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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님의 서재입니다.

심심한 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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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작품등록일 :
2023.11.26 21:17
최근연재일 :
2023.12.03 00:01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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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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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27,993

작성
23.11.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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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장. 아스란 레이오네(2)

DUMMY

아스란은 눈을 떴다.

처음 보인 것은 이글거리는 불꽃이었다.

세상 어딜 봐도 불, 불, 불.

모든 곳이 타오르고 있었다.


“···.”


아스란은 이상함을 느꼈다.

세상을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는 불길이 뜨겁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따듯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아스란은 이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아스란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따듯했던 불길이 뜨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아스란은 걸음을 멈췄다.

불길만이 가득한 세상에, 구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구름과 닿을 정도로 거대한 구체.

구체는 빛과 열기를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 세상을 채운 불꽃은 모두 저 구체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


구체를 바라보던 아스란은 한 발짝 앞으로 걸었다.

옆으로 불꽃이 스쳐 지나갔다.

피부가 익어버릴 듯 뜨거웠다.

아스란은 순간 흠칫했지만, 다시 앞으로 걸었다.

그럴수록 열기는 더욱 심해졌다.

지척에 닿았을 때는 마치 용암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스란은 손을 뻗었다.

뻗은 손이 불꽃을 가르며 구체에 닿았다.

그 순간.


[동기화 진행률 – 100%]

[태양의 룬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어딘가 익숙한 글자가 떠올랐다.


* * *


드넓은 숲.

그 위를 많은 강줄기가 핏줄처럼 가로질렀다.

동물이나 마수가 목을 축이기 위해 찾는 강에 오랜만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강에 몸을 반쯤 걸친 남자가 기절한 채 누워있었다.

다부진 몸에 대충 자른 검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리 잘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남자답게 생긴 게 매력적인 이였다.

절벽 위에서 강으로 몸을 날렸던 아스란이었다.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이슬은 그대로 아스란의 이마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


이마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아스란은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스란은 전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크들에게 죽을 뻔했고, 이상한 구체를 만나고 타죽을 뻔했고, 기절하기 직전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까지.

어이없다는 듯 웃은 아스란이 몸을 일으켰다.

몸을 살펴봤지만, 오크에게 맞은 팔이 멍든 것과 자잘한 상처를 제외하면 다친 곳은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살긴 살았네.”


아스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나르 숲에는 많이 와봤지만 주로 초입에서만 사냥했기에 여긴 어딘지 감이 안 왔다.

게다가 가지고 온 짐도 전부 잃어버린 상황.

가지고 있는 것은 달랑 검 하나가 전부였다.

살아남은 건 다행이었지만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걸어볼까.”


아스란은 일단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태양의 룬이 선택한 주인은 꽤 멍청해 보였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스란은 흠칫 놀라며 뒤로 돌았다.

웬 15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아스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칼, 새하얀 피부, 고양이를 닮은 눈매.

인형처럼 생긴 여자였다.

그녀는 양손에 붉은색의 커다란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꼬마야, 이런 위험한 곳에 왜 혼자 있니? 부모님은?”


잠깐의 침묵 끝에 아스란이 물었다.

이에 여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꼬마? 하, 어이가 없네. 이걸 죽여버릴 수도 없고.”

“···.”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투에 아스란이 당황했을 때.

책을 덮은 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 검은색 구멍이 생겨났다.

아스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봤다.


‘마법산가?’


여자는 들고 있던 책을 구멍에 집어넣었다.

책을 삼킨 구멍은 그대로 사라졌다.

여자가 아스란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아스란 레이오네.”

“···?”

“올해로 20살이고.”


여자와 눈이 마주친 아스란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오, 오지 마!”


아스란이 소리쳤지만, 여자는 어디 개가 짖냐는 듯한 표정으로 무시할 뿐이었다.

뒷걸음질 치던 아스란의 발에 강물이 치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아스란은 검을 뽑아 들어 여자를 겨눴다.


“오지 말라고!”

“풉, 휘두를 수나 있겠어?”


멈춰선 여자가 코웃음 쳤다.


“으아아!!!!”


발끈한 아스란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물론 겁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여자가 아스란의 간격 안으로 쑥 들어왔다.


“미친······!”


아스란은 다급하게 검에 실린 힘을 뺐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검이 여자를 향해 휘둘러진 상태였다.

아스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에 반해 여자는 지루한 기색이 가득한 눈동자로 검의 궤적을 쫓았다.

이내 그 궤적에 손을 들어 올렸다.

저 미친 짓에 아스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작고 하얀 손은 단번에 잘려 나갈 테니까.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여자는 두 손가락만으로 아스란의 검을 붙잡았다.


“······꿈인가?”


아스란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전력으로 휘두른 검을 고작 1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손가락 두 개로 잡아낸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여자가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 나한테 검을 휘두르고 살아 있는 놈은 거의 없거든.”

“그게 무슨······.”


아스란이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여자가 반대쪽 손을 휘둘렀다.

손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아스란의 뺨을 후려쳤다.


쫙!


찰진 소리와 함께 아스란의 몸이 붕 떴다.

허공을 몇 바퀴나 회전한 아스란은 그대로 강물에 처박혔다.


“···.”


물에 둥둥 뜬 아스란은 맞은 뺨을 더듬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뺨을 맞은 순간 정신이 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고, 눈을 뜨니 강물에 떠서 허공을 보는 중이었다.

맞은 뺨이 무진장 아팠다.

그런데 이빨이 나가기는커녕 상처 하나 없으니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다.

슬쩍 시선을 돌린 아스란은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움찔했다.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 빨리 나와.”

“···.”


아스란은 느릿하게 강에서 걸어 나왔다.

여자는 아스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은 아스란의 몰골.


“쯧.”


혀를 찬 여자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손짓을 따라 한곳에 모였다.

여자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화륵.


그러자 모은 땔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역시 마법사였어.’


그 모습을 보며 아스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모닥불 앞에 앉은 여자가 아스란을 한심하다는 듯 보며 말했다.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앉아.”

“······어.”


아스란은 여자의 말대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따듯했다.


* * *


“······그래서, 넌 누구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건데?”


아스란은 반대편에 앉은 여자를 보며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여자였다.


“난 틸라 가란, 태양의 룬에게 선택받은 널 지켜봐야 하는 관찰자야.”

“그게 무슨 개소리······. 잠깐.”


태양의 룬?

어딘가 익숙한 단어였다.

머릿속에 어젯밤 보였던 글자가 떠올랐다.


“설마 그 태양의 룬이라는 게 어젯밤에 봤던 그걸 말하는 거야?”

“그래, 그 무진장 뜨거운 구체가 바로 태양의 룬이지, 지금은 네 심장에 들어있는 거고.”

“뭐?!”


아스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어젯밤 봤던 구체.

그게 심장 안에 있다니.


“그게 내 심장에 있다고?! 당장 빼!”


아스란은 여자, 틸라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정말?”

“그래!”


아스란이 소리쳤다.


“그래, 그러지 뭐.”


그렇게 중얼거린 틸라의 입가에는 섬뜩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 잠깐······.”


불안해진 아스란이 말하려고 했지만, 틸라가 더 빨랐다.

틸라가 아스란의 심장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두근.


심장 속 무언가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고통.

절벽에서 겪었던 그 고통이었다.


“끄어억!”


아스란은 심장을 부여잡고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다행히 고통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허억! 허억!”


하지만 아스란이 느끼기에는 지독하게 긴 시간이었다.


“이래도 뺐으면 좋겠어?”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고통에 아스란의 몸이 잘게 떨렸다.

그런 아스란을 보는 틸라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룬을 빼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그게 뭔데?”

“죽으면 돼.”

“···.”


죽으라는 말을 참 간단히도 했다.

아스란은 순간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대체 그 태양의 룬이라는 게 뭔데? 왜 내 심장에 들어간 거야?”

“태양의 룬은 간단히 말하자면 극한으로 압축된 거대한 마력이지. 말 그대로 태양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뭐 지금은 그저 그런 불씨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왜 너를 선택했냐라······.”

“···.”


아스란은 심각한 얼굴로 틸라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스란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나도 몰라.”

“······모른다고?”

“그래, 룬은 아주 제멋대로거든. 나도 좀 알고 싶네. 왜 너 같은······.”


틸라가 말을 끊고 아스란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은 뭐야?”


왠지 모를 기분 나쁜 시선에 아스란은 울컥했다.


“아니, 뭐, 별거 아냐.”


피식 웃은 틸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조금 전에 봤던 검은 구멍이 생겼다.

틸라는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뭔가를 찾는 듯 휘적이다가 붉은 책을 꺼냈다.

책의 표지에는 <아스란 레이오네 전기>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책을 펼친 틸라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진짜 이해가 안 되긴 한단 말이야.”

“···.”


뭔 소린지도 모를 틸라의 말이 왠지 가슴에 푹푹 박히는 듯했다.


“그 책은 뭔데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거야?”

“이거? 네 이야기지, 관찰자인 내가 앞으로 채워 나가야 할 책. 뭐, 얼마나 채워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관찰자라는 건 뭔데?”

“말 그대로 관찰자야, 룬의 선택을 받은 이를 지켜봐야 하는.”

“언제까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럼······.”

“그래, 네가 죽을 때까지.”


아스란은 잠시 말을 잃었다.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면서 관찰한다니 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대체 그런 짓은 왜 하는 건데?”

“나도 몰라, 시키니까 하는 거지.”

“시켜? 누가?”


틸라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저 위에 사는 어떤 성격 더러운 녀석이.”

“···.”


아스란은 틸라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던 하늘이 순간 어두워졌던 것 같은 건 착각일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너한테도 좋은 일일 테니까.”

“그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아스란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장 속에 태양의 룬인지 뭔지가 들어있는 것에 더해서, 이상한 여자가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면서 관찰을 한다는데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말했다시피 룬이라는 것은 거대한 마력을 극한으로 압축한 거야. 심장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의 그 허약한 육체에 도움이 될걸.”

“···.”


작은 태양을 보는 듯했던 룬.

그 힘을 조금이라도 가진다면······.

지금보다야 강해지지 않을까?

불안하긴 하지만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아스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난 뭘 해야 하는 거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이런 걸 그냥 주지는 않을 거 아니야? 뭐 해야 하는 게 있는 거 같은데. 예를 들면 마왕을 처치하라거나 뭐 그런······.”

“뭐래,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야. 그걸 지켜보는 게 관찰자인 내 역할이고.”

“···.”


자리에서 일어난 틸라가 웃으며 아스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가 죽을 때까지.”

“······어째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나도 잘 부탁한다.”


아스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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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1장. 아스란 레이오네(5) 23.12.03 4 0 13쪽
5 1장. 아스란 레이오네(4) 23.12.02 4 0 12쪽
4 1장. 아스란 레이오네(3) 23.11.30 8 0 11쪽
» 1장. 아스란 레이오네(2) 23.11.29 12 0 12쪽
2 1장. 아스란 레이오네(1) 23.11.28 17 0 11쪽
1 Prologue 23.11.26 1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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