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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란 결국 경험이다.
몸에 쌓인 정보가 축적되어 상대의 동작과 나에게 닥칠 위협을 예측한다.
그렇기에 전투가 길어질수록 생존율은 떨어지고, 점차 운의 영역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일격필살.
못해도 3번 이내의 공방 안에 적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안 된다.
전투가 쳐질수록 위험해지는데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다른 변수가 급격하게 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1:1도 그런데 하물며 전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완벽하게 수를 읽는 일이 가능했다.
적의 공격을 피해 가까이 파고들며, 공격을 위해 만들어진 방어벽의 빈틈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다.
경이로운 예측능력이 필요한 행위지만 나는 실수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나의 능력은 그런 능력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능력을 잘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지.’
이전에는 제멋대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나는 능력을 발동 타이밍과 방향을 적절하게 정할 수 있었다. 능력을 완전히 통제 하에 두고 다룰 수 있게 된 거다.
그 덕에 나의 속도는 빨랐다.
능력 특성상 필리아는 광범위하게 적을 처리할 수 있는 만큼 더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지만, 효율에서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벼락과 충격파로 방어벽을 뚫고 일격에 적을 죽이기 어렵다. 그리고 범위 공격인 만큼 염력의 소모도 큰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정확하게 급소를 노려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마무리를 짓는다.
공격은 3회 이상을 넘지 않는다.
같은 엘리트 나이트라면 전투가 어려워지지만 격하의 나이트들은 손쉬운 먹이였다.
방어벽을 무너뜨리기도 쉽고, 대응 수단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쪽이 타이밍을 잡기도 쉬운 것이다.
*전술AI: 함선 5척. AA 8기. 전투기 11기 격추했습니다.
한 기 격파를 할 때마다 전술AI가 갱신된 숫치를 들려준다.
“들었어?”
하고 내가 도발하자.
*필리아: 믿을 수가 없어. 그거 뭐냐고!
이를 악무는 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리아에게는 이길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내 성장 속도가 필리아 이상이었을 뿐.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내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모르겠다.
이 능력이 정말로 ‘적’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나도 답은 모른다.
이저리아는 그렇게 써놓았지만.
‘아니, 지금은 전투에만 집중하자.’
딴 생각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공간은 아니다. 똑바로 적과 아군을 인지하고 싸워야 한다.
“아로아 대장.”
*아로아: 무슨 일이지?
“적 중앙을 칩시다. 지휘관이 있는 함선. 알 것 같습니다.”
나의 예지가 가르쳐주고 있다.
이 전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의지의 흐름. 그 중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로아: 좋아. 가자.
당연하게도 우리를 막기 위해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도 알아챈 것이다. 우리가 정확하게 지휘부를 향해가고 있음을 말이다.
‘보통이라면 시니어 나이트나 베너렛 나이트가 지휘관이겠지만······.’
전술 전략이 뛰어난 자가 있다면 그자가 지휘를 하고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일단 하이젠-칼리시프 연맹의 제 4함대는 베너렛 나이트가 없다. 그만큼 시니어 나이트의 수가 많고, 함대라고 불리는 만큼 규모도 일개 용병단인 ‘전신의 신창’보다 규모가 크다.
물론 우리도 용병단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은 아니다.
본대라고 할 수 있는 부대가 모루역을 해주고 있지만, 하이젠-칼리시프 연맹이 질적 부족을 수적인 우위로 메우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런 대규모 부대를 전투를 하면서 지휘하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람이 한 번에 2개의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은 법인 것이다.
*아로아: 비켜!
광선이 우주를 가른다. 스치기만 해도 전자 동결이 일어나 역장 방벽이 해제되고, 기체의 성능이 저하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저온 광선이었다.
저걸로 미니언들에게 한 방 먹였었지.
나와 필리아는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하이젠-칼리시프 연맹의 시니어 나이트들이 아로아의 가로막았다.
*아로아: 이 놈들은 내가 막겠어. 목표인 함을 파괴해. 서둘러!
스스로 미끼가 될 것을 자청하는 아로아를 두고 우리는 움직였다.
나와 필리아를 막기 위해 움직이는 시니어 나이트도 있었지만 아로아가 방해하자 감히 쫓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괜찮은 건가?
시니어 나이트 여럿을 상대하는 건 베너렛 나이트도 어려운 일인데.
아무리 격의 차이가 난다고해도 한 사람이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수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시니어 나이트의 공격에 베너렛 나이트라고 면역인 것도 아니니.
그리고 속도전이라면 자신 있다.
이제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리미터 제한 해제 같은 것을 쓰면 속도 특화가 아닌 일반 AA라도 어떻게든 속도를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필리아 먼저 정면을 뚫겠어. 막히지 않는다면 그대로 박살낸다. 하지만 내가 실패하면 네가 하는 거다!”
*필리아: 가기나 해!
필리아도 베테랑이다.
설명은 길게 필요 없다.
나는 리미터를 해제하고 카이랄 엔진을 오버로드시켰다.
폭발하는 임계점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멈춘다거나 하는 건 없다.
여유를 두지 않으면 카이랄 엔진이 걸레짝이 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시간은 1분 이내.
한 순간의 가속으로 최대한 거리를 좁히는 거다.
‘좋아. 쫓아오는 군.’
적들이 나를 가로막기 위해 모인다.
이 놈들을 내가 전부 감당할 수 있다면 필리아가 함선을 격추시키는 건 어렵지 않다.
정면으로 총을 뻗으며 방아쇠를 당긴다.
우주에서 전투의 최대 장점은 저항이 적다는 사실이다. 고속으로 이동하면서도 팔을 움직여 적을 명중시키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쉽지 않은데.’
아무리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어도, 신체가 한계에 도달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흔들리는 기체를 조작해 완벽하게 움직이는 일은, 초능력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내 몸으로 직접 증명하고 있었다.
*전술AI: 리미터 재설정. 카이랄 엔진 출력 저하.
“딱 좋아. 안 그래도 멈춰야 할 때였거든.”
한 두놈 격추시킨다고 해도 몰려드는 전부를 박살낼 수는 없다.
이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내 역할인 것이다.
마치 그거 같은데.
용사를 마왕에게 보내기 전에 동료들이 한 구역씩 감당해 내는 일 말이다.
이번에는 우리 분대 내에서 용사라고 할 수 있는 아로아가 가장 먼저 남았지만 기분적으로는 그리 틀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으아아아아아!”
리미터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한계 레벨을 유지하고 전투를 지속한다.
난전이 되면 사이블레이드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총보다 위력이 확실히 높고, 일격에 AA를 격추시킬 가능성이 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최고의 무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필리아: 격추시켰어!
함선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필리아의 무전이 들어왔다.
*아로아: 이탈하겠어. 조금 도와줘.
“곧 갑니다. 필리아!”
*필리아: 그래. 그래. 그게 내 특기니까. 광범위 공격 말이야.
내가 달라붙은 AA더들을 때내는 사이에 필리아는 아로아를 도와 그녀가 이탈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 다음은 후퇴였다.
함선과 지휘관을 잃은 나이트들이 득달같이 쫓아왔지만, 놈들도 지휘관을 잃은 이상 기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시간 후 전투는 ‘아이젠 그리프’의 승리로 끝났다.
“대단했어.”
AA에서 내리자마다 필리아가 내 등을 후려친 후 목을 끌어 안았다.
단단한 팔근육의 감촉 뿐만 아니라 풍만한 가슴의 감촉 역시 느껴져왔다.
하지만 마냥 즐기고 있을 수 없다. 숨 쉬기가 힘들다고!
“풀어줘. 질식사 할 것 같으니까.”
아로아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정말 산소부족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로아는 루와 함께 였다.
그리고 루는 나를 보더니 그 큰 손으로 내 양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크하하하하. 이 놈 정말 대박이군. 자네가 지휘함을 찾았다지. 염파로 찾아내기 쉽지 않았을 건데. 특히 염력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말이야.
시니어 나이트 아로아와 자네가 들어오니 우리 ‘전장의 신창’도 최강의 창이 될 수 있을 것 같군, 앞으로도 부탁하네.
아, 월급은 기대라하고.”
유쾌한 목소리로 루는 장담했다.
지갑이 두둑해진다는 건 언제 들어도 좋은 이야기다.
“지휘관이 빨리 떨어진 덕에 전투가 쉬워졌으니 말이야. 우리 용병단으 모토는 전과에는 보답한다다. 물론 그만큼 실에도 가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넘어가니 걱정할 필요 없어. 헤이해지지 않는한 너무 가혹하게 굴어도 소용없으니.
잘해준 건 금방 잊기 마련이지만, 잘 못 한 건 오래가는 것이 사람인 법 아닌가.”
상벌이 철저해서 도태되는 기업 사회에서 그런 짓을 한다는 건가?
이 녀석도 클라이드와는 다른 방향인 것 뿐 비슷한 성향인 것 같은데.
인류 번영을 위해 싸우는 클라이드와 용병다운 즉흥적이고 찰나적 삶에 집착하는 루.
어디에도 보기 힘든 괴짜들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보고는 내일 줘도 좋네. 가능하면 시니어 나이트 아로아. 그대가 직접 작성해주는 것이 좋겠군. 다른 부대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지휘관이 모든 문서를 직접 작성하지. 스스로 직접 작성하는 것만큼 정확한 것도 없고 말이네.
특히 책임소재가 명확해져서 좋아.”
“하죠.”
아로아는 짧게 대답했고, 루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다른 단원들을 둘러봐야 해서. 또 보지.”
한 걸음 내딛은 것만으로 루는 훌쩍 앞으로 걸어 나났다. 큰 키 만큼 다리 길이도 긴 모양이지. 조금 부럽다.
EL-4706의 몸은 호리호리하기 때문제 저런 박력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오늘은 아주 잘했어. 그리고 너······.”
아로아는 뭔가 말하려는 듯 했지만 곧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서 쉬겠어. 너희도 쉬도록 해.”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후 아로아 역시 몸을 돌려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와 필리아만이 남았다.
우리는 아직 돌아갈 때가 아니었다. 청산해야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정산인가? 얼마나 해치웠어?”
“함선 5척. AA 14기. 전투기 11기.”
“뭐? 정말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아는 그만큼 처리하진 못했겠지.
“마지막 놈으로 함선은 2척. AA 6기. 전투기 25기 인가.”
“그럼 점수 합산만 봐도 내가 이겼군.”
좋았어. 공짜 술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짜란 좋은 법이다.
“사기야. 나처럼 광역 공격이 가능한 것도 아닌데.”
필리아로서는 믿기지 않는 듯 했다. 그야 그런 광범위 공격을 뻥뻥 뿌려대면 보통은 마구 죽어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방어벽을 가진 AA는 쉽게 격추시킬 수 없다.
그 덕에 공격 횟수가 쌓이고, 적들도 가능한 범위에서 피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나보다 늦어지고 만 것이다.
승부에 이기겠다고 너무 광역 공격에 의지한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좀 더 침착하게 싸웠으면 적어도 비슷하게 전적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실력이 아직은 나보다 높다.
정교함은 뒤떨어져도, 우수한 능력과 높은 염력 레벨이 있으니까.
“자, 그럼 뭘 얻어 마실까. 뭐, 여기에서 마실 수 있는 건 뻔한 것 같지만.”
‘클라이드 컴퍼니’만큼 다양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주점에는 지금 사람이 몰릴 거 같고, 내 방으로 갈까.”
아, 그런가. 꽤 크게 이긴 만큼 승전무드로 다들 즐기고 있겠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럼 실례할까.”
방해꾼이 없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 작가의말
내일 면접보러 갑니다.
취직 되면 좋겠는데. 단지 취직되면 글 올리기가 어려운게 아쉽군요.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이거 때문에 싱숭생숭해서 글이 잘 안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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