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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뿌링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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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링틀
작품등록일 :
2024.08.11 03:54
최근연재일 :
2024.09.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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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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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악몽 - 4

DUMMY

-휘이이이.


찬 바람이 불었다.

한겨울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따뜻해야 할 봄에 부는 바람치고는 무척 싸늘했다.


“싸늘하군.”


봄은 생명력이 충만한 새 생명들이 죽음의 기운에 뒤덮은 추운 계절을 몰아내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기다.

온 세상에 생명력이 충만한 시기이며 또 지난 겨우내 동안 긴 잠에 빠졌던 게으른 짐승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움직일 시간이다.


산천의 모든 생물이 돌아오는 봄을 맞이하며 기쁨의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저 멀리 사라지는 겨울은 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물이라도 흘렸는지 요 며칠 사이 비가 제법 내렸다.


지난날 내린 비로 셔요강의 유량이 평소보다 배는 불어나 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셔요강 언저리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노얀.”


그 사내의 뒤로 갑옷 차림의 몽골군 병사 하나가 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병사들을 실어 나를 뗏목이 완성되었습니다.”

“빠르군.”

“노예들이 죽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튼튼한가?”

“코끼리 스무 마리도 거뜬합니다.”

“시간은?”

“강물이 거세지 않아 두세 시간 정도면 모두 건널 수 있습니다.”


병사의 말에 몽골 원정군의 부사령관 수부타이는 셔요강 너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에게 물었다.


“바투 칸께서는 어떻다던가.”

“세 시간 전에 야음을 틈타 투석기를 이용하여 돌다리를 지키던 적군을 몰아냈고, 뒤이어 강을 건너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강을 건너셨겠군.”


수부타이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먼 산언저리에서 굽이치는 바람 소리를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수부타이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전장의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에 새겨진 깊은 주름은 그가 이곳까지 오며 겪은 수많은 전투에서 얻은 지혜와 결단력이 담겨있었다.

그의 피부는 몽골 초원의 거친 바람과 뜨거운 태양에 그을려 있었지만,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강철 같은 기백이 느껴졌다.


햇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검은 머리칼 사이사이에는 무정한 세월을 상징하는 은빛과 가죽과 금속이 교묘하게 조합된 그의 갑옷 곳곳에 지난 세월의 야속함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견고했다.

그는 수십 년을 전장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살아남았고 여전히 굳건했다.


그가 단순히 셔요강을 바라보며 서 있을 뿐임에도 그의 부하들은 마음을 다잡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의 등 뒤로 전 세계를 짓밟은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은 물론 심지어는 말까지도 숨을 죽인 채 수부타이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이들은 잽싸게 달려 나가 그들의 적을 도륙을 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의 믿음은 가히 신앙의 영역에 닿아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바투 칸께서 전투의 단맛에 군을 조금 빠르게 움직이셨군.”

“······.”

“지금쯤이면 적의 선봉대와 교전 중이려나··· 어쩌면 본대와 교전 중일 수도 있겠군.”


수부타이는 남들이 다 듣고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게.”

“예, 노얀.”

“강을 건넌다. 그리고 저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려줘야 한다.”

“예, 노얀!”


수부타이의 명령에 그의 부장 토르게가 머리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병사들에게 달려가며 고함을 쳤다.


“전군! 도하! 도하! 도하하라!”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부대 곳곳에서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며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한데 뒤엉켜서 움직이는 것이었음에도 몽골 기병들은 마치 한 몸처럼 질서정연하게 강을 건넜다.

그들에게 구체적이고 자세한 명령 따위는 필요 없어 보였다.


그들은 서로 눈만 마주쳐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아는 것만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수만의 병력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수부타이는 이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듯하니··· 빠르게 움직인다면 칸께서 위험해지기 전에 빠르게 적의 후방을 공격할 수 있다.’


수부타이는 계획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바투 칸을 걱정했다.


‘칸의 전사들이 마자르의 전사들에게 쉽게 밀리진 않겠지만··· 피가 제법 흐르겠군.’


수부타이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이 전투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가는 이후의 원정에도 큰 차질이 생긴다.’


지금 몽골 원정군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 끝까지 달려온 상황이다.

중간중간 여러 부족을 복속하고 포로를 받아들이며 원정군의 덩치를 키우긴 했지만, 그것도 몽골에서부터 따라온 강력한 전사들이라는 든든한 지지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낮잡아 보인다면, 복속시킨 부족들이 다른 마음을 품을 수도 있었다.


‘이번 원정 이후에 대대적인 보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한번 풀어줄 필요가 있다.’


당근과 채찍.

이 두 가지면 아무리 사나운 말도 온순한 말로 만들었고 사람 또한 이와 같았다.


수부타이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부대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불어온 역풍이 잘 정돈된 수염을 흔들었다.


“바람이··· 바뀌었군.”

“노얀!”


조금 전, 그를 대신하여 병사들을 지휘하러 갔던 그의 부관 토르게가 급히 달려와서는 그의 앞에 무릎 꿇었다.


“강 건너 숲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흙먼지?”


수부타이는 고개를 돌려 강 건너편을 바라봤다.

지난 세월의 무게로 예전처럼 저 멀리 지평선 너머의 것까지 또렷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직도 그의 눈은 멀리 있는 것을 또렷하게 볼 정도로 맑았다.


그런 그의 눈에 숲이 흔들리며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숲이 움직이고 있었다.


“적이군.”


수부타이는 바로 저곳에 적이 있음을 눈치챘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이 모습을 본다면 적이 왔다는 것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말 울음소리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도 나고 있습니다.”

“음. 적의 본대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부대를 뒤로 물려라.”

“예?”


수부타이는 재빠르게 명령을 번복했다.


“노얀, 이미 아군 선발대 절반이 강을 건넜습니다. 여기서 부대를 뒤로 물리시면 큰 혼란이···.”


수부타이는 부관을 돌아봤다.

평소엔 푸른 초원을 따스하게 비추는 태양처럼 따스했던 두 눈은 거친 초원의 겨울바람처럼 싸늘하고 매서웠다.


“토르게, 부대를 물리라고 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없다.”


수부타이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숲이 흔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저 너머에 적잖은 수의 적군이 있는 모양인데···.’


수부타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가 궁금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헝가리군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부대를 둘로 나눴지?’


수부타이는 적인 헝가리의 입장에서 고민해봤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아군의 존재를 눈치채고 급히 동원할 수 있는 예비 병력을 전부 보낸 건가?’


수부타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렇다기엔 판단이 너무 빠르다. 그렇다면 적의 지원군인 건가?’


수부타이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적의 지원군이 있었다면 정찰병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수부타이는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세차게 흔들리는 강 건너의 숲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들이 본대에서 떨어져나온 부대라면··· 지금 칸과 교전 중인 부대는 어떤 상황이지?’


순간.

수부타이의 머릿속에 끔찍한 생각 하나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가령, 바투 칸이 지휘하는 본대가 헝가리군과의 교전에서 크게 패배하여 헝가리군에 여유가 생겼다는··· 아주 끔찍한 생각 말이다.

재밌는 건 마침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칸의 소식이 적과 교전에 들어가기 위해 본대가 강을 건넌다는 이야기였다.


수부타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나선 안 될 최악의 상황이 마구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더 끔찍한 것은 만약 자신의 가정이 사실이고, 칸의 군대가 이미 마자르인들에게 패한 것이라면 저들이 수부타이의 존재를 알아챈 것과 부대를 나눈 것이 기가 막히게 설명됐다.


누군가 듣는다면 너무 과한 걱정이라며 코웃음을 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쁜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고, 수부타이의 머릿속에서 성 하나를 넘지 못해서 러시아 공국들을 모두 제압한다는 대전략이 어그러졌던 일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토르게! 어디 있느냐? 토르게!”


칸이 위험하다.

아니, 위험하여질 소지가 있다.


그 사실이 수부타이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만약 주치 울루스의 주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황금 씨족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무엇으로도 피 값을 받아낼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칸께서 위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부타이는 바투 칸을 믿었기에 그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이 돌아버렸다.


******


-푸히히힝.


한편, 셔요강 너머의 숲에서는 고작해야 수십의 경기병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의도적으로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콜록콜록.”

“캑캑···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이러다가 타타르 놈들이 강을 건너오면 큰일이 나는 거 아닙니까?”


병사들의 툴툴거림에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


“저놈들 지금 꽁지 빠지라 도망가는 중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더 세차게 흔들기나 해!”

“예? 정말입니까?”

“그래, 지금 저놈들이 타고 왔던 배도 못 쓰게 부수느라고 정신이 없구나.”


대장의 말에 병사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허, 참··· 우린 고작해야 쉰 명이고 저놈들은 수만 아닙니까? 왜 저런답니까?”


대장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들 알겠냐? 그냥 우리는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그만이다.”

“그건 그렇죠.”

“알면 아랫도리에서 방울 소리 짤랑일 때까지 나뭇잎이나 더 흔들어!”

“에이씨···.”

“그리고 이슈트반, 너는 당장 본대로 달려가서 타타르 놈들이 뭐 빠지게 도망쳤다고 알리고!”

“옙!”


******


헝가리군의 지휘 천막.

이곳에 모인 여러 귀족과 대주교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벨러를 힐끔거렸다.


다들 무척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차마 벨러에게 말을 걸 용기는 없었는지 계속해서 그를 힐끔거리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구시렁거릴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타타르 놈들을 공격해야 하는데···.”

“이렇게 대치하는 동안에도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데···.”

“일단 적과 싸우러 나왔으면, 한번은 싸워봐야 하는데··· 끙···.”


다들 오리처럼 입이 툭 튀어나와서는 계속해서 투덜거렸지만, 벨러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곁에 앉혀둔 종자를 힐끔거리며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자네의 말대로 타타르의 분견대가 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군.”

“······.”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


지금 천막 바깥에는 헝가리 왕국 군대가 출정 준비를 끝마치고 마지막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

“울리히 경의 종자···.”


벨러 왕은 무언갈 더 말하려다가 머뭇거리고는 내게 묻길.


“그러니까··· 울리히 경의 종자···?”


눈치를 보아하니 내 이름을 묻는 모양이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름을 모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상황이 아니라··· 단순히 이 몸에 들어온 지 고작해야 서너 시간이라 진짜로 내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닫았다.

이쯤에서 다른 귀족들이 답해줄 법도 했지만 다들 내 이름을 모르는지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돌겠네.’


이대로 입을 꾹 닫고 있으면 왕은 무안을 당할 것이고, 나는 눈치 없는 새끼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무 이름이나 대자니, 그때는 정말로 후환이 두려웠다.


“······메니!”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메니! 어디······.”

“음?”


얼마나 목청이 큰지 천막 안까지 밀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벨러 왕이 관심을 보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찾아와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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