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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그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속 NPC는 플레이어를 죽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공진가i
작품등록일 :
2021.02.08 22:49
최근연재일 :
2021.03.22 22:57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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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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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글자수 :
18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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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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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법사의 종자(2)

DUMMY

기지개를 켜고 밖에 나간다. 좋은 아침이다.

차가운 공기, 따뜻한 햇빛.


“일어나셨습니까 마법사님?”


······그리고 새로운 종자.

대기하고 있던 하벤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오냐. 너도 아침부터 수고가 많구나.”


하벤은 공손하게 웃어 보이지만 입가에서는 경련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 일정은 어찌 된다느냐?”

“식사 후 바로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래. 따로 시킬 일은 없으니 가서 일 봐라.”

“알겠습니다.”


이제는 내 종자가 되어버린 하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비틀비틀 걸어갔다.


완전히 정신교육 시키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듯 싶다.


‘에효.’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랫 놈이 하나 는 건 좋지만 잘난 가문의 후계자는 역시 좀 꺼림칙한데.

일의 전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련 직후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




“오러라구요?”

“그게······가능합니까?”


기사들은 놀라 말을 더듬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오러와 마나는 결국 똑같은 자연력을 기반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물론 온전한 오러라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마나를 오러의 형태로 사용했을 뿐. 분명한 건 ‘마법’은 아니라는 거죠.”

“허허, 참 그건 확실히 그렇지만······.”


마법은 정확히 마나를 이용해 어떠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마나를 농축시켜 오러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은, 마법보다는 묘기에 가깝다.


마법사들이라면 얼마든지 물고 늘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기사.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다.


“자, 그러면 베다임님?”


내 지적에 여태 넋을 잃고 있던 베다임이 화들짝 놀란다.


“알겠습니다. 이번 대련은 광야의 마법사, 크리스 언더우드의 승리입니다.”

“이야후!”

“제대로 걸었어!”


베다임의 선언과 함께 어딘가에서 가볍게 소란이 일었다.

내 쪽에 건 사람들이었겠지? 그러나 곧 실망스러운 푸념이 인다.


“아, 뭐야 왜 이것밖에 안됩니까?”

“마지막에 이쪽에 왕창 걸었잖아 어쩔 수 없어.”


그러고 보니 내가 내 쪽에 500골드 걸었지. 배당금은 거의 바닥이겠구만.

뭐, 난 다른 쪽 배당금을 챙기면 되니 상관 없다.


하벤은 완전히 처참한 표정으로 최소한의 품위만 겨우겨우 유지할 뿐이었다.


“졌습니다 마법사님. 한 수 배웠습니다.”

“별말씀을 저 또한 크게 개안했습니다. 그러면 간단한 선물을 요구해도 되겠죠?”


하벤의 얼굴이 시파랗게 질렸다.

이 지독한 놈이 도대체 뭘 요구할 셈인가 싶은 표정이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당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물건은 아닐 테니까.”


안심시키면서 은근히 주문을 중얼거린다.


“마나 추적.”


1서클의 마법 정도는 동작도 없이 행사할 수 있다.


하벤의 품속에서 희미하게 느껴진다, 부자연스럽게 뭉쳐있는 마나가.

그곳에 하벤조차 그 가치를 모르는 아티팩트가 있다.


하벤의 가문 몬크라이.

그들은 신화시대부터, 북부의 거친 몬스터를 대대로 사냥해온 무시무시한 가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 가공과 인챈트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했을리 만무했고.

그 이후에도 마법을 천시하는 가풍 때문에 어떤 마법사도 몬크라이 가문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 결과 그의 집안에는 지금도 선조들이 사냥한 유니크 몬스터들의 유니크 아이템들이 잡템처럼 굴러다니고 있다.


플레이어가 몬크라이 가문의 집안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은 게임의 극후반부다.

그 때는 플레이어도 이미 유니크 아이템을 덕지 덕지 발라서 굳이 몬크라이 가문의 아이템들을 탐낼 이유는 없긴 하다.


하지만, 발열기능에 마법 저항력까지 있는 용의 비늘이 바닥에 양탄자 마냥 깔려 있고,


악룡의 피를 머금은 전설급 검이 기사 모형의 검집에 장식품 마냥 꽂혀있고,


대마법사의 지팡이에나 쓰일 법한 최고급 목재로 계단을 만들어버린 몬크라이 집안의 부유함과 몰상식함은 ‘몬크라이 레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경이로웠다.


그리고 몬크라이 가문의 일원인 만큼, 하벤 또한 유니크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하벤에게 다가갔다.

그의 품속에 있는 조그마한 비단 주머니를 꺼내서 흔들었다.


“저는 이거면 됩니다.”


일명 ‘탐주머니.’

고대의 마수 ‘탐’의 비늘로 만든 주머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조금 튼튼하고 부드러울 뿐인 그저 그런 주머니.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나를 흘려본다면 이 주머니가 가지고 있는 경이로운 기능을 알게 될 것이다.


탐주머니는 탐욕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을 충족시키는 주머니였다.


수용량은 수레 두 개분에 달하며,(욕심)

투명해질 수도 있고,(은밀)

내 마나가 아닌 다른 마나로는 열지도 못하고,(독식)

내부에 있는 물건은 마법과 기구의 감지를 피해낼 수 있다.(비밀)


페널티는 딱 하나.

마나가 없으면 온전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마법사인 내게는 사실상 페널티가 없다시피 하다.

거기에 더해 몬크라이 가문 사람이 마나를 쓸리 없으니, 아니 그 이전에 이게 뭔지도 모를테니 아쉬울 것도 없으리라.

······그래야 할텐데.


어째 하벤, 점마는 악귀를 본 악귀 마냥 얼굴이 저 모양이지?


“마법사가 기사의 명예를 쉽게 여긴다는 것은 알지만······.”


기사의 명예? 뭔소리여.


“내 이런 모욕을 받고도 참지는 않겠다!”


하벤이 검을 꺼내 달려들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꺼내든 검조차 참마의 효과가 있는 아티팩트다.

뭐 이런 미친 가문이. 이건 정말 위험해! 진짜 위험하다고!


“크어어어억!”


복부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하벤이 그대로 뒹굴뒹굴 구르며 날아갔다.

나도 모르게 마법을 써버리게 된단 말야!


하지만 본능적으로 발동한 마법에 타격을 입을 리 없다.

하벤은 다시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고, 세리오는 그의 돌진을 몸으로 막아냈다.


“하벤! 무슨 짓이냐! 진정해라!”

“놓으십시오 스승님! 저자가 제 맹세를! 제 맹세를!”


······맹세? 뭔 소리여.


“마법사님 그 주머니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베다임이 말했다. 나는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서 도금된 메달이 하나 나왔다.

그곳에는 정성들인 세공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금, 나의 검을 거꾸로 쥐어 가장 큰 선에 복종하리니.

충동, 공포, 교만은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이에 나는 자유롭노라.]


제국의 변경백, 훌리오 몬크라이의 아들 하벤 몬크라이 - 317년 4월 11일

제국의 자작, 세리오 아티에의 종자 하벤 몬크라이 – 330년 8월 7일


이것은 기사의 맹세.

모든 기사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신분증이었다.

동시에 무공과 성장에 대한 아주 짧은 일대기이기도 하다.

하벤이 아직 어린 만큼 출생과 수련의 이력 밖에 적혀있지 않긴 하지만.


아무튼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것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다.


이것은 신분증임과 동시에

기사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

그의 신념에 걸고 있는 수 많은 이들의 기대의 상징,

그렇기에 뭇 사람이 그를 존중해야 하는 근거였다.


그러므로 기사에게는 목숨 만큼이나 소중한 물건이며,

만일 강탈당한다면 죽기를 각오해서라도 회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기사의 맹세.

······이게 왜 여기있냐.


“······기사의 맹세······?”

“이럴 수가.”


기사들이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크리스. 진심입니까?”


베다임의 목소리마저 딱딱하게 굳어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망할.’




***




따갑다.

눈빛에서 오러가 느껴질 정도다.


생각해보자, 여기서 주머니만 챙기고 기사의 맹세만 돌려준다면?


“내 맹세가 고작 주머니보다 못하다고? 얼마나 조롱 할 셈이냐!?”


하고 외치며 정의의 칼침을 놓겠지.


‘어 요건 몰랐네요 데헷.’하면서 통째로 돌려준다면?


“이 자식이! 내 맹세를 가지고 장난이라도 치는 거냐!”


라고 외치며 정의의 칼침.


외통수네. 제기랄.

이딴 거 필요 없어. 난 네 맹세 따위 관심도 없어 가져가 이 멍멍아.


라고 말했다가는 정의의 칼침을 놓을 사람이 넷으로 늘어나겠지.


세리오는 하벤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투견을 쥐고 있는 주인이다.

내 입에서 당장이라도 헛소리가 나온다면 ‘물어! 하벤!’하고 풀어놓겠지.


어쩔 수 없다, 정면돌파다.


“물론입니다 베다임. 진심입니다. 난 이 주머니에 기사의 맹세가 있음을 알았고 일부러 이 주머니를 달라고 말했습니다.”

“네 이놈!”


하벤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베다임이 딱딱한 얼굴로 뭐라 말하려던 참, 나는 선수를 쳤다.


“당신들이 저의 명예를 모욕해놓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무슨 누명을!”


바로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당신들은 이렇게 맹세를 가지고 다니며 명예는 오직 기사들에게만 있는 양 거만하게 굽니다. 하지만 마법사라고 한들 명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랜 시간 마법을 익혔고 성취를 이뤘지만 탑이 없다는 이유로 병사들에게 괄시당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틀리지 않지, 아무렴. 난 아직도 가슴이 아파.

광야의 마법사라고 병사들이 무시할 때 얼마나 슬펐다고.

얼떨결에 볼링을 쳐버리긴 했지만 내 가슴에 난 스크래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또한 저는 철현의 기사 베다임 경의 요청으로 모험에 합류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 대한 대우는 최소 이곳의 기사들보다 떨어져선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벤은 감히 저에게 대련을, 아니 사실상 도전을 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물론 다른 기사들은 제지하려고 했고, 내가 냉큼 받아들이긴 했다.

그래도 막상 대련이 시작할 때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그들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함께 할 동료들에게 계속 이런 취급을 받는다면 저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더 이상 저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고!”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병사에 이어 하벤까지 매번 니들이 시비를 걸어왔다.

마법사란 족속이 별나서 체면 같은 거 신경 안 쓰나 본데, 나 같이 감성이 충만한 마법사도 있다 이거야.


서서히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다들 찔리는 바가 있는지 눈빛이 수그러들었다.

좋아 반성의 기미가 보이는군.


“물론 저는 여기에 있는 누구의 명예도 모욕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곳에 계신 기사님들은 물론이고, 내게 직접 도전한 저 견습기사까지도!”


하벤과 세리오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좋아 이 정도면 K.O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리오 경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직접 드릴 수 있겠지만, 당신의 손을 거쳐 받는 것이 더 합당하고 명예로울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러니 여러분 또한 제가 받아 마땅한 존중과 명예를 돌려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좋았어. 완벽해.

사람들의 눈빛에는 이제 존경심까지 비친다.


오오, 명예를 아는 마법사!

한낱 호승심에 몸을 던진 견습기사를 오러 찜질로 계도하셨네!


로우포에 새로운 노래가 들려올 날이 머지않았다.


모든 것은 내 계산, 계획대로였다.

딱 하나 내 예상을 빗나간 것은.


“마법사님.”


하벤의 스승, 세리오 경이 말했다.


“저는 그 맹세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감동적인 연설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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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내가 몰랐던 설정들 21.03.01 79 6 14쪽
18 규탄의 투기장(2) 21.02.28 63 7 14쪽
17 규탄의 투기장(1) 21.02.26 75 7 14쪽
16 민중가수 엘프와 죽창을 든 여사제(2) +2 21.02.25 89 6 14쪽
15 민중가수 엘프와 죽창을 든 여사제(1) 21.02.24 87 6 13쪽
14 마법사의 종자(3) 21.02.24 82 7 10쪽
» 마법사의 종자(2) 21.02.22 87 6 12쪽
12 마법사의 종자(1) 21.02.20 91 6 11쪽
11 드워프는 깎을 수 없다 +2 21.02.19 98 9 12쪽
10 유년기의 끝(4) 21.02.18 127 7 13쪽
9 유년기의 끝(3) 21.02.17 113 7 10쪽
8 유년기의 끝(2) +1 21.02.16 114 8 10쪽
7 유년기의 끝(1) 21.02.15 114 8 12쪽
6 매직트롤과 철권의 마법사 +3 21.02.12 11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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