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766,380
추천수 :
28,912
글자수 :
2,157,900

작성
20.09.21 12:00
조회
1,172
추천
42
글자
19쪽

신대륙 #4

DUMMY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넘어서 보물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재가 알려져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수많은 왕국과 제국, 온갖 용병단들이 각자 꿈을 품으며 신대륙으로 향하는 지금 이 광경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명예를, 누군가를 충성을 위해, 누군가는 돈을 위해, 어떤 이들은 힘을 원하며 다들 신대륙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길 봐, 미나스 왕국과 뉘른 왕국 해군이 교전 중이야."


"앙숙이라더니 진짜네"



하지만 어디 일확천금의 기회라는 것이 그렇게 흔하겠는가?

보상이 한군데에 몰려있다면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법이었다.

지혜의 신의 세력이 출몰하는 바다 위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서로 암묵적인 합의 하에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췄지만 전통적인 앙숙들은 감정이 이성을 짓누르고 서로를 향해 마법과 화살과 돌을 날려대고 있었다.


수많은 용병과 트레저 헌터들, 불한당들이 함께 출자를 해서 구매한 [플라잉 팔켄베르크]호는 그런 국가들이나 용병단에 소속된 배들과 달리 순조롭게 신대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우왓!"


"이봐 선장! 파도가 오는 쪽으로 배 방향을 틀면 어떻게 해!"


"시끄러 잡것들아! 손님이 아니라 선원으로 올라왔으면 겨우 파도 좀 맞은 거 가지고 난리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여러 사람들이 출자를 해서 구입한 배의 선원들은 선장 호르니골드와 상하관계가 아니라 거의 수평적 관계에 가까웠다.

항해사인 랙컴, 마찬가지로 항해사인 랙컴의 부인들, 몇몇 선원들을 제외하면 플라잉 팔켄베르크 호의 구성원은 전직 해적, 멸망한 소국의 탈영병들, 용병 등 거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밖에 선원이 아니라 신대륙으로 가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탑승해 있었다.

베스코스 일당 역시 그런 손님들 중 하나였다.



"선장! 미나스 왕국의 배 한 척이 이쪽으로 옵니다!"


"이등항해사! 마력 상태는?"


"아직 여유롭습니다"


"좋아! 우린 전속력으로 이 해역을 빠져나간다! 저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분명 빌어먹을 물고기... 크흠! 바다에 자리 잡은 신의 군대가 올 거다!"



호르니골드 선장은 갑판에서 두 왕국의 해군끼리 하는 전투를 구경하는 지혜의 신의 부하들 삼권귀 요청와와 혈곤석척 무기를 힐끗 보고 말을 고치고 지시를 내렸다.

선장의 명령에 일등 항해사 랙컴은 자기 부인들인 바람을 다루는 마법사인 앤과 정령사 메리에게 상세한 지시를 내렸고 메리와 앤은 힘을 합쳐서 배를 가속시켰다.


5개의 삼각돛과 8개의 돛이 항해사들이 부른 바람에 팽팽하게 당겨지며 빠르게 나아갔고 그들을 향해 오고 있던 것 같은 미나스 왕국의 프리깃은 그들이 향한 곳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전투가 벌어지는 해역을 확실하게 벗어난 것이 확인되고서야 호르니골드 선장은 선장 모자를 고쳐쓰며 다시 바람을 조절하라 명령했고 이등항해사인 메리와 앤은 조금 지친 것인지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갑판장! 방심하지 말고 주변을 잘 살펴라! 언제 어디서 적이 올지 모르니까!"



항해사 부부들이 선실로 들어간 사이 자기와 함께 일하는 베테랑 선원들과 지도를 보던 호르니골드 선장은 배를 구입하는데 돈을 댄 주주 중 하나인 아나바시스 용병단의 단장 크세노폰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마쇼, 바다 밑의 아나나스 속에 사는 놈들도 피가 흐르고 심장이 있다면 동포까지 죽이려들지는 않을 테니까."



크세노폰이 손짓하는 방향에는 삼권귀 요청와와 혈곤석척 무기, 마르켄데야가 있었고 선장은 잠깐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하고는 다시 지도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확실히 바다 밑의 녀석들을 태워서 그런가 이번 항해에서는 물고기들한테 습격 받는 일이 없군."


"그게 아니면 이 배에 위험한 양반이 타고 있다는 걸 놈들도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크세노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실 입구에서 거한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회색빛 피부에 캔버스 위에 그려진 초상화를 마구 뭉개놓은 것 같은 흉측한 얼굴, 머리에 딱 달라붙은 귀를 지닌 오크가 나타나자 갑판에 있던 선원들이 바짝 긴장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베스코스는 자기 일행들에게 다가가 반갑게 상황에 대해 물었고 사람들은 그제야 베스코스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선장"


"음? 벌써 나오려고? 조금 더 쉬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때 갑판 밑의 선실로 통하는 문이 한 번 더 열리면서 항해사 부부들이 나왔고 선장이 살짝 걱정스러운 듯이 묻자 정령사 메리가 심각한 얼굴로 선장에게 바짝 다가와 말했다.



"방금 막 정령들이 전해준 정보인데 에스티나 왕국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확정정보냐?"


"지금 보스포루스 항구에 있는 친구로부터 받은 연락인데 왕국 깃발을 내리고 여신의 깃발을 새로 단 함대가 출항하는 걸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에스티나 왕국은 현재 하로나스 만신전 세력의 사실상 맹주 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신대륙을 둔 다툼 속에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에스티나 왕국이 움직였다면 다른 3개 국가도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좀 위험한데"



이미 에스티나 왕국이 개발한 신병기로 서부 아카이아 왕국과 벨파스트 왕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에 쫙 퍼진 상태였다.

수틀리면 신대륙을 아예 다시 해저에 처박아버릴 수 있는 에스티나 왕국이 신대륙에 개입하는 것을 달가워할 세력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힘이 있었고, 높으신 분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명분 역시 에스티나 왕국에게 있었다.


거기다가 에스티나 왕국 해군이 평소에 걸고 있던 왕국 깃발을 내리고 만신전의 수장인 하로나스의 깃발을 내걸었다는 건 그들이 단순히 왕국의 위신을 걸고 출항한 것이 아니라 신들의 명령을 받고 나왔다는 걸 의미했다.



"상륙하면 돈 될만한 것만 살펴보고 바로 나와야하나?"



마법왕국 크나시아 출신이라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인 선장 호르니골드는 하로나스의 신도는 아니지만 왕가가 하로나스를 섬기는 크나시아 출신이었기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말했다.



"이봐 선장, 당신들 사정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는 신대륙에 거점을 만들거라고. 신대륙 거점 건설을 위한 물자를 지속적으로 옮겨주기로 해놓고 그냥 내빼면 곤란해."



출자자이자 갑판장이자 용병단장인 크세노폰이 그 말을 듣고 말했고 호르니골드 선장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알고 있다 갑판장. 우린 신대륙에서 아예 떠나려는 게 아니야. 신대륙이 육안으로 보이는 안전한 해역으로 피해 있을 거다."


"여차하면 내뺄 생각이란 소리잖아!"


"무슨 일 있는 거요?"



그때 갑자기 순박한 시골청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들 움찔거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새 조타실 바로 밑에 베스코스가 와서 무슨 일인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무 대륙 사람치고 아너써스터, 정의로운 패륜아 베스코스의 악명과 명성을 모르는 이는 없었기에 다들 서로의 눈치만 살폈고 결국 선장과 갑판장이 서로 어깨를 툭툭 치다가 베스코스가 조타실로 올라오려고 하자 선장이 급히 나서서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손님! 그냥 항로 변경이 필요할 것 같아서 회의 중입니다!"


"항로 변경?"


"아까 여러 왕국의 해군들이 서로 싸우던 것 때문에 조금 돌아가서 말이죠!"



선장의 변명에 베스코스는 납득했다는 듯이 소리를 냈지만 베스코스와 함께 온 무기와 요청와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신대륙까지 가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거요?"


"아닙니다! 제가 아는 빠른 항로가 있으니 안심하시죠!"



베스코스 일행은 어째 찝찝함을 감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선장의 변명을 받아들여 돌아갔다.

베스코스 일행이 선실로 돌아간 뒤 갑판장 크세노폰은 더 이상 큰소리를 내면 베스코스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지 얌전히 키가 있는 조타실에서 내려갔고 선장과 선원들도 얌전히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며칠동안 지루한 항해가 계속되고 그들은 마침내 한밤 중에 신대륙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뭐야 저건?"



그들이 신대륙이 육안으로 들어오는 거리까지 와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상륙하지 않고 바다 위에서 커다란 포위망을 형성한 배의 무리였다.

배의 갑판에 세워진 횃불들과 마법의 등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며 바다를 비추고 있었고 선원들은 그 불빛에 의존해 배에 걸린 깃발들을 식별하였다.



"미나스, 아카이아, 헤메의 망치단, 릭샤카, 뉘른, 파로나, 그노시, 알티로스... 저기 너머에 있는 저것들은 어느 나라 깃발이지?"


"뮤 대륙 교단 연합에 소속된 알티로스 제국에게 멸망한 옛 왕국들의 깃발이군. 그뿐만이 아니라 온갖 대륙의 온갖 국가들의 선박들이 전부 있어."



둥글게 신대륙을 포위하고 있는 선박들은 서로 다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갑판 위에서 불이 붙은 통을 바다로 버리고 바다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고 선장 호르니골드는 담담하게 말했다.



"레무 대륙 종합 상회에서 일하는 친구 놈이 말한대로야. 지혜의 신의 세력이 습격할 것을 대비해 연합했군."



이미 신대륙 인근의 바다에 독과 오염물질을 풀어서 지혜의 신의 명령을 듣는 해양 생물들을 싹 죽여버린 연합 함대의 배 수백 척이 진실의 신이 만들어놓은 방어막에 막혀서 더는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선장은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안전할 거라고 판단하고 배를 끝에 대려고 했으나 그때 험한 일을 해본 적 없는 것 같은 잡티 없는 하얀 손가락이 선장의 왼쪽 시야에 보였다.



"저쪽"


"엉? 저기 손님? 지금 무슨 소리를..."


"저쪽으로 가"



무표정한 꼬마가 조타실의 키 위에 올라가 사람들이 없는 곳을 가리키자 선장을 뭐라고 한소리 하려다가 그 꼬마가 베스코스 일행 중 하나라는 걸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손님? 이 호르니골드가 감히 진언을 올리는데 저기 곳곳에 솟아있는 암초 보이십니까? 저런데로 배를 들이대면 바로 침몰합니다."



마르켄데야가 가리킨 곳은 수평선 끝자락에 간신히 보이는 암초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배를 대기 아주 부적합한 곳이었다.

괜히 그들보다 빨리 이곳에 당도한 이들이 저곳이 아니라 배를 대기 적합한 이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저긴?"



어린 손님은 그러자 더 멀리 수평선 쪽을 가리켰고 시력이 좋다고 자부하지만 수평선 너머까지 볼 능력이 없는 선장은 시력이 좋은 일등항해사에게 말했다.



"랙컴, 저 암초지대 너머에 뭐가 있지?"


"모래톱 사장이랑 절벽만 보입니다."


"모래톱 사장은 더더욱 안됩니다 손님. 배가 끼면 못 빼냅니다."


"절벽으로 가"



선장은 어린 손님의 억지에 뭐라고 하려다가 그 손님의 목덜미 인근 옷감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목에 감아놓은 천 속에 작은 벌새라도 놓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선장이 상상조차 못할 뭔가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선장은 갑자기 두려운 기분이 몰려들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손님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때 조타실로 올라오는 계단을 타고 올라온 세 사람이 그에게 말을 하였다.



"걱정마쇼, 그 친구가 해달라는대로 해도 문제는 없을 거요 선장."


"무슨 소리입니까?"



베스코스, 무기, 요청와가 조타실로 올라오며 말하자 선장은 의문을 품고 말했고 무기는 자기 뺨 위에 난 비늘을 만지작 거리면서 말했다.



"이 친구가 가리킨 절벽 근처에 배를 대기 적합한 곳이 숨겨져 있소."


"진짭니까?"


"예전에 이 대륙이 떠오르기 전에 잠수해서 저 밑을 돌아다녀봐서 알고 있소. 내 기억이 맞다면 암초 사이에 수로 하나가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배를 댈 수 있는 천연 동굴이 있을 거요."



바다 밑을 돌아다닌 지혜의 신의 부하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턱하고 내놓는 무기의 말에 선장과 마찬가지로 반대의견을 내려고 하던 항해사들과 선원들은 선장에게 판단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무기의 말이 맞다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선착장으로 쓸 수 있는 장소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고 잘만하면 거기서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것이 함정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선장은 고민하였으나 선장의 태도를 본 요청와가 흡착 빨판이 달린 손을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없으니 그냥 우리끼리 갑시다 형들!"


"자자자, 손님 진정하시죠. 언제 제가 안간다고 했습니까?"



선장은 요청와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화를 내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당장 키를 돌리기 시작했고



"갑판의 불을 꺼라! 다른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몰래 간다!"



선장의 갑판의 불을 끄라는 지시에 선원들 대다수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일단 지시가 떨어졌고 눈앞에 신대륙이 있으니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었다.

갑판의 불이 다 꺼지고 배의 방향을 틀자 마르켄데야는 선수 부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의 가장 앞부분에 도착해서 멈춘 마르켄데야는 옷 속에 감춘 목걸이를 꺼냈고 목걸이는 어두운 빛을 내며 저절로 마르켄데야의 목에서 빠져나오더니 길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있는 배들은 보지 못하고 횃불을 전부 꺼버려서 빛에 민감해진 [플라잉 팔켄베르크] 호의 갑판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그 어두운 빛은 그들이 지나가야 할 항로를 그리고 있었다.


선장 호르니골드는 일등항해사 랙컴과 눈빛을 교환하고는 그 어두운 빛을 따라갔다.



"선장,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요?!"



이등항해사인 메리와 앤은 그 어두운 빛이 그려진 항로가 암초지대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기겁했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시감과 충동이 선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 찰스! 누가 안쫓아오는지 잘 보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망루에 있는 선원 찰스는 불빛이 가득한 함선들의 무리를 주시하며 누군가 자신들을 보고 있지 않나 살폈고 그동안 선장과 일등항해사는 정확하게 목걸이가 만든 항로에 배를 일치시켰다.


배가 암초지대에 진입하자 이등항해사들은 여차하면 바로 배를 되돌리기 위해 바람 마법과 정령을 준비했지만 배의 밑바닥과 용골이 암초에 걸리는 일이 없이 배는 스르륵 암초지대를 통과하였다.



챙강!


"돛을 접어라!"



그러나 그들이 암초지대를 지나 절벽 밑의 커다란 천연 동굴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뭔가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선원들은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벌써 배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돛을 내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갑판장! 당장 어디 부딪친 곳 없나 확인해봐!"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선장이 급히 갑판장에게 말했지만 아무리봐도 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괜찮아, 제대로 들어왔어."



배는 돛을 접고 이등항해사들이 바람 마법과 정령으로 배를 감속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마르켄데야의 목걸이가 그려준 항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고 마침내 저절로 속도가 줄더니 멈춰버렸다.



"불을 켜라"



하늘의 달과 별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시커먼 어둠 속에서 선장의 말 한마디에 횃불들이 일제히 켜졌고 그들이 본 것은 배를 정박하기 딱 좋은 천연 항구였다.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배를 댈 수 있을 정도로 수심도 적당히 깊고,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 평평한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전열함도 몇 척이나 들여놓을 수 있겠군. 건물을 세울 공간도 엄청나게 넓어. 도시까지는 아니지만 마을 정도는 거뜬히 만들고도 남겠어. 이런 곳을 상륙하자마자 바로 찾게 되다니 행운의 여신께서 드디어 나를 바라보신 건가? 잠깐 이럴 때가 아니지 닻을 내려라!"


"닻을 내려라!"



선장은 주변을 살피다가 이곳이 정말로 정박하기 적합한 곳이라는 걸 확인하고 바람마법으로 배를 바싹 댄 다음 닻을 내렸다.

배의 갑판에서 이어지는 선박용 승하선 사다리가 동굴에 내려지고, 먼저 사다리를 통해 내려간 선원 2명이 바닥이 충분히 단단한지 확인하고 고정용 말뚝을 박기 시작하였다.


고정용 말뚝이 박힌 뒤 튼튼한 동아줄이 승하선 사다리와 연결된 뒤에야 물자와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진짜로 거점 삼기 딱 좋은 곳인데? 빛이 안들어오는 게 흠이지만"


"예전에 해적 생활할 때도 이런 좋은 곳은 별로 못 봤어."


"다들 방심하지마!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하선한 선원들은 각자 패거리대로 쪼개지기 시작하였으나 이곳을 바로 떠나려고 하는 자는 없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신대륙에 이제 막 발을 내딛은 상태에서 무작정 흩어지는 건 별로 좋은 발상이 아니었고 선장은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는 출자자들에게 외쳤다.



"뭐하고 있어 이것들아! 당장 물자 보관할 천막이랑 동굴 통로 막을 바리게이트부터 세워!"


"알았어 선장 알겠다고! 그러니까 그만 보채!"



서로 눈치를 살피던 용병들과 트레저헌터들은 일단 지금은 흩어질 때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것인지 얌전히 선장의 지시를 따랐다.

그들은 일단 곳곳에 등불을 밝혀 시야를 확보한 뒤 항만에서 이어지는 동굴 통로 쪽에 보초를 배치한 뒤 남은 인원들이 힘을 합쳐 진지를 짓기 시작하였다.


배의 선원으로 탄 출자자들도, 손님으로 탑승한 고객들도 다 함께 배에 실어놓은 나무와 흙마법사들이 불러낸 암석과 흙으로 진지를 쌓고, 항만을 정비하였고 그렇게 꼬박 밤을 새고 있을 때 이등항해사이자 정령사인 메리가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 바람의 정령이 소식을 물어왔는데... 바깥 해역에서 다들 앞다퉈 신대륙에 상륙하겠다고 갑자기 싸움이 벌어졌다는데요?"


"대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국 서로 감정이 폭발했나보군. 쯧쯧"



그들은 자신들이 천연동굴 항구로 진입하면서 신대륙을 감싸던 방어막이 사라졌고, 그걸 깨달은 대기중이던 온갖 세력들이 서로 먼저 상륙하겠다고 살육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열심히 항구 항만을 정비하고 진지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제대로 된 진지가 완성된 건 3일이 지난 뒤였고 일단 진지가 완성되자 수많은 용병과 보물 사냥꾼들은 동굴의 통로를 지나 지상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들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 신대륙의 보물을 찾아다닐 거라는 예상과 달리 다들 탐색이 끝나면 다시 동굴을 지나 항구로 돌아와서 임시로 만든 주점에서 배에서 내린 럼주를 퍼마시며 정보를 교환하였다.


그들이 느긋하게 탐색을 하고 다시 거점인 항구로 돌아오는 동안 신대륙에 상륙한 다른 이들은 끝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한다고 제대로 된 거점조차 세우지 못하고 해안가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먼 훗날, 모험가 길드 본부로 불리게 될 팔켄베르크 항구 도시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작가의말

빨리 쓰고 싶은데 직장에서 자꾸 일이 터지네요
그래도 최종장까지 왔는데 제때 완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0 혈마인 #8 +11 20.11.13 973 47 10쪽
259 혈마인 #7 +10 20.11.10 959 40 12쪽
258 혈마인 #6 +6 20.11.05 905 39 12쪽
257 혈마인 #5 +3 20.11.03 897 37 13쪽
256 혈마인 #4 +9 20.10.28 917 52 12쪽
255 혈마인 #3 +3 20.10.26 937 41 14쪽
254 혈마인 #2 +8 20.10.20 923 55 12쪽
253 혈마인 #1 +6 20.10.15 977 44 13쪽
252 신대륙 #9 +8 20.10.12 964 41 12쪽
251 신대륙 #8 +12 20.10.07 978 41 15쪽
250 신대륙 #7 +6 20.10.05 992 47 13쪽
249 신대륙 #6 +9 20.09.28 1,046 55 13쪽
248 신대륙 #5 +8 20.09.23 1,100 47 19쪽
» 신대륙 #4 +5 20.09.21 1,173 42 19쪽
246 신대륙 #3 +6 20.09.15 1,104 42 13쪽
245 신대륙 #2 +8 20.09.10 1,172 41 16쪽
244 신대륙 #1 +15 20.09.07 1,142 52 15쪽
243 소란스런 폭풍전야 #11 +7 20.09.01 1,167 55 12쪽
242 소란스런 폭풍전야 #10 +7 20.08.31 1,088 45 12쪽
241 소란스런 폭풍전야 #9 +7 20.08.28 1,107 47 12쪽
240 소란스런 폭풍전야 #8 +11 20.08.25 1,160 51 12쪽
239 소란스런 폭풍전야 #7 +9 20.08.24 1,159 52 14쪽
238 소란스런 폭풍전야 #6 +9 20.08.21 1,197 48 13쪽
237 소란스런 폭풍전야 #5 +12 20.08.18 1,218 56 14쪽
236 소란스런 폭풍전야 #4 +18 20.08.17 1,167 51 11쪽
235 소란스런 폭풍전야 #3 +8 20.08.14 1,195 51 16쪽
234 소란스런 폭풍전야 #2 +17 20.08.11 1,206 58 12쪽
233 소란스런 폭풍전야 #1 +13 20.08.10 1,154 54 12쪽
232 불신의 이유, 선택의 끝 #8 +11 20.08.07 1,178 58 11쪽
231 불신의 이유, 선택의 끝 #7 +12 20.08.05 1,170 5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