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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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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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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246

작성
22.05.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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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얼음산의 주인 4화

DUMMY

“아∙∙∙ 하하∙∙∙. 왕자님 파이팅~.”

마법사고 제국이고 수호자고 뭐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크리스는 싸우느라 듣지도 않는 루제르트의 뒤에 텅 빈 응원을 던졌다. 어차피 무기를 다룰 줄 모르는 그가 괜히 돕는다고 나서봤자 방해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크리스는 억울했다. 길 안내나 하고 돈 받으면 되는 일이 왜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겠다. 싸운다고 해도 대자연과 싸우는 줄 알았지, 이렇게 무시무시한 괴생명체(?)와 싸우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멀리서 꼬마 괴생명체가 루제르트를 향해 물 폭탄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마법사 주변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물방울들은 가벼운 손짓 하나에 일제히 목표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크리스 형! 조심해요!”

“엥?”

쿵!

그중 하나가 빗나가 싸움을 구경하는 크리스의 옆을 강타했다. 1초 만에 그가 서 있는 자리 바로 옆에 움푹 팬 구덩이가 생겼다.

‘∙∙∙어떻게 피하는데.’

크리스가 뒤늦게 기겁하는 동안 싸움의 당사자인 루제르트는 물방울을 보고 눈을 빛냈다. 분명 그가 아는 물의 힘이 맞았다. 마법사가 수호자를 흉내 낸 가짜일진 몰라도 저 힘은 진짜였다. 이 산의 이상한 기후 또한 마법사 때문인 것이 아닐까?

‘제국을 위해서라도 꼭 마법사를 생포해서 힘의 출처를 밝히리라.’

그와 동시에 이 아이도 구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마치 잘 만들어진 기계처럼 로테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였다. 표정도 없고, 말도 없는 이 상태가 정상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소년이 나쁜 마법사에게 협박 받고 있거나 최면에 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국의 왕자로서 고통받는 제국민을 외면할 수 없는 법. 일단 거리를 좁혀 아이와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다.

하나, 둘, 셋!

루제르트는 몸을 세 번 비틀어 날아오는 물방울을 손쉽게 피했다. 그가 몸을 틀 때마다 둘 사이의 거리가 훅훅 줄어들었다.

“얘, 내 말이 들리니?”

루제르트가 너무 가까이 있어 원거리 공격은 못 하겠는지, 이번엔 시퍼런 낫이 위에서 뚝 떨어졌다. 루제르트는 낫을 피해 왼쪽으로 빙그르르 돌았다.

“나는 너를 공격하고 싶지 않아.”

푹. 푹. 푹. 푹.

빙글빙글 돌며 회피하는 루제르트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그보다 한 발짝 느린 푸른 낫의 잔상이 더해져 한 편의 검무를 연상시켰다.

루제르트는 일부러 아이의 주변을 돌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난 널 도와주고 싶어.”

순간, 짜증 섞인 눈과 강직한 눈이 허공에서 정확히 마주쳤다.

“내 이름은 루제르트 힐이야. 이름이 뭐야?”

깡!

루제르트가 처음으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여유롭게 한 손으로 검을 대고 있는 루제르트와는 다르게 힘을 준 아이의 낫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논.”

드디어 칼과 낫을 사이에 두고 아이의 입이 열렸다.

제논과 첫 대화에 성공한 루제르트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갑자기 가까이 보이는 제논의 눈동자에 검은색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제논!”

루제르트가 어찌 할 새도 없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거대한 물방울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숨이 막혀 루제르트가 버둥거리는데 갑자기 목뒤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헉, 하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바로 뒤에 접근한 로테가 그의 목에 주사기를 찔러 넣고 있었다. 물 감옥 속에서 소름 끼치는 미소와 마주한 루제르트가 로테의 손을 쳐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제논이 그를 붙잡았다. 그사이 주사기에는 순조롭게 루제르트의 붉은 피가 차올랐다.

“헉!”

루제르트가 굵은 바늘의 선연한 감각을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적게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온 물이 그의 기도를 막기 시작했다.

“루제르트!”

루제르트의 위기를 본 크리스가 고드름을 맨손으로 뜯어냈다. 그걸로 그가 뭘 해보기도 전에, 번쩍이는 섬광 한 줄기가 제논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제논은 서둘러 물을 끌어다가 방어막을 만들었다.

물 감옥이 무너지면서 루제르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쿨럭∙∙∙!”

“루제르트님! 괜찮으십∙∙∙아니, 괜찮니?”

“율켄경∙∙∙!”

율켄이 물을 내뱉는 루제르트의 몸을 부축했다. 그는 일찍이 절벽을 내려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뒤에서 협공할 생각으로 여태껏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루제르트가 위험에 빠지자 기습을 포기하고 검을 던진 것이다.

“제가, 내가, 저 여자를 맡으마!”

율켄의 등장에 안심했던 크리스는 그가 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연기를 하겠다고 더듬거리자 어이가 없어서 빽 소리를 질렀다.

“이미 다 들켰어요! 제대로 싸우기나 해!”

“쳇!”

율켄이 로테에게 달려들었으나, 그 뒤를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제논이 바짝 따라잡으며 방해했다. 로테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가까이 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율켄을 한껏 비웃어주었다.

그녀는 이미 큰 전리품을 손에 넣어 더 아쉬운 것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별 소득도 없이 허탕 치나 했는데 왕자라는 거물을 만날 줄이야.’

“자, 이젠 볼일도 없으니 다 없애버려.”

그녀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뒤를 돌려고 했으나, 갑자기 제논이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

그녀의 위치에서는 제논의 등만 보이기 때문에 루제르트와 율켄의 경악한 표정을 먼저 확인했다. 그녀는 황급히 제논을 살폈다.

툭.

제논을 보호하듯 주변을 맴돌던 물방울이 검게 변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논의 물빛 머리카락이 삽시간에 검게 타들어 가며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시커먼 물이 무표정한 아이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제논?”

루제르트가 제논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런 그를 뒤에서 크리스가 낚아채 저지했다.

“저길 봐, 루제!”

치이이이∙∙∙

검은 물이 주변을 녹이고 있었다. 저기에 다가갔다간 루제르트도 같이 녹아버릴 게 뻔했다.

“이럴 수가!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실패한 건가.”

로테가 제논을 경멸하듯 쳐다보다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났다. 로테가 도망치려 하자 율켄이 다급하게 외쳤다.

“루제르트님,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구해준다고∙∙∙!”

다 죽어가는 것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는 왕자가 멍청하기 짝이 없어 그는 로테라도 사로잡기 위해 달렸다.

절벽 아래 선 로테의 발밑에서 땅이 솟아오르더니 그녀를 태우고 위로 올라갔다. 율켄은 재빨리 땅이 변형된 흔적을 밟고 뛰어올라 로테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딜!”

로테가 사납게 소리 지르자, 율켄의 바로 밑에서 거대한 거인의 팔이 쑥 솟아올라 그의 발목을 낚아챘다. 흙으로 된 골렘이 율켄을 그대로 내던졌다.

쾅!

거인의 힘 때문에 벽에 거칠게 부딪힌 율켄의 의식이 까마득해졌다 다시 돌아왔다.

“골렘의 발밑에 잘근잘근 짓밟혀 죽어라.”

로테가 끝내 그를 조롱하고는 위로 사라져 버렸다.

율켄은 이를 악물었다. 이 세상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자는 전부 없애버리기로 한 그였다. 사나운 자존심이 속에서 날뛰었다.

골렘은 커다란 손을 휘둘러 옆에 있던 기둥을 날렸다. 거대한 돌덩이가 정면으로 날아오자 크리스가 기겁해서 루제르트를 껴안고 엎드렸다.

쾅!

루제르트는 녹아내리는 제논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이러다 다 죽겠어, 루제르트!”

다급한 외침에 루제르트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그는 크리스의 품 안에서 벗어나 떨어져 있는 검을 주워 달렸다.

“율켄경! 저를 도와주세요!”

루제르트가 곧장 골렘에게 돌진하자 골렘이 그의 머리 위로 주먹을 내리쳤다. 뛰어올라 주먹을 피한 루제르트가 공중제비를 돌아 골렘의 손목에 검을 찔러 넣자, 율켄이 긴 다리로 검 손잡이를 내려찍어 마무리했다. 체중이 실린 율켄의 내려찍기에 검이 땅속 깊이 박히면서 골렘의 팔도 바닥에 고정되어 버렸다.

손을 빼기 위해 낑낑거리는 골렘을 보고 루제르트가 환호했다.

“됐다!”

대사가 끝나자마자 골렘의 손목에서 날아온 검이 루제르트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

화가 난 골렘이 울부짖으며 옆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사방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명중률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위에서 진동 소리가 들렸다.

우르릉!

“저런!”

절벽에 붙어 있던 얼음덩어리들이 하나둘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발밑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거렸다.

이것이 붕괴의 징후임을 알아챈 세 사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걸 막지 않으면 여기서 생매장될 겁니다!”

다급해진 루제르트와 율켄이 골렘에게 달려들었지만, 단단한 그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오히려 성난 골렘이 더 날뛰면서 진동이 심해졌다.

“율켄! 골렘을 이리로 유인해줘요! 루제르트, 나를 도와줘!”

크리스의 외침에 율켄과 루제르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였다. 율켄이 골렘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유인하는 동안 먼저 도착한 루제르트에게 크리스가 줄을 엮어 만든 고리를 건네주었다.

“형, 이건?”

“아까 내려올 때 나무에 묶어놓은 밧줄이야, 이걸 골렘의 팔에 끼워줄 수 있어?”

루제르트가 영문도 모르는 채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가 이번엔 소리를 지르며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멍청한 골렘아! 여기다!”

골렘은 잠깐 율켄과 크리스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결국 방방 뛰며 시선을 끄는 크리스를 따라갔다. 골렘이 몸을 뒤돌려고 했지만 턱-하고 팔에 묶인 무언가가 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짜증 난 골렘이 있는 힘껏 팔을 당기자 쉽게 팔이 자유로워졌다. 방해꾼이 사라진 골렘이 행동을 재개하려는데, 강대한 힘 때문에 뿌리째 뽑힌 나무가 밧줄로 이어진 그를 향해 가공할 속도로 날아와 그대로 머리를 꿰뚫었다.

“뛰어!”

머리가 부서진 골렘이 움직임을 멈춘 것까지는 좋았으나, 나무가 뽑혀 나가면서 절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산에 두껍게 쌓여 있던 눈이 해일처럼 들이닥쳤다.

세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 눈사태의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아까 로테가 도망가면서 생긴 울퉁불퉁한 흔적을 붙잡고 정신없이 위로 올라갔다.

“빨리, 빨리!”

세 사람이 절벽을 절반 정도 올랐을 때,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분화구 안에 쏟아져 내리던 눈사태가 그들의 바로 아래에서 딱 멈추었다.

“사∙∙∙살았다!”

모두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루제르트는 제논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혼자 눈으로 뒤덮인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해주지∙∙∙ 못했어!’

루제르트가 주먹을 아플 정도로 꽉 쥐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 아이를 구하지 못한 슬픔이 더 컸다.

휭-

“∙∙∙?”

그런데 그런 루제르트의 옆으로 갑자기 커다란 형체가 떨어져 내렸다. 깜짝 놀라 굽혔던 몸을 화들짝 일으키던 루제르트는 서 있던 자세 그대로 눈 속에 쏙 박힌 율켄과 눈이 마주치고는 몹시 당황했다. 율켄 또한 당황했는지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율켄?”

그리고 옆에서 개운한 표정으로 손을 탁탁 터는 크리스를 발견했다.

상황 파악을 마친 율켄이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너∙∙∙ 너, 이자시이익!”


작가의말

11시에 올리려고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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