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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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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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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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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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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16화

DUMMY

유리가 루제르트와 크리스를 따라 떠난 지 두 시간이 다 되어갔다.

똑똑.

밖에서 부하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케인 님. 유리를 그냥 저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유리의 동기인 발터였다.

“곧 터질 일이라면 곪기 전에 터트리는 것이 낫지.”

“그건 그렇지.”

발터는, 아니 그의 동기라면 모두 시험장에서 처음 본 유리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맞고, 떨어지고, 넘어져도 모든 걸 불살라 버리고 죽겠다는 눈빛만큼은 절대 꺼지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도 유리의 눈을 마주치기 무서워했다. 거기다 뭐에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조금만 건드려도 화산처럼 터져서 삽시간에 겉껍질만 멀쩡한 미친놈으로 소문이 돌았다. 오죽하면 일개 병사였던 유리를 수호자가 보러 올 정도였다.

그런 녀석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이 부대에 알려지면서, 유리 정도 되는 인간이 애타게 찾는 게 뭔지 다들 궁금해했었다. 술자리에서 큰맘 먹고 총대 맨(가위바위보 졌다) 발터가 얻어맞을 걸 각오하고 물어보자 주먹 대신에 오빠를 찾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알려달라는 자그마한 부탁과 함께.

생각 외로 너무 정상적인 대답이 들려오자 부대원들이 꽤 놀랐었다. 함께한 세월이 쌓이며 저 들짐승에게 정이 들어버려서 나름 다 같이 응원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찾은 게 고작 자기는 여동생이 없다며 매정하게 끊어버리는, 꼭 지 같은 오빠라니. 발터는 자신이 맥이 다 빠졌다.

“발터.”

상념에 젖어 있던 발터를 케인의 목소리가 깨웠다.

“엉?”

“손님이다. 힐 제국군이 온 모양이야.”

“아, 내려가서 준비하고 있을게.”

발터가 방을 나가고 얼마 안 있어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계단이 소란스러워졌다.

“오.”

병사들을 대동하고 도착한 남자는 케인도 익히 아는 자였다.

“오랜만이군, 크세르트.”

“남의 나라를 침범한 주제에 낯짝이 꽤나 뻔뻔해.”

“그래. 그 뻣뻣함이 그리웠던 참이야. 보고 싶었어.”

이런 놈에게 루제르트 같은 말랑한 동생이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가 분위기를 풀려고 농담하자 싸늘한 눈초리가 돌아왔다.

“농담이나 하자고 온 것이 아니다. 어서 그럴듯한 변명을 해야 할 거야. 수호자 최초로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알았어. 일단 앉지.”

크제르트가 그의 맞은편에 앉자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자네, 혹시 마법사라는 존재를 알고 있나?”

“∙∙∙.”

‘아는군.’

그럼에도 말을 하지 않는 건 모르는 척해야 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일 테지.

“모르나 보군. 수호자가 아닌데 수호의 힘을 쓰는 자들이 나타났어. 크세, 온 세상이 위험에 빠질지도 몰라.”



“휴우∙∙∙.”

크리스는 숨을 고르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앞에 선 사람은 그보다 작았지만 단단한 바위와 같아서 뚫을 구석이 보이질 않았다.

크리스는 루제르트의 주위를 돌며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항복. 못하겠다.”

크리스가 양손을 위로 올려 보이자 답답한 루제르트가 자기 가슴을 퍽퍽 쳤다.

“아니~ 형!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형은 초보자니까 일단 덤벼봐야 돼. 지금 단계에선 머리 쓰는 게 진짜 소용이 없어. 빨리 와봐.”

“하아∙∙∙. 말이 쉽지. 안될 게 뻔히 보이는데 그냥 가라고?”

“그래! 와!”

루제르트가 눈을 부릅뜨며 재촉하는 소리에 공터가 쩌렁쩌렁 울렸다. 루제르트는 크리스에게 검술을 가르칠 때만큼은 무자비했다.

“휴∙∙∙.”

눈을 질끈 감았다 뜬 크리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일직선으로 덤벼들었다. 이어지는 정직한 내려치기.

“쯧쯔∙∙∙.”

혀를 찬 루제르트가 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이 크리스의 팔을 잡아, 툭 밀었다.

“윽!”

“안 되겠다. 형. 형은 공격은 절대 아니야.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에만 충실하자. 아니 공격을 왜 이렇게 하나도 못 하지?”

루제르트가 보기엔 크리스는 마음이 너무 약했다. 그가 일부러 비아냥거리는 것도 크리스가 울컥해서 진심으로 공격하기를 유도한 것이지만 전혀 안 통했다.

‘지나치게 상냥하다니까∙∙∙.’

루제르트는 슬슬 크리스가 걱정되었다. 루제르트가 크리스의 검술을 봐준 지도 반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째 공격 쪽으로는 하나도 늘지 않았다.

“야야, 너무한 거 아니냐?”

루제르트의 얄짤없는 평가에 크리스가 울상을 지었다. 꿋꿋이 무시하며 루제르트가 방어 자세를 선보였다.

“저번에 알려줬지? 해봐. 이번엔 내가 공격할 거야. 진짜 딱 한 번만 막아봐.”

루제르트는 자세를 바꾸다 그들을 주시하는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둘에게 다가온 유리가 그들의 훈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루제르트와 눈이 딱 마주친 유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자주 연습해?”

퍽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루제르트는 대답하기 싫었지만, 크리스가 보고 있어서 부루퉁하게나마 답했다.

“어.”

루제르트의 단답에 크리스가 눈이 휘둥그레져 그의 동생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크리스는 루제르트가 다른 사람에게 성의 없게 대답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항상 과했으면 과했지, 그보다 덜하지 않았던 아이인데!

크리스와 눈이 마주친 루제르트가 마주 째려봤다.

‘뭐.’

오히려 그들보다는 당사자인 유리가 가장 덤덤한 태도였다. 그녀는 바위 위에 앉아 두 번 꼰 다리를 흔들거리더니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나랑 한판 할래?”

“뭐를, 대련?”

뒤늦게 자신의 말투가 신경 쓰인 루제르트가 말을 예쁘게 하려고 했지만,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한번 잘못 나온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툭툭 튀어나왔다.

“응. 천재 검사로 유명하던데 한번 붙어보고 싶어.”

유리에게 조금은 미안해진 루제르트는 사과의 뜻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루제르트가 승낙하자, 유리가 허리춤에서 중장검 두 개를 뽑아 들었다.

‘양손 검사였구나.’

어쩐지, 첫 만남부터 유리의 무기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루제르트는 그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힐 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타입이다.

“간다.”

캉캉캉!

유리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연속 찌르기가 들어왔다.

양손 검사를 처음 상대해 보는 루제르트는 두 번째까지만 검신으로 막고 세 번째에서 몸을 비틀어 피했다가 유리의 손목을 위로 올려 쳤다. 그와 동시에 루제르트의 턱을 노리고 검의 끝부분이 들어왔다. 하지만 루제르트의 검이 유리의 허리에 닿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에 유리는 공격을 포기하고 검을 쳐냈다.

“안 속네? 대부분 위를 쳐다보다가 목이 뚫리던데.”

한 번의 치열한 접전 후 물러선 유리가 순수하게 루제르트를 칭찬했다.

양손 검을 사용하는 유리는 한쪽에 시선을 내어주고 다른 손으로 허를 찌르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었다. 그러면 대부분 자신의 공격이 잘 먹혔는지 확인하다 다른 손을 아예 보지 못하거나 대처가 늦어져 큰 상처를 입고는 했다.

그러나 유리의 생각과는 달리 루제르트는 알고 행동한 게 아니라 단순히 본능적인 감각을 따랐을 뿐이었다.

“뭔 대련을 이렇게 사람 죽일 듯이 해? 이럴 거면 관둬!”

루제르트가 유리에게 크게 화를 냈다. 이 무식한 여자는 군에 있었다면서 대련을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굴었다. 진검으로 대련할 때는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어서 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래? 난 원래 대련 이렇게 하는데? 대련은 원래 누구 하나 족치려고 하는 거잖아?”

루제르트가 ‘이게 무슨 개소리지?’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저게 크리스 형 동생이라고? 생긴 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성격은 딴판인 모양이었다. 루제르트가 심각해져서 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 눈빛에 정신을 차린 유리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져서 변명했다.

“아∙∙∙ 아니. 내 동기가 그렇게 말했던 거 같기도 하고∙∙∙.”

“허.”

유리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던 루제르트는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크리스 형이 신경 쓰였나 본데, 이미 늦었거든.

“자, 자. 이제 몸풀기는 충분한 것 같으니 저녁 먹자.”

크리스가 더 큰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재빨리 두 사람을 말렸다. 어째 루제르트는 유리를 만난 뒤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절로 한숨이 났다.

“우리는 벨라블로 이동할 거야.”

세 사람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자기 전 다시 지도를 확인했다.

“거긴 진짜 덥다는데 걱정되네∙∙∙.”

“그러게. 루제, 너는 더운 지역에서 살아본 적이 없지?”

“엥? 형도 마찬가지 아니야?”

“엄∙∙∙. 나는 더위를 잘 타지 않아서.”

“나는 잘 모르겠지만 괜찮지 않을까?”

무슨 이유인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리가 실실 혼자 웃고 있었다. 루제르트는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 와중에도 크리스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서 문제가 있어. 아무래도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다 보니 신분증과 허가가 필요해.”

나름 큰 문제였다.

루제르트는 왕자라서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고, 유리도 휘셀 제국군의 부관이라서 가지고 있는 신분증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나랑 유리∙∙∙가 문제네.”

그들과는 달리 크리스는 일반 시민이라 상관없을 터였다. 그러나 루제르트의 말에 크리스가 씹던 육포를 휘휘 흔들며 말했다.

“아냐, 나도 필요해.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다 가명을 쓸 거야.”

“아, 그 마법사가 우리를 쫓아올 수도 있으니까?”

로테, 입막음하겠다고 망설임 없이 아이들도 있는 건물을 공격한 마법사. 그 여자를 떠올리면 잔인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루제르트는 자책감에 숨이 막혔다. 그는 이런 모든 것이 아직도 물의 수호자를 찾지 못한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케인 님이라면 분명 뭐라도 해줄 거야. 내 상관의 능력만큼은 믿어도 좋아. 그리고, 네가 조기에 발견한 거일 수도 있어. 그동안 불의 마법사는 많이 봤지만, 물의 마법사는 한 명도 보지 못했으니까.”

‘나름의 위로인 건가. 딱히 고맙지는 않지만.’

고맙지는 않아도 덕분에 조금 진정이 된 루제르트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었다.

“사실 우리는 일 년 전에 물의 마법사를 만난 적이 있어.”

“물의 마법사를 만났다고?”

“응. 딱 한 명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걸 봤으니 죽었을 거야.”

루제르트는 힐 산에서 만났던 마법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로테 옆에 말 한마디 없이 딱 붙어 있던 물빛 머리의 꼬마 마법사.

“몸이 녹아내려? 폭주했다는 거야?”

“응 맞아. 실패작이라 했던 것 같아.”

“모종의 이유로 물 마법사는 되기가 힘든건가? 아니면 그때 당시에는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던가.”

“물의 수호자가 없는 것도 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세 사람은 머리를 짜냈다. 그러나 역시 조사를 마친 케인에게서 연락이 와야 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가짜 신분증은 어떻게 구해? 불법이잖아.”


작가의말

월요일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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