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새꺄!
"좋은데?"
윌리엄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행복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풍성한 수확을 얻게 하는 늦가을이었다. 벌써 10월의 마지막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냄새 나는 놈들 없이 걸으니까, 기분이 묘한걸?"
라이슨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윌리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언제나 죽음의 향기를 풍기는 걸음을 걸어야 했기에, 지금의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윌리엄 일행은 일부러 말도 타지 않았다. 느긋하게 걸어가기 위해서다. 답답하기만 했던 황궁을 떠나자, 속이 다 시원했다. 황궁에서의 생활은 뭔가 부자연스럽고 가슴이 턱 막히는 거북한 느낌이었다.
가식적인 대화와 불필요한 예법들로 덕지덕지 처바른 곳이 황궁이다. 검과 창을 들고 상대의 숨통을 끊으며, 야수와 같은 삶을 살아온 윌리엄 일행과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여행을 결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윌리엄은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했다. 윌리엄은 슬그머니 오른 주먹을 꽉 움켜쥐며 쳐다보았다. 믿을 수 없는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윌리엄이 가진 힘은 '분노'의 힘이다. 드래곤의 레어에서 얼떨결에 집어먹은 사탕이, 드래곤 하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때문에 마나의 속성이, 드래곤 하트의 주인인 블랙 드래곤의 형질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블랙 드래곤 일족이 사용하는 힘의 근원이 분노다. 윌리엄 역시 자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분노를 일깨워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분노에 몸을 맡겨서는 곤란하다.
정제되지 못한 분노는 오히려 힘을 약화시킨다. 분노의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이성을 남겨두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윌리엄이 간직한 드래곤 하트의 힘이 워낙 강했다. 까딱 조절에 실패했다가는 자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힘이다.
미쳐도 곱게 미치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윌리엄을 위해 존재하는 말과도 같다. 활화산처럼 분노하되, 냉철한 이성은 남겨두어야 한다. 그게 윌리엄으로써는 더 미칠 노릇이다.
커델 악마대공을 상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윌리엄은 자신만만했다. 커델과 싸우기 전, 커델의 부하 헬펜센트와의 싸움에서는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기 때문이다.
소드 마스터의 상징 오러 블레이드.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마나의 효율이 극도로 높아진다. 마나 블레이드와는 차원이 다른 경지인 것이다. 마나 블레이드는 소모적인 개념의 공격 수단이다.
마나를 방출해 끊임없이 발산하는 것이 마나 블레이드다. 한 단계 더 발전해서, 마나 스트링(劒絲)의 경지에 오르더라도 마찬가지다.
마나 스트링의 단계에 접어들면, 마나를 다루는 효율이 높아져 방출한 마나의 일부를 다시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방출된 마나가 육체로 되돌아와 흡수하게 된다. 그것 때문에 마나 블레이드와 대기층이 만나는 지점에서, 마나 블레이드가 조각 조각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마나 블레이드로 방출된 마나가, 다시 검으로 흡수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 모습이 마치 실과 같아, 사람들은 그것을 마나 스트링이라 정의한 것이다. 소드 마스터에 오르기 전 단계의 경지인 것이다.
마나 스트링의 단계에서 더욱 마나 효율을 높이고 마나량이 증가하면, 마침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소드 마스터에 오르면 오러 블레이드를 펼칠 수가 있게 된다. 무기에 방출한 마나의 대부분은 재흡수 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끊임없이 순환이 이루어지게 되고, 마나의 낭비를 최소화하게 된다. 검과 육신으로 마나의 순환이 고속으로 이루어져, 끊임없이 육체가 마나의 자극을 받는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신체 능력이 향상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마나에 의해 오러 블레이드는 공기를 태우며 흰빛을 발산한다. 어떤 속성의 마나를 익히든 상관없다.
검의 끝에 올라서면 검을 든 이들은, 최종적으로 백색의 오러 블레이드를 발산한다. 바로 소드 마스터. 소드 마스터는 눈부신 백색의 오러 블레이드로, 최강의 기사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막강한 힘! 무엇이라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위압감.
윌리엄은 그런 막강한 경지에 올랐었다. 헬펜센트와의 전투에서 분명히 윌리엄은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었다. 하지만, 헬펜센트와의 전투 이후로는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낼 수 없었다.
그래도 자신 있었다. 커델과 붙게 된다면, 다시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저 분노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서 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아무리 용을 써봐도 오레 블레이드를 뽑아낼 수 없었다. 마나의 성질이 문제였다.
윌리엄이 사용하는 마나의 근원은 드래곤 하트. 그 중에서도 블랙 일족의 것.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블랙 일족은 게으르고 난폭하다. 힘을 발휘하려면 분노해야 한다.
마나 성질 특유의 게으름을 이겨내야 한다. 힘을 사용하려면 미치도록 분노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만이 느긋해지려는 마나를 활성화 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노를 통해 블랙일족들은 광폭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윌리엄이 인간이라는 것에 있다. 드래곤들은 긴 삶을 통해 분노를 조율할 수 있으며, 교육을 통해 자유자재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20년의 짧은 생을 살아온 윌리엄에게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러면서도 윌리엄의 성격은, 점차 블랙 일족을 닮아가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의 기운이 윌리엄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블랙 일족의 게으른 속성은, 윌리엄이 귀찮은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으로 만들었다. 광폭한 형질은 집착으로 변질되어 윌리엄에게 나타났다.
자신과 자신의 전우들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지만, 그 외의 존재들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난폭해졌다. 화를 잘 참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굽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소드 마스터의 벽 또한 그러한 윌리엄의 상태에 기인한다. 헬펜센트와의 전투에서 윌리엄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었다. 하지만, 그것은 극한의 분노와 복수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다른 소드 마스터들처럼 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한 것이 아니다. 그저 미칠 듯한 복수심으로 드래곤 하트가 폭주한 덕택이다. 윌리엄이 다시 소드 마스터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일반적인 경우처럼 검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각성하는 것과, 다시 한번 제대로 곱게(?) 미치는 방법이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상관 없지."
윌리엄은 브릭의 손잡이를 힘껏 잡으며 중얼거렸다. 아쉽지만, 미련을 털어야 했다. 냉정하게 자신의 기량을 파악하는 것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된다.
과거의 화려했던 순간만을 기억하려 한다면, 이미 반쯤은 하데스의 강에 발을 들여 놓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병사 시절 정찰조에 있으면서 많이 경험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둔해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위험한 작전에 참가했다가 죽어간 고참병들이 그 증거다. 신분이 바뀌어 윌리엄이 귀족의 위치가 되었지만, 생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노예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칼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스스로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객기를 부리다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성질대로 사는 것도 다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서든 리버(Southern river)다!"
윌리엄이 상념에 젖어 걷는 사이, 라이슨이 기쁜 얼굴로 소리질렀다.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팻말이 갈림길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양 갈래로 나뉘어진 길이었는데, 왼쪽은 서든 리버(Southern river)라 적혀있었고, 오른쪽은 굿스펠 (Good spell)라고 적혀있었다.
라이슨이 환호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서든 리버는 거대 도시다. 도시 중앙에는 튼튼하고 거대한 성이 지어져 있고, 그 주변으로는 엄청난 면적의 도시가 구성되어 있다.
인구 30만의 대도시.
향락과 사치의 대명사가 서든 리버다. 황궁이 존재하는 오룬디아의 수도 쏘우럽보다 더 부유한 도시. 그것이 서든 리버다. 말로만 들어왔던 곳이다.
촌뜨기라 불려도 손색없는 윌리엄 일행은 기대에 가득한 얼굴로 주저 없이 왼쪽의 길을 택했다. 급한 마음에 일행들은 말에 올라탔다.
아베 역시 갑옷을 아공간에 보내고, 간단한 가죽옷 차림으로 말 위에 올랐다. 황궁의 고상한 와인보다 시금털털한 맥주가 그리웠다. 돼지 창자에 살코기를 갈아 속을 채운 소시지가 먹고 싶었다.
말을 타고 두어 시간을 달리자, 거대한 도시가 윌리엄 일행의 눈 앞에 펼쳐졌다. 우뚝 솟은 성채를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건물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휘유... 엄청나게 크다."
"놀러 오길 잘했지?"
"그러게."
윌리엄은 들뜬 목소리로 대꾸하는 라이슨의 말에 순순히 인정했다.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규모의 도시였다. 인구 30만이 사는 대도시답게, 건물들이 광범위한 면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윌리엄 일행은 바로 코 앞에 있는 것 같은 서든 리버의 출입구에 도착하는 데만도 40분이나 소비했다.
"멈추시오!"
윌리엄 일행이 서든 리버에 다다르자, 경비병이 커다란 목소리로 일행의 접근을 막았다. 낡았지만, 뾰족하게 깎아 만든 목책으로 서든 리버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입구에는 수십 명의 경비병들이, 완전 무장을 한 채로 검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목책이라고는 해도 이 거대한 서든 리버를 모두 감쌌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책에 들어간 나무만 해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제시하시오!"
- 작가의말
봉태규님, 리필인생님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의 추천이라 기분이 부웅~~ 떴네요.
앞으로도 쭈~욱 배신 때리지 않고, 월수금 약속 지키겠습니다.
서든 리버는 강남입니다.
굿스펠는 길음동이지요.
앞으로도 엽기적인 지역명은 쭈욱~~계속 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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