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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뿌링클

슬기로운 종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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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링틀
작품등록일 :
2024.08.11 03:54
최근연재일 :
2024.09.21 08:00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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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889

작성
24.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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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악몽 - 2

DUMMY

-둥 둥 둥.

-빰빠밤빰빰.


어스름한 햇빛과 살짝 시린 날씨, 그리고 시끄러운 북소리와 나팔 소리에 절로 눈이 뜨였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찌르고, 진흙과 땀, 묵직한 철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와··· 진짜로 리얼한데?’


주위를 돌아보니 무거운 갑옷 차림의 기사들이 말에 올라서 돌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나는 누구지?’


나는 상태창을 켜서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대강이나마 파악하려고 했다.


“상태창!”

“······?”


하지만 돌아오는 건 새파란 상태창이 아니라 저 새끼는 뭘 하느냔 기사들의 볼썽사나운 눈길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 더 외쳤다.


“상태창! 상태창! 상태···.”


-퍽!


그러자 거짓말같이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후려쳐서 이를 막았다.


“아야···.”

“미클로시! 이 멍청한 자식! 지금 전투를 앞에 두고 장난이나 칠 때냐 이 녀석아!!!”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가 왱왱거리고 얻어맞은 뒤통수는 알싸하게 아려왔다.


‘잠깐··· 고통?’


그렇다.

원래 게임에서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 게임이라는 것이 보통 그렇잖은가?

게임 속에서 내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얼마나 구르건 현실의 나에겐 아무런 타격도 없어야 했다.

그게 정상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후··· 미클로시, 자네가 긴장한 것은 알겠지만 갑작스럽게 소란을 일으키면 어쩌자는 건가? 그대의 잘못으로 말들이라도 놀랐으면 그대로 작전에 중차대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내 앞에는 작은 체구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나보다 머리가 세 개에서 네 개 정도는 작고, 덩치도 왜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는 거센 칼바람에도 굴하지 않을 정열과 열정의 불꽃이 꿈틀거렸다.


오랜 세월과 전쟁이 남긴 여러 상흔과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에서도 그의 두 눈만큼은 밝은 태양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

“자네의 불안이나 걱정은 모두 신께 맡기고 자네는 자네의 일을 하면 그만이네.”

“······.”

“이쯤 하면 알아들었으리라고 생각하지.”

“······.”


그렇게 내게 따끔하게 한소리를 한 중년의 기사는 다시 투구를 쓰며 제 말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며 가볍게 쏘아붙이길.


“미클로시!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말을 잘 먹여두고 말이 전투에서 긴장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두거라. 알겠느냐?!”

“예? 아, 예···.”


마치 바로 옆에서 고함치는 것 같은 기사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뜨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상태창만 안 뜨는 게 아닌데?’


게임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메뉴나 UI조차 뜨질 않고 있었다.


‘뭐지? 오류인가?’


게임을 하다 보면 버그나 오류로 진행이 정상적인 진행이 막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살짝 짜증이 밀려오는 상황이었지만, 뭐 첫날이니까 버그 한두 개쯤 나오는 건 이해해줄 수 있었다.


‘쓰읍··· 어쩔 수 없지.’


마침 전장에 피어난 흙먼지에 눈이 좀 따끔거리기도 했고, 슬슬 배도 고프던 상황이었으니 대충 VR기기를 벗고 강제로 게임을 끌 생각이었다.

그런데.


“응?”


손으로 머리를 더듬어봐도 만져지는 게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컨트롤러도 느껴지질 않았다.


“어?”


원래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어어···?”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몸을 더듬어봐도 없었다.

UI도 메뉴도 상태창도··· 아무것도 없었다.


“어···?”


어디선가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푸른 새싹이 돋아난 나뭇가지를 흔들며 내 이마를 쓸고 지나가며 땀을 식혀줬다.

무척··· 시원했다.


‘허.’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니, 주변 모든 것이 수상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가죽 갑옷의 거친 질감이라던가 눈앞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문양이 새겨진 군기와 그 밑을 행군하는 웅장한 규모의 군세, 그리고 코끝에 알싸하게 퍼져오는 무거운 전장의 냄새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수상했다.


이곳에서 내 존재는 마치 잘못된 위치에 억지로 끼워 넣어진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다.

내 움직임 하나하나, 그리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이 부자연스럽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감각··· 그래, 이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무슨···?’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고서야 미묘한 기시감? 위화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지? 내가 아닌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시장에서도 실패한 뒤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게으르고 방탕한 삶을 살아왔다.

남들이 경력을 쌓고 아등바등 하루를 살아갈 때, 나는 혼자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과 담을 쌓아놓고 지냈다.


덕분에 나날이 늘어나는 게임 실력과 비례하여 몸에는 살도 좀 붙으면서 행동도 굼뜨고 움직임도 둔해졌으며 매일 방구석 곰팡이처럼 축 늘어져 지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온몸에 생기가 흘러넘친다.


아니, 그냥 생기만 흘러넘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단순히 주먹을 쥐었을 뿐임에도 뭐든 때려 부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와아아아!

-뿌우우우우~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전장의 뿔피리 소리가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는 새벽 공기를 찢으며 내 귓가에 꽂혔다.

금방이라도 귀가 먹어버릴 것 같은 이 끔찍한 소음을 듣고서야 비로소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X됐네.’


이건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잠깐의 혼란이 가라앉고··· 말에 탄 기사 무리가 진지를 빠져나간 뒤에 나는 진지 주변을 성벽처럼 둘러싼 수레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치겠네.’


손으로 가볍게 바닥을 쓸자 거친 흙과 부드러운 풀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요즘 게임의 기술력이 아무리 좋다지만 이렇게 인간의 감각까지 구현하지는 못한다.

만약 그런 게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진 기기로는 그런 게임을 완벽히 구동하지도 못했을 테고 말이다.


“X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밑도 끝도 없는 막막함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쓰읍··· 어쩔 수 없지.”


······들진 않았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평소였다면 괜히 자괴감에 빠져 자기 파괴적이고 우울한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좀먹었을 텐데, 지금은 그저 다음에 뭘 할지를 생각했다.


나도 이런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당황하는 것은 당황하는 것이고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이 언제지?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내 시선이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천에다가 각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을 집어넣은 군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그 밑으로 휘황찬란한 천으로 치장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대열을 이루고 빠르게 지나쳤다.

고개를 돌리니 다른 쪽에는 꼬질꼬질한 사슬 갑옷이나 가죽 갑옷, 그마저도 아니면 두툼한 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줄지어 서서 대기 중이었다.


군영 한쪽에서는 경쾌하게 철을 두드리는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와 철과 철이 맞물리며 생기는 약간 거슬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전투를 준비하는 건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내게 호통쳤던 기사가 떠난 방향을 바라봤다.

먼동이 트는 빛의 저편으로 힘차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보였다.

다들 군영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아하니, 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판단하는데 딱 5분이 걸렸다.


‘와··· 나 뭐지?’


나 자신도 놀랄 속도였다.

평소에는 당장 먹을 점심이나 저녁을 고민한다고 한두 시간은 고민하는 게 여사였는데 말이다.


‘······그동안 정말 폐인처럼 살았구나.’


옛날에는 몰랐는데, 몸과 정신이 멀쩡해지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깐.

내가 조금만 이상한 생각으로 빠지려 하면 몸이 알아서 그런 생각을 차단하듯 곧장 이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려는 전쟁터에 떨어진 것 같은데··· 지금이 정확히 어느 전투지?’


살짝 머리를 굴려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애초에 게임 배경이 몽골 제국의 유럽 원정기잖아··· 그러면 이 전투도 그중에 하나겠네.’


날씨가 너무 춥진 않은 것을 보아하니, 러시아 같은 곳은 아닌듯했다.

물론, 지금 날씨가 봄이나 여름쯤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주변의 수풀이나 나무의 형태가 러시아보다는 동유럽이나 중부유럽에서 볼법한 것이다.

거기에···.


‘구부러진 십자가가 꽂힌 왕관.’


군영의 정중앙.

국왕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걸린 깃발에 그려진 문양이었다.


내가 알기로 저런 문양을 상징으로 삼는 나라는 하나뿐이었다.


‘헝가리.’


때마침 헝가리 또한 몽골의 침공으로 큰 피해를 본 국가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게 1차 침공인지 2차 침공인지가 중요하다는 건데···.’


몽골의 1차 침공 당시에 헝가리는 모히에서 역사적인 대패를 당해 나라가 말 그대로 붕괴해버렸다.

하지만 무사히 도망쳤던 벨러 4세가 나라를 잘 수습해서 2차 침공 당시에는 몽골군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헝가리의 부활을 알렸다.


그러니 지금이 첫 번째 침공이라면 헝가리는 몽골에 패배할 것이고 내 목숨도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두 번째 침공이라면 헝가리는 승리할 것이고 나도 살아남을 것이다.


이걸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어이, 거기!”

“······?”


지나가는 병사를 붙잡고 물었다.


“저를 찾으셨습니까?”

“그래, 너.”


일부러 번쩍거리는 갑옷 차림의 병사는 피하고 꼬질꼬질한 갑옷을 입은 병사를 불러세웠다.


“지금 여기가 어디지?”

“헤외케레스투르 인근입죠.”

“헤외··· 뭐?”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아무래도 질문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모히는 어느 쪽이지?”

“모히? 아, 무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히라면 저기 셔요강 언저리에 있을 겁니다. 오늘 기사 나리들이 아침 일찍 거기로 출동했잖습니까.”

“음··· 알겠다.”


아니었으면 바랬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모히 전투가 벌어졌던 그곳인 모양이었다.


‘진짜 X됐네.’


아무래도 전투는 이미 시작된 모양이었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몽골군이 본격적으로 강을 넘어오기 시작한 모양이다.

헝가리군의 총사령관인 국왕 벨러 4세는 그런 헝가리군을 요격하고 부대가 출동할 시간을 벌고자 중기병을 먼저 내보낸 모양이었고 말이다.


‘모히 전투가 어떻게 전개됐더라?’


나는 머릿속을 뒤져 학부생 시절의 기억을 허겁지겁 뒤져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어떻게든 정보를 찾아내야 내가 살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가 몽골에 참패당했다는 것밖엔 떠오르질 않았다.

그야 전공 책에서는 헝가리 왕국이 몽골의 명장 수부타이와 싸워서 패배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졌고, 그 이후에 벌어졌다는 것만 설명했지, 정확히 둘이 어떤 전술을 사용했고,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적혀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나마 전술 비슷하게 떠오르는 것은 몽골군의 지휘관 수부타이가 몰래 강을 건너서 전선을 크게 우회하여 헝가리군의 측면을 공격해서 패배했다는 것 정도였다.


“수부타이··· 우회···.”


이걸 알린다면 헝가리군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개 병사일 뿐이지 병사를 지휘하는 장교나 장군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학과로서 전쟁과 연관된 오래된 격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이 정보 자체는 헝가리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때마침 헝가리 국왕의 천막에서 중무장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 청년이 걸어 나왔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였다면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내 기억이 잘못되어서 생길 문제나 일개 종자가 국왕에게 직접 말을 꺼내서 생길 문제 같은 쓸데없는 걸 고민하면서 시간을 끌었겠지만···.


“폐하! 적의 대규모 기병이 셔요강을 건너려고 준비 중입니다!”


일단 시원하게 내질렀다.

그러자 국왕을 비롯한 여러 귀족, 그리고 병사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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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몽 - 4 NEW 1시간 전 12 0 13쪽
4 악몽 - 3 24.09.20 57 3 14쪽
» 악몽 - 2 24.09.19 84 4 13쪽
2 악몽 - 1 24.09.19 86 3 13쪽
1 프롤로그 +1 24.09.19 11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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