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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센트 님의 서재입니다.

유물론적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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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센트
작품등록일 :
2020.01.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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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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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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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83

.




DUMMY

어디서 나타난 걸까.

놈들의 별동대(?)가 3군 드론에 발견됐다.


서주성 45킬로미터를 남겨둔 거리.

세현이 팀은 하필 5군 팀쪽에 가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면 세현이가 3군에 돌아오는 시간보다 서주 성에서 지원 나가는 게 빠를 거다.





"안됩니다 !!! 기사.세현 팀이 2시간 안에 도착합니다 !! 폐하께서는 아직도 정상 상태가 아니십니다 !!!!"


몸이 안 좋긴 하다.

그래도 처절한 표정으로 말리던 트라의 의견은 기각됐다.


대단한 이타주의자가 아니지만,

나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힘들어서 몇백, 몇천을 살릴 가능성이 커진다면 당연히 가야 한다.


놈들은 두억시니 15마리와 빠가사리 300마리 규모다.

어디에 잘 숨어있었는지 용케도 수색에 안 걸렸나 본데,

지금은 원인 따질 시간이 없다.


놈들 전력이면 세현이 팀이 도착하기 전에 천 단위 애들이 서대륙에 묘비도 없이 거름이 될 테니까.

그것도 적당히 방어하면서 도망갈 때 얘기다.

적극적으로 붙었다만 바로 전멸. 그 꼴은 못 본다.

지금은 그녀를 설득할 시간조차 아깝다.




"트라, 최고 결정권자는 나야. 지금 즉시 1,2호차 기동한다. 5분 후 출발한다. 시간 싸움이야. 다시 말한다. 5분 후에 출발. 명령이다."


" ... "


할 말이 담긴 트라의 눈을 지나쳤다.

지금 그런 생각할 때 아니다.




오프로드에서 시속 70을 달려본 적 있는가?

그건 허리가 출렁이고 위장이 비워지는 속도다.

크루나의 피를 받았다지만 기사들에게도 버거운 속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착한 전장은,

멀리서 보아도 아수라장이었다.


완성된 방어진은 놈들의 본격적인 공격에도 쉽게 뚫리지 않았다.

그렇다. 쉽게는 안 뚫렸다.

그래도 뚫리긴 뚫렸고,

한 번 뚫린 방어선 안쪽에는 이미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쓰러져 있었고,

멀리 드러누운 두억시니의 거대한 몸뚱이에도 빼곡한 볼트가 박혀 있었다.


저 여리고 약한 애들이 모든 걸 걸고 이뤄낸 결과다.

두억시니 두엇과 병사들 목숨 수백이 치환된 거다.

고작 10분 사이에.

우리가 10분만 일찍 왔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마저 이제 더는 전투다운 전투,

방어다운 방어를 바랄 수 없는 지경이었다.

1차 방어선을 뚫은 두억시니 대여섯 놈이 빠가사리 호위를 받으며 본대를 유린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시각은 학살이 시작되기 2분 전,

참패가 확정되기 10분 전.




"퍽 !!!"


200미터 거리에서 날아간 5.56mm 나토 탄이 두억시니의 대가리를 뚫었다.

운이 좋았는지 단 한발로 놈은 즉사.


아무리 몸이 커도 뇌가 제대로 헤집히면 끝이다.

그 작은 뇌를 정확히 맞추기 어렵다는 게 문제일 뿐.




"아아..."


절망에 물들어있던 3군의 사기가 폭발적으로 끌어 올려졌다.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은 핏빛 지프.

그 지붕에 상체를 내놓고 적들을 쏘아보는 저 거대한 남자.


"우리가 왔다 !!!"


소총을 들고선 포효하는 저 거대한 남자가 그들의 황제 폐하다.


순식간에 두억시니 한 마리가 꼬꾸라졌다.

그 위엔 사막 색 지프가 들어오고 있었다.

폐하와 기사.제유 팀이 지원 온 거다.




"특전수가 지원 왔다 !!"


"으아아아 !!!"


"폐하께서 오셨다 !!!"


나란히 달리던 쇳덩이 두 대의 방향이 나뉘었다.

핏빛 지프는 왼쪽으로, 사막 색은 오른쪽으로.

두 대의 지프가 본대 외곽을 질주하며 폭력적인 총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콰콰콱 !!!"


연발 사격 세 번으로 두억시니 세 놈의 움직임이 멎었다.

가급적 한 놈에 한 발을 고수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사치스러운 얘기다.


초당 한 명씩의 목숨이 사라지고 있으니까.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꽝 !! ... 꽝 !! "


제유도 달려가며 한 방, 돌아서며 한 방,

두 방의 사격으로 두억시니를 한 놈씩 멈춰 세웠다.


두억시니 없는 빠가사리는 본대에 재앙이 아니다.

1대 10 교환비만 되어도 잡을 수 있으니까.




방어선을 뚫은 놈들 중 대부분이 멈췄다.


3군 병사들은 남은 두 놈에게 달려들어 사칠공공으로 에워싸고 훈련했던 그대로를 실행했다.


장창으로 에워싼다.

기름병을 퍼붓고 불티를 날린다.

화염에 휩싸인 놈이 필사의 발악을 하더라도 5열, 10열 창병들이 자리를 메워 놈의 운신을 제한한다.




'잘하고 있네... '


참으로 잘하고 있었다.

수백만 년의 비원을 담은 아루의 기사와 병사들은 용감했다.

어쩌면 내게 쪼여서 더 용감해진 건지도 모른다.


그래 줘야 한다.

벌써 내 몸이 떨리고 있으니까.

가늠쇠가 희미해 보이니까.


"1,2호차 본대 이탈. 전방 두억시니에 집중한다."


"치익.. 2호차 !! 전방 방어선 두억시니에 집중합니다 !! 런 앤 히트 유지하고 마리당 2발입니다 !!"


"치잇 ... 2호차 전술 접수했습니다 !!"




선영과 라프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무전에 사랑의 밧데리가 섞여 들리지 않았다.

제유도 더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투가 끝났다.


서 있는 두억시니도 없었고 빠가사리도 없었다.

두억시니 세 놈의 도주에 제유 팀과 1호차가 추격해 사살했지만 결국 한 놈은 놓쳤다.

급박한 상황이라 유기적인 드론 운영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거다.




몸이,

아주 많이 떨린다.

위액은 진작에 게워냈다.


이곳까지 달려오며 두 번.

심지어 전투 중에도 두 번.

세 번째부터는 씀씀하고도 푸르스름한 느낌의 타액이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조수석 앞에 꿇어앉아 떨리는 내 다리를 꽉 껴안고 있었다.

떨리던 내 몸을 받쳐준 건 누구일까.

쪽팔리니까 그런 짓 하지 말라는 핀잔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허세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석돌이는 운전을 해야 하니 불가능.

남은 건 선영이와 트라 뿐인데.

생각해보니 아까부터 무전 지시를 선영이가 하고 있었다.


쓰러지듯 조수석에 주저앉았을 때,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트라가 보였다.


"...적당히 좀 해.... 미친년아... 누구 죽었냐?"


힘 빠진 내 핀잔에 트라는 억지로 이를 깨물었다.

아니, 씨발.

내 마누라면 또 모르겠는데 넌 아직 내 마누라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오바질인 건지.



몇이나 죽은 걸까.

아마도 몇백이 죽고 몇백은 병신 됐겠지.


10분만 빨랐어도 피해가 거의 없었을지 모르지만,

반대로 10분만 늦었어도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을 거다.


미련하게 생각하지 말자.

언제나처럼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돼.

추모와 애도, 반성은 나중에 해도 돼.




참으로 이상도 하지,

이렇게나 추운데 왜 몸에선 땀이 나는 걸까.


나른하고 몽롱하고 힘이 하나도 없는 그 순간에,

통신을 받은 트라의 표정이 잡혔다.


"아..."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알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녀의 마음이 읽혔다.


".. 말해. 그게 날 돕는 거라는 거 알잖아."


트라는 눈을 질끈 감으며 쥐어 짜낸 목소리로 답했다.


"... 적들이 서주성을 향해 직진하고 있습니다. 두억시니 80마리. 빠가사리 1만 2천 마리 규모입니다. 4-5일 후 도착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 ... "


선영이 물려준 붙 붙은 담배를 한 번 빨고선 숨을 뱉었다.


잘 못 들은 건 줄 알았다.

상상했던 것의 열 배 규모다.

이 정도면 성을 끼고 싸워도 안심할 수 없다.


"그리고...."


".."


"...정찰에 걸리지 않았던 적들이 더 있었나 봅니다. 서주 성의 정찰대가 놈들을 발견했는데, 놈들도 정찰대를 거의 동시에 발견했는지 추격 중이라 합니다. 정찰대는 지금 필사적으로 성으로 퇴각 중입니다. 두억시니 다섯 마리와 빠가사리 100마리 규모라 합니다. 급하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위치."


"서주성 동북 방향 15킬로미터입니다. 여기서 30분 거리. 세현 팀은 45분 거리입니다."


".. 제유팀 즉시 출발."


"기사.제유팀 즉시 출발합니다 !!"


제유는 복명복창 하고선 팀원들을 이끌고 지프에 달려갔다.

이럴 때는 참 재바르다.


"1호 차도 간단하게 정비하고 합류한다. 트라. 5분 후 출발한다. 내가 자고 있으면 깨우지 말고 바로 출발해."


"..알겠습니다."




넓은 평원에서 두억시니 다섯이라면 제유 팀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다.

굳이 안색이 파래진 폐하께서 함께하실 것까진 없는데.

이럴 때 나머지 인원들에 뒷정리 맡기시고서 1-2시간이라도 숨을 돌리면 한결 나아질 텐데.


..저 남자.

참 말을 안 듣는다.




"선영씨, 석돌아?"


"네. 트라님."


"말씀하십쇼. 누님."


"폐하 지금 막 골아떨어지셨어. 부산 떨지 말고 조용조용 움직이자. 제유 팀이랑은 계속 소리 안 나게 통신으로 연락 주고받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 그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대단한 준비랄 것도 없었다.

3군은 아직 피해 집계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보고 받을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타이어와 실탄 체크하고선 3군 전령에게 간단한 지시를 남기고 출발하면 된다.


5분이면 될 일이었지만 트라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경철이 잠에 푹 빠지도록 기다렸다.

조심스레 뒷문을 열자 웅크리고 잠든 폐하의 모습이 보였다.

저 거대한 몸이 폴딩 된 지프 뒷자리에 구겨진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 왕비들께서 보셨다면 몇 날 며칠을 우셨을 거야.'




"트라님. 천천히 오셔도 될 거 같습니다. 막 교전 시작했습니다. 이미 한 놈 멈춰 세웠고, 안전하게 마리당 두 발씩 박아넣고 이탈하겠습니다."


제유 팀의 통신 담당인 미루는 5분에 한 번씩 짧은 통신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래. 미루. 무리하지 말고 안전 최우선. 시간 걸려도 되니까."


"넵. 기사.제유 님께도 다시 전달하겠습니다."




1호 차가 도착했을 땐 마무리 작업,

즉 지프로 밟아 죽이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행히 서주성 정찰대는 놈들에게 따라잡히지 않았고,

몇몇이 다리를 저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피해가 없었다.


누워 있거나, 겨우 서 있는 두억시니 다섯.

살아는 있지만 적어도 온전한 상태는 아닌 빠가사리가 몇십 마리.

이 정도면 탄환 소비할 것 없이 정찰대와 제유 팀 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다.


"최대한 방어적으로 .아군의 피해가 없는 걸 최우선 해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11시 방향 두억시니 두 마리가 아직 전투 가능해 보이니 조심해야 하구요."




제유 팀의 헤드는 제유가 아니라 기사.미루다.

아직은 세현의 하위 호환 느낌의 그.

언젠가는 세현만큼 의지가 되는 기사로 성장해줄지 모른다.


트라는 미루의 의견에 고개 끄덕이며 첨언했다.


"10분 안에 세현 팀이 도착할 거야. 사소한 위협이라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잊지 말고. 시간을 최대한 써서 안전하게. 폐하 아직도 주무시고 계셔요. 다들 알았죠?"


" 넵. 시간 끌면서 안전하고 확실하게."





멀리서 3호 차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급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새삼 지프의 헤드램프가 반갑게 느껴졌다.

아까 3군 병사들이 맞이한 우리 두 대의 지프는 구원자처럼 보였을지도.


트라가 생각하는 사이 3호 차에서 기름병이 날아가 엉거주춤하던 두억시니의 몸에 터졌다.

실시간으로 2호 차의 무전을 받고 있었나 보다.

가장 상태 좋은(?)놈을 먼저 타겟으로 삼은 거 보면 말이다.


마치 합이라도 맞춘 양 2호 차가 그 반대 방향에서 같은 놈에게 기름병을 던졌고,

되돌아온 3호 차에서 불티가 날아가 놈을 불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언제나처럼 기본에 충실하게.

두억시니는 태워 죽이고 빠가사리는 밟아 죽인다.

쌩쌩한 놈이 기사들 인원수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 차에서 내려 백병전으로 마무리 확인사살.


이 절차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는 정말이지 탄약이 없으니까.


남은 탄환은 100발도 안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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