 파동을 일으키던 감정이 잦아 들었고, 아무것도 느껴지지않는 눈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든 그를 바라보았다.


항상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비굴한 모습을 보았고 어느때고 여유로워보였던 그표정은 간절한 표정으로 바뀌어졌음을 목도했다.


이것은 그저 동정심일 것이라고, 그저 안쓰럽게 느껴질뿐이라고 자신을 되뇌였지만.. 이 광경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질것같지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지워야했다.

이제 끝이 났다는 것을. 더이상 나는 너를 아무렇게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둘의 관계는 더이상 되돌릴수없다는 진실을 알려줘야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줬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적어도 받아줄수없는 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고수하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그래서?"

"..."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날 이유가 이거였어?"

"...."


"이미 끝난일가지고 그러지마."

"지연아.."


"함부로 내이름 부르지 말아줄래?"

"!!"


"그리고 니가 사과하면 무조건 받아줘야되는거야? 역시 이사장 딸이건 교장 아들이건 힘있는 사람들은 편해서 좋겠네~"


"야! 이지연!!"

"왜! 사과하러온거 아니었어? 그리고 나 이제 이지연 아니야. 김지연이야. 니가 아는 그애가 아니라고!"


"..."

"..."


"더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얼른 꺼져버려!"

"!!!"


준우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졌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겨울바람처럼 차가웠다.


쾅!! 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거칠게 열고 내려가는 준호의 뒷모습이 사라지기까지 나는 내가 숨을 멈추고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됐다. 이걸로 된거야.


이제 준우는 나같은건 신경쓰지도 않고 잘 살아가겠지.


어차피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줄수있을정도의 그릇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러니 이 아픔을 곱씹고 상처투성이인 나를 어루만지자.


이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으로 인한것이라고 자신을 속이면서 뛰쳐나간 준우의 뒤를 따라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트럭까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어갔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햇빛이 보이지않아 얼굴마저 밝게 보이지않는 그곳에서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죽여 울었다.


소리없는 그녀의 울음은 그칠줄 모르고 눈물이 하념없이 흘러나왔다.


더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게 되어서야 그녀는 몸을 다시 움직였다.


1층 현관의 거울에 비치는 그녀의 미소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한계야.. 제발 나좀 내버려둬'


작가의말

최근에 문피아에 글을 올릴수있다는 사실을 알고놀랐습니다.. 보는것만 가능한줄알았게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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