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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님의 서재입니다.

심심한 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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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작품등록일 :
2023.11.26 21:17
최근연재일 :
2023.12.03 00:01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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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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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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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장. 아스란 레이오네(4)

DUMMY

아스란은 긴장 어린 표정으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잘생긴 남자였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럼에도 아스란은 남자를 향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이곳은 숲.

어쩌면 마수보다도 위험한 게 사람이다.

누구 하나 죽이더라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무슨 일이죠?”

“혹시 요한슨이라는 남자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슨?”


아는 이름이었다.

아스란과 함께 숲에 들어온 사냥꾼으로, 시끄럽게 코를 고는 아저씨였다.

오크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는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같이 숲에 들어왔던 아저씬데······ 그 사람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역시······.”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제 이름은 델룬이라고 합니다. 저희도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숲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요한슨 씨가 오크 두 마리에게 쫓기는 걸 발견하고 도와드렸습니다만······.”

“···.”

“이미 요한슨 씨는 큰 상처를 입어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슨 씨는 죽기 전에 다른 동료들이 오크에게 쫓기고 있을 테니 도와주라는 말만을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인근을 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아······.”


아스란은 작게 탄식했다.

고작 일주일을 같이 지낸 사이지만, 알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에 아스란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남자, 델룬은 그런 아스란을 바라보다가 제안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랑 숲 밖까지 동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동행이요?”

“네, 요한슨 씨의 부탁도 있고, 아무래도 둘이서 숲을 빠져나가는 건 위험하니까요.”


아스란은 틸라를 힐끔 바라보았다.

틸라는 별 관심 없는지 지루한 표정으로 하품이나 할 뿐이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숲 밖으로의 동행이 생겼다.


* * *


“그런데 두 분은 어쩌다가 만나게 된 겁니까? 여성분이 있다는 말은 요한슨 씨에게 듣지 못했는데요.”


델룬이 아스란과 틸라를 번갈아 보았다.

마수가 돌아다니는 숲과 1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소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아스란은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대충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숲을 혼자 돌아다니던 걸 발견했어요. 일행이 있었는데 사고가 생겨서 떨어지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런······.”


델룬의 안타까운 시선이 틸라에게 향했고, 틸라가 팍 인상을 쓸 때였다.


“크아아!”


갑자기 시끄러운 울부짖음과 함께 웬 마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곰을 닮은 마수였는데, 그 크기가 반 배는 더 컸다.

델룬의 대처는 빨랐다.


“내가 정면에서 맡는다!”


델룬은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마수의 발톱이 델룬에게 향했다.


챙!


델룬은 조금 밀려났지만, 마수의 공격을 버텨냈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둘이 마수의 양옆을 노렸다.

물 흐르는 듯한 합공이었다.

괴수는 옆의 놈들을 쳐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델룬이 앞에서 끈질기게 붙잡았다.


“저도 도울게요!”


상황을 지켜보던 아스란도 싸움에 끼어들었다.

원래도 유리했던 싸움은 아스란까지 합세하자 급격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잠시 후.


쿵.


마수가 무거운 굉음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덕분에 쉽게 처치했습니다.”


델룬이 미소를 머금고 아스란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머지 두 명은 마수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아뇨, 전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하하, 적당히 부산물만 챙기고 다시 출발하도록 하죠. 그때까지는 좀 쉬세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마수 해체를 마친 일행은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델룬은 능숙하게 길을 안내했고, 가는 동안 마수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혹 만나더라도 무리 없이 잡아냈고.

분주하게 걸은 터라 내일이면 숲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올랐다.

아스란, 틸라, 그리고 델룬 일행은 그 주위에 앉았다.

아스란은 저도 모르게 코를 벌렁거렸다.

냄비 위에는 수프가 끓고 있었는데, 냄새가 정말 기가 막혔다.

틸라는 냄비가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델룬이 말했다.

틸라를 힐끔 보며 웃던 아스란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요. 델룬 씨 덕분에 편하게 왔네요.”

“하하, 아닙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진심이었다.

만약 델룬이 없었다면 아스란은 아직도 어딘지 모를 곳에서 길을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랬겠지.

틸라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수프가 다 익었군요. 이제 먹도록 하죠.”


델룬은 수프를 일일이 떠서 일행에게 나눠줬다.

틸라의 수프는 유난히 양이 많았다.

일주일 동안의 동행으로 델룬도 틸라의 먹성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틸라는 수프를 받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한 숟가락 먹은 아스란은 그녀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됐다.


‘맛있긴 해.’


동행하는 동안 전담 요리사를 맡은 델룬의 요리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한정된 재료로도 요리다운 요리를 했다.

오늘따라 더 맛있었다.


‘마지막이라 그런가.’


그렇게 어느 정도 먹었을 때였다.

문득 아스란은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보니 델룬을 비롯한 나머지 두 명이 아스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낀 아스란이 말했다.


“······왜 그렇게 봐요?”


델룬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슬슬 약효가 돌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네? 그게 무슨······.”


아스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금도 수프를 먹고 있는 틸라와 자신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원은 수프에 손도 대지 않았다.


“···!”


놀란 아스란이 벌떡 일어난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눈앞은 흐릿했고,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휘청거리던 아스란은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좀 전과는 전혀 다른,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델룬이 보였다.

아스란은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수면제가 든 걸 좋다고 먹기는. 멍청한 새끼.”


쓰러진 아스란을 보며 웃는 델룬은 좀 전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 좋은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진짜 멍청한 놈이라니까. 약하면 머리라도 똑똑해야지. 쯧쯧.”

“맞는 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던 델룬은 흠칫 놀라 옆을 쳐다봤다.

입가에 수프를 묻힌 틸라와 눈이 마주쳤다.


“왜?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태연하게 말하던 틸라가 델룬의 수프를 보고는 반색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델룬이 입을 열었다.


“야, 그거 안 먹을 거면 줘라.”


싹싹 비운 그릇을 내려놓은 틸라가 델룬의 것을 빼앗아 먹기 시작했다.


“······너, 어떻게 된 거냐?”

“뭔 소리야?”


그새 그릇을 비운 틸라는 믿기 힘들다는 듯한 세 사람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내 틸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라? 왜 이렇게 졸리지?”


그리고 흐느적거리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쿨쿨.


델룬은 자기 집 침대에 누운 듯 편안하게 자는 틸라를 내려다보았다.

툭툭 건드려봐도 깨어나지 않았다.


“······약발이 늦게 돌았나.”


의심스러운 듯 틸라를 보던 델룬이 이내 피식 웃었다.

웬만한 마수도 재워버리는 약을 이런 애새끼가 버틸 리 없다.


“하하하.”

“하하.”


웃는 델룬을 따라 나머지 녀석들도 웃었다.

이내 웃음을 뚝 그친 델룬이 아스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을 처리하고 와라.”


나머지 두 사람은 아스란을 들쳐메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두 명의 남자는 달빛에 의지해 어두운 숲을 걸었다.

한 남자의 어깨에는 아스란이 매달려 있었다.


“아우, 힘들어 죽겠다. 이쯤이면 되겠지.”


남자는 아스란을 바닥에 내팽개치듯 내려놨다.

야영지 근처에서 죽이면 피 냄새를 맡은 마수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온 것이었다.

남자가 검을 뽑으려고 할 때.


“잠깐만.”


동료가 제지했다.


“왜?”

“사실 이 녀석, 얼굴이 내 취향이거든.”


그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역겨운 새끼.’


남자는 그런 그가 역겨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빨리 처리하고 와, 늦으면 델룬이 또 지랄할 거라고.”

“그래. 알았어.”


능글맞게 웃은 동료가 아스란을 업고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씨발, 이 상황에 저러고 싶나?”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윽.”


동료가 들어간 곳에서 신음성이 들렸다.

남자가 팍 인상을 쓸 때였다.


스아.


단검 한 자루가 남자를 향해 날아왔다.

단검을 발견한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을 이미 늦었다.

단검이 남자의 복부에 박혔다.


“컥! 뭐, 뭐야?”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대충 던졌는데 맞았네.”


아스란이었다.

자신을 덮치려던 놈의 품에서 빼앗은 단검을 던진 것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명중했다.

검을 쥔 아스란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어떻게?”


남자는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수면제를 먹는 것을 봤다.

그건 마수도 하루는 넘게 잠들 만한 강한 수면제였다.

그런데 지금 아스란은 멀쩡한데다가, 검에 묻은 피를 보면 들어간 동료도 죽은 게 분명했다.


“먼저 죽은 놈한테 보내줄 테니까, 그놈한테 가서 물어봐.”

“자, 잠깐.”

“닥쳐!”


아스란은 바로 달려들었다.

좀 전에 당할뻔한 끔찍한 일에 아스란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처음이 남자일뻔했다니.

분노한 아스란의 검이 남자의 목을 노렸다.


챙!


남자는 가까스로 검을 들어서 막았다.


“크헉.”


하지만 힘을 주자 상처에서 피가 튀었다.


“아픈가 봐?”

“기, 기다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모두 델룬이 시킨 거라고!”

“개소리.”


아스란은 차갑게 말했다.

설령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진 않는다.

아스란은 발로 단검을 찼다.

단검이 더욱 깊숙이 들어가며 비틀렸다.


“크헉!”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나는 남자를 아스란은 집요하게 쫓았고, 상처 입은 남자를 죽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스란은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아직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짐승의 먹이가 되겠지.

썩 마음에 드는 최후였다.


“후우.”


아스란은 크게 심호흡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룬.

아스란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룬 덕분이었다.

룬에서 나온 열기가 수면제를 전부 태워버렸다.

도중에 눈을 떴고,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스란은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한 놈 남았으니까.

죽일 놈이.


* * *


델룬은 잠든 여자아이를 쳐다봤다.

틸라라는 이름의 소녀.

처음 본 순간 느꼈다.

자신의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라고.

인형처럼 아름답게 생긴 외모, 아마 귀족에게 가져다 팔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더기 같은 생활도 끝이겠지.

다만, 조금 어린 게 흠이지만······.

오히려 그런 걸 좋아하는 변태적인 귀족도 많으니 문제 될 건 없다.

델룬이 행복한 상상을 하며 낄낄 웃고 있을 때였다.


“흐아암~”


틸라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


이에 델룬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틸라를 쳐다봤다.


“너, 너······ 어떻게 일어난 거냐?”

“뭔 소리야?”

“분명 수면제를······.”

“아, 그거? 그딴 저급한 게 통할 리가 있나.”


틸라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델룬은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역시 보통 꼬맹이가 아니었구나.”

“그렇긴 한데, 지금 나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닐걸.”

“그게 무슨······.”


말하던 델룬이 다급히 몸을 틀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둠 속에서, 아스란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피가 묻은 검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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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1장. 아스란 레이오네(5) 23.12.03 4 0 13쪽
» 1장. 아스란 레이오네(4) 23.12.02 4 0 12쪽
4 1장. 아스란 레이오네(3) 23.11.30 8 0 11쪽
3 1장. 아스란 레이오네(2) 23.11.29 11 0 12쪽
2 1장. 아스란 레이오네(1) 23.11.28 16 0 11쪽
1 Prologue 23.11.26 1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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