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치킨은 뿌링클

슬기로운 종자생활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새글

뿌링틀
작품등록일 :
2024.08.11 03:54
최근연재일 :
2024.09.21 08:00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56
추천수 :
15
글자수 :
27,889

작성
24.09.19 08:00
조회
86
추천
3
글자
13쪽

악몽 - 1

DUMMY

인생은 고통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몸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뛰어넘었을 때.

인간은 어제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고통은 잠시일 뿐.

그 고통 속에서 회복하는 과정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니 인류는 고통에 굴하지 않고 강철처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라고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다.


나도 그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강한 원동력이다.


내 나이 일곱 살.

즐거웠던 가족 여행 도중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차가 전복되는 큰 사고를 겪었다.

이 일로 나는 가족을 잃고 할머니와 살게 됐다.


그리고 내 나이 열다섯.

나를 아껴주시던 할머니가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날 걱정하셨다.


그렇게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시설로 들어가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그곳에서 지냈고, 대학도 갔다.

그동안 성적도 괜찮게 관리해서 적당히 지방의 국립 대학 사학과에 들어갈 정도는 됐다.


내가 사학과를 택한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저 대학을 고를 때, 예전에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티비에 나온 학자를 보며 멋있는 사람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지만···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그게 멋있는 건 줄 알았다.

주변에 상담할 어른이라고는 담임선생님뿐이었는데, 그 양반은 나한테 관심도 없었으니··· 뭐···.

그렇게 됐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 스물일곱.

전도유망한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던 부모님과 날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던 할머니가 남겨준 유산이나 까먹으며 스스로를 몇 평짜리 작은 우리 속에 가뒀다.


그리고 고통뿐인 비루한 인생을 곱씹으며 그렇게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니체가 틀린 이유···. 진짜]


니체는 인생이 고통이라고 했는데, 이 새끼가 겪어본 고통이라고는 병에 걸려서 콜록 거린거 말고는 없음 ㅇㅈ?


└ ㅇㅈ.

└ 니체도 한국이었으면 방구석에서 종일 커뮤질이나 하면서 키배뜸 ㅋㅋ

└ 니체가 뭔데? 너 중국인임?

└ 싯팔 대한민국의 미래가 존나게 어둡구나.


“인생은 고통이여.”


나는 인생의 원동력을 상실했다.

이제 더는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두 다리가 있음에도 달리질 못하는 내 인생은 하루하루 죽어가는 산송장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인생에서 오랜만에 흥미를 느낄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


가격에 비해 부족한 볼륨이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조잡한 기술력으로 조롱받던 게임 회사가 하나 있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아이언 포지 스튜디오.


한때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발표만 해도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게이머들의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드는 힘을 가진 회사였으나 이젠 구시대의 퇴물로 전락해버린 회사였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아이언 포지 스튜디오는 세상에 다시없을 불후의 명작을 남기겠다며 차기작 개발을 선언하고 게이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그리고 오늘.

그들은 새로운 게임으로 돌아왔다.


[Echoes of the Eastern Wind]


동방의 메아리.

신작 출시와 함께 개최한 홍보 행사에서 아이언 포지 스튜디오는 플레이어에게 무궁무진한 자유를 선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을 주겠다고도 약속했다.


“크으으··· 역시 아이언 포지··· 믿고 있었습니다!”


아이언 포지 스튜디오의 게임들은 하나같이 지랄 같이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했다.

말 그대로 플레이어를 해당 시대의 인물로 들어가게 한 것 같은 자유도와 그런 자유도에서 오는 불편함,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게임은 특수한 VR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위해서 플레이어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게임이다.


이 점이 게임의 난이도를 끔찍한 수준으로 올려버렸다.

물론, 게임사에서도 이건 남들에게 팔아먹는 상품이기에 쉬운 난이도에선 여러 가지 보정을 넣어서 게임을 원활히 플레이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이러한 보정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최고 난이도인 ‘재앙’에서는 모든 보정이 사라짐과 동시에 이게 진짜 현실인지 게임인지 착각이 들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했다.


덕분에 이 게임을 오래 한 고인물 유저들은 특유의 몰입감에 심취하여 언제나 최고 난이도로 플레이하길 즐겼다.


그리고 나도 그 고인물 중 하나다.

그것도 그냥 고인물이 아니라 게임 수천 시간을 한 고인물에게 조언해도 다들 입 닥치고 일단 들어보는 수준의 고인물이다.


그런 내가 이 게임을 얼마나 기다렸을진 굳이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다.


“어디 보자··· 신작 배경은··· 중세 유럽인가?”


128,000원이라는 조금 과한 금액을 쓴 게임의 표지에는 쿠만 마스크를 쓴 병사와 몽골 병사, 그리고 중무장한 기사가 한데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게임이 설치되는 와중에 디지털 패키지에 동봉된 카탈로그에 게임의 배경과 새로운 시스템이 정리되어 있었다.


“특성 시스템, 육성 시스템···.”


전부 이전에는 없던 것들이다.

아이언 포지 스튜디오의 전작들은 이런 RPG 적인 요소보다는 현실성을 강조했기에 이런 요소가 없었다.


그러니 순전히 본인의 실력에 따라서 검 한 자루로 적을 모조리 도륙을 내는 플레이도 가능했다.


“특성··· 특성이라···.”


아이언 포지 스튜디오에서는 처음 보는 시스템이지만 다른 게임에서는 자주 본 시스템이었기에 적응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오! 다 됐다.”


그렇게 카탈로그를 조금 살펴보고 있으니 금세 설치가 끝났고 이내 게임을 실행하자 웅장한 BGM이 가슴을 웅장하게 만듦과 동시에 게임이 시작되며 내 앞에 수많은 인물이 우수수 나타났다.


마치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 시간에 배우들이 단체로 올라와서 인사하듯 말이다.


“이번 시대는 몽골 제국의 유럽 원정기네.”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거다! 싶은 인물이 없었다.


“그러면 뭐 새로 만들어야지.”


나는 기존 인물로 플레이하기 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너무 빡세게 갈 필요는 없겠지.”


첫 플레이니만큼 일단 게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가능한 한 자유롭게 활동하며 게임을 둘러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흠···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으면 전투에 특화된 캐릭터를 만드는게 좋겠지.”


나름대로 고증을 철저히 시키기로 유명한 아이언 포지 스튜디오의 게임이니만큼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수많은 위험을 동반할 게 분명했다.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무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

아무리 게임에 익숙해지더라도 칼이나 활이 급소를 맞으면 고인물이건 초보던 모두 한방이다.


그러니 정말 전투 하나만을 보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캐릭터를 깎는 데 집중했다.


“협상에서 이점을 얻으려면 부드러운 인상보다는 위압적이고 날카로운 모습이 더 유리하겠지··· 그리고 전투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려면 근력도 좀 받쳐줘야겠고···.”


이리저리 캐릭터를 깎으면서 스탯을 분배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깎았을까?

어느샌가 내 앞에 무시무시하게 생긴 살인 병기가 완성되어 있었다.


“아, 뭐야? 특성 점수가 있네?”


온갖 긍정적인 특성으로 도배한 캐릭터는 특성 점수에 막혀 만들 수가 없었다.


[특성 점수 –200]


아마도 게임사에서 온갖 긍정적인 특성을 가진 캐릭터로 재앙 난이도를 플레이하려는 꼼수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이런 모양이다.


“그러면 부정적인 특성도 섞어야 한다는 건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또한 게임의 시스템이었다.

부정적인 특성을 몇 개 추가하니, 그동안 고통뿐이었던 내 인생이 떠오르며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쓰읍.”


긍정적인 특성 위에 온갖 부정적인 특성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집어넣은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 설명 문구를 읽어보고 나중에 지워버릴 수 있거나 특정 상황에서 이점이 될 특성만 골라서 넣었다.


[특성 점수 – 70]


“······.”


하지만 그렇게 집어넣었음에도 아직 점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된 이상 긍정적인 특성을 몇 개 빼야 할 상황이었지만 왠지 오기가 생겨서 그러고 싶진 않았다.


‘특성을 빼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부정적인 특성을 더 넣자니, 이 점수를 다 깎으려면 팔다리 하나는 잘라야 해.’


여기서 부정적인 특성을 더 넣었다가는 그냥 플레이가 불편한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한참 고민하며 이것저것 건드려보고 있을 때, 캐릭터의 신분 탭이 눈에 들어왔다.


‘신분? 이것도 바꿀 수 있나?’


별생각 없이 신분 탭을 누르자 리스트가 주르륵 떴고, 여기에도 부정적인 특성 포인트가 있었다.


“오.”


때마침 괜찮은 신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에게 부정당한 사생아 +80]


그냥 사생아도 30점을 주는 게 끝인데, 아버지에게 부정당한 사생아는 무려 80점이나 준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부정당한 사생아면··· 그냥 상속권도 없는 남 아닌가?’


현대에서는 그냥 개인의 문제 정도로 넘어갈 일이지만 중세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중세 교회에서는 사생아를 개인의 음욕으로 인해 만들어진 부정의 산물 정도로 본다.


뭐, 그것도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사생아를 뜻하는 몇몇 단어가 유럽과 미국에서 욕처럼 통용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그러니까 상속권을 가진 사생아도 취급이 그런데 상속권이 없는 사생아는 어떻겠는가?


‘능력이 없으면 그냥 죽는 거지.’


반대로 말하자면 능력만 있다면 이런 신분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됐건 이 신분을 선택하면 뺄까 말까 고민 중이었던 좋은 특성을 여럿 고를 수 있게 된다.


[고결함 – 이 세상에서 당신보다 고결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인간성을 져버린 악인도 당신을 보면 무릎 꿇을지도 모르겠네요.]

[두 번의 기회 – 싸우는 중에 무릎 꿇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빨리 일어나세요!]

[부지런한 노새 – 당신의 말이나 나귀가 지쳐 쓰러지면 대신 업고 다니셔야 할 겁니다.]

[질긴 피부 –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의 적은 단검을 조금 더 날카롭게 갈아야겠네요.]

[헤라클레스의 작은 삼촌 – 당신의 등장에 신화 속 괴물들도 긴장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런 괴물이 남았던가요?]


보기만 해도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특성들을 전부 넣을 수 있다.

저것만 있으면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날리겠다며 뺑뺑이 쳤던 보라 대머리 외계인도 가볍게 두 쪽 낼 무적의 살인 전차가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 전차를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도 여럿 있었다.


[덤벙댐 – 밤에 당신이 마을을 걸으면 마을 사람들 다 깨우겠네요 하하!]

[정독 – 남들보다 책을 더 오래 읽겠지만··· 그래도 까막눈은 아니니까 다행이려나요?]

[무대 위 스타 –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어딜 가더라도 수많은 사람의 눈에 띌 겁니다. 당신의 적들은 특히 더 잘 볼 거예요!]

[쇠고집 – 당신은 한 번 정한 것을 절대로 바꾸지 않습니다. 누구도 당신의 뜻을 꺾진 못할 겁니다.]

[비판적인 사람 – 당신은 모든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분석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진 않겠죠?]


페널티도 여럿 넣었지만 전부 상쇄할 수 있는 것들이거나 반대로 잘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뭘 더 망설이겠는가?


난 선택 했다.


“휴우~ 이제 좀 해볼까?”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 경고하노라, 이 땅은 거친 바람과 불타는 화살이 휘몰아치는 곳, 몽골의 군마가 대지를 갈라놓은 시대로, 그대의 영혼이 던져질 것이다.

- 동쪽에서 몰아치는 폭풍은 멈추지 않으며, 하늘이 울부짖고 대지가 비명을 지르리라.

- 네 앞에 펼쳐질 전장은 피와 땀, 그리고 불타는 도시들로 가득하리니, 용기 없는 자는 돌아가라.

- 그러나 만약 그대가 굳건히 서기로 결심했다면, 네 검은 전설이 되어, 역사의 한가운데에 새겨질 것이다.


돌연 경고문이 우수수 떠올랐다.

전작들에서는 본 적 없는 경고문이었다.


마치 내가 무슨 역사적 시험대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경고문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작은 고양감을 일으켰다.


‘별 쓸데없는 곳에서 디테일을 살렸네.’


꽤 살벌한 경고문이었지만 누가 경기하면서 이런 경고문을 신경이나 쓸까?

나도 그랬다.

대충 쓱쓱 읽고 넘겼다.


경고문을 넘기자 갑자기 어마어마한 빛이 번쩍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전쟁터에서 눈을 떴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슬기로운 종자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 악몽 - 4 NEW 1시간 전 12 0 13쪽
4 악몽 - 3 24.09.20 57 3 14쪽
3 악몽 - 2 24.09.19 85 4 13쪽
» 악몽 - 1 24.09.19 87 3 13쪽
1 프롤로그 +1 24.09.19 116 5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