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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님의 서재입니다.

심심한 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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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
작품등록일 :
2023.11.26 21:17
최근연재일 :
2023.12.03 00:01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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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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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27,993

작성
23.11.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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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장. 아스란 레이오네(3)

DUMMY

회색빛의 땅이었다.

하늘에는 뿌연 구름이 가득해서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고, 대지는 황무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척박했다.

땅 위에 한 괴인이 서 있었다.

얼핏 보면 인간과 비슷한 외관을 가졌지만,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키가 3m가 넘어갈 정도로 컸다.

거무스름한 전신의 근육은 강철을 꼬아 만든 것같이 단단해 보였고, 위로 솟은 두 개의 뿔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피를 머금은 듯한 괴인의 시뻘건 눈동자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지껄여봐라.”


그 시선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괴인과는 다르게 평범한 남자였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한 번쯤 볼법한 외모의.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특이한 점이 있긴 했다.

머리칼은 검은데다가 전신에 흑의를 두르고 있어서, 손이나 얼굴 같이 드러난 부분을 제외하면 온몸이 검은색이라는 것.

그리고 괴인을 마주하면서도 태연하다는 것.


“뭐야, 이해한 거 아니었어?”

“이해는 했다.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관찰? 신? 감히 나를 앞에 두고?”

“미안한데,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닥쳐라.”


그 순간.

괴인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솟구쳤다.

마기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일대를 집어삼켰다.

뿌리 깊은 거목이 부러졌고, 커다란 바위가 뽑혀 하늘로 치솟았다.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힘이었다.

잠시 후.

폭풍은 잦아들었고, 하늘로 치솟았던 것들이 하나둘 땅으로 떨어졌다.


쿵! 쿵!


괴인이 일으킨 폭풍으로 인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부서졌다.

지루한 표정의 남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흐암~ 이제 화풀이는 끝났을까?”

“···.”


괴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괴인도 인간을 알고 있었다.

가끔 벽을 넘어서 이 땅을 찾아오는 인간들이 있었으니까.

흥미가 일었던 괴인은 인간을 만났고, 곧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약한 생물이 있다는 것에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인간은 달랐다.

지금껏 봤던 인간, 아니 모든 적들을 통틀어서도 강자였다.


“제법 실력은 있는 놈이었구나.”


괴인이 남자를 향해 걸었다.

괴인의 손에서 마기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하아, 귀찮은 건 질색인데 말이야.”


남자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 * *


울창한 숲.

오크 한 마리가 코를 벌렁거리며 걷고 있었다.

오크.

보통의 오크라 하면 타고난 신력과 용맹함으로 뛰어난 전사라 알려져 있지만, 지금 보이는 오크는 그런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였다.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모습은 동정심이 들 정도였고,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오크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던 오크가 뭔가를 발견하곤 멈춰 섰다.


“···.”


오크의 앞에 사과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사과 하나가.

오크는 그 앞에서 고민했다.

사과 따위를 먹는 것은 오크의 수치나 다름없다.

하물며 그게 땅에 떨어진 사과라면야.

하지만 무시하기에는 배가 고픈 걸 넘어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오크.

놈의 눈동자에 결연한 의지가 서렸다.


“크아아아!”


크게 괴성을 내지른 오크가 발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사과를 세게 짓밟으려고 할 때였다.

수풀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아스란이었다.


뿌득!


사과를 짓밟은 오크의 눈동자에 희열이 차오를 때.

은밀하게 다가온 아스란이 검을 휘둘렀다.

오크는 그제서야 아스란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스란의 검은 이미 오크의 허벅지를 길게 가르고 지나간 후였다.


부웅.


분노한 오크가 주먹을 신경질적으로 휘둘렀다.

아스란은 어렵지 않게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후우.”


아스란은 호흡을 고르며 오크의 상태를 살폈다.

어리고 지친 오크.

게다가 허벅지에는 큰 상처를 입었다.

이미 승기는 기울었다.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았다.

어리고 굶주린 오크라지만 자신보다야 힘이 셀 테고, 제대로 맞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자신만 손해니까.

아스란은 다시금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크가 크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놈의 주먹은 아스란에게 닿지 않았다.

아스란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하며 오크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냈다.

사냥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크의 눈동자에는 투쟁심 대신 공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아스란의 공격은 점점 과감해졌다.

이윽고.


촤악!


아스란은 오크의 목을 벨 수 있었다.

반쯤 베인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오크는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후아!”


오크가 죽은 것을 확인한 아스란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리 어렵진 않은 싸움이었다.

어리고 굶주린 오크인 점도 있지만, 아스란이 전보다 조금이나마 강해진 것도 있었다.


‘확실히 강해졌어.’


심장의 룬.

일주일 전만 해도 거슬리기만 했던 룬은 아스란의 보물이나 다름없어졌다.

덕분에 강해졌고, 앞으로도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룬을 얻은 아스란은 전투나 수련을 비롯한, 한계를 넘는 경험을 통해 강해질 수 있었다.

지난 일주일, 아스란은 숲을 돌아다니며 마수를 사냥했고, 이는 전반적인 신체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지만, 아스란은 조금이나마 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점이 아스란을 기쁘게 했다.

가능성도 없던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 것이니까.

아스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질 때였다.


“뭘 그렇게 실실 쪼개고 있어?”


나무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틸라가 가볍게 땅에 내려왔다.

자기 상반신만 한 <아스란 레이오네 전기>를 아공간에 대충 던져놓은 틸라가 아스란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고작 다 죽어가는 오크 한 마리가 잡아놓고.”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운 거거든.”

“자랑이다.”


아스란은 빈정거리는 틸라를 무시하고는 오크의 가슴에 검을 찔러넣었다.

그리고는 길게 가르며 피와 살을 헤집었다.

뭔가를 찾던 아스란은 그 안에서 보랏빛의 조각을 발견했다.

마석이었다.

마수라면 몸 어딘가에 품고 있는 마력의 결정체.

아스란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마수를 사냥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뼈, 가죽 등이 있겠으나 가장 짭짤한 건 마석이었다.

히죽 웃은 아스란은 오른쪽 손등 위에 문신을 더듬었다.

붉은색 태양 문신.

그러자 아스란의 눈앞에 사각형의 공간이 드러났다.


“이건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룬의 권능.

오직 아스란만이 보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약이 있긴 했다.

살아있는 것은 넣을 수 없고, 크기도 커다란 방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정말 편리했다.

아스란은 마석과 오크의 시체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뼈나 가죽 같은 부산물을 팔 수도 있고, 어쩌면 오크 고기를 먹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럴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며칠 전에 운 좋게 잡은 멧돼지 고기를 다 먹는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어휴, 빨리 이 숲을 빠져나가야지.”


문신을 다시 더듬자 아공간이 닫혔다.

아스란과 틸라는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 *


아스란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틸라와 마주 앉았다.

이곳은 숲을 걷다 발견한 동굴 안인데 하룻밤 자기에 나쁘지 않았다.

혹시나 마수나 짐승이라도 안에 있을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안은 텅 빈 상태였다.


타닥, 타닥.


나뭇가지에 꽂은 멧돼지 고기가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군침을 삼키는 틸라의 시선은 고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을 힐끔 본 아스란은 피식 웃었다.

짧은 시간 동안 틸라와 동행하며 느낀 것이 있는데, 하나는 성격이 정말 더럽다는 것과 먹을 걸 정말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저 작은 체구로 어찌 그리 잘 먹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슬슬 먹어도 되지 않아? 다 익은 것 같은데.”

“음, 이제 먹자.”


아스란이 말하자마자 틸라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아스란은 보지도 못할 속도였다.


“···.”


고기를 씹는 틸라를 멍하니 보던 아스란도 전투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먹다가는 틸라가 전부 먹어버릴 테니까.

적당히 식사를 마친 아스란은 두 눈을 감고 바닥에 앉았다.

옆에서 들리는 틸라의 쩝쩝거리는 소리를 무시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마력.

인간의 한계를 넘게 해주는 신비한 힘.

룬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단전에 희미한 마력이 깃들었다고 틸라가 말했다.


‘느껴진다.’


단전 안에 담긴 마력이.

하지만 마력은 박힌 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 며칠간, 마력을 다뤄보려고 노력했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급해하지 말자.’


아스란은 단전 안의 마력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틸라의 쩝쩝거리는 소리도 잊은 채 정신을 집중하기를 수십 분.

아스란의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


마력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움찔한 게 거짓말이라는 듯 마력은 단전 안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흐아······.”


하지만 숨을 내쉬는 아스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조금이나마 움직였으니까.

아마 언젠가는 훨씬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들뜬 마음에 아스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검을 뽑아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그럴듯한 모양새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십 대 초반부터 검을 쥐었으니까.

고기를 씹으며 지켜보던 틸라가 말했다.


“야.”

“왜?”

“너, 누구한테 검을 배운 적 있냐?”

“아니, 어깨너머로 배운 게 전분데.”


10살 때 고아가 된 아스란이 검을 배울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친분이 있는 경비대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동작을 배운 것.

십 년도 더 지난 예전에 아빠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종종 본 것.

그리고 아빠가 남긴 검술서를 독학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


그 말을 끝으로 틸라는 관심을 껐고, 아스란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 * *


“그러니까······ 룬의 주인은 총 일곱 명이라는 건가?”

“그래.”


틸라의 말대로라면 룬의 개수는 총 일곱.

모두 주인이 생겼단다.

틸라는 이 넓은 세상에 만날 일이 있겠냐 했지만, 아스란은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그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고.


‘인간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종족이 존재했고, 룬이 선택한 그들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스란은 누군지도 모를 룬의 주인들을 상상하며 걸었다.


“에휴.”


한숨을 내쉰 틸라는 걸음을 멈췄다.

아스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무 그늘에 가서 앉았다.

틸라가 멈춘 줄도 모르고 걷던 아스란은 숲속으로 사라졌고, 틸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그에 반해 틸라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했다.

숲을 돌아다닌 지도 이주 째.

이젠 풀이나 나무 같은 것들이 지긋지긋한 틸라였다.

벗어나고자 한다면 단숨에 벗어날 수 있지만, 틸라는 룬의 주인을 지켜봐야 할 관찰자였다.

아스란이 숲을 벗어날 때까지 있어야 한다.

틸라가 한숨을 몇 번쯤 더 내쉬었을까.

저 멀리, 아스란이 왔던 길을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다 틸라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언제 앞으로 왔어?“

”하아.“


그런 아스란을 보며 틸라가 다시금 한숨을 내쉴 때.

다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흠칫 놀란 아스란은 검을 뽑아 들고는 기척이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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