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그즈그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속 NPC는 플레이어를 죽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공진가i
작품등록일 :
2021.02.08 22:49
최근연재일 :
2021.03.22 22:57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3,049
추천수 :
198
글자수 :
183,073

작성
21.02.17 06:29
조회
112
추천
7
글자
10쪽

유년기의 끝(3)

DUMMY

그 때 어머니가 쟁반으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뭐하는 짓이야 내 사위한테!”


이런 망할. 결혼 안 한 자식은 사위한테도 밀리는 건가?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 없다. 난 겨우 스물 셋이라고!


“아니, 그런데 지금은 진짜 안 돼요.”

“뭐가 안돼? 뭐가? 나는 니 나이 때 요한이를 낳았어. 뭐가 안되냐고 대체!”

“그게 그······ 일이 있어요.”

“뭔데?”

“······베다임 기사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어요.”

“뭐라고?”


고대신, 플레이어, 세계의 중요한 비밀에 대한 이슈를 파느냐 마느냐가 고작 내 혼인 문제로 결정이 나는 순간이다.

뭐 어때 혼인 문제야 말로 내 입장에서는 제일 중대사인데.


“이번에 세이저에서 이교도의 신전이 나타났거든요. 솜씨좋은 마법사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승낙했죠.”

“안돼! 안돼! 거기가 어디라고 가는 거야 위험하게!”


어머니는 새하얗게 질려서 벌떡 일어났다.


“뭐가 위험해요. 전투가 일어나도 마법사는 최우선 보호 대상이라 위험할 것도 없어요.”

“싸우기도 한단 말야? 죽을지도 모른다고?”


······이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게임 식으로 변명을 했다가 역효과만 났다.


“아니 일어난다는게 아니라 만약에 일어나더라도, 라는 뜻이에요.”

“그런 게 어딨어. 그런 중요한 문제를 애미와 상의도 없이. 안돼. 안돼. 내 그 기사양반을 한 번 봐야겠다.”

“막상 보면 아무것도 못할 거면서.”


나도 모르게 빈정거리게 된다.

리아와 잭슨이 베다임을 등산하면서 놀고 있을 때 어머니는 하얗게만 질려있었지.


“넌 애미를 뭘로 보는 게냐? 이런 중요한 일에 그러면 내가 한마디도 못하려고?”


어머니가 발끈하면서 일어났다. 은근히 다혈질이란 말야 우리 피르 여사님.

그 때 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베다임에게 영광을!’ ‘국왕 전하 만세!’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베다임이 막 고블린을 토벌하고 오는 모양이었다.


“마침 잘됐네. 내 당장이라도······!”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더니 문으로 향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개선 중에는 아니죠 엄마!”


나도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나간다.

하지만 한 발 늦어, 어머니는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어머니는 꺾어질 듯이 고개를 쳐들고 눈 앞의 녹색 괴물을 쳐다봤다.

매직트롤이다.

매직트롤은 나를 보고, 그 옆의 어머니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안녕하시오 부인.”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들려오는 부드러운 저음.


“끄으으응.”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어머니를 받치는데 성공했다.


“이런, 실례했네 형제. 사과하지.”


어쩔 줄 몰라하는 매직트롤. 하지만 나는 슬쩍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매직트롤은 그저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다.




***




“이렇게 하자.”


난 이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일단 전반부는 네 계획대로 하는 거야. 어머니가 혼처를 구하는 동안만 약혼을 미루기로 했다고. 그런데 오늘 오전에 베다임이 제안을 했고, 내가 따르기로 해서 혼처 구하기는 무산 된 거지. 어때?”

“알겠습니다 형님.”

“그런데 크리스. 정말로 가는 게냐?”


여태껏 아무 말 없던 아버지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됐어요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러고 싶다면 그래야지. 남자는 원래 그런 거야.”

“고맙습니다.”

“언제 출발이냐?”

“내일 오전중에 출발할 것 같아요.”

“촉박하구나,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들 하나를 얻었다 싶었는데, 또 하나가 가는구나.”


그 진한 혼잣말에 가슴이 살짝 아려왔다.




***




떠나기로 결정한 이상 꾸물거릴 필요 없었다.


“그렇군요. 잘 생각해주셨습니다.”

“환영하네! 이번 여행은 꽤나 즐겁겠어.”


조사에 합류하겠다는 말에 베다임과 돌텅은 웃으며 환영해주었다.


“어떻습니까? 합석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촌장이 마련해준 다과를 들고 있는 참이었다.

베다임은 간단한 차에 쿠키를 돌텅은 맥주에 육포를 먹는 중이었다.


“아닙니다. 내일까지 출발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내일 정확히 언제쯤 출발입니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할 예정입니다. 아마 오전 8시쯤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 그러면.”


집을 나온 뒤 나는 곧바로 대장간으로 향했다.

판금갑옷은 바라지도 않고, 철을 덧댄 가죽 갑옷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거뒀다.

대장간의 조쉬가 우연히 챙긴 체인메일을 넘긴 것이다.

비록 조금 낡았지만 조쉬가 잘 관리해둔 덕에 그대로 입어도 좋을 정도였다.


철렁. 하는 느낌과 함께 온 몸에 무게가 실린다.

확실히 무게는 만만치 않다.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물론이죠.”

“체인메일은 베는 데는 강하지만 찌르는 데는 약해. 그래도 화살 정도는 막을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그건 몰랐네. 이제는 그런 것도 잘 염두에 두어야 겠다.

게임 할 때는 간단히 방어 몇, 이런 식으로 책정됐으니까 편했는데.

나는 간단히 몸을 움직여봤다. 이 정도면 합격이다.

마법을 쓸 때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되었다.


집으로 가자마자 바로 짐을 챙겼다.

각성제, 마력감응제, 힐링 포션, 마법 촉매, 등등등.

가방의 절반 정도를 온갖 포션과 마법 재료로 채웠다.

전부 다 무게가 꽤 나가는 것들이라 굉장히 무거웠다.

하지만.


“라이트.”


경량화 마법. 가방에 이어 체인 메일에까지 건다.

이미 마법에 잘 듣게 인챈트까지 해 놓은 상태.

3일에 한 번씩 마법을 걸어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짐을 챙기고 인챈트를 하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작업실에서 나오니 루아챌이 반겨준다.


“오빠!”

“그래. 오늘 별일 없었지?”

“응, 그냥 친구들하고 조금······.”


말하며 루아챌은 얼굴을 붉힌다.

아마 약혼과 제이스에 대해 이야기를 했겠지. 하늘을 나는 기분일 것이다.


“어머니는 깨어나셨고?”

“응. 아까 제이스의 집에 갔어 곧 오실 거야.”

“별 일 없지?”

“응!”


루아챌이 밝게 웃어보였다. 다행이다.

떠나는 마당에 걱정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빠······.”

“응?”

“오빠는 왜 결혼 안 해?”

“······글쎄?”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 “그럴 수도 있고. 그냥 관심이 없는 것 같아.”

“평생 결혼 안 할 건 아니지?”

“왜? 또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어?”

“그건 아닌데······.”


루아챌이 말을 흐렸다. 하긴 스물 셋의 독신남은 이상할만 하다.

그것도(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결혼 시장에만 나간다면 누구든 금방 낚아채갈 좋은 매물의 남자가.


왜 결혼을 안 하냐고?

지금은 연구가 재밌어서? 이 나이에 결혼하긴 거부감 들어서?

변명은 많겠지. 하지만 가장 솔직한 내 마음은 이거다.


내가 감히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

이곳에 속하지 않은 내가, 언제든 꿈에서 깨어날지 모르는 내가. 여기서 더 정을 붙이는 것이 두렵다.

이것이 환상이었다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고, 만일 이것이 실존하는 세계라면, 남게 될 그녀에게 미안하다.


그러니 누군가가 진지하게 물어볼 때면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젠간 하겠지. 지금은 말고.”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다는 듯한 바보 같은 고집.

그것이 내 가족을 납득시킬 유일한 방법이었다.




***




저녁 식탁에서의 화제는 단연 루아챌과 나였다.

세아는 루아챌이 약혼했다는 사실과, 루아챌의 반지에 부러워 죽으려는 표정이었다.


“오빠 오빠, 나도 해주면 안돼?”

“절대 안 돼지.”

“아, 왜!”


루아챌이 약혼하는 걸 볼 때도 가슴이 아렸는데, 세아를? 절대 안 된다.

세아는 빨라도 스물에 약혼을 하는게 좋겠다. 그래도 7년 밖에 안 남았네.

벌써 서운해지려 하는 걸.


화제는 세이저의 신전 탐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이 이교도의 신전이니, 저주니 같은 어려운 말을 알 리가 없었다.

다들 내가 기사들과 함께 조금은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꼬마들은 위험한 곳에 간다, 는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듯 했고,

둘이 아는 것은 세이저로 가는 길에 케른시가 있다는 것 뿐이었다.

꼬마들은 선물을 사달라고 졸랐고, 세아가 뒤늦게 합류했다.

요한도 말은 안 했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덕분에 나는 사지로 모험을 떠나는 장자가 아니라 나 혼자 소풍 가는 비겁한 녀석이 되어버렸다. 나쁘지 않다.

당분간 못 보게 될 가족들이라면 웃는 얼굴을 기억에 남기고 싶다.


“좋아. 받고 싶은 선물 있으면 말해봐. 최대한 맞춰서 사오지.”


다들 환호를 내질렀다.

그렇게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찬이 끝이 났다.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점검을 마친 뒤 나는 뒷산에 올랐다.

이곳은 마력이 충만하고, 전망이 좋아서 종종 들르곤 했다.

내려다보면 로우포가 한 눈에 보인다.


지구의 형광등에 비하면 초라한 등불, 불빛, 그마저도 희미하다.

그럴 때면 결국 이 세계의 이방인인 나 자신을 느끼고 만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의무도 권리도 없는 상태.

지구에서의 삶은 너무 지쳤었으니까.


세이저의 신전이 열린 지금, 나는 어쩌면 이 세계에 내 최초의 의무를 행하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 있었구나. 네가 없어졌다 싶으면 늘 여기에 있었지.”


그 때 누군가 내 뒤에서 말을 걸었다.


“처음 낳은 아이라서 그럴까, 유독 네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았다.”


나의 아버지, 세즈 언더우드는 그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임속 NPC는 플레이어를 죽이고 싶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 공지입니다. 21.03.24 64 0 -
공지 조금씩 수정을 가했습니다. 21.02.17 39 0 -
공지 비정기 성실 연재입니다. 21.02.08 98 0 -
32 엘프는 노래하지 않는다(4) +1 21.03.22 48 2 13쪽
31 엘프는 노래하지 않는다(3) 21.03.20 31 3 13쪽
30 엘프는 노래하지 않는다(2) 21.03.19 40 3 13쪽
29 엘프는 노래하지 않는다(1) 21.03.18 40 3 16쪽
28 광란의 도시(3) 21.03.16 50 5 14쪽
27 광란의 도시(2) +2 21.03.15 44 5 14쪽
26 광란의 도시(1) 21.03.11 63 5 14쪽
25 눈동자 안에는(3) +1 21.03.10 78 5 16쪽
24 눈동자 안에는(2) +3 21.03.09 90 6 15쪽
23 눈동자 안에는(1) +1 21.03.06 60 5 15쪽
22 손바닥 안에는(3) +1 21.03.04 79 6 12쪽
21 손바닥 안에는(2) 21.03.03 62 7 14쪽
20 손바닥 안에는(1) 21.03.02 71 8 13쪽
19 내가 몰랐던 설정들 21.03.01 79 6 14쪽
18 규탄의 투기장(2) 21.02.28 63 7 14쪽
17 규탄의 투기장(1) 21.02.26 75 7 14쪽
16 민중가수 엘프와 죽창을 든 여사제(2) +2 21.02.25 89 6 14쪽
15 민중가수 엘프와 죽창을 든 여사제(1) 21.02.24 87 6 13쪽
14 마법사의 종자(3) 21.02.24 82 7 10쪽
13 마법사의 종자(2) 21.02.22 86 6 12쪽
12 마법사의 종자(1) 21.02.20 91 6 11쪽
11 드워프는 깎을 수 없다 +2 21.02.19 98 9 12쪽
10 유년기의 끝(4) 21.02.18 127 7 13쪽
» 유년기의 끝(3) 21.02.17 113 7 10쪽
8 유년기의 끝(2) +1 21.02.16 114 8 10쪽
7 유년기의 끝(1) 21.02.15 114 8 12쪽
6 매직트롤과 철권의 마법사 +3 21.02.12 118 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