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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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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jna
작품등록일 :
2016.03.15 20:12
최근연재일 :
2019.06.20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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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9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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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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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마음(1)

DUMMY

혼돈계에서 돌아온 이후 수차례에 걸친 행성스캔에서 한 좌표에서 움직이지 않는 능력자 반응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메네시아에서 말을 타고 한나절 정도 떨어진 소도시의 어느 뒷골목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솔직히 이 반응이 힐리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 처음 스캔결과를 봤을 때부터 알았다. 카시미르가 전쟁 중이 아니었다면 가장 먼저 여기를 방문했을 테지만 다른 일들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지금까지 방치하다시피 했다.

힐리스를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공간도약으로 이동 직후 골목길을 조금만 걸으니 노숙자들 사이에서 능력자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뭘 하는 겁니까?”


“······.”


가문은 멀쩡히 있는데 혼자 거지꼴로 길에서 노숙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적지 않은 안타까움과 답답함 그리고 원인 모를 분노가 솟아났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은 다 떠안고 있는 얼굴이군요.”


“······.”


“뭐라도 말 좀 해보란 말입니다! 이러려고 저희를 떠난 게 아니잖습니까?!”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마치 후회와 체념으로 얼룩진 표정이었다. 그런데 노숙자라고는 해도 늦은 밤에 동부출신의 사람이 중앙출신의 사람에게 소리치는 모습은 주변 주민과 건달들을 깨우고 심기를 건드렸다.


“불사신이라고 계속 버틸 생각은 마십시오. 대신 가족을 쓸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나는 실패했는데 뭘 어쩌라는 거냐.”


주변 사람들이 시온일행을 포위하듯이 모여들자 세린과 단우는 서로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신호인지는 몰라도 괜한 짓을 할 것 같았으므로 시온은 세린과 단우가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모여든 사람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꺼져라.”


정신지배에 의한 강제명령수행. 타인의 의지를 억압하거나 기억을 휘젓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을 감수할 생각은 없다.

신경질적인 한마디에 모여들던 사람은 눈에 생기를 잃고 달아나듯이 흩어졌으나 민간인에게 마력을 사용했다는 게 알려지면 경비대가 출동할 게 뻔하다.


“이대로는 대화가 힘들 것 같으니 자리를 옮기죠.”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아.”


힐리스는 대화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시온이 데려가기로 정했다면 그는 도망칠 수 없다.


“그 세계는 거짓이니 즉 현실일지어다.”


거짓세계가 구현됨에 따라 주변 풍경은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였고 일행은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찾기 바빴다.


“오빠? 어디 있어요?”

“불로 밝혀지지 않아?”


빛을 거부하는 어둠 속에서 불빛은 소용없었다. 열기는 느껴지나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의 어둠과는 달랐다.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사념전달도 먹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알아차렸다. 짙은 어둠 속에서 자기 몸은 제대로 보이고 있음을.

세린과 단우가 헤매고 있을 때 시온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춰서 신성으로 빛을 발하니 어둠이 물러나며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예전에도 이런 어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주로 희망을 잃은 자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의 마음이죠.”


“시온? 아니, 내 눈은 네가 다른 존재라고 하는데 잘못 보고 있는 건가? 그보다 인간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워.”


시온을 똑같이 생긴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경계하는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우러나오는 두려움에 머리를 숙이고 싶어졌으나 몸은 굳어버린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일단은 시온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인간이죠.”


“안 보는 사이에 많이 변했군. 날 어쩌려는 거냐?”


“우선은 형님이 절망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형님이라 부르지 마라. 나는 너에게 그런 대우를 받을 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자학하고 싶다면 바라는 대로.”


시온이 손짓하며 어둠을 걷어내니 어둠에 가려져 있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륙이 통일되기 전에 힐리스가 보았던 광경이며 그에게 회의감을 안겨준 광경이었다.


“남부공략전···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구나.”


동부연합의 멸망 이후 가비아가 남부를 공격했을 때 황제의 부름을 받고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상황. 여기서 그는 부활능력으로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된다.

단순히 옛 기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힐리스는 괴로운 듯이 고개를 떨궜다.


“당신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수많은 생명을 구했죠. 그리고 단기간에 같은 사람을 수차례 부활시키면서 좌절했고요.”


“다들 이기는 것만 생각해서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장졸들은 부활을 믿고 목숨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지. 아!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피하고자 했던 사태였던 것을.”


힐리스가 처음 능력을 각성했을 때 능력을 숨긴 건 사람들이 생명의 무게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메이의 부름에 응했을 때는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남부전쟁에서 병사들이 보인 반응은 크게 두 가지. 거듭되는 죽음으로 심신이 피폐해지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거나. 몸이 되살릴 수 없을 만큼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모한 작전을 펼치니 싸움에서는 이겨도 그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내가 바란 이상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해온 일 전부 뭐였던 건지.”


“후회하시나요?”


“후회? 아니, 나는 그럴 자격도 없다. 언젠가 네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좋았을지도 몰라. 이딴 힘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이해는 합니다. 비슷한 감정을 저도 겪어봤으니까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저였습니다.”


“아니야, 너는 틀리지 않았어. 나 같은 쓰레기가 설쳐대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야.”


“실패를 반복하는 제가 틀리지 않았다니요? 세린과 키리에한테 미안해서라도 그렇게 생각은 못 하죠. 이 세계의 불순물이나 다름없는 제가 더 쓰레기죠.”


“그럼 난 인간 폐기물, 뒷간의 오물.”


“그래 너 똥이다. 이 자식아.”


“······.”


잠시 할 말을 잃었던 힐리스는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몇 년 만에 웃어보는 건지 기억도 안 나고 표정을 숨길 수도 없었다.


“아, 그러지 마라.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다.”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도 설득력이 없죠. 그리고 남부전쟁 이후로 계속 그 모양이면 억지로라도 웃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진짜 너는 어떻게 된 놈이 한마디를 안 지려고 하냐?”


“정당한 이유와 논리로 설득한다면 저도 져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겐 그게 없을 뿐이고요.”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러니까 이제 날 좀 내버려 둬.”


“못 보는 사이에 번거로운 사람이 되셨네요.”


주변 풍경이 전쟁터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없겠다 싶어 다시 어둠으로 되돌리고 차를 마실 수 있는 티 세트와 사각 테이블을 생성했다. 찻잎과 약초를 섞어 즉석에서 차를 우려낸 후 자리에 앉기를 권하니 힐리스는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예전부터 너는 다과를 좋아했었지. 몸은 이상하게 변했어도 속은 변함없구나.”


“사실 가장 많이 변한 게 속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하나 물어보죠. 혹시 위대한 자의 소원을 이룰 기회가 생긴다면 무얼 이루고 싶으신가요?”


“의미 없는 질문을. 오래전에 소원을 부탁했던 건 기억하지만, 내 소원을 묻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


“저한테 거짓말은 안 통한다는 거 기억하시죠? 이룰 수 없는 것을 원하기에 거지꼴이나 하면서 살게 된 거 아닙니까?”


“이거 참 곤란한 놈일세. 굳이 하나 원한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래서 내 잘못을 바로잡고 너도 여왕폐하의 적이 되지 않을 방법을 찾고 싶다.”


“흠, 종종 과거를 바꾸고 싶다거나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죠. 하지만 그 소원은 계약자라 할지라도 이룰 수 없어요. 시간의 신은 과거에 손을 대는 것을 매우 싫어하거든요. 대신에 제가 비슷한 건 해드릴 수 있습니다.”


“비슷한 거?”


질문에 응하듯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주변 풍경은 다시 변했다. 더는 만날 수 없다고 여겼던 부모님이나 처자식을 비롯한 식솔들, 학창시절을 함께한 동기, 의술을 가르치던 제자를 포함해 모든 지인이 옛 고향의 모습과 함께 나타났다.


“네가 어떻게 저들을?”


“구현할 대상이 꼭 제가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더군요. 아무튼 원하시는 세계가 있다면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한번 살아볼 생각 있으신가요?”


“이런 가짜에 만족하면서 살라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제가 환영술사라서 진짜를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제 능력을, 환영이 실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아시면서? 바깥세계는 만들어진 세계고 여기도 만들어진 세계인데 진짜와 가짜의 차이점이 뭘까요? 만든이가 다르다는 거?

현대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계이고 본래 밑바탕은 신이 만든 세계.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당신이 신의 힘을 빌려 만든 세계를 거짓이라 부정하니 어이가 없군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나는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 여기는 원래 있던 것을 본떠 만들었으니 가짜라는 거다.”


“우리 세계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짜는 없어요. 제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겁니다. 애당초 세상을 등지고 도망친 자가 도피처를 부정하다니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생각해보세요. 만약 당신이 과거로 향했다고 가정하면, 거기서 보고 듣는 것을 진짜라고 믿겠죠. 하지만 정말 그 세계는 진짜일까요? 과거와 똑같이 생겼을 뿐인 평행세계가? 당신이 버리고 떠난 현재와 시공의 뒤틀림으로 생겨난 과거 중에서 어느 쪽이 진짜일까요?”


“···아마도 구분할 수 없겠지. 그래, 사실은 나도 알고 있어. 계속 도망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그래도 나에겐 너 같은 큰 뜻이 없어. 앞으로 나아갈 힘이 나질 않아.”


“좌절은 누구나 경험하는 법이죠.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시간이 다를 뿐이고요. 당신은 의원으로서 신념은 있으나 우유부단함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이죠. 고민을 지나치게 많이 한 탓에 무언가 행동으로 옮길 때를 깨닫지 못했군요.”


타이르듯이 말하는 태도가 거슬렸던 건지 힐리스는 눈살을 찌푸리고 언성이 높아졌다.


“그럼 너는 방법이 있어? 부활 때문에 생명을 경시하는 일 말고도 치유마법을 쓰는 어린아이가 남모르게 친구들을 고문하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했는지, 재생마법을 쓰는 도축업자가 가축을 죽이지 않고 계속해서 고기를 생산하게 할 때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법사가 죽은 자를 되살리려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괴물로 만들었을 때는 어떻고? 너는 고민 없이 답을 내놓을 수 있어?”


“지금 뭘 잘했다고 소리칩니까? 고민을 길게 하지 말라는 거지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방금 말한 상황들은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들입니다.”


둘은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으로 이어질 것처럼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렇게 잠시 눈싸움으로 시간을 보내다 한 발짝 물러선 건 시온의 말을 곱씹은 힐리스였다.


“그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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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결착(2) 19.06.20 31 0 12쪽
147 결착(1) 19.06.20 25 0 12쪽
146 바다의 신(3) 19.06.20 23 0 16쪽
145 바다의 신(2) 19.06.20 26 0 14쪽
144 바다의 신(1) 19.06.20 30 0 15쪽
143 교육(2) 19.06.20 26 0 13쪽
142 교육(1) 19.06.20 32 0 16쪽
141 어두운 마음(2) 19.06.20 31 0 14쪽
» 어두운 마음(1) 19.06.20 30 0 12쪽
139 복수(2) 19.06.20 28 0 16쪽
138 복수(1) 19.06.20 27 0 16쪽
137 최고의 무기(3) 19.06.20 29 0 14쪽
136 최고의 무기(2) 19.06.20 27 0 13쪽
135 최고의 무기(1) 19.06.20 26 0 13쪽
134 재회(6) 19.06.10 29 0 16쪽
133 재회(5) 19.06.10 32 0 14쪽
132 악신 19.06.10 25 0 12쪽
131 재회(4) 19.06.10 29 0 12쪽
130 재회(3) 19.06.10 31 0 11쪽
129 재회(2) 19.06.10 34 0 11쪽
128 재회(1) 19.06.10 23 0 13쪽
127 암살(3) 19.06.10 24 0 14쪽
126 암살(2) 19.06.10 22 0 12쪽
125 암살(1) 19.06.10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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