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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pus Tenebris

확보, 격리,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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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ebris
작품등록일 :
2020.08.18 03:51
최근연재일 :
2021.01.27 06: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9,275
추천수 :
346
글자수 :
356,098

작성
20.09.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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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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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8. 율맨-3

DUMMY

야간 투시경에 의지한 채 발목까지 쌓인 눈을 헤집으며 걸었다.


시야각이 좁아져 이따금 나뭇가지 같은 것에 얼굴을 스치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눈이 더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이어져있는 거지?


발자국을 쫓던 코발치크 요원이 너무 멀리 나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마을의 불빛은 이미 사라인지 오래이거니와 GPS가 아니면 자신의 위치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생각보다 이동속도가 빠르군.


자신을 따라온 뉴-7 기동특무부대 대원들 역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눈길을 걷느라 체력 소모가 상당해보였다.


-그래도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다시 전진하려 하자, 손목에 찬 GPS가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먹통이 되었다.


“여기서부턴 전파가 닿지 않는 것 같군.”


“신호 발신기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혹시 모르니 나무에 표시를 하면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위성전화로 라미레즈 소령에게 연락하고 우린 계속 이동한다.”


몇 몇 대원들이 대검을 꺼내 나무에 상처를 내고, 코발치크가 앞장서서 눈 덮인 숲을 계속 걸었다.


[소령님, 계속 이동 중입니다.]


“알겠다. 신호를 따라가겠다.”


코발치크의 위치로부터 약 1km 떨어진 숲속에서 이동 중이던 라미레즈가 수시로 위치 표시기를 확인했다.


아직도 발자국이 계속 이어져있는 것인지, 한 시간이 넘게 이동했음에도 별다른 보고가 들려오지 않았다.


[여긴 베타 포인트. 거리가 너무 멀어져 저격 지원 불가능.]


[여긴 시그마 포인트. 시야 확보 불가로 인한 저격 불가 보고.]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배치해둔 저격수들 역시 이쪽을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라미레즈 소령으로부터 모든 포인트에 알린다. 민가 주변을 주시하도록. 만약 알몸으로 돌아다니거나, 율맨으로 의심되는 개체가 있으면 쏴버려.”


[알몸의 민간인이라도 쏩니까?]


“변태다. 쏴.”


[확인.]


가벼운 농담과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하아, 지독하게 춥군.”


라미레즈가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었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는 것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핫팩 쓰시겠습니까?”


“네 거잖아. 너나 써라.”


“두 개 있습니다.”


준비성이 철저한 대원이었다.


“······한 개만 빌리마.”


핫팩을 흔들어 손을 감싸자, 순식간에 손이 녹으며 감각이 돌아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추운 날씨에 곧 핫팩마저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염병할, 코발치크 요원. 들리나?”


[들립니다.]


“아무래도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벌써 몇 시간이나 캄캄한 숲을 거닐었는데도 발자국만 이어질 뿐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만약 율맨의 이동속도가 자신들보다 빠르다면 추적은 불가능하다.


“좌표 기록하고 복귀하도록. 우린 철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코발치크 요원 쪽에서 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라미레즈의 단말기로 코발치크의 좌표 기록이 전송되었다.


“굴을 발견했습니다.”


[굴?]


코발치크의 눈앞에 사람 한 명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수직굴이 나타났다.


발자국은 이 곳으로 이어져있었으므로, 율맨이 파놓은 굴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다른 백야 사태의 피해자가 이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탐사하겠습니다.”


[잠깐, 코발치크. 기다······!]


라미레즈가 말할 새도 없이, 코발치크가 구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통신 단절을 나타내는 잡음이 흘러나오는 무전기를 잠시 바라보던 라미레즈가 혀를 찼다.


“썩을, 계속 이동한다.”




로프를 타고 수직굴을 3m정도 내려가자 바닥에 닿았다.


그 날 맡았던 것과 같은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다른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입구는 이 곳 하나 뿐인 것 같았다.


플래시를 비추자, 바닥 곳곳에 널브러진 뼈들이 보였다.


모두 사람. 그것도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진입했다.”


진입을 알리자, 곧 무전기에서 라미레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급함은 금물이다 코발치크 요원.]


전파가 닿는 거리까지 다가온 것인지, 음질이 조금 깨졌지만 그런대로 들을 만 했다.


[그쪽으로 접근할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진입한 인원은 몇인가?]


“일단 혼잡니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동굴 안 상태는 어떻지?]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입니다. 못 들어올 건 없지만 아군 사격 위험이 너무 높습니다.”


[혼자 탐사 가능한가?]


“놈이 안에 없길 바라야겠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단에서 훈련받은 요원이니 아무리 미로 같은 굴이라도 길을 잃지 않고 빠져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율맨이 안에 있을 경우, 놈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탐색 허가한다.]


“확인.”


코발치크가 야간투시경을 작동시키고 권총을 빼들었다.


3년 전 백야사태의 생존자였던 예테카리나라는 소녀의 증언에 의하면, 율맨의 굴은 개미굴처럼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각 방에 납치된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다.


-끔찍하군.


어딜 보더라도 인간의 뼛조각이 넘쳐났다.


깎이고, 구멍이 뚫린 뼛조각들도 적지 않았으며, 흙으로 된 벽 곳곳에 문자, 혹은 기호들이 빽빽하게 그려져있었다.


이따금 발에 채이는 뼛조각들의 소음을 주의하며 나아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세 갈래 길이다. 왼쪽으로 가겠다.”


[알았다.]


왼쪽 길로 향하자, 조금 더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내려가니 악취가 한층 더 심해졌다.


한쪽 팔로 코와 입을 막고 천천히 내려가자, 조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여러 구의 시체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영상 전송하겠다.]


라미레즈의 단말기로 코발치크의 시야가 전송되었다.


끔찍하게 개조당한 아이들의 시체가 마치 인형을 진열해놓은 것처럼 늘어서있었다.


그중 몇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올 법한 끔찍한 광경에 라미레즈가 눈살을 찌푸렸다.


“코발치크 요원. 생존자가 있나?”


[아직 숨을 쉬고 있지만 입이 봉합되어 대화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시시각각 호흡이 옅어져가는 것이, 데리고 나간다고 한들 이동 중에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계속 전진하겠다.]


인형들이 있는 방을 나가자, 이번엔 다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인기척이 들려왔다.


무언가가 끓고 있는 듯한 소리가 앞에서부터 들려왔다.


악취의 근원에 도달한 듯, 코를 막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끔찍한 냄새가 풍겨왔다.


몸을 조금 내밀어 방 안쪽을 살피자, 마치 마녀가 이상한 약을 제조하는 거대한 솥같은 것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 위로 살짝 튀어나온 것은 분명 인간의 다리였다.


[율맨의 방을 발견했다. 율맨은 보이지 않는다.]


“곧 도착한다. 섣불리 진입하지 말고 대기하라.”


통신이 끊어졌다.


직선거리로 얼마 남지 않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한밤중인데다 빽빽한 나무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아직 영상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무전기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놈들입니다!! 지금 공격받고 있습니다!!]


폭발음과 함께 영상이 끊어졌다.


총성이 들렸다.




“아. 오랜만이군. 올렉세이 박사. 조각상 똥 닦아주는 일은 좀 할 만 한가?”


“입 닥치게. 클레프 요원.”


올렉세이 박사는 일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지 상당히 날이 서 있었다.


올렉세이가 한숨을 쉬며 클레프가 뒤적이고 있던 서류를 힐끔 쳐다봤다.


“그건 또 어디서 훔쳐온 건가?”


“훔쳐오다니. 이래봬도 4등급 보안 인가 요원이라고.”


“아. 그러신가. 그래서 GOC 자료는 왜 뒤적이는 건가? 어지간히도 한가한가보지?”


“뭐, 그런 거지.”


클레프는 마치 자신이 어릴 적 쓴 일기장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보니 요즘 놈들이 설친다는 이야기가 좀 있었지. 러시아 지부에서 여러 번 지원 요청을 했는데, 아마 안 들어줬을 걸?”


“그랬나?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그쪽 지부가 몇 번 습격을 받았다더군. 자네도 알겠지만 그 놈들은 모든 SCP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파괴하는데 혈안이야. 러시아 지부 인원들도 꽤 죽었다고 하던데.”


마침 클레프가 읽고 있던 자료도 꽤나 최신 일인지라 올렉세이가 말한 사건 역시 기록되어있었다.


러시아 33 연구기지가 습격당해, 그쪽에서 격리중이던 SCP 3개가 파괴되었고, 연구원 몇이 사망했다.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좌시할 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기동특무부대 사령부가 놈들을 소탕하는데 혈안이다.


“러시아라. 왜 하필 러시아지? 거긴 보관하고 있는 SCP도 별로 없을 텐데.”


“나야 모르지. 자네야말로 뭔가 아는 거 없나? 그쪽에 있는 친구가 자네랑 아는 사이라며?”


“아. 그 괴짜 친구 말이로군. 그 친구는 요즘 바쁠 거야. 4666인가 하는 SCP를 쫓아다니고 있거든.”


클레프가 보고서를 덮고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뉴-7이 러시아로 파견을 갔다고 했지.


클레프가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올렉세이를 바라보았다.


그 부담스러운 눈빛에 올렉세이가 먼저 거부반응을 보였다.


“무슨 부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거절하겠네.”


“너무 그렇게 궁색하게 굴지 말게나. 혹시 모르지 않나? 내가 자네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해 줄지.”


올렉세이가 한숨을 쉬었다. 클레프는 이미 올렉세이가 원하는 것까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있던 173 탈출 사건의 배후에 와트니 박사가 있다지? 본인은 부정하고 있지만 그쪽 전력 시스템 접근 권한을 가진 게 자네하고 와트니 박사밖에 더 있나.”


클레프가 어깨에 기댄 윈체스터 라이플을 만지작거렸다.


“아마 같은 기수인 자네를 견제하는 거겠지. 그래야 자기 승진이 빠르니까.”


“······뭘 원하는 건가?”


“자네 휘하에 있는 항공기를 좀 빌려줬으면 하네. 러시아에 좀 다녀와야겠어.”


“항공기라면 요원에게 지급되는 편이 있지 않나?”


“기록을 남기긴 싫거든.”


클레프가 입에서 손가락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비밀임무. 블랙옵스라는 뜻이었다.


올렉세이가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 엿이나 먹이지 말게나.”


클레프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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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율맨-4 20.09.11 155 6 12쪽
» 8. 율맨-3 20.09.10 163 7 11쪽
8 7. 율맨-2 20.09.09 173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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