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766,769
추천수 :
28,912
글자수 :
2,157,900

작성
19.11.17 11:00
조회
4,545
추천
174
글자
12쪽

시대의 발소리 #17

DUMMY

"하로나스 님"


[당신도 고생이 많았어요 헤카. 당신이 매일 밤 이 신전에서 기도를 올렸던 걸 봤답니다]



그 빛속에서 해방된 물의 여신은 헤카를 꽉 안아주었다.

물과 나무로 이루어진 여신이 나뭇가지와 뿌리로 형성된 정령왕을 안아주자 헤카는 눈에서 빛나는 황금빛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일개 필멸자들이 눈을 뜰 수 있을 정도로 빛이 잦아들고서야 신전에 있던 국왕 필리우스 2세는 신성한 여신을 볼 수 있었다.



[필리우스 아누샤람, 필리우스 1세의 아들 필리우스 그라이키아여]


"여신이시여"


[나는 그대가 훌륭하게 동포를 이끄는 걸 보고 있었다. 그대의 헌신과 조상들에 대한 공경은 보답받으리라]



여신은 국왕의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국왕은 즉시 바닥에 엎드려 공경을 표했다.

여신은 국왕을 지나쳐 신전 밖으로 나와 계단 위에 섰고,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팔라딘과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오랜 침묵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다시 신들 사이의 전쟁이 시작될지니 그대들은 그 어떠한 시련에도 나를 따르겠는가? 거짓없이 진심으로 나를 섬기겠는가?]


"예!"



여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케트라 산 전체를 진동시켰으나 그 떨림마저도 필멸자들의 마음속에 싹트던 의심을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그들은 여신의 성스러운 오라와 목소리에 한순간에 매료되어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지금은 자리를 비웠으나 앞으로 깨어날 만신전의 다른 신들을 존중하고 공경하겠느냐? 그들 휘하의 종족들을 차별없이 동료로서 받아들이겠느냐?]


"예! 물론입니다 여신이시여!


[그렇다면 좋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맹세가 다시 이루어졌으니 만신전의 부활을 선포하노라!]



2천년 전과 마찬가지지만, 그때보다도 더 거대하고 우렁찬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번에도 포이부스는 옆에서 맹세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맹세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있던 신들이 자극을 받아 신들 사이의 다툼이 다시 시작될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포이부스는 여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감히 아룁니다 하로나스 님. 지금 깨어나 있는 만신전의 신들은 프레두스 님과 하로나스 님 두분 뿐입니다. 남은 여섯 신들을 빠른 시일 내로 깨우지 못하면 우리의 전력은 반의 반도 회복되지 못할 것입니다."


[포이부스, 나의 사제여. 그대의 말이 맞습니다. 당장 다른 여섯 신들의 봉인을 수색할 원정대를 구성하세요! 모든 물자와 인원을 징발하는 걸 허가합니다. 저는 원정대 구성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조금 '대화가 필요한 신'이 있으니까요]



여신 하로나스는 악신들을 의미하는 말을 하며 이를 갈았고 포이부스는 잽싸게 프레두스의 소환을 시작하였다.

프레두스가 격렬하게 저항하며 오지 않으려는 게 느껴졌지만 포이부스는 소환 시행의 권한을 하로나스에게 넘겼고, 하로나스는 소환을 거부하고 있던 프레두스를 바로 끄집어냈다.



[포이부스 미친놈아 왜 나를 지금 부르고 난리야!]


[잠깐 '대화' 좀 할까 프레두스?]


[기다려 하로나스! 나는 반대했어! 그거 넣자고 꼬신건 이그니랑 알고로스 녀서... 갸아아악!]


뚜두둑!



강제로 소환된 프레두스는 바로 하로나스에게 붙잡혀서 응징을 당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국왕과 헤카와 포이부스는 신전에서 나왔고 포이부스가 대표로 신전 앞에 모여있는 이들에게 외쳤다.



"하로나스 님의 명이 떨어졌다! 지금부터 만신전의 신들을 깨우기 위한 원정대를 구성한다! 길이길이 전설로 남을 원정에 참가할 용사가 있는가!"


척!



그 순간,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팔라딘 12명 전원이 손을 들었다.

6개월에 한번만 휴가를 나가고 남은 시간은 전부 신전을 지키는 지루한 삶에 질려버린 자들의 케트라 산을 탈출하겠단 열망은 치킨을 노리는 포이부스의 눈빛만큼이나 강렬했다.


그러면서 팔라딘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감히 우리가 원정대에 소속되는 걸 막는 버러지 같은 놈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위협적인 눈빛을 보냈고 '그럼 신전은 누가 지킵니까?'라고 말을 하려던 템플리 나이트의 마스터 나이트들이 입을 다물었다.



"흐음, 그래도 2명 정도는 신전을 지켜야 할 거 같은데"


"힘이라면 제가 자신있습니다!"


"이 머저리보다는 똑똑한 제가 훨씬 도움될 겁니다!"



포이부스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을 하자마자 팔라딘들은 바로 사방으로 흩어져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며 자신의 특기를 어필하기 시작하였다.

포이부스는 그런 팔라딘들을 무시하고 마스터 나이트들에게 말했다.



"나와 함께 가주겠나 마스터 드루수스?"


"영광입니다"


"이 치사한 새끼! 선배들이 어떻게든 참가하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휘익! 뻐억!


"신전 지킴이 한 명 확보"



팔라딘들 사이에서 마스터 드루수스를 욕하는 자가 나왔지만 포이부스는 바로 불의 채찍을 휘둘러 욕을 하던 팔라딘을 신전 쪽으로 날려버렸다.

그걸 본 팔라딘들은 공포에 질려서 움직임을 멈췄고 포이부스는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남은 팔라딘들에게 말했다.



"케트라 산에서 산림욕 좀 더 하고 싶은 사람? 참고로 지금까지 있던 6개월에 한 번 수도로 나가는 휴가제도도 폐기할 예정이다."


도리도리



팔라딘들은 그나마 있던 휴가도 없애버리겠다는 엄청난 발언에 공포에 질려서 입조차 열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고개만 저었고 포이부스는 누굴 남겨놓을지 궁리하며 팔라딘들을 훑어보았다.



"뭐, 사실 하로나스 님도 깨어나셨으니 더는 지킬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왕국에 2명 정도는 남겨놓는 게 좋지 않냐?"


"지킬 필요가 없다니요?"


"그럼 지금까지 신전을 지켜온 우리들의 노력은 뭐란 말입니까!"


"지금까지 신전을 지키라고 했던 건 신들께서 없으신 동안 혹시나 다른 신의 간자가 신전의 성수를 가지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그런 거고 이제 하로나스 님께서 깨어나셨으니 그럴 걱정은 없다 이말이다."



팔라딘들이 항의했지만 포이부스는 그러면서 턱짓으로 신전을 가리켰고 잠시 후 신전이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몰라 눈만 깜빡이던 팔라딘들을 보고 포이부스가 자신만만하게 설명을 해주려고 했으나 팔라딘들이 한 말은 포이부스가 예상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방금 신전 계단에 누워있던 마르세우스는?"


"...아"



방금 신전이 사라진 건 하로나스가 창조신에게 받은 보상인 제한적 이계 생성권을 발동시켜 신전을 안전하게 자신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이계로 옮긴 것이었으나 하필 방금 막 포이부스가 신전 지킴이라면서 날려보낸 팔라딘도 함께 이계로 빨려들어가 버린 것이다.

포이부스는 잠깐 눈치를 보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큼큼, 하로나스 님의 곁으로 간 거다. 영광으로 알아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죽은 것 같지 않습니까"


"영영 못 돌아오지는 않... 을까?"



일개 필멸자가 이계로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포이부스의 의혹이 섞인 목소리에 팔라딘들은 다함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고이 잠들기를 마르세우스"


"마르세우스 네가 나한테 빌려간 1솔리두스는 노잣돈으로 가져가라"


"나한테 빌려간 15아르겐툼 은화는 갚아주길 바랬는데 어쩔 수 없지."


"마르세우스, 내가 너한테 빌린 3아르겐툼은 잘 먹겠다"


"사실 너 팔라딘 되기 전에 소시지에 실수로 땅콩 넣은 거 나였다 마르세우스. 부디 나를 용서하기를"


"야! 나 안 죽었어!"



그러나 팔라딘들이 기도를 올린지 5초도 안되서 공간이 열리더니 신전과 함께 빨려들어간 팔라딘이 튀어나왔다.

팔라딘들은 다시 서로 잡아뜯고, 주먹질하고, 물어뜯는 추한 싸움을 이어갔고 그동안 포이부스는 템플리 나이트들 사이에서 3명을 더 선발하고 있었다.



"저기, 시조님?"


"왜 그러는가?"


"그냥 저 망나니들 다 데려가시면 안될까요? 제가 감당이 안되서요"



국왕 필리우스 2세는 팔라딘들의 기행에 지쳐버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했고 포이부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알았다 저 망나니들은 내가 책임지고 엘프로 되돌려놓으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이꾸이"



그때 눈치없이 마가렛에게 맡겨놨던 업진살 통통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배가 고프다는 의미였고 아직 아침도 안먹었다는 걸 기억해낸 포이부스는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배도 출출한데 아침 식사나 하자!"



##



케트라 산에서의 식사가 끝나고 국왕과 근위대는 필요한 물건들을 포이부스에게 준 뒤 수도 스도티르로, 케트라 레기온의 지휘관들은 산 밑의 진지로, 템플리 오더의 기사들은 대부분 중턱의 요새로 돌아갔으나 산 정상의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19명하고도 한마리와 정령 하나가 남아있었다.

팔라딘 12명과 템플리 나이트 4명, 포이부스, 마가렛과 에라스 커플과 업진살 통통이, 마지막으로 나무의 정령왕 헤카였다.



"방금 식사하면서 하로나스 님과 프레두스 님께 신들이 잠들어 있을 걸로 추정되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다. 불의 신과 대장장이 여신님은 곤드 대륙에, 에우레테 님과 욕망의 신, 불화의 신은 레무 대륙에, 마법의 신 올'쏜 님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레무 대륙이나 아틀란 대륙에 계신 것 같군."


"어느 곳을 먼저 수색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가장 많은 신이 있는 레무 대륙으로 향한다. 그곳의 크나시아 왕가는 내 막내딸 레지나가 세운 왕국이니 잘 풀리기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설령 도움이 없더라도 지금 여기 있는 전력이라면 어지간한 방해에도 레무 대륙을 수색할 수 있겠지."



포이부스 혼자서도 잘만하면 나라 하나를 전복시킬 수 있는데 거기에 12명의 팔라딘들과 템플리 나이트 4명이 있으니 어중간한 위협 정도는 금세 돌파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들은 대부분 포이부스와의 싸움으로 무기가 상했지만 오래된 신전 옆의 무기고에 잠들어있던 무기와 갑옷을 꺼내 재무장한 상태였기에 문제는 없었다.



"레무 대륙이라! 300년 전에 한 번 간 뒤로 가본 적이 없는데 마음이 뛰는군요!"


"어라 오리스? 너 레무 대륙에 가본 적이 있었냐?"


"잠깐 임무 때문에 북동부 항구에 내렸었지 왜?"


"아니 군인이면서 잘도 여행다녔다고 생각해서..."



이젝투스는 오리스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고 그녀는 동료의 부러움을 담은 시선이 익숙하지 않은지 조금 쑥스러워하였다.



"지금 당장 출발할 건데 반대하는 엘프?"


"없습니다!"


"그럼 헤카, 이 아빠는 남은 신들을 깨우러 가마. 너는 엄마와 카론의 흔적을 찾아줘라. 국왕도 종종 도와주고"


"알았어 아빠. 몸 조심해"



아버지는 딸과 잠깐의 작별을 위한 인사를 하였고 정령왕은 다시 정령계로 돌아갔다.

산길을 내려가고 템플리 나이트의 요새를 지나면서 수많은 기사들이 축복의 말을 던져주었고 케트라 산의 입구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물자를 실은 2대의 짐마차와 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포이부스가 탈 황금빛 털을 지닌 말의 고삐를 쥐고 있는 건 다름아닌 케트라 레기온의 군단장이었고 그는 포이부스에게 말의 고삐를 넘겨주며 말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시조시여."


"어제 소동은 미안했네. 그대들에게 하로나스 님의 축복이 있기를!"


"히이이잉!"



템플리 나이트 중 세 사람이 2대의 마차의 마부석에 각자 앉고, 업진살 통통이는 자신만만하게 식량이 들어있는 마차로 올라타려고 했으나 다른 물자를 실은 마차에 탑승한 마가렛과 에라스에게 끌려나왔다.

업진살 통통이는 멀어져가는 식량들을 보며 구슬프게 울었지만 포이부스는 잔인하게도 출발신호를 내렸다.


그들이 케트라 산에서 나와 초원을 지나 수많은 엘프들의 도시를 지나는 것이 온갖 나라들의 간첩들과 신들의 눈에 포착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대륙에 파란을 몰고 올 거대한 폭풍에 대한 소문으로 확산되었다.


시대가 움직이는 발소리는 지상에 살고 있는 필멸자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원정대가 찾아낼 것이 세상의 구원일지, 파멸일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0 시대의 발소리 #16 +8 19.11.17 4,395 195 13쪽
49 시대의 발소리 #15 +7 19.11.16 4,436 178 15쪽
48 시대의 발소리 #14 +8 19.11.16 4,402 182 14쪽
47 시대의 발소리 #13 +5 19.11.16 4,383 171 14쪽
46 시대의 발소리 #12 +10 19.11.16 4,313 155 15쪽
45 시대의 발소리 #11 +9 19.11.15 4,322 170 11쪽
44 시대의 발소리 #10 +4 19.11.15 4,287 152 14쪽
43 시대의 발소리 #9 +6 19.11.15 4,307 174 13쪽
42 시대의 발소리 #8 +11 19.11.15 4,346 160 13쪽
41 시대의 발소리 #7 +10 19.11.14 4,362 144 13쪽
40 시대의 발소리 #6 +4 19.11.14 4,338 145 11쪽
39 시대의 발소리 #5 +6 19.11.14 4,497 141 14쪽
38 시대의 발소리 #4 +3 19.11.14 4,473 135 14쪽
37 시대의 발소리 #3 +7 19.11.13 4,656 154 15쪽
36 시대의 발소리 #2 +18 19.11.13 4,892 185 21쪽
35 시대의 발소리 #1 +27 19.11.12 4,938 176 23쪽
34 한 시대의 끝 #4 +31 19.11.12 4,800 207 18쪽
33 한 시대의 끝 #3 +7 19.11.12 4,600 187 17쪽
32 한 시대의 끝 #2 +14 19.11.11 4,653 197 17쪽
31 한 시대의 끝 #1 +12 19.11.11 4,753 187 18쪽
30 소금과 마약 #10 +4 19.11.10 4,715 169 14쪽
29 소금과 마약 #9 +7 19.11.10 4,747 183 16쪽
28 소금과 마약 #8 +7 19.11.10 4,998 159 20쪽
27 소금과 마약 #7 +8 19.11.09 4,979 181 17쪽
26 소금과 마약 #6 +12 19.11.09 5,098 186 20쪽
25 소금과 마약 #5 +7 19.11.08 5,203 176 22쪽
24 소금과 마약 #4 +9 19.11.08 5,275 174 25쪽
23 소금과 마약 #3 +9 19.11.07 5,343 188 19쪽
22 소금과 마약 #2 +17 19.11.07 5,303 225 22쪽
21 소금과 마약 #1 +8 19.11.06 5,393 190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