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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님의 서재입니다.

심심한 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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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작품등록일 :
2023.11.26 21:17
최근연재일 :
2023.12.03 00:01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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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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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27,993

작성
23.11.2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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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장. 아스란 레이오네(1)

DUMMY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아스란을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인생이 극적으로 변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배경도, 재능도, 태어나는 순간 정해진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아스란은 배경이랄 것도 없었고, 그런 처치를 바꿔줄 대단한 재능도 없었다.

올해로 20살이 된 마수 사냥꾼일 뿐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똑같았고 아마 미래에도 달라질 일은······.


“끄응······. 자기야, 너무 추워······.”


옆에서 들린 잠꼬대가 아스란은 상념을 방해했다.

모닥불 앞에 앉아 불침번을 서던 아스란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명의 남자가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덮고 있던 모포를 다리까지 내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이 남자들은 미나르 숲 앞에서 만난 사냥꾼들로, 같이 사냥한 지 어느덧 일주일째였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건지.”


고개를 절레 저은 아스란은 모포를 끌어 올려 남자의 얼굴까지 덮어버렸다.

그제서야 좀 조용해졌다.

들리는 건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간간이 멀리서 들리는 짐승 울음소리 정도가 다였다.

자연스레 아스란의 눈꺼풀이 조금 무거워졌을 때였다.


부스럭.


근처 수풀에서 소리가 들렸다.


“···!”


흠칫 놀란 아스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소리가 들린 수풀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긴장한 얼굴로 수풀 사이를 확인하려는 그때.

뭔가가 수풀에서 팍 튀어나왔다.

아스란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를 뻔했다.

하지만 그것의 정체를 본 순간 검에 준 힘을 풀었다.


“······하아, 토끼였잖아.”


새하얀 토끼가 아스란의 앞에서 깡충 뛰어다녔다.

긴장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허탈하게 웃은 아스란은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모닥불 앞으로 가서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휘리릭!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무언가가 아스란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갔다.


빡!


뭔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아스란이 뒤로 천천히 돌았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토끼였다.

조금 전까지 힘차게 뛰어놀던 새하얀 토끼는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었다.

잔뜩 녹이 든 커다란 도끼가 토끼의 머리를 박살 낸 것이었다.

아스란을 스치고 지나간 것 역시 저 도끼였다.


저벅, 저벅.


도끼가 날아온 방향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초록의 거구가 수풀을 가르며 걸어 나왔다.

건장한 성인 남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전신을 두른 우람한 근육, 광기 어린 눈빛.

아스란도 아는 생물이었다.

오크였다.

그것도 무려 열 마리가 넘는 수의.


“이, 일어나! 빨리!”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스란은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뭐야?”

“끄응, 잘 자고 있었는데.”

“흐아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남자들은 이내 주변을 둘러싼 오크들을 발견했다.

화들짝 놀란 그들은 벌떡 일어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이게 다 몇 마리야?”

“미, 미친!”


남자들의 얼굴에 절망과 공포가 떠올랐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일대일로도 이기기 힘든 오크.

그 수가 열이 넘는데 반면 이쪽은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절대 못 이겨.’


아스란은 빠르게 판단했다.

주변을 살피던 그의 시선에 오크들 사이로 빈 곳이 보였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아스란은 그곳을 향해 전력으로 달리며 소리쳤다.


“모두 튀어!”


등 뒤로 오크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가까스로 잡히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어?”

“도, 도망쳐!”


아스란의 뒷모습을 보며 눈치를 살피던 남자들도 이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하아! 하아!”


아스란은 수풀을 헤치며 정신없이 내달렸다.

숨이 차오르고, 나뭇가지에 몸 이곳저곳이 긁히고 몇 번쯤 넘어지기도 했지만, 벌떡 일어나 달렸다.

죽기는 싫으니까.

그렇게 죽기 살기로 달리던 아스란은 결국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앞에 절벽이 나타났으니까.

높디높은 절벽.

그 아래로는 물살이 거센 강이 흘렀고, 그 끝에는 폭포가 존재했다.


“씨발.”


아스란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죽어라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이 이런 절벽이라니.


“내 인생이 그러면 그렇지.”


등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아스란은 몸을 돌렸다.


“······많이도 왔네, 뜯어먹을 건 나보다 그 아저씨들이 훨씬 많을 텐데.”


무려 세 마리의 오크가 아스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다 잡은 사냥감을 보는 듯한 시선과 비웃음.

아스란은 짜증이 확 났다.


“이런 돼지 새끼들이······!”


이를 악문 아스란은 검을 뽑아 들었다.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오크의 먹이가 될 생각 따위는 절대 없다.

먼저 달려든 것은 아스란이었다.

이에 오크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몽둥이를 크게 휘둘렀다.


부웅!


제대로 맞았다가는 단번에 뼈가 부러질 만한 위력.

아스란은 고개를 숙여 몽둥이를 피했다.

풍압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며 아스란은 검을 휘둘렀다.

오크의 가슴이 가로로 길게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하지만 아스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얕아.’


오크의 두꺼운 가죽을 베고 치명상을 주기에는 아스란의 힘이 부족했다.

다시금 아스란이 검을 휘두르려던 때였다.

다른 오크가 다가와 아스란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식겁한 아스란은 다급히 팔을 교차했고, 그 위로 오크의 두꺼운 주먹이 꽂혔다.


빡!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아스란은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크흑.”


주먹을 막은 팔에서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부러진 건 아닌 듯싶었지만, 도저히 답이 없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에 뒤를 힐끔 보았다.

한 걸음 뒤가 절벽이었다.


‘죽는다.’


아스란은 죽음을 느꼈다.

오크 세 마리와 싸워 이길 가능성도 없고, 뒤로는 높디높은 절벽이었다.


“씨발······.”


이런 숲속에서, 기껏 오크 따위한테 잡아먹힌다고?

그러려고 그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왔던 건가?

억울해서 눈도 감지 못하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마리는 데려간다.”


이를 악문 아스란이 다시금 싸우려던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아스란을 보며 침을 뚝뚝 흘리던 오크들의 시선이 위로 향해 있었으니까.


“···?”


아스란의 시선 역시 오크들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건.”


인근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고 있는 구체를.

아스란과 오크들이 대치하고 있는 곳 20m 상공에 구체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오크들은 구체를 보며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더니 이내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놈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스란은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설마 저 구체를 따라서 온 건가?”


이상하다 싶긴 했다.

오크는 보통 낮에 사냥하고 밤에 잠을 잔다.

게다가 아스란 일행이 야영했던 곳은 숲의 외곽 지역으로 오크가 서식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런 곳에 열 마리도 넘는 오크들이 무리 지어 쳐들어온다고?

분명 저 구체를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아스란은 일단 빨리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언제 오크들이 다시 올지도 모르고, 저 이상한 구체를 다른 마수들이 보고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땐 진짜 죽을 수도 있다.

아스란이 한 걸음 내디뎠을 때였다.

어느새 내려온 구체가 아스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마어마한 열기와 빛.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구체 아래에 있는 땅이 액체처럼 흐물거리는 게 보였다.


“미친······.”


도저히 저 옆을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저 옆을 지나가려면 몸이 전부 익어버릴 듯했으니까.

망설이는 아스란의 눈에 구체가 진동하는 게 보였다.


“저, 저거 갑자기 왜 저래?”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았다.

터질 듯이 진동하던 구체가 아스란을 향해 포탄처럼 날아왔다.

빛살처럼 빠른 속도.

아스란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질끈 감는 것뿐이었다.

그 상태로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스란은 슬쩍 눈을 떴다.

어두웠다.

좀 전까지 떠 있던 구체는 온데간데없었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스란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태양의 룬의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동기화 진행률 – 0%]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내가 미쳤나?”


멀뚱히 글자를 보던 아스란이 중얼거렸다.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 듯했다.

아스란은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아, 하나 있긴 했다.


[동기화 진행률 – 1%]


0이 1로 변했다.


“······응?”


그리고 심장에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따듯했다.

하지만 이내 심장을 녹여버릴 듯한 열기로 변했다.


“으아아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고통에 아스란은 비명을 내질렀다.

다가올 수 있는 마수?

그딴 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동기화 진행률 – 3%]

[동기화 진행률 – 7%]


아스란은 주먹으로 바닥을 미친 듯이 내려쳤다.

조금이라도 고통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고통은 줄어들기는 점점 더 심해졌다.

심장에서 시작된 열기는 이내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기맥을 타고 가로막는 것을 전부 부숴버리며 뻗어나갔다.


콰앙! 콰앙!


마치 근육질 거한이 망치로 전신을 골고루 패는 것 같았다.

지독한 열기에 아스란의 전신에서 증기가 피어올랐다.

흘러내린 땀이 기화된 것이었다.


[동기화 진행률 – 49%]

.

.

.

[동기화 진행률 – 75%]


“끄윽······.”


아스란은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몸을 덜덜 떨었다.

이제는 발악할 힘도 없었다.


“···!”


아스란은 흐릿한 정신을 애써 붙잡았다.

여기서 이대로 기절했다가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몸속의 열기를 식혀야 했다.

그때, 아스란의 귓가에 물소리가 들렸다.

절벽 아래서 흐르는 강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아스란은 바닥을 질질 기었다.

몇 번이나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절벽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절벽 아래로 강물과 폭포가 보였다.

몸이 정상이었어도 빠졌다가는 위험할 수 있는 높이.

하지만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아스란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풍덩!


물속에 빠지는 소리가 울렸고, 인근은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저벅, 저벅.


누군가 걷는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절벽 끝이었다.

그는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희미한 달빛만이 비추는 세상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정확히 떠내려가는 아스란을 보고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그의 눈동자에는 의문, 호기심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왜 저런 놈을 선택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곧 알게 되겠지.”


절레 고개를 저은 그는 절벽 아래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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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장. 아스란 레이오네(4) 23.12.02 4 0 12쪽
4 1장. 아스란 레이오네(3) 23.11.30 8 0 11쪽
3 1장. 아스란 레이오네(2) 23.11.29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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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logue 23.11.26 1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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