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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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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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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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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글자수 :
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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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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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얼음산의 주인 12화

DUMMY

“오셨습니다만, 제가 장례 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슈나 님과는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말을 마친 게르그는 그동안 슈나가 보내온 편지를 가져오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이것들입니다. 버리지 않고 갖고 있길 잘했군요.”

돌아와 앉은 게르그가 작은 목함을 루제르트에게 내밀었다. 목함을 여니 안에 작은 쪽지부터 시작해서 편지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누만 님께서 살아생전에 모으신 것입니다.”

“여기 좀 탄 것 같은데?”

케인이 목함 가장자리에 그을린 듯한 검은 부분을 손으로 문질렀다.

“아∙∙∙. 그건 누만 님의 유품을 정리하러 온 황궁의 하인들이 모르고 태우려던 것을 제가 급하게 꺼내서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쪽지 몇 개를 펼쳐 읽던 루제르트가 감탄했다.

“누만 님은 정말 좋은 아버지셨나 보네요.”

“∙∙∙그랬지요.”

게르그가 왠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슈나의 편지에는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문장 하나하나에서 슈나가 누만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 편지에서도 슈나나 다른 수호자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뭔가 있을까 했는데 결국엔 건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루제르트가 실망하며 목함을 다시 게르그에게 돌려주려 하는데 그 손을 크리스가 덥석 잡아 저지했다.

“이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혹시 모르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고 크리스가 덧붙였다.

“그렇게 하시오. 나도 그쪽이 더 좋을 것 같군.”

의외로 게르그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케인은 크리스가 의미 없어 보이는 목함에 흥미를 가지니 뭔가 신경 쓰여 쳐다봤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어서 관두었다.

목함을 품에 넣으며 크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습니다.”

“예.”

“혹시 슈나의 다른 형제들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크리스는 물의 수호자에 대해 조사하면서 누만의 자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아봤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슈나뿐만이 아닌지 열 명이 넘는 사람들 모두 찾을 수 없었다.

크리스의 질문에 게르그가 쓰러질 듯 부들부들 떨자 깜짝 놀란 루제르트와 케인이 부축하려고 다가섰다. 게르그는 루제르트의 손을 밀어내더니 바닥에 주저앉으며 무릎 꿇었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부디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루제르트가 늙은 전 담당을 따라 황급히 몸을 굽혔다.

“왜 그러세요? 게르그님, 일어서세요.”

“저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여긴 더 이상 고아원 같은 게 아닙니다. 사악한 무리가 이곳을 점령하여 아이들을 빼돌리고 있습니다!”



“무능. 하구나.”

낮게 깔린 목소리에 마법사들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경직된 자세로 일렬로 서있는 마법사들은 저마다 눈동자나 머리색이 하나씩 붉게 물들어있었다.

“무능해도 너무 무능해.”

마법사들은 로테가 음절을 하나씩 내뱉을 때마다 마치 그녀가 신은 구두의 날카로운 굽이 전신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공포 위에 군림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 중 하나가 참다못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다 같이 덤비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거짓말같이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로테의 붉은 입술이 피에 물든 낫처럼 휘었다.

‘아아∙∙∙.’

방금 전만 해도 같이 숨 쉬고 있었던 동료가 순식간에 가시덩굴에 파묻혀 사라지는 것을 본 나머지의 몸에서 떨림이 멎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잘 할 수 있겠니?”

마법사들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힘내보렴.”

허락이 떨어지자 하나 둘 앞다퉈 동굴 밖을 뛰쳐나갔다.

다시 저 끔찍한 웃음을 보고싶지 않았다.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그게∙∙∙ 무슨 말이지.”

“와∙∙∙ 왕자님.”

게르그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의 온몸을 짓누르는 이 살기가 착하고 순진했던 왕자에게서 나왔다는 게 믿기 힘들었다.

“혹시 이곳에 로테라는 마법사가 왔나?”

“마법사를 아시는군요! 그렇다면 왕자님께서도 그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지 아실 것입니다. 소인에게는 도움을 청할 곳도, 피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쓰잘데기 없는 변명 집어치우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루제, 진정해.”

바닥에 납작 엎드린 게르그는 흐느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마법사의 요구에 응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하루하루 쌓여가는 죄책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여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왕자의 처벌이 두려웠지만,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자신은 평생을 속죄하며 살리라.

“마법사들이 아이들을 왜 데려가는 겁니까.”

게르그가 젖은 눈으로 크리스를 올려다보았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면 저를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뒤에서 한발 멀리 떨어져 있던 케인은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만났던 마법사들이 전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제야 그의 머리를 쳤다.

‘설마∙∙∙.”

쿵!

굉음과 함께 그들이 서 있던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선 세 사람이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재빨리 아래층으로 뛰었다.

게르그가 뒤늦게 허둥지둥 루제르트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자, 공포에 질린 아이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게르그! 안에서 아이들을 지켜!”

루제르트는 게르그 쪽으로 한번 소리친 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거기에 서 있었다.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여자, 로테가.

루제르트의 꿈속에 간간이 등장했던 인물이라 그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루제르트가 앞으로 나서며 뭐라 말하려는데 먼저 앞에서 사나운 고함이 쩌렁쩌렁 터져 나왔다.

“게르그, 네놈이 이제 갈 데까지 갔구나!”

그 기세에 용감하게 뛰쳐나갔던 루제르트도, 뒤에 있던 크리스도,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경고하려 했던 케인도 멈추어 섰다. 그들은 의아한 얼굴로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게르그를 돌아보았다.

“뭐∙∙∙? 갈 데까지 간 건 네년이겠지! 무슨 소리냐?”

얼떨결에 한눈에 시선을 받게 된 게르그가 창백해져서 항변했다.

로테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곧바로 게르그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이제는 맨 앞에 서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루제르트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많이 자라셨습니다, 왕자님. 참으로∙∙∙ 쓸모없어지셨군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이를 악문 루제르트가 로테를 노려보며 검을 뽑았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만, 이전과는 많이 다를 거다!”

“죄송하지만,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다.”

로테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주변에서 마법사들이 튀어나와 그녀의 앞에 섰다.

“저 은색 남자는 내가 잡는다. 나머지는 다 정리해.”

크리스가 재빨리 현관문을 닫았다. 루제르트는 검을 빼어 들었고, 케인은 날아오는 가시를 단도로 쳐냈다.

“저 여자가 너희가 말한 흙의 마법사 로테군.”

“케인, 그쪽을 맡겨도 될까요?”

“그래.”

“크리스 형, 위험하니까 형도 안에 들어가 있어!”

루제르트는 크리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마법사 무리에 달려들었다. 마법사도 그를 향해 마주 달려왔다. 그리고 그대로 루제르트를 지나쳐 게르그와 아이들이 있는 건물을 향해 불꽃을 쏘았다.

펑! 펑!

“앗! 크리스 형!”

건물 벽이 부서지며 벽돌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크리스가 재빨리 팔을 들어 얼굴을 감싸 안았다. 머리는 어떻게든 보호했지만 팔에 가해진 충격이 꽤 컸다. 돌가루와 모래가 치고 지나간 자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크리스는 초조해졌다. 그는 싸움 시작 전부터 마법사들이 건물에 관심을 갖지 않기만을 빌었건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킬 것이 있는 것부터가 애초에 그들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멸이야!’

“무서워!”

“선생님!”

그의 등 뒤에서 겁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이 들렸다.

루제르트가 황급하게 왔던 길을 돌아와 불꽃을 쏘려고 하는 마법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법사의 수는 너무 많았고, 그 혼자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루제르트가 차마 막지 못한 불꽃 하나가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안돼!”

루제르트의 비명과 동시에 케인 쪽에서 날아온 바람이 가까스로 불꽃을 막았다. 바람은 점점 한곳에 모여들더니 건물 전체를 둘러싸는 거대한 장막이 되었다.

“휴!”

케인이 안도의 한숨을 쉬자 그와 대치하고 있던 로테가 비웃었다.

“설마 안심하는 건가? 그 꼴을 하고?”

로테의 말대로 케인은 건물을 신경 쓰는 동시에 로테를 상대하느라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아가씨, 마법사는 힘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

로테가 대답 대신 얼굴을 사납게 찌푸렸다.

“정답이군. 그 말은 즉, 저 불꽃도 잠시만 버티면 끝난다는 뜻이지.”

마법사와 수호자의 가장 큰 차이점. 마법사의 힘은 무한하지 않다. 이건 일주일간 케인이 마법사와 추격전을 겪으면서 알아낸 것이었다.

“게다가 슬슬 시간이 되었는데∙∙∙.”

때마침 뒤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무사하십니까? 대장!”

너무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케인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덕분에.”

그의 자랑, 똑똑하고 현명한 부관.

“유리!”


작가의말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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