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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센트 님의 서재입니다.

유물론적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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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센트
작품등록일 :
2020.01.05 17:47
최근연재일 :
2020.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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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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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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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580

작성
20.04.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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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86

.




DUMMY

"적들이 몰려옵니다아 -!!"


애절한 외침이라는 게 저런 거구나.

새끼가 좀 우렁차게 외칠 것이지,

재수 없게 패전을 앞에 둔 놈처럼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망루에 선 수성 부대 기사의 고함에 통신관들이 분주해졌고,

이내 10만 부대의 심장이 펄펄 끓어올랐다.


"1,2호차 시동."


"1호 차, 2호 차 시동합니다 !!"


꽈르르릉 !!


미리 알려준 대로 두 대의 지프는 시동 걸고서 바로 공회전 풀악셀을 밟아 굉음을 터트렸다.

적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서주 성내 병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쫄지 마, 새끼들아.

지프가 있고, 총이 있고, 내가 있어.

내가 다 죽여줄게.

우리가 다 죽여줄게.




"2호차, 이 시간부로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단독 행동 허가한다. 제유, 연후, 미루, 라프. 무운을 빈다."


"... 폐하 !! 우린.. 폐하와 특전수의 무운을 빕니다 !!!"


"폐하 !! 석돌아 !! 트라님 !! 선영아 !! 이기고서 ..!! 꼭 이기고서 ..!!"



무전기에 들려온 미루와 제유의 목소리는 격앙되다 못해 울먹이는 것 같았다.

자식들이 벌써 오버하긴.


"석돌아, 가자."


언제부터인가 석돌이도 레이저를 쏠 수 있게 됐다.

녀석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가면처럼 굳은 얼굴로 기어를 바꿔 악셀을 밟았다.




장관이라면 장관이다.

놈들이 만들어낸 흙먼지가 지평선에 깔려 뭉게구름처럼 밀려들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리면 싸우기도 전에 공포에 잠식당할 거다.


"씨발, 영화 찍는 줄."


일부러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뱉고는 조수석을 밝고 지프 지붕 위에 몸을 내놨다.


두억시니만 찾으면 된다.

빠가사리와는 얼마든지 정상적인 싸움을 벌일 수 있으니까.


당연하게도 찾는 건 쉽다.

덩치가 다르고 질량이 다르고 볼륨이 다르니까.


빠가사리 틈에 섞여 있는 두억시니란 개떼 사이에 있는 소만큼이나 눈에 띄니까.


"11시 방향 두억시니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


"접근해. 선영이 트라 준비하고."


석궁을 개량해 만든 기름병 투사기.

사거리가 40미터에 불과하고 연사력도 떨어지지만 손으로 던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물론 내 경우엔 아니지만.


퍽 !! 퍼퍽 !!


운이 좋았다.

세 개의 기름병 중에 두 개가 놈을 맞췄으니까.


되돌아가 날린 슬링건 불티에 놈이 타올랐다.

허우적거리며 지랄 개지랄 쌩지랄을 하는 두억시니 새끼.

이제는 제법 익숙한 작전이고 풍경이다.


후속타가 필요하다.

기름병 한두 개 화력으로는 놈을 죽이지 못한다.


몸이 타오르는 놈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땅에 뒹굴며 불을 꺼보려 발악을 하는데,

사실 그건 우리에게 매우 좋은 상황이다.

움직임이 거의 멎었기에 기름병 투척 정확도가 높아지니까.


두억시니를 지키려는 빠가사리 몇 마리를 뭉개며 조금 더 다가가 기름병 세 개를 던졌다.

살짝 꺼져가려던 불길이 맹렬하게 재점화됐고,

놈의 비명이 거세졌다.


이 정도면 죽이진 못해도 전력 이탈은 거의 기정사실이고,


퍽!! 퍽 !! 퍽 !!


"끄어어얼ㄹㄹ...."


다시 세 개의 기름병이 부어지자 놈의 비명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이쯤 되어야 죽었거나, 거의 죽었거나. 라고 말 할 수 있다.


"신음소리도 좆같냐, 저 새끼들은..."



주위를 둘러보자 멀리에서 연기가 솟구치는 게 제유 팀도 화공을 시작한 모양이다.


놈들의 최선두와 성벽은 이제 1킬로미터도 안 남았고,

대부분의 두억시니는 빠가사리에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어렵다.

하지만 느긋하게 타겟 될 놈을 찾으며 시간 보낼 때가 아닌 거 같다.

이젠 200미터 저격 샷을 때려 박을 때다.


가늠자를 천천히 옮기며 호흡을 가다듬던 그때,

트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빠가사리들이 달려옵니다 !! 지프 후진 기동합니다 !!"


씨발,

차가 움직이면 저격 못 하는데.


"후진이 아닌 전진. 고속 전진해서 50-60미터 거리에서 일시 정지 후 이탈한다."


".. 지프 전진 기동 합니다 !! "


달려오는 수십 마리의 빠가사리를 뭉개고 씹어 넘기는 지프.

놈들도 우리의 접근을 막으려 필사적인데,

아무렇게나 휘둘러대는 놈들의 집게 팔에 차체가 요란하게 긁힌다.


유리창은 진작에 다 깨졌다.

지금은 유리 없이 견사 철망이 그 자리에 용접돼 붙어있다.

도사견의 이빨로도 끓지 못하는 굵은 견사망.


빠가사리의 공격력으로는 타이어를 노리는 것밖에는 지프를 멈출 길이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놈들은 아직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꾸왁 !!"


지프가 급정거하며 요상한 굉음을 터트렸고,


출렁이는 차체 진동에 몸을 맡겨 단 한 번의 호흡을 참아 넘기고 터진,


"꽝 !! "


총성 한 방으로 두억시니의 몸이 허물어졌다.




놈의 뇌는 오렌지보다 조금 더 큰 정도.

10미터 이내 거리라면 모를까.

내가 무슨 사격에 있어 입신의 경지에 오른 것도 아닌데 급박한 상황에서 그 작은 뇌를 단번에 맞추는 건 행운이 따라야 하는 거였다.


바로 지금처럼.




소용돌이치듯 밀려오는 빠가사리들.

아빠가 총 맞으니 열 받은 거냐.


"전속력 이탈합니다 !!"


지프 지붕에 달려있던 4700 장봉을 빼 들었다.

적토마 위에서 언월도를 휘두르며 적진을 무인지경으로 내달렸다는 관우 흉내를 낼 시간이다.


뭐,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니까 관우 장비 여포가 초인 급으로 설정된 거겠지.

실제의 관우라면 내가 못 이길 거 같지는 않았다.

당시에 내 신체 스펙 가진 동양인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 역시도 현대 무술과 격투기를 제법 한 편인데.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한다는 거 자체가 여유가 있다는 증거다.

석돌은 빠가사리들을 깔아버리며 후진 좌회전하고선 기어를 바꿔 전진 우회전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고작 15초 사이에 열댓 놈이 지프에 씹혀 나갔고 내가 휘두른 사칠공공에도 서너 놈의 대가리가 터졌다.


사륜구동 차량의 매력.

타이어가 밟고 있는 게 시체건 구덩이건,

어쨌건 오른발을 누르기만 하면 차가 움직인다는 거.



안전한 곳까지 벗어나서 다시 천천히 살펴보니 놈들의 행동이 평소보다 굼뜨게 느껴진다.


그야 그렇겠지.

놈들은 지난 며칠간 우리의 방해에 제대로 휴식도 못 취하고선 여기까지 달려온 거다.

그리고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투.


아무리 놈들이 방어력과 회복력의 화신이라고는 하더라도,

이쯤 되면 정상 컨디션일 리는 없을 거다.




두억시니 한 놈을 더 죽였을 때 적의 선두가 성벽에 도달했다.

놈들의 진형은 확연하게 '점'을 노리고 있었다.

서주 성 동문이 놈들의 목표지점이었다.


내 어깨높이까지 파여있던 해자에 놈들이 쓰러지듯 몰려들었고,

하향 조준된 석궁 수천 발이 일시에 쏟아져 놈들을 걸레 조각으로 만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계획이 맞아떨어질까?


원래 대로라면 여기서 잠깐 더 참으며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놈들과 대치하고,

잠시 후 놈들의 중진을 향해 투석기가 일제 발사되어야 한다.




그대로 됐다.

50개에 돌덩이가 하늘을 수놓았고,

운 좋게도 몇몇 놈이 맞아줬다.


놈들은 볼트에 몸이 꿰뚫려도 잠깐이라면 전투를 지속한다.

하지만 고공 낙하한 12로그램 돌덩이에 쳐맞으면...


"꽈직 !!"


몸뚱이가 으스러지는 건 뚫리는 것과 또 다르다.

맞은 곳이 어디건 간에, 설령 죽지 않았다 해도 전력에서는 이탈이다.

무식한 굉음과 충격 진동에 의한 공포심은 보너스.


놈들이 과연 공포를 느낄까 싶지는 했지만,

자욱이 피어오르는 먼지와 진동에 기세가 조금 꺾인 느낌은 들었다.


그리고, 늦게 말해서 미안한데 말야.

저 투석기는 공성 용도가 아닌 대인(?) 용도거든.

니네들 으스러트려 죽이려고 만든,

너네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무기라고.

연발에 사거리와 각도까지 조절되는 최첨단이야.


천 칠백 명이 여기에 붙어 있다.

이제부터 50대의 투석기에서 분당 100발의 돌덩이가 쏘아질 거다.

1시간 30분 연속 쇼타임이다.



투석 세례와 구덩이에 깔린 꼬챙이 지뢰.

비 오듯 쏟아지는 볼트.

그리고 두억시니만 정조준하고 있는 20기의 강노.

마지막으로 3.5미터 성벽.


이 징글맞은 놈들은 모든 걸 뚫고서 드디어 성벽 윗단에 팔을 걸기 시작했다.

그건 겹겹이 쌓인 시체를 밟고서 이뤄낸 놈들의 쾌거였고,

두억시니 반 이상과 빠가사리 2천을 잃은 대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꾸욱 누르며 참아왔던 우리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실행할 때가 온 거다.


"퐈아아아아----"


혹시, 영어 fire 는 의성어에서 온 게 아닐까?

불이 확 번질 때 나는 소리가 상당히 비슷한걸?


해자 밑에서 찰랑대던 기름에 드디어 불티를 날렸다.


원형으로 성벽을 둘러싼 거대한 불의 벽.

세계의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산소가 부족하다는 듯 절규하는 괴물이 혀를 날름거리며 빠가사리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파이어 월.

이걸 실제로 보다니...




성벽 수비 병력이 기겁하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성벽에 팔을 걸쳤던 놈들은 '즉석 바베큐' 로 신분이 변경된 게 기쁜지 팔을 벌리며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1차 웨이브를 막아낸 거 같다.

이 정도면 더는 들이대지 못할 거다.

놈들의 전력을 4분의 1 정도 깎고서 만들어낸 쾌거.

아직도 우리측의 피해는 없다시피 하다.


승리가 성큼 다가온 기분이다.



"두억시니 몇 놈씩만 더 조지고 들어가자. 이제 얼마 안 남았지?"


"열 마리 조금 넘게 남은 거 같습니다 !! 2호 차에 전달하겠습니다."




지프가 서주 성에 들어가려면 조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두억시니가 성문을 뚫고 난입하는 걸 막기 위해서 모든 성문을 바윗덩이로 막아놨으니까.

사람 한 명만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구멍만 내 놓았고,

그마저도 놈들이 접근하면 언제든지 바위를 쏟아내 막아버릴 수 있게끔 설계했다.


지프가 출입하는 곳은 북문으로,

들어오기 2시간 전에는 연락해야 바위를 치워놓을 거다.


"치익.... 특전수 선임 기사, 기사 트라입니다. 1호차와 2호 차가 두시간 후에 입성할 예정이니 북문 비워 놓으시기 바랍니다."


"칫.. 칙... 알겠습니다. 북문 초소장 선임 기사, 기사 화연!! 특전수 요청에 즉시 응하겠습니다 !!"




군기가 바짝 든 북문 초소장의 목소리가 예뻤다.

얼굴도 예쁘려나?

서주 성에 있는 여기사라야 100명이 안 될 텐데.

초소장쯤 되면 얼굴이라도 봐 둘 걸 싶었다.


어우,

씨발. 내가 지금 이런 헛생각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무도 뭐라는 사람 없는데도 괜히 부끄러워져 담배 한 개비를 물었는데,




"폐하, 이상합니다... 놈들의 공세가 멈추지 않습니다."


선영의 말에 전장을 보니 과연 그랬다.

선두가 궤멸당하고 후위조차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상황인데,

놈들은 미련스럽게도 달려들고 있었다.


아직도 파이어 월은 꺼지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놈들이 쉽사리 성벽에 닿지도 못할 것이며,

설령 닿는다 해도 기름병만 추가로 던져주면 수류탄처럼 터져 폭발 화염을 일으킬 수 있다.


뭐로 봐도 해자의 불이 꺼진 다음에 전열 정비하고 들이받는 게 맞는데?

물론 그런다 해서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지능이 아예 없는 놈들은 아닌데... 무슨 생각인 거지..?"


저렇게 산만하게 들어오다간 적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건데?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적' 이란 우리고.


"관성처럼 달려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글쎄다. 일단.. 북문 열리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좀 지켜보자."


마음 한켠에 찝찝한 부분은 있지만,

일단은 우리에게 좋은 일인 데다가 딱히 예상되는 것도 없다.

게다가 달려드는 놈을 죽이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기도 하고.




놈들은 어수선하게 한동안 병력을 소모하다가 결국 포기했는지 투석기 사거리 밖에 간단한 대형을 갖추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지프가 서주 성을 돌아 들어가려던 때,

해자에 가득 쌓여 있던 놈들의 시체 높이를 보고서야 놈들의 의도를 알게 됐다.


놈들은 시체를 토목재료 삼아 쏟아부은 거였다.

경사 완만해진 동문 근방에 일제히 밀어닥칠 계획이다.




'무슨 병신같은 짓거리야. 만루에서 고의사구 작전 쓰는 소리 하고 있네.'


두억시니가 사실상 전멸.

빠가사리도 4분의 1이 날아갔다.


성벽 경사도가 완만해졌다고는 해도 불길을 유지하고 있으면 쉽게 난입을 허용하지는 않을 거다.


문제는 놈들이 우리의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지공 작전을 쓰는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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