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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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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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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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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전사 토니우스는 여관의 자신의 방에서 갑옷을 정비하고 있었다.

방의 한켠에 마련된 갑옷거치대에는 오늘도 피와 녹즙과 살점이 묻은 갑옷이 걸려있고, 토니우스는 물과 약간의 정비용 기름과 헝겊으로 갑옷을 정비했다.


모험자라는 직업은 편하다면 편하고 힘들다면 힘든 그런 직업이었다.

어떤 모험자는 평생을 허드렛일을 하며 보내지만 어떤 모험자는 세상 곳곳을 누비며 보물들을 쓸어담는다.

토니우스는 그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모험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모험자 길드에 등록된 상태로 범죄조직에 한발 걸치게 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모험자가 되었다.

오늘도 우로스 산맥에 들어가 몬스터들과 격전을 벌였다.

수입은 범죄조직의 의뢰를 해결할 때의 반도 되지 않지만 그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었다.



'케나스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거지?'



바실리스크 사냥 당시 사실 토니우스는 바실리스크의 소재 회수를 못하도록 완전히 뭉개버릴 생각이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가 개인적인 의뢰를 했기 때문이었다.

사유는 바실리스크 독의 해독제가 현재 어떤 이유 때문에 전국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어서 해독제 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평소에 돈돈돈 금금금 소리를 달고 다니던 3인방 중 막스와 레비롱이 먼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바실리스크가 뿜어대는 독과 석화광선을 막기 위해 눈과 목 부위를 난도질했다.

바실리스크가 쓰러진 뒤 남은 것은 머리 부분이 완전히 으스러진 목 없는 뱀의 시체였다.

눈도, 독샘도 챙기지 못하고 돌아온 그들에게 케나스의 불호령이 떨어진 건 당연하였다.


토니우스는 안심했다.

바실리스크 해독제가 전국적으로 부족한 현 상황에서 바실리스크의 눈이나 독샘 같은 암살에 적합한 소재가 범죄조직들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는 친구의 개인적인 의뢰는 성공했으니까.

그 친구는 최근 베레 시의 귀족 사회에서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으니 아예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베레 시로 유입되는 물자들의 검역을 강화시킨 상태였고 거기에는 토니우스가 넘긴 정보가 대활약했다.


하지만 며칠 후, 토니우스는 친구와 친구의 상관이 독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검 후 그들의 사인은 바실리스크의 독인 것으로 밝혀졌다.


바실리스크는 흔하게 돌아다니는 괴물이 아니고 케나스의 조직 쪽 정보망을 이용해 타지역에서 들어오던 바실리스크 소재도 전부 처리했고, 이번에 우로스 산맥에서 목격된 개체는 분명 머리를 아예 짓이겨 버렸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토니우스는 홀로 조사를 개시했고 노력 끝에 바실리스크의 독샘이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판매자는 막스였다.


토니우스는 거기서 더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바실리스크의 독샘이 거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날 막스와 레비롱이 막대한 돈을 가지고 룰루랄라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개인적인 지명 의뢰 완료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지만 의뢰인은 베레 시에 들어온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자금의 흐름을 추적한 끝에 몇 개나 되는 유령상회를 거쳐 케나스가 입금한 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니우스는 자신의 안일함으로 인해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토니우스는 주저앉아서 슬퍼하기보다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먼저 수전노인 수잔에게는 막스와 레비롱이 독샘을 빼돌려 자기들끼리 돈을 나눴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수잔은 바로 분노하며 토니우스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시세로는 설득하는 것이 까다로웠지만 배신자를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냐는 토니우스의 설득에 넘어가 동참하기로 하였다.


막스와 레비롱은 케나스라는 뒷배를 믿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독샘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들킬 리가 없다고 자신하는 것인지 방심하였고 토니우스는 타이런트 베어 새끼 납품 때 방심하고 있던 그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케나스는 마치 토니우스가 그들을 처리할 줄 알았다는 듯이 미리 레비롱과 막스 몫의 인건비를 빼버렸다.



'너무 성급했어. 막스와 레비롱을 처리했을 때 케나스는 눈치챈 거야. 내가 놈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스파이라는 걸'



토니우스는 케나스도 처리할까 생각했지만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었기에 복수를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막스와 레비롱이 바실리스크 독샘을 처분하고 그게 결국 케나스에게 넘어간 것까지는 추적했지만 그 다음은? 그 독샘은 누구에게 넘어갔지?'



케나스가 자신이 입수한 바실리스크 독샘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아주 비싼 값에 팔아 치웠다는 정보를 뒤늦게 입수한 것이다.

케나스가 독샘을 팔아넘긴 자야말로 토니우스의 진짜 원수였고 그 원수의 정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케나스의 정보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케나스가 진짜 원수가 아니라 중개상에 불과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을 때는 이미 막스와 레비롱을 처리해버린 뒤였기에 케나스는 토니우스를 경계하며 의뢰를 끊어버렸다.



'감정에 휘둘려서 너무 안일하게 일을 처리했어. 최소한 케나스에게서 제대로 된 정보를 캐내고 막스와 레비롱을 처리했어야 했는데'



토니우스는 갑옷 정비를 끝마쳤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이 빛나는 갑옷은 없었다.

눈앞에 남겨진 것은 기사로서의 긍지를 잃은 토니우스와 마찬가지로 온갖 상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때 탄 갑옷 뿐이었다.



'발소리?'



그때 토니우스의 귀에 아주 희미한 발소리가 감지되었다.

그가 갑옷을 정비하고 있었다면 자기 스스로가 내는 소리에 파묻혀 절대 듣지 못했을 그런 작은 발소리였다.

토니우스는 즉시 갑옷을 입으며 생각했다.



'여관 주인의 발소리는 절대 아니야. 그 두툼한 여자가 낼 수 있는 작은 소리도 아니고, 여관 주인이라면 발소리를 숨길 일이 없지.'



토니우스는 여관 주인인 마담 루이스의 푸짐한 살집과 호탕한 성격을 떠올렸다.

그녀라면 이런 작은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발소리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발소리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토니우스는 갑옷을 입은 채로 천천히 방구석에 놔둔 검과 방패를 들고 촛대의 불을 입으로 훅 불어서 꺼버렸다.

하지만 커튼을 내려두지 않은 창문을 통해 밝게 빛나는 달빛이 검을 타고 흘러내리듯 반사되었다.

토니우스는 방패 밑에 검을 숨겨서 빛이 반사되는 걸 막았다.


지금은 제3야간시(자정 이후 3시간의 새벽시간), 문틈으로 보이던 불빛이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희미한 발소리는 토니우스의 방 밖에서 멈췄고 토니우스는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지금 그의 위치는 방문이 열렸을 때 방문에 완벽하게 가려지는 구석이었다.


상대가 암살자일지 좀도둑일지는 모르지만 방문이 열린 순간 상대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침대가 텅 비어있는 걸 눈치챌 때까지 걸릴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기회는 단 한번 뿐.


상대는 토니우스가 잠드는 걸 기다리는 건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방금 막 불이 꺼졌으니 아직 잠들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한 게 분명했다.


토니우스는 천천히 왼손으로 방패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검을 들고 찌를 태세로 기다렸다.

긴장상태로 문 밖의 불청객과 토니우스는 벽 하나를 둔 채 계속 기다렸다.

마치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대치 상황 속에서 토니우스는 상대가 단순한 좀도둑일지 아니면 암살자일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렇게 대기상황이 계속되던 무렵, 자물쇠가 희미하게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락픽으로 열고 있어!'



상대는 자물쇠를 강제로 여는 것이 미숙한지 계속 덜그럭거리면서 자물쇠를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막스였다면 수십 개는 더 열어버렸을 시간동안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계속내던 중, 갑자기 문 밖에서 나무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문을 강제로 부수려는 건가?'



그러나 토니우스가 예상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전혀 숨길생각이 없는 발소리가 쿵쿵거리며 계단을 타고 내려가 버렸다.

토니우스는 바짝 긴장한 채 구석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사라진 기척은 다시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토니우스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토니우스의 방문 앞에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부러진 락픽 하나가 쓸쓸하게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설마 자물쇠 여는 걸 실패해서 그냥 가버린 건가?"



토니우스는 땅에 떨어져 있는 부러진 락픽을 들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상대는 좀도둑이 맞았지만 도둑질을 몇 번 해본 적이 없는 초보 도둑인 모양이었다.

도둑이 자물쇠도 못 따고 제 풀에 지쳐서 그냥 가버리다니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한 토니우스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혹시나 그 어리숙한 도둑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 일단 기다려보자고 생각하며 무거운 방패를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검을 바라보던 중, 토니우스는 갑자기 방안이 지나치게 어두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달을 구름이 가린 건가 하고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본 순간, 토니우스는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던 자와 눈이 마주쳤다.



"레비롱?"



상대로부터 대답은 없었다.

아무리봐도 이미 죽은 레비롱으로 보이는 누군가는 손에 들고 있던 스크롤을 찢고 허리춤의 대검을 뽑아들고 토니우스에게 달려들었다.

토니우스는 검과 방패를 쥐고 자리에서 다리힘 만으로 일어나 대검을 방패로 막아냈다.



'레비롱은 이미 죽었어! 그렇다면 암살자가 변신마법이나 환영마법을 걸치고 들어왔군!'



검과 방패가 충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금 그 스크롤은 침묵 마법을 발동시키는 스크롤임에 틀림이 없었고 토니우스는 냉철하게 상대를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역시 레비롱이 아니야! 힘 쓰는 방식이 달라!'



예전에 연습 삼아 레비롱의 대검을 받아냈을 때 레비롱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의 힘을 더 강하게 주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습격한 이 정체 모를 암살자는 레비롱과 똑같이 생겼지만 왼손 쪽으로 더 무식하게 많은 힘을 주고 있었다.

토니우스는 방패로 대검을 밀어내며 거리를 좁히며 롱소드를 휘둘렀고 상대는 오른손으로 대검을 쥔 채 왼손으로 허리춤의 단검을 빼들고 롱소드를 받아쳤다.



'레비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케나스와 그 부하들, 거기에 조용히 일을 처리한 모험자 길드 상층부 뿐! 그렇다면 역시 케나스가 보낸 암살자일 확률이 높겠지.'



굳이 죽어버린 레비롱으로 변장하고 암살자가 들이닥친 이유는 여러가지 일 것이다.

토니우스의 혼란을 유발하는 것과 동시에 만에 하나 목격자가 남더라도 목격자들은 레비롱을 보았다는 사실만 남게 되니 진짜 암살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토니우스는 자신이 기사라 디스펠을 사용할 수 없는 걸 천추의 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진짜 레비롱보다 훨씬 강하니 단번에 숨통을 끊는 건 힘들겠어. 시간을 끌면서 변신마법이 해제되는 걸 기다릴까? 변신마법이나 환영마법의 지속시간이 얼마나 되지?'



대검과 롱소드, 방패와 단검이 서로 연달아 충돌하고 튕겨나가고, 빗나가면서 토니우스의 여관 방의 가구들은 천천히 목재 쓰레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 마법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 기이하고 인공적인 고요 속에서 토니우스는 생각했다.



'암살자는 이놈 하나인가? 침묵 마법을 쓴 이유가 단지 목격자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증원이 오는 걸 내가 모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있지?'



만약 케나스가 암살자를 보낸 것이라면 혼자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팀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고 토니우스는 지금 생존을 위해서 빠르게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토니우스는 고민하다가 끝내 결단을 내렸다.


토니우스는 암살자가 휘두르는 대검을 피한 뒤 반격하는 대신 그대로 방패를 앞세워 창문으로 돌진하였다.

방패로 창틀을 부수고 밖으로 뛰쳐나오자 침묵 마법의 범위에서 벗어나 다시 소리가 들려왔고 토니우스는 2층에서 뛰어내려 저릿한 다리를 강제로 움직여 뛰기 시작했다.



'좋아! 주변에는 없어! 아무래도 암살자들은 전부 여관 안에 있었나보군! 아까 그 락픽으로 부수는 걸 실패한 도둑은 나를 방심시키기 위한 또 다른 암살자의 연기가 분명해!'



토니우스는 암살자가 최소 2명이고 어수룩한 좀도둑은 그를 방심시키기 위한 또 한 명의 암살자의 연기였다고 생각하며 거리를 질주하였다.

뒤를 돌아보니 2층의 자신의 방에서 고개를 내미는 암살자와, 1층의 입구에서 회색 수도복을 입은 누군가 나오는 게 보였다.

이미 깊은 밤이 찾아와 거리는 불빛이 없었으나 저 멀리 베레 시의 높은 성벽 위에는 불침번 업무로 성벽 위를 도는 병사들이 보였다.

토니우스는 거리가 꽤 멀었지만 저 멀리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봐! 이쪽..."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토니우스 자신의 입이 막힌 것이 아니라 아까 전 암살자가 침묵 마법 스크롤을 발동시켰을 때처럼 마법에 의한 소리차단이었다.

토니우스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벌써 2파수스(약3m)거리, 그야 말로 코앞까지 따라와서 대검을 휘두르는 암살자가 있었다.



'젠장! 스크롤을 하나 더 사용한 건가?! 침묵 마법이 이렇게나 성가실 줄이야! 마법과 근접전투를 동시에 충족시킨 실력자가 이래서 무서워!'



토니우스는 그러면서 아까 여관 입구에서 본 회색 수도복을 입은 또 다른 암살자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쪽은 이 변장한 암살자만큼 발이 빠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 녀석의 속도는 무거운 갑옷을 걸친 나보다 훨씬 빨라! 떼어내는 건 힘들고 이대로 시간을 보내면 여관에 남아있는 2번째 암살자가 합류할 테니 지금 여기서 어떻게든 처리해야 해!'



토니우스는 자신보다 속도가 빠른 적을 떼어 놓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기에 결단을 내렸다.

상대는 왼팔 쪽의 반응이 이상하리만치 느렸다.

숙련된 전사인 토니우스는 그 사실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고 기회를 엿보았다.

연속되는 맹공을 받아내던 중, 마침내 토니우스는 자신이 기다리던 타이밍을 캐치하였다.


토니우스는 고의로 엇박자로 검을 휘두르며 틈을 보인 뒤, 그 틈을 노리고 대검을 횡으로 휘두르는 암살자의 오른손을 방패 째로 찍어버렸다.

그러나 암살자는 토니우스가 방패를 내려서 가드가 풀린 걸 보고 오히려 웃으면서 왼손으로 단검을 쥐고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의 왼손의 반응이 느리다는 걸 알고 있는 토니우스가 한 발 빨랐다.

토니우스는 오히려 거리를 벌리지 않고 롱소드를 놔버리고 돌진했고 암살자는 토니우스의 돌발행동에 반응이 늦어졌다.

단검은 토니우스가 고의로 들이민 견갑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가 토니우스의 귀를 찢어냈을 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고 토니우스는 그대로 앞으로 뻗은 암살자의 왼팔을 양손으로 붙잡고 관절기를 걸었다.


토니우스의 두 팔을 타고 암살자의 왼팔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뒤틀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침묵 마법 때문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뼈가 부러지는 감촉에 토니우스는 승리를 확신하였다.

암살자가 급히 토니우스를 발로 차서 떼어냈지만 암살자의 왼팔은 축 늘어진 상태였다.



'좋아! 한쪽 팔을 박살냈으니 이젠 내 쪽이 유리해! 이제 여관 쪽에서 달려올 또 한 명의 암살자만 조심하면 되겠...'



그러나 토니우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암살자는 부러져서 축 늘어진 왼팔을 오른손으로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며 뼈의 위치를 맞추려고 하더니 이내 왼팔이 다시 멀쩡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돼! 분명 뼈를 부러뜨렸는데!'



토니우스는 상대가 포션을 섭취하거나, 치료 마법을 사용하는 걸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상대의 왼팔은 다시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암살자가 다시 양손으로 대검을 들고 휘둘렀고, 토니우스가 방패로 막아냈을 때 느껴지는 그 힘은 절대 한쪽 팔 뼈가 부러진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고통을 지우는 마약이나 마법약을 복용한 건가? 아니야, 제 아무리 그런 약이라도 해도 저런 대검을 휘두르며 생기는 충격까지 무효화 시킬 수는 없어!'



토니우스는 일단 갑옷을 믿고 도주해서 경비병들과 합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암살자는 대검을 땅에 박아놓고 3번째 스크롤을 꺼냈고 토니우스는 암살자가 스크롤을 찢는 걸 보고 또 침묵마법이라고 생각하며 뒷걸음질 쳐서 거리를 벌리려고 하였다.



'거미줄?!'



그러나 뒷걸음질치는 그의 등에서 갑자기 뭔가 걸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골목길에 어느새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토니우스는 이것이 마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거미줄 생성 마법이며, 방금 막 암살자가 찢은 스크롤의 정체가 거미줄 생성 마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면에 있는 레비롱으로 변장한 암살자는 벌써 연금술로 만든 불꽃 항아리를 꺼낸 상태였다.



'그, 그만둬!'



토니우스는 그만두라고 소리쳤지만 침묵 마법은 그의 목소리를 지워버렸다.

암살자는 무자비한 손길로 불꽃 항아리를 토니우스에게 던졌고, 토니우스가 항아리를 깨지지 않게 방패로 쳐내려고 했지만 어느새 방패에 까지 거미줄이 달라붙어 있었다.

거미줄이 달라붙은 방패에 부딪친 불꽃 항아리는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뒤이어 날아든 돌이 항아리를 깨버렸고 순식간에 불꽃이 넘쳐나며 방패에 달라붙은 거미줄을 타고 토니우스의 온몸으로 번져버렸다.



'끄아아악!!'



급히 방패를 버리고, 갑옷을 벗어던졌지만 피부가 그을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토니우스는 갑옷까지 벗어던지고 땅을 뒹굴며 몸에 붙은 불을 끄는데 성공하고서야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몸을 굴리는 중에 침묵마법 범위를 벗어난 것인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토니우스는 자신의 앞에 나뒹구는 검을 잡으려고 했으나 토니우스의 손보다 먼저 검에 닿은 발이 검을 옆으로 차버렸다.

검도, 갑옷도, 방패도 잃어버린 그의 앞에 레비롱으로 변장한 암살자가 대검을 들어올렸다.



"케나스한테 전해라. 날 죽인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고! 베레 시는 언젠가는 네놈들이 없던 시절의 영광과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뭔 개소리야? 케나스가 뭐?"



암살자는 토니우스가 죽음의 공포로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얼굴로 물었고 토니우스는 케나스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암살자의 반응에 되려 당황하며 물었다.



"케나스가 보낸 게 아니었나? 굳이 이미 죽은 레비롱으로 변장까지 해서 날 암살하려는 놈이 케나스 말고 있을 리가..."



케나스가 보낸 게 아니라는 말에 토니우스는 자신을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할 베레 시의 지방유지가 누구일지 생각해보았지만 그보다 전에 암살자가 먼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변장? 하하하하! 설마 변장이라고 생각했어? 어쩐지 내 얼굴을 봐도 시세로나 수잔과는 달리 별다른 반응이 없더니만 변장이라고 생각했구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그럼... 레비롱?"



토니우스가 진실을 깨닫고 경악하는 것을 레비롱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토니우스의 참수된 머리는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눈앞에 보이는 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얼굴로 굳어져 버렸다.

토니우스의 잘려나간 머리는 피가 빠져나와 더는 뇌가 사고를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사지가 절단되고 타이런트 베어에게 파먹히던 레비롱이 자신의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고, 거듭하고, 또 거듭했지만 결론을 내리기 전에 토니우스의 의식은 끊어지고 말았다.


작가의말

어떻게 락픽 체크를 5번 했는데 다 실패할 수가 있지


이 글은 비정기적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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