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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성칭 밑의 피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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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23.05.20 20:59
최근연재일 :
2023.08.13 23:5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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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글자수 :
805,772

작성
23.07.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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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4화

DUMMY

꿈을 꾸었다.

이제는 너무나도 머나먼 과거의 꿈.

아버지는 그녀에게 가문이 얼마나 풍족하게 살았는지 말해주고는 이젠 그 영광스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자신들은 의무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얌전히 시골 주민으로 가늘고 길게 살아가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불만을 가졌다.

선조의 죄를 물려받으려면 뭔가 받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받은 적이 없는 이가 죄만 물려받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녀는 지위 상승은 몰라도 돈을 벌 생각조차 하지 않는 마을이 싫었다.

그녀는 높은 신분으로 돌아가는 건 관심이 없지만 풍족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 가출했다.

이미 세상이 험악하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을 시기였고 그녀는 능숙하게 도둑질과 사냥으로 끼니를 보충하며 위로, 더 위로 향했다.


세상 밖으로 나와서 느낀 불만과 감상 그 어느 쪽이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끝내 대륙 북부의 에트루리아 왕국, 그중에서도 인간이 진출한 끝자락인 베레 시까지 와서 범죄조직에게 살랑대고, 베레 시의 지방유지들에게 아첨하고, 모험자 길드에 가입하여 마침내 뒷세계 거물인 케나스 밑에서 일했다.


그러나 돈은 만족할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이게 정말 그녀가 원하던 삶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걸 금방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자비롭지 않다.



"아악!"



꿈에서 깨어난 그녀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아픔이었다.

이마는 물론이고 뒤통수, 관자놀이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그녀가 장기 투숙하는 여관이 아니라 검푸른 마석등으로 빛나는 실험실의 살벌한 광경이었다.



"이 고보 좆 같은..."


"일어나서 욕할 기운이 있어서 다행이군."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똑같은 방향에서 똑같은 타이밍에 꾀죄죄한 수도복을 입은 자는 후드를 벗었다.

드러난 것은 그녀의 머리카락과 다른 검푸른 색깔의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의 얼굴이었다.



"나는 파우스, 네 생명의 은인이다."


"개수작 집어치워 미친놈아. 어떤 놈이 수면초랑 독한 술도 없이 머리 뚜껑을 따고 수술하냐!"



레비롱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잡고 연신 욕을 날렸고 파우스는 그 어떠한 반응도, 말도 없이 레비롱의 앞에 작은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거울에 비춰진 모습을 본 레비롱은 자신의 이마를 만져보면서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나 왜 멀쩡하지?"



팔다리가 없는 건 똑같지만 어째서인지 머리카락이 붙어있고, 이마와 머리에 살점을 가른 흔적도 없었다.

설마 그 모든 것이 그저 꿈이었단 말인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레비롱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머리카락이 심하게 움직인다는 걸 깨닫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거울에 손에는 가발을 들고, 머리에는 아주 짧은 머리카락조차 없는 레비롱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역시 꿈이 아니었잖아 씹새꺄!"


"머리카락을 자른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다. 하지만 절개한 부분의 재생 및 처리는 확실하게 끝내놨다."



레비롱은 주먹을 휘둘렀지만 파우스에게는 닿지 않았다.

파우스는 레비롱이 자신을 때리려는 걸 보고도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3일 동안 깨어나지 않아서 다시 머리를 열어서 확인해봤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수술은 성공으로 끝났지."



그 말을 들은 레비롱은 역시 이놈은 미친 광인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동시에 그 정신 나간 수술을 2번이나 받고도 끝내 일어난 자신의 체력에 감사했다.

레비롱은 여러 생각을 하면서 가슴속에 가득 차 있는 분노라는 이름의 증기를 조금씩 빼내고 파우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수술 효과가 뭔데? 지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잖아. 팔다리 없는 고깃덩이에서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효과는 천천히 알게 될 거다. 그보다 다음 수술에 대해 설명할 건데 괜찮겠나?"


"또 머리통 따는 건 아니지?"



이제 그런 경험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듯이 레비롱이 발작하면서 묻자 파우스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황금빛 눈동자에 레비롱을 담으며 말했다.



"다음 수술은 장기이식이다. 가슴에 할 예정이다."


"그나마 좀 낫네 이번에는 수면초랑 독한 술 쓸 거지?"



레비롱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말했으나 파우스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술 기운은 환자에게 치명적이다. 사용하지 않는다."


"수면초는?"


"네가 의식이 깨어있는 마취제를 싫어하니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정말 다행이네"



파우스는 별로 마음에 안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고 레비롱은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심할 때가 아니라는 듯이 파우스는 레비롱에게 말했다.



"안 좋은 소식과 좋은 소식이 2개씩 있는데 뭐부터 들을 거지?"


"좋은 소식부터"



이미 죽을 고비를 2번이나 넘겼는데 이 이상 안 좋은 일이 뭐 있겠냐는 심정으로 레비롱이 말했고 파우스는 무감정한 목소리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주었다.



"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주변을 탐사해서 조금 상한 포션을 가져왔다. 정화 및 정수를 통해 걸러내서 제대로 된 포션으로 재생시켰지. 두번째는 네가 자는 사이에 테스트를 해봤는데 이식할 장기와 적합성이 높다는 거다."



상상 이상으로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쁜 소식이 이만큼 좋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레비롱은 침을 삼키고 잠깐 침묵의 시간을 가진 뒤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좋아, 그럼 나쁜 소식은?"


"첫 번째는 네 팔다리를 보관하는 용액의 재고가 다 떨어졌다. 최대한 빨리 이번 수술을 끝내고 접합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안건이었다.

신체 부위가 썩지 않게 보관해주는 용액의 가격이 비싸다는 건 레비롱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이 수술실에 처박히고 최소 일주일은 지났으니 용액을 몇 번 갈아줬다면 재고가 남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 나쁜 소식은?"


"다른 마취제는 어느 정도 재고가 있지만 네가 그렇게 원하는 수면초는 수술 1회 분량 밖에 안 남았다. 사지 접합 수술 때 사용할지, 이번 이식 수술에 사용할지 선택해라."



정말 최악의 소식에 레비롱은 절망했다.

그녀는 자신의 수호신들은 이미 죽었거나 자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몰려오는 두통을 참아내며 물었다.



"치유사로서 어느 쪽을 추천하는데?"


"시중에 보통 나돌아다니는 수면초는 흉부 절개 같이 큰 고통이 수반되는 수술에서 환자가 깨어날 위험이 있다. 차라리 똑같이 깨어나더라도 목숨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사지 접합 수술 때 사용하는 게 좋지."



독한 술을 먹이고 수면초를 달여 먹였는데 수술 중 깨어나 고통 때문에 난동부린 환자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터나 몬스터가 득실대는 지역에서 흔히 들려오는 이야기다.

레비롱 역시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주 약간이지만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싫은 건 싫은 것이었다.



"당신이 쓰는 잠들지 않는 마취제랑 섞어 쓰면 안돼?"


"완벽하게 정제된 마취제에 제대로 성분을 걸러내지 않은 수면초를 섞어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은 없다. 내가 수면 마취 경험이 더 많거나 소지한 마취제 종류가 더 많았다면 시도해봤겠지만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약이 한정되어 있다."



한마디로 축약하면 사용한 적 없는 마취제는 취급 못한다는 소리였다.



"뭐든지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면서 왜 다른 마취제는 안 써봤는데!"


"이런 문명과는 거리가 있는 장소에서 마취제 수급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나?"


"..."



너무 정론이라 레비롱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이젠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수술대 겸 침대 위에 축 늘어져서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눈을 감았다.



"지금 당장 수술하는 게 아니니 원한다면 이번 수술에 대해 설명하지."


"그래그래, 내 몸뚱아리를 어떻게 조져버릴지에 대한 설명을 즐겁게 듣도록 할게"



레비롱은 이젠 잡아먹든 구워 먹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말했지만 파우스는 아무런 감정 변화도 없이 사람 머리통 만한 투명한 수정을 깎아 만든 통 하나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파란색 불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맥동하는 초록색의 덩어리가 있었다.



"이건 알하우네의 변종에게서 뜯어낸 장기다. 이 특이한 변종은 모아 놓은 마력을 마석이 아니라 새로운 부위를 만들어 축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마력응축체를 소비해서 몸에 여러가지 효과를 부여하지. 이 변종의 장기를 몇 번 더 개조한 뒤 마력을 품고 있는 여러 장기 및 물건을 먹혀서 완성시켰지."


"내 몸에 그딴 걸 박아 놓겠다고?"



몬스터의 신체 일부가 몸에 기생한 모험자들의 결말에 대해서는 굉장히 드물지만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 대부분의 결말은 처음에는 그저 감각도, 움직임도 없다가 어느 순간 몬스터 부분이 몸으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여 다시 몬스터의 몸으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치다 숙주와 함께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로 끝나고는 했다.



"그게 내 피를 죄다 빨아 먹고 괴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데?"



그러자 파우스는 말 없이 레비롱의 왼쪽을 가리켰다.

파우스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레비롱은 자신의 사지를 보관하는 시험관들을 보았고 그 중에서도 타이런트 베어에게 뜯어 먹힌 왼팔이 어느새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왼팔의 절단면에서 초록색의 섬유 같은 것이 조금 뻗어 나와 있는 모습은 색깔만 조금 이상할 뿐 절단된 평범한 인간의 팔과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자는 사이에 테스트를 해봤는데 이식할 장기와 적합성이 높았다고."


"..."



레비롱은 이놈은 미쳤지만 이성을 일부 유지한 채 미친 게 분명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이 미친놈에게서 달아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목적을 전환하였다.



"나 소원이 하나 있는데"


"뭐지?"


"한 대만... 딱 한 대만 네놈의 그 쓸데없이 잘생긴 면상을 때리게 해줘. 그러면 속에 쌓인 화가 풀릴 거 같아."



지금까지와는 달리 진심, 염원, 간절함의 3박자가 딱 맞게 깃들어있는 레비롱의 소원을 비는 말에 파우스는 단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건 거부하지. 잘못해서 눈 같은데 맞았다가는 수술하는데 지장이 생기니"



레비롱은 칼 같은 거절에 좌절하며 몸에서 힘이 쭉 빠져버렸다.

뒤늦게 그녀는 자신이 굉장히 허기진 상태라는 걸 깨달았고 먹을 것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요청하기도 전에, 파우스는 옆에 가져온 나무 상자를 열고 나무 그릇에 담긴 스튜와 아주 잘게 썬 치즈를 꺼내며 말했다.



"밀이나 쌀, 감자가 없어서 일단 고깃국을 끓여왔다. 먹고 다 소화되면 다음 수술 시작하지."


'오 위대한 포르투나시여! 지금까지 제 소원을 안 들어주셨으니 이번 딱 한번만! 이번 소원만 들어주소서! 이 재수없는 놈 아굴창에 주먹 한번만 날릴 수 있기를! 하지만 동시에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니 딱 그 다음부터 이 남자의 일이 잘 풀리기를!'



레비롱은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격언을 가슴에 새기며 하나밖에 없는 팔로 고깃국을 떠서 입에 넣고 잘게 썬 치즈를 먹었다.

고깃국은 소금 간을 아주 조금만 한 것인지 밍밍했고 치즈 역시 그리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



"젠장... 젠장!"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어렸을 때 소금이 부족했던 어떤 날, 아버지가 힘들게 잡아온 짐승을 마을사람들과 다 같이 나눠서 고기 한 점 보이지 않던 밍밍한 그 고깃국이 떠오르는 맛이었다.

만약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뵙고 그동안 풀지 못했던 한을 풀어야 하나 생각한 그녀의 머릿속에 추가로 떠오르는 것은 잘려나간 자신의 팔다리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지 생각하던 중 레비롱은 자신을 배신한 3인방의 얼굴을 간신히 떠올렸다.



'그래, 이 지옥 같은 장소에서 팔다리를 붙이고, 복수를 해야 해.'



파우스는 비록 미친놈이긴 해도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배신하고 막스를 죽인 3명은 피의 값을 치러야했다.

만약 그들이 레비롱과 막스에게 물건을 빼돌린 걸 추궁하면서 돈을 요구했다면 막스는 어떻게 나왔을지 몰라도 그녀는 투덜거리면서 돈을 돌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핏값으로 돈을 보충하려고 했다.

상대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피로 갚으려고 했다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이쪽도 피로 갚아주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꼭 살아남아서 풀지 못한 일들 다 해결하고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범죄에는 손대지 말고 합법적인 일들 하면서 조용히... 그리고 충분한 돈이 모이면 고향에... 고향에 돌아가기 좀 그런데... 어디 조용한 곳에서 살자'



이번만, 이번 한 번만 복수의 여신께 피 흘릴 허락을 구하고 그 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떳떳하지 못한 일은 하지 말자고 결심하고 있는 그녀의 옆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그녀를 흔들었다.



"고깃국에 왜 눈물을 섞고 있지? 환자식은 간을 세게 하면 안되서 소금을 조금만 넣었건만 그렇게나 간을 세게 해서 먹고 싶다면 말로 해라. 다시 간을 해서 가져다주겠다."


'포르투나시여, 죄송하지만 소원을 바꿔도 되겠나이까? 이 인간 딱 2대만 때리게 해주소서!'



하지만 포르투나 여신에게는 응답이 없다.

아무래도 자고 있느라 응답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작가의말

이 글은 비정기적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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