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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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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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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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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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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15화

DUMMY

루제르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보다 치밀한 놈들인 것 같습니다. 기록, 흔적 하나 남긴 것이 없어요.”

케인은 로테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무시무시한 여자를 보면 상당히 치밀하게 움직였을 거 같기는 해. 주변 조사는 어차피 둘이서만 하기 어려우니, 나머지는 힐 제국군이 오면 하지.”

유리는 케인을 쫓아 국경을 넘어오기 전에 급하게 힐 제국의 황성에 전령을 보내 놓았었다. 지금쯤 힐 제국의 병사들이 전령과 함께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터였다.

“건물 1층 책장 뒤에 숨겨진 문이 있기는 했는데, 마법사가 알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든 게르그를 밖으로 꺼내려 했을 거 같거든요.”

게르그가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혼란스러운 새를 틈타 몰래 그 문으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혹시 문으로 들어가 봤나?”

“네, 지하로 내려가는 굴이 하수도와 연결되어 있더군요. 하수도가 너무 복잡해서 여기도 조사하려면 인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어디로 옮겨졌는지도 말이다. 루제르트는 끌려갔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졌다.

케인이 그런 루제르트의 마음을 짐작하고 위로를 건넸다.

“이다음은 우리에게 맡겨. 인원을 더 풀면 뭐라도 더 나올 거야. 새로운 걸 발견하면 바로바로 공유하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거 봐봐.”

케인은 아까 유리와 함께 바람으로 만들어 놓았던 몽타주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음∙∙∙. 이건?”

루제르트와 크리스는 설명이 필요한 눈으로 케인에게 물었다.

“마법사와의 결투 중에 갑자기 날 습격한 인간이야.”

“아, 그 힘이 괴물 같았다던.”

“맞아. 아는 사람이야?”

“아뇨. 마법사의 부하인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냥 제 추측입니다만, 그 둘이 같은 편이었다면 협공했지, 무방비한 케인 님을 두고 그렇게 따로따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두 사람이 들어온 이후로 유리가 처음 입을 열었다. 유리에게서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던 루제르트가 조금 놀랐다.

“그건 그렇네요. 일단 기억해 두겠습니다.”

“하나 더 말해줄 게 있어. 내가 너희 행적을 조사하다 알게 된 건데, 예전에 산적 마을에 걸린 적 있었지?”

반년 전 루제르트와 크리스가 힐 산에서 내려온 직후의 일을 말하는 듯했다. 케인의 입에서 이때의 일을 듣게 될 줄 몰랐던 루제르트가 어리둥절했다.

“네. 그게 왜요?”

“그때 산적들을 죽인 거, 범인이 마법사일 가능성이 있어. 시체에 남은 흔적이 일반적인 상흔과는 많이 달라.”

루제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그때, 홀연히 나타나 경비대가 도착하기 전 산적 떼를 몰살시키고 두목을 처참한 꼴로 만들었던 존재 또한 할 수 있다면 잡고 싶었다. 그 누구에게도 멋대로 타인을 벌할 자격은 없다. 만약 산적들이 경비대에 잡혀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았다면 그들 중 일부는 반성하고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들을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또한 결국에는 무자비한 살인자와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마법사가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로군요.”

“그래. 이동 중에 마주치지 않게 주의해. 두 사람은 떠날 생각이지?”

“네, 병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가야죠.”

힐 제국에서 파견된 병사 중에 루제르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 말인데. 저도 동행하고 싶습니다.”

“음?”

뜬금없는 유리의 말에 케인이 정색했다.

“으으으음? 절대 안 돼. 정말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한 건 아니지?”

“왜 안 되죠?”

케인의 핀잔에도 물러서지 않는 담담한 눈이 오히려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딱히 안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부대원들은 모두 한 달에 한 번의 휴가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유리는 여태껏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었다. 그녀가 밀린 휴가를 쓴다고 하면 그가 말릴 명분이 없긴 했다.

“여기 이분들은 물의 수호자를 찾는 여행을 하는 분들이시죠. 저는 이 사항이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하. 휴가 쓰겠단 소리도 아니었어?’

역시 그의 부관은 야무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

그가 반대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여기 들어온 순간부터 유리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저 매정한 오빠라는 사람한테 상처받을까 봐 걱정되었다.

“하∙∙∙.”

유리의 흔들리지 않는 표정이 그녀의 의지를 반영하는 듯했다. 이 정도 되면 케인도 그녀를 말릴 순 없었다.

“맘대로 해.”

퉁명스러운 대답이 유일하게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삐침이었다.

“그럼, 상관의 허락은 받았군요. 루제르트, 크리스. 제가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전 좋아요.”

케인의 예상을 깨고 루제르트가 찬성했다.

‘어디 해보시지?’

루제르트는 유리에게 그녀가 낄 자리는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반대였다.

“죄송합니다.”

크리스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오자 유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그가 무슨 이유를 대든 맞받아 칠 자신이 있었다.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갑자기 새로운 동행이 생기면 제가 많이 버거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

그런데 이런 이유일 줄이야. 자존심이 강한 유리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거절 사유였다. 크리스가 둘만 다니는 것이 더 유리하다거나, 유리가 방해된다는 식으로 말할 줄 알고 준비했던 유리는 할 말이 없어졌다. 크리스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상대의 양해를 구함으로써 유리가 억지로 밀어붙이면 주변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했다.

‘그 정도로 내가 싫어?’

유리가 패배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크리스. 그대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물의 수호자는 더 이상 힐 제국만의 문제가 아니오. 이젠 우리 휘셀을 포함한 모든 제국의 안위가 달린 중대한 일이 되었소. 부디, 제국을 위해 고집부릴 수밖에 없는 이 마음을 헤아려주시오.”

아까 까지만 해도 유리의 합류를 반대하던 케인이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말투도 그답지 않게 엄숙하게 바뀌어 있었다. 공작이자 유일한 바람의 수호자인 그가 크리스에게 고개를 숙이자 크리스도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죠.”

누가 봐도 억지로 허락한 티가 역력한 크리스는 이따 보자는 말을 남기고 루제르트와 함께 박차듯이 막사를 나가버렸다.

떠나는 크리스의 등 뒤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유리가 케인에게 조용히 물었다.

“케인 님. 화나셨습니까?”

“내가 화나고 말고는 상관없어. 그냥, 자네가 울 것 같길래.”

화나지 않았다곤 안 했다. 그걸 알아차린 유리가 작게 웃었다.

“제가 우는 것 보셨습니까? 저는 절대 안 웁니다.”

“알아. 그대가 얼마나 강한지도.”

케인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강한 사람이라 자신이 먼저 손을 뻗지 않으면 절대 그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의 도움 같은 건 그녀에겐 그냥 맘씨 좋은 사람의 오지랖이겠지. 화났다는 걸 유리에게 들켜서 부끄러웠다. 대장다운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유리. 몸조심하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나는 바람이니까 어디든 달려갈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대장.”

마지막까지 웃어 보인 유리가 짐을 챙긴다고 방을 나갔다. 케인은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웃음은 ‘괜찮습니다. 안심하세요.’라는 뜻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기뻐 웃는 법을 터득하는 동안 혼자만 바보처럼 그러지 못한 것만 같은 사람이다. 그런 유리를 울린다면 누가 되었던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사이 어둡고 습한 수로를 내달리는 남자가 있었다. 마법사들이 언젠가 자신을 죽여 입막음하려 할 때를 대비해 조금씩 비밀 통로를 만들어 놓았던 게르그는 다른 사람들이 전투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도주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루제르트 왕자가 자신을 용서할 것 같지 않았다. 왕자의 살벌한 표정을 떠올리니 절로 어깨가 떨렸다.

수로가 두 갈래로 나뉘자 게르그가 품 안의 지도를 보고 오른쪽을 선택했다. 그는 지금 황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담보로 목숨을 보호받을 생각이다.

누만을 따라 황실에서 지내며 깨끗하고 좋은 시설에 익숙해졌던 게르그는 자신이 이런 냄새 나는 수도를 걷는다는 게 끔찍하게 싫었지만, 뒤에서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 무서워 발걸음을 재촉했다.

“황궁에 들어가면 살 것 같은가?”

서둘러 걷는 그의 바로 뒤에서 끔찍한 목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익!”

소름이 돋은 그가 펄쩍 뛰며 품 안에 숨겨둔 단도를 마구잡이로 한 번 휘두르고는 손에 걸리는 것이 없자 무작정 달렸다.

‘살려줘∙∙∙. 누가 제발 살려다오∙∙∙!’

로테는 겁에 질린 게르그의 뒷모습을 구경하며 걸었다. 또각또각, 사형선고가 좁은 터널에 울렸다.

‘어차피 이 복잡한 길은 나밖에 모른다.’

게르그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가 죽으면 힐 제국은 영영 제국을 노리는 거대한 그림자의 존재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에게는 절대 여기서 죽을 수 없는 사명이 있었다.

왼쪽, 오른쪽, 왼쪽, 왼쪽.

로테가 따라올 수 없게 일부러 길을 꼬아 달린 게르그는 노쇠한 몸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나온다. 그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온 힘을 짜내었다. 드디어 출구가 보였다. 출구의 틈새를 통해 밝은 빛이 한 줄기 희망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뭔가 이질적인 것이 포착되었다. 아까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수로의 벽면을 타고 웬 가시덩굴이 뻗어 있었다.

‘설마 나를 따라온 건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그의 몸이 싸하게 굳었다.

또각. 또각.

“허어억∙∙∙!”

발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매혹적인 다리부터 시작해 아름다운 여자의 전신이 나타났다.

“왕자에 수호자까지 나타나니 이때다 싶었겠지. 그동안 숨겨왔던 죄를 실토하고, 용서를 받고, 평생 봉사나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죄를 씻을 생각이었을 거야.”

“살려∙∙∙ 살려줘∙∙∙!”

“안되지, 안돼.”

그녀에게 사정하던 게르그는 어느 순간 눈앞이 꺼메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늙은 육신에는 복부를 꿰뚫은 고통보다 시야의 점멸이 더 빠르게 찾아왔다.

“커윽∙∙∙.”

허우적거리던 두 팔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가시를 타고 흘러내린 붉은 피가 하수와 함께 떠내려갔다.

“너는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야 해.”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어두운 지하로에 혼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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