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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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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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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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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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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얼음산의 주인 7화

DUMMY

크리스는 넋이 나간 루제르트를 안고 미친 듯이 뛰었다. 품 안에서 아이의 몸이 덜덜덜 떨렸다. 앞만 보고 달리는 그의 뒤로 촌장의 처절한 목소리가 엉겨 붙었다.

“살려주시오!”

크리스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스에게 안겨 있느라 반대쪽을 보고 있었던 루제르트는 눈물범벅이 된 촌장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 촌장 앞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서 있는 거대한 사내도.

“제발 살려주시오- 제발∙∙∙!”

루제르트가 크리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형.”

크리스에게서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형!”

다급해진 루제르트가 발버둥을 쳤다. 이쯤 되자 크리스도 어쩔 수 없이 멈추어 섰다. 그도 산적의 도끼에 위협받고 있는 촌장을 발견했다.

‘젠장∙∙∙’

루제르트가 그를 부른 이유를 확인한 크리스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럴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보려고 했던 거였다.

“이 마을을 살려주시오-. 그대들이 가버리면 우리는 모두 죽소!”

촌장이 그들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도끼를 든 사내가 입을 열었다.

“너희가 도망간다면 이 촌장을 죽일 생각이다. 저기 죽어있는 저 여자, 촌장, 이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 너희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게 될 거야.”

묵직한 도끼가 허공에서 휘적거리며 마을 사람들을 지목했다. 도끼 끝에 걸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살려달라는 통곡 소리와 애원하는 소리가 작은 마을을 채웠다.

루제르트는 남자의 도끼를 따라 무심코 시선을 옮겼다가 죽은 마리와 마주쳤다. 마리는 조금 전만 해도 저런 형태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그의 앞에서 살아있었다.

루제르트의 충격받은 표정을 본 산적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어디 도망가 보던지.”

일찍이 제국의 검술을 전수받은 루제르트는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알았으나 몰랐다. 사람이 죽는다는 게 뭔지 제대로 몰랐다. 그는 지금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속이 울렁거리며 발밑이 금방이라도 밑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루제르트. 저놈이 하는 말을 들으면 안 돼! 도망가자."

크리스가 정신 차리라고 루제르트를 잡아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우리가 이대로 가버리면 마을 사람들이 다 죽을 거야.”

공포에 잠식된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건 우리가 죽이는 거랑 똑같은 거잖아.”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한 크리스가 이내 굳은 결심을 했다.

“미안해. 루제.”

루제르트의 작은 몸이 번쩍 들렸다. 모두가 앗 하는 사이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졌다. 산적 두목은 그들을 잡는 대신 보란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루제, 보면 안 돼.”

크리스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 나왔다. 하지만 루제르트는 그럴 수 없었다.

촌장의 절규, 그의 목을 가르는 도끼, 무고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붉은 피. 그 모든 것이 크리스의 어깨에 매달려 정면을 보고 있던 루제르트에게 고스란히 담겼다.



“아까운 마을 사람만 낭비했군!”

산적 두목, 노튼은 도끼에 묻은 피를 사납게 털어냈다. 부하들이 슬슬 그의 기분을 살피며 시체를 끌어냈다.

그는 원래 이보다 더 깊은 산에서 활동하는 산적이었다. 우두머리 싸움에서 패배해 산채를 떠나게 되었는데, 마침 자그마한 마을을 만나 점령해서 자신의 터로 삼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다른 모험가를 꾀어내는 데 쓰거나, 도적질하고 빼앗은 물품을 운반하는 운반책으로 썼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독한 놈을 만났다. 애송이가 조금만 더 머뭇거렸어도 숨어서 접근하고 있던 자신의 부하에게 잡혀 끌려왔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줄이야. 안 그래도 얼마 없는 마을 사람을 셋이나 투자했는데도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해서 짜증이 치솟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촌장을 새로 뽑아야 되잖아.”

뒤에 있던 부하도 같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들킨 건 처음이죠?”

“역시 검사는 다르다, 이건가? 감이 좋아.”

산적 조무래기들은 검든 모습만 보고 크리스가 검사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에잇! 기분 다 잡쳤다! 비싸 보이는 꼬맹이가 있어서 횡재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번엔 더 철저하게 준비해놔라. 들어오자마자 그냥 죽여버려.”

괜히 미적거리다 먹이를 놓치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당장 화풀이할 수 있는 상대를 원했다.

혼자 분을 삭이고 있는데 왠지 뒤에서 떠들던 부하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함을 감지한 노튼은 바닥에서 배가 뚫린 채 죽어있는 부하를 발견했다.

“뭣?”

영문도 모르고 부하를 잃은 노튼의 등 뒤로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쿨럭!

노튼이 토해낸 피가 바닥을 어지럽혔다. 그의 낡은 옷에도 그가 뱉은 피가 스며들었다. 출혈 때문에 시야가 어지럽고 척추가 시려왔다.

“넌··· 누구나?”

노튼은 잇새로 피를 흘리며 간신히 눈앞의 괴물 같은 남자에게 물었다. 그의 부하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전멸했다.

괴물. 남자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눈동자를 보면 알았다. 오로지 보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눈.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눈. 목을 비트는 것이 숨을 내쉬는 것과 다른 게 뭔지 모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눈이다. 순식간에 노튼의 부하들을 아작낸 놈은 자신을 죽이려다 잠시 망설이더니 그를 기둥에 묶고 떠났다. 무슨 이유인지 일부러 자신을 살려두는 것 같았다.

“누구냐고!”

뚜벅뚜벅.

그의 말은 말 같지도 않은지 괴물이 흔들림 없이 걸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 노튼이 허망하게 웃으며 떠나는 뒷모습에 대고 저주를 내뱉었다.

“네 놈의 얼굴을 기억했으니 꼭 찾아낼 것이다. 네놈의 가족, 친구 그 모든 것을 파괴해주지. 날 살려둔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우뚝.

멈췄다.



루제르트는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떴다.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어디서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니 넓은 번화가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득 창밖이 너무 눈부셔서 다시 침대로 고개를 내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루제르트가 움켜쥔 이불이 잔뜩 구겨져 그처럼 못나졌다.

루제르트가 모험을 꿈꾸게 된 계기는 그림 한 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밝은 하늘 아래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는 모험가, 그의 입에 걸린 씩씩한 미소. 악당은 벌하고, 뉘우치는 자에게는 자비를 내린다. 옆에는 듬직한 동료가 있고, 어딜 가던 사람들이 정의로운 그를 사랑했다. 위에는 그들의 앞을 비추는 찬란한 태양∙∙∙ 그 그림의 뒷면은 붉게 물들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방문이 열리며 “루제르트!” 하고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가 깨어난 것이 기쁜지 발소리가 급했다.

“루제, 괜찮아?”

크리스의 다정한 물음에 루제르트의 눈물이 터졌다. 화들짝 놀란 크리스가 허둥지둥거리다가 루제르트를 끌어안았다.

토닥임을 느끼며 루제르트가 눈을 감았다. 그는 크리스가 이미 자신을 떠나고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루제르트의 알량한 정의감을 혐오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제르트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옆에 있는 크리스가 자신 때문에 같이 위험해질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마을에서 도망친 건 크리스지만, 겁쟁이 루제르트 대신 자기 손을 더럽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크리스에게 너무 미안했다.

지금은 그때 그 선택이 최선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죽음을 외면한 내가 감히 안 괜찮아도 될까?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루제르트는 아팠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그냥 아팠다.



한참 울고 난 루제르트는 크리스의 손에 이끌려 숙소 식당으로 나왔다. 식욕이 없었지만, 크리스가 뭐라도 먹어야 한다고 하도 성화를 해서 간신히 소시지 몇 개를 씹었다.

“켁!”

루제르트는 식당으로 들어오는 갑옷 입은 병사를 보고 놀랐다. 병사는 루제르트를 발견하고 곧장 다가왔는데, 율켄이 보낸 병사인 줄 알고 숨으려 하는 루제르트를 크리스가 안심시켰다.

“괜찮아. 이 도시 경비대원이셔. 네가 쓰러진 사이에 내가 경비대에 신고했어.”

크리스가 차근차근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기절한 루제르트를 업고 정신없이 도망치다 촌장이 말한 큰 도시를 찾은 크리스는 루제르트를 의사에게 맡기고 바로 경비대로 향했다. 마침 경비대에서도 도시 주변에서 자꾸 모험가들이 사라지는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흉악한 범죄자를 소탕하기 위한 부대가 파견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병사는 파견이 끝난 뒤 제보자인 크리스에게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땐 이미 마을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산적들 시체만 남아있었습니다.”

루제르트는 귀를 의심했다. 산적들이 다 죽었다니?

“산적 두목은 어떻게 되었죠?”

“그게∙∙∙ 유일하게 그놈만 살아남았습니다만, 눈과 혀가 전부 뽑혀있더군요.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서 지금은 그냥 지하 감옥에 가둬놓았습니다. 옆 도시에서 유명했던 놈이라 했으니 곧 사형이 집행될 겁니다.”

경비대원은 말을 마치고 아차 싶었다. 자신이 왜 이런 보고를 어린아이에게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소년의 표정이 진지해서 그런가 잔인한 이야기를 해 버렸다.

“도대체 누가∙∙∙! 짐작 가는 건 없는 거죠?”

“어∙∙∙ 그렇죠?”

쾅!

루제르트의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와서 탁자를 내리쳤다.

“루제르트! 왜 그래?”

루제르트는 힘 약한 마을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산적 두목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참혹한 꼴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혼란스러워서,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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