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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그 님의 서재입니다.

로그라이크 던전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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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그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3.08.16 22:34
연재수 :
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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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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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7
글자수 :
498,450

작성
22.06.2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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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2화 - 1층 : BOSS 목마기수(2)

DUMMY

다른 부하들 앞에서는 부정했지만, 목마기수도 상검사와 마찬가지로 알고 있었다. 딥 후드가 동족에게 품은 증오를. 그녀가 자신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것도.

딥 후드와 가장 가까이 있었고, 멍청이도 아니었으니 그런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딥 후드를 섬겼다. 그녀의 증오조차 흘려 넘겼다.

그 증오가 그녀를 지하로 내려가게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블린은 개미와 더불어 이 던전에서 가장 하찮은 생물로 취급받는다. 목마기수는 그런 취급이 싫었다.

설령 딥 후드가 지하의 끝에 도달하는 것이 동족의 파멸을 부른다 해도, 고블린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파멸의 순간에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라. 너희를 지배하는 신이 고블린이다. 우리는 신의 동족이다.


물론, 자신이 그 끝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딥 후드는 친위대조차 혐오한다. 언젠간 버려지리라. 목마기수는 자신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목마기수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예정된 파멸을 조금이라도 멀어지게 하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딥 후드를 최대한 오랫동안 보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위험할 상황을 최대한 막고 싶었다. 오랫동안 쓸모 있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쓸모없었을 줄이야.'


그런데 고작 스크롤 한 장에 그 결의가 꺾였다. 딥 후드가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 자신이 딥 후드를 버렸다. 목마기수는 그 사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쓸모없어진 자신을 증오했다. 그리고 그 증오를 담아 현우를 공격했다.


'젠장.'


목마기수는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쉴새 없이 몰아치는 창날 속에서 빈틈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상처 입을 각오를 한 것은 목마기수 쪽이었는데, 정작 상처는 현우가 입고 있었다.


빈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목마기수는 여차하면 동귀어진할 기세였다. 현우가 약점을 찌른답시고 틈을 만들었다가는 목마기수는 자기가 죽든 말든 그곳을 파고들 터였다.


어쩌다가 큰 빈틈이라고 생각하고 강하게 검을 휘두르면 목마기수는 곧바로 대검을 열십자창에 걸어 흘려보내고 반격한다.

흘려보내도 곧바로 회수가 가능할 정도로 느슨하게 공격하면 전신을 감싸고 있는 판금 갑옷을 뚫을 수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딥 후드보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동귀어진의 자세로 퍼붓는 맹공, 아차 하는 순간 공격을 흘려내고 현우를 찌르는 날카로운 기창반격, 마법이 걸려있는 튼튼한 판금 갑옷.


이 세 가지 조합이 목마기수를 무적이나 마찬가지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현우는 상처를 더 늘리지 않게 하려고 대검을 휘둘러서 수비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대처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싸운 섀도우 임프를 떠올렸다. 비록, 실전 경험이 미숙해 패했지만, 마지막에 쓴 섀도 볼텍스는 강력했다.


그것을 흉내 낼 수 있다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전에 대검을 이용해 흉내를 낸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대검 주위를 통제하려 시도하면 목마기수가 그것을 막았다.


대검으로는 섀도우 임프의 볼텍스를 흉내를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창은?


'가능할까?'


현우의 창술은 대검술에 비하면 미숙했다. 능숙하게 다루는 대검으로도 실패한 볼텍스를 미숙하게 다루는 창으로도 할 수 있을까?


현우는 섀도우 임프와 달랐다. 그녀는 그림자를 이용해 부족한 창술 실력을 메웠다.

현우는 그런 요행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아니, 실은 가능했다. 방법이 있었다. 문제는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공해도 죽을 가능성이 있었고, 실패하면 확실히 죽었다.

성공하고도 살아남을 확률은 지극히 희박했다. 목숨을 걸고 시도해야 했다.


'젠장.'


고민하던 현우는 자신이 너무 우습다고 생각했다. 목마기수는 자신보다 훨씬 많은 전투를 치렀다. 불리한 전투에서도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 싸움에서 생존했다.


그런 자가 현우 한 명을 죽이기 위해서 모든 걸 걸었다. 반면, 현우는 자신보다 오랜 시간을 싸워온 전사를 무시하고 그 앞에 있는 딥 후드만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밀린 게 당연했다.


현우는 목마기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주위에 짙게 깔린 딥 후드에 관한 생각은 잊었다. 오직 목마기수를 처치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현우는 목마기수에게 대검을 던진 뒤, 창을 꺼내 손으로 굴렸다. 손으로 굴리는 창은 당연하게도 아주 느리게 돌아갔다. 파괴력이 오히려 약해질 정도였다.


현우는 손 주위의 흐름을 제어했다. 이 흐름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대검에 직접 휘감았을 때는 목마기수가 자기 힘을 불어넣어 흐름을 제어하는 걸 방해했으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목마기수는 이 흐름을 방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흐름을 제어하는 만큼 속도는 느려졌다. 마력으로 직접적으로 창을 움직이던 섀도우 임프와 달리, 현우가 창을 돌리는 속도는 느리게 가속되었다.


"어설픈 수를!"


손쉽게 대검을 쳐낸 목마기수는 현우의 목을 향해 창을 뻗었다. 현우는 여전히 손에 집중하면서 몸을 약간 틀었다.

빗나간 창이 현우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제대로 꿰뚫렸는지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창을 굴리던 손은 오른손이었다. 현우는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민 채 계속 창을 굴렸다. 조금만 어긋나도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을 입겠지만, 현우는 끝끝내 왼팔을 내주며 버텼다.


팔은 물론, 어깨도 난도질당해 움직이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해 눈앞이 어지러워질 지경이 될 때쯤 회전 속도가 극에 달했다. 이제는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한 현우는 회전하는 창을 앞으로 뻗었다.


목마기수도 마저 창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의구심을 품었다. 저 공격을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그런데 현우는 여러 번 공격을 당했음에도 죽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렇다면?


목마기수는 제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우를 죽이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결의마저 망쳐지는 것은 두려워했다.

두려웠기 때문에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뻗으려던 창을 회수하고 여태 했던 것처럼 열십자창의 창날과 창날 사이에 현우의 창을 걸어서 공격을 흘려내려 했다.


여태까지는 목마기수가 두려워하지 않았고 현우가 두려워했으나, 지금은 목마기수가 두려워하였고 현우가 두려워하지 않았다. 승부는 거기서 갈렸다.

목마기수는 안전하게 방어할 생각이었다. 현우는 죽음을 각오하고 공격을 받아내며 힘을 모았다.


현우는 섀도우 임프의 섀도 볼텍스를 흉내 냈다. 그녀처럼 앞의 모든 것을 갈아대는 회오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대신, 창이 모든 것을 갈아버릴 기세로 회전했다.

목마기수는 그 공격을 흘려내기 위해서 열십자창을 뻗어 창날과 창날 사이에 현우의 창을 끼웠다.


현우는 한쪽 팔로 창을 뻗었고, 목마기수는 양팔로 창을 뻗었지만, 공격을 흘려내기 위해서 여력을 남긴 목마기수와 달리 현우는 필살의 각오로 창에 힘을 실었다.

열십자창은 창의 회전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현우의 창은 방어에 실패해 무방비 상태가 된 목마기수를 찔렀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창날이 판금 갑옷에 닿았다. 판금 갑옷은 그 자체로도 다른 갑옷과는 결이 다를 정도로 단단한 물건이었는데, 목마기수의 판금 갑옷은 마법 무구였기에 일반적인 판금 갑옷보다 훨씬 튼튼했다.


하지만 현우의 창은 돌벽을 꿰뚫는 드릴처럼 목마기수의 판금 갑옷을 꿰뚫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안쪽에 보호받고 있던 피부와 근육, 갈비뼈와 심장마저 꿰뚫었다.

심장이 꿰뚫린 목마기수는 힘이 빠져서 무기를 놓치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공허한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딥 후드. 당신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죽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목마기수의 눈에 깃든 생명력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그 죽음을 증명하듯, 주머니에서는 다량의 식물 씨앗과 약간의 보존 식량, 몇 자루의 창이 쏟아졌다.


목마기수의 죽음이 확인되자 현우는 그가 입고 있던 판금 갑옷을 벗어 수리한 뒤, 그것으로 갈아입었다. 판금 갑옷으로 갈아입자 몸 전체에 따스한 기운이 퍼졌다.

아무래도 마법 갑옷인 모양이었지만, 어떤 마법이 걸려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감정을 해줄 상검사도 이젠 없었다.


그래도 마법 갑옷이고, 목마기수가 입던 갑옷인 만큼 몸에 해가 되는 마법이나 저주 같은 것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갑옷을 갈아입은 현우는 죽은 목마기수를 흘끗 바라보더니 말뚝과 망치를 꺼내 바닥을 부수기 시작했다.


목마기수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감정은 없었으나, 그가 상검사를 매장해줬던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바닥의 구멍이 충분히 넓어지자 현우는 그 안에 목마기수의 시체를 밀어 넣었다. 목마기수의 시체 위에는 수의를 대신해 부서진 돌멩이가 덮였다.


시체 매장이 끝나자 현우는 목마기수가 사용하던 열십자창을 그 위에 꽂아 묘비를 대신했다.


매장이 끝나자 현우는 딥 후드가 떠났던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걷지 않자 현우는 '계단'을 발견했다.


다들 편의상 계단이라 부르고 있으나, 실은 일종의 차원 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계단은 현우가 내려가려는 마음을 먹은 것을 알아챘는지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그 뒤쪽이 보이지 않는 검은 소용돌이가 현우의 걸음을 잠시 멈칫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현우의 결심은 확고했기에 그리 오래 멈추지는 않았다.


현우가 완전히 다가가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현우의 몸이 계단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야가 어둠으로 가득 찼다. 빛으로 가득 찼다. 숨이 막힐 듯이 고요했다. 정신 나갈 정도로 시끄러웠다.


배경이 너무나 급격하게 변하였기에 현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치 작동하는 원심 분리기 안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변화가 멈추었다. 현우가 서 있는 공간은 온통 빛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어쩐지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현우는 설마 하는 생각을 품었다. 뒤이어 나타난 누군가가 설마 하던 생각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현우의 눈앞에는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빛보다 더 빛나는 머리카락을 강처럼 길게 기른 나신의 여인.


그녀는 발랄한 목소리로 현우를 환영했다.


"반가워."


현우는 눈앞의 여자가 누군지 알았다. 던전을 45층까지 내려간 여덟 모험가 중 하나. 이 던전의 주인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존재로 여겨지는 자. 무수히 많은 세계를 동시에 방문할 수 있는 심연의 신 루가노.

현우와 다른 인간들을 던전으로 끌고 온 장본인이었다.


"미친 여신."


현우의 멸칭에도 루가노는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빙긋 웃으면서 반가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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