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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라프 님의 서재입니다.

악당의 오빠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글먹이J
작품등록일 :
2022.10.30 21:41
최근연재일 :
2022.11.05 21:1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29
추천수 :
5
글자수 :
41,972

작성
22.11.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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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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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5화

DUMMY

“어떻게-?”


제프리가 경악했다. 막심 토발츠의 전사 직후 곧바로 여기로 내달렸다. 그보다 빠른 사람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알렌은 이미 알고 있었다. 떠봤다고 의심하기엔 너무 태연한 태도였다. 마치 한참 전에 들어 마음의 정리까지 끝낸 사람처럼-


‘전서구?’


그나마 이 상황을 설명 가능한 건 전서구뿐. 사실 말이 안 되긴 매한가지였다. 비둘기의 귀소 본능을 이용한 통신은 이름난 가문에서나 사용할 법한 값비싼 것이니까.


알렌은 제프리의 반응을 통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안타깝게도 해결해줄 수 없는 의문이었다. 게임에서 봤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말해도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그래서 사안의 중대함을 빌미로 말을 돌렸다.


“하지만-”


물론 제프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애초에 알렌을 경계하고 있던 탓이었다. 알렌은 그가 왜 그러는지도 알고 있었다.


‘지독한 편애.’


제프리가 애냐한테만 소식을 전하려는 까닭은 원정하러 가서도 계속된 아버지의 지독한 편애 때문. 딸 자랑만 해대던 막심 토발츠. 반대로 알렌은 언급이 없다시피 했다.


외지에서 동고동락하며 같은 얘길 반복해서 들은 제프리로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막심 토발츠의 진정한 후계자는 애냐라고.


‘그래서 게임에선 제프리의 지원을 받은 애냐가 알렌을 제치고 정식 후계자가 된다.’


그건 결코 애냐한테 이로운 결과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생이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의 사랑마저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알렌이니.


후계자 자리마저 빼앗는 것은 알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행위와 마찬가지. 그에 따른 분노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든다.


유일한 혈육인 동생을 팔아넘긴 것이다.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드는 건 아니지.’


결과적으로 제프리의 행위는 애냐에게 해가 된 셈. 그렇다고 알렌의 끝이 좋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다음 세대 기사 중 수위를 다투는 제프리의 원한을 샀으니.


“혹여, 아버지의 유인이라도 있었습니까? 오직 애냐를 대상으로 한?”


그럴 리가-


막심의 죽음은 예기치 못한 일. 유언을 남길 겨를이 없었다. 즉, 막심이 애냐를 후계자로 점찍었다는 건 제프리의 망상에 불과하다.


알렌은 그 점을 일깨워주었다.


“음-”


유언이 있다고 거짓말할 법도 한데, 제프리는 그저 탄식할 뿐이었다.


‘성격은 게임과 똑같다.’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한 기사였다. 그래서 애냐가 세상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등장한 후에도 그 옆자리를 지켰던 거겠지.


[경국지색]이란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피를 나눈 친족마저도 빠져들게 하는 특성은 남자라면 피할 수 없으니.


“유언이 있는 게 아니라면, 후계자인 내게 아버지의 최후를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정론이었다. 다시 한번 탄식하는 제프리.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옳은 말이다. 허나, 그분께서 사랑해마지않는 딸에게도 자격이 있다.”


애냐에게만 단독으로 소식을 전하는 건 무산됐으니, 이젠 함께 듣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 제프리였다.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막심 토발츠의 편애가 상상 이상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고작 한 줄로 표현된 애냐의 불우한 성장 환경처럼-


그래도 제프리가 한발 물러난 건 사실.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알렌 역시 한발 물러섰다. 제프리가 경계와 의심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자 알렌이 말을 이었다.


“애냐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사랑한 만큼, 딸도 아버지를 사랑했으니 충격이 클 겁니다.”


공식 후계자인 알렌을 제치고 애냐를 도울 생각만 했던 제프리는 깜빡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실책을 인지한 제프리가 탄식했다. 그러면서도 눈빛이 형형한 것이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음을 알게 했다.


“알렌, 너는?”

“후계자 대부분은 아버지와 썩 사이가 좋지 않지요.”


후계자는 제 아버지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아버지 또한 그런 후계자를 견제한다. 중세 귀족의 부자 관계는 경쟁자에 가까웠다.


“영지를 물려받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솔직함이 조프리의 경계를 허물었을까? 뜻밖의 조언에 알렌은 쾌재를 불렀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넌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급하게, 또 혼자 왔다고 생각하나?”

“영주의 눈치 때문이겠지요.”

“그래, 영주님의-”


조프리의 말이 끊겼다. 그는 다시 한번 경악한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봤다.


알렌은 대수롭지 않게 그가 할 말을 대신했다.


“남작님은 인재 욕심이 상당하십니다. 영지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휘하 기사가 많은 건 그 때문이지요. 문제는 나눠줄 땅이 없다는 겁니다.”


코딱지만 한 장원이라도 하사받은 기사는 막심 토발츠가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영입된 기사들은 별 볼 일 없는 작위뿐이었고.


영지를 누구보다 바라는 기사들이 그러한 점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다. 그 사실을 영주인 라시오 남작도 알았다.


“기사들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장원을 회수할 필요가 있지요. 아마도 그분께선 이 상황을 무척 반기실 것입니다.”


명분은 많았다. 막심 토발츠 대에 이르러 봉신 계약을 맺은 터라 장원을 소유한 기간이 짧다는 점, 그리고 후계자가 성년이 아니란 점.


제프리가 다시 탄식했다.


“그분께선 너무 욕심이 많으시지. 신진 기사들을 위한답시고 기존 가신들에게 내준 봉토를 회수할 생각을 한다니···”

“귀족이란 그걸 욕심이라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족속 아닙니까.”


알렌은 군주 뒷담화를 할 정도로 제프리의 경계가 옅어진 것을 확인하고 웃었다.


제프리 또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보니 너무 뛰어나서 언급하지 않았던 거였어. 아, 망나니짓도 그 때문인가?”


수많은 왕이 뛰어난 후계자를 경계했다. 어쩌면 막심도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알렌이 망나니로 위장했을지도 몰랐다.


제프리의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으나, 알렌은 옳거니 호응했다.


“반대로 아픈 손가락에게는 뭐라도 더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제프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렌이 시나리오 시작점을 완전히 뒤틀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인가? 분하겠지만 명분은 남작님께 있다.”

“일단, 애냐를 잘 달래야겠지요.”


제프리는 흡족해하면서도 걱정했다. 여전히 애냐를 우선하여 생각한다는 방증.


“여유가 많지 않을 거다. 그분께서 벌써 사람을 보내셨을지도 몰라.”


제프리가 막심 토발츠의 전사 직후 이곳으로 내달린 건 그를 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일단 장례식부터. 대처는 그다음입니다.”

“음, 시신 없는 장례가 되겠군.”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원정을 떠나 죽으면 온전한 시신이 고향으로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보존 기술이 없는 탓이었다.


“문제는 외부 조문객도 없으리란 거다.”

“영주님의 눈치 때문이겠지요.”

“그래.”


제프리는 알렌의 눈치를 살폈다. 조문객이 없다는 건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위신이 손상된다는 걸 의미한다.


원래라면 역정을 내도 이상하지 않은 일. 그러나 알렌은 담담히 장례 계획을 세울 뿐이었다.


‘어쩌면 분노를 삼키고 있을지도.’


알렌은 진짜 아버지와 가문이 아니기에, 그저 남의 일처럼 대한 것뿐이지만, 제프리가 보기엔 냉철하게 분노를 삼키는 것으로 보였다.


저런 인물의 원한을 사다니. 차후 라시오 남작과 영지에 평지풍파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착각은 장례식이 속전속결로 거행되면서 점점 커졌다. 나이상 장례식 주관은 처음일 터인데, 알렌의 일 처리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도와주려고 남은 제프리가 무안할 정도. 그렇기에 오해는 점점 살을 불려 나갔다. 알렌이란 후계자는 뭔가 다르다고.


“아아, 안 돼-!”


한편,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들은 애냐는 알렌의 품에 안겨 오열했다. 혼자서 슬픔을 삼키던 게임과는 달라진 장면이었다.


그녀의 기습적인 돌진에 주춤했던 알렌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일련의 행위가 무의미하지 않은 셈인가.’


움직이는 게 하루만 더 늦었어도 시작 난이도가 배로 뛰었으리라.


물론 안심할 때는 아니다. 운 좋게 시작이 잘 풀렸으나, 애냐의 시나리오 난이도는 방심을 불허하기에-


알렌은 애냐를 달래주는 한편, 장례식 준비를 철저히 해나갔다. 문제가 생긴 건 고용인이 소피아를 찾지 못하였다고 보고했을 때였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송구합니다.”


이 작은 장원에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설령 멀리 갔다 해도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고용인이 행선지를 파악해둬야 정상이었다.


‘도망은 아닐 테고.’


소피아는 죽으면 죽었지, 재산을 놓고 도망갈 사람이 아니다. 기습적으로 한 방 크게 맞았지만, 아직 만회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테니 더욱.


그렇다면-


“롤랑 경도 못 찾았겠지?”


고용인의 자세가 더 낮아지자, 알렌은 두 사람이 별관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상한 점은 이런 상황에서도 고용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규칙이 지켜진다는 점이었다.


아니, 지키는 척하는 건가?


“약삭빠른 녀석이군.”


움찔한 고용인이 자세를 더 낮췄다.


“허나, 모름지기 수족이라면 주인의 마음을 알고 먼저 움직여야 하는 법이지.”

“송구합니다.”


고용인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깃들었다. 고용인은 권력의 향배가 바뀐 것을 알고 재빨리 줄을 바꿔 탄 것이었다.


어쩌면 오늘 죽은 하녀의 자리를 노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렇게 보는 게 정확하리라.


“어허, 이를 어쩐다. 아버지 장례식에 아내가 없는 불상사는 있어선 안 될 터인데. 음, 그렇다면 장원 외곽까지 찾아보아라. 기왕이면 손이 남은 고용인 모두 함께하면 좋겠고.”


말의 내용과 달리 다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잠시 말의 진의를 생각하던 고용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례식이 끝난 후를 생각해주시는구나!’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소피아가 가만있을 리 없다. 알렌은 그때 고용인들이 책임을 회피할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수족이 눈앞에서 죽는 걸 막지 못하고, 복수도 못 한 소피아와는 정반대였다.


미처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던 고용인은 제프리와 유사한 오해를 했다.


‘설마, 이날을 위해 그간 웅크리셨던 것인가!’


막심 토발츠의 전사 소식이 당도하기 직전 본모습을 드러낸 게 잘 짜인 계획처럼 느껴졌다. 네리를 죽인 것도, 고용인 중 유일하게 별관 출입이 허용된 사람임을 알아서가 아닐까?


알렌이 들었다면 꿈보다 해몽이라 했을 법한 생각을 한 고용인은 확신에 찼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부터 시작된 장례식은 아침이 되기도 전에 끝에 다다랐다. 시신이 없는 덕분에 장례식 절차가 대폭 줄어든 덕분이었다.


그때까지 알렌 옆에 마련된 소피아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러한 광경이 장례식에 참석한 영지민들에게 각인시켰다. 막심 토발츠의 뒤를 이을 사람은 알렌 토발츠라고.


‘애초에 장례식을 주관한다는 건 후계자임을 공언하는 것.’


소피아는 아직 만회의 기회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못한다면 게임 끝이었다.


그래서 알렌이 살짝 조급함을 느끼는 것과 반대로, 영지 유일의 사제인 도미니코는 한없이 여유로웠다.


“오늘 우린 위로는 주군께 충성하고, 아래로는 저에 속한 자들을 보호했던 영주이자 신실한 자를 떠나보내려고 합니다.”


“사자처럼 용맹했던 막심 토발츠는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나지 않았으며, 약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데 앞장선 기사 중의 기사로, 이제 주님 옆에서 지상에서 못다 한 일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는 온갖 수사로 고인의 삶을 기리는 한편, 고대 제국어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고대 제국어는 특유의 발음이 경건한 느낌을 주기에, 그럴듯한 장면을 연출하기에 좋았다.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빅 이벤트를 저의 지식을 뽐내기 위한 무대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물론 제대로 되었다면 알렌에게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종교적 권위가 더해진다면 후계자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도미니코의 고대 제국어 실력이었다.


“에- 주님. 우, 아니 저희 손으로 하늘, 아니 땅에 묻힌···”


형편없는 고대 제국어 실력은 역효과만 났다. 더 큰 문제는 장례식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 기껏 계략을 부린 의미가 점점 사라져갔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지만 이루는 건 하늘에 달렸다더니, 엉뚱한 부분에서 발목이 잡혔다.


“어이쿠-”


도미니코는 심지어 들고 있던 고대 제국어 책을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굴러간 책이 유족으로써 근처에 있던 알렌의 발에 닿았다.


인상을 구기며 책을 주워들던 알렌은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이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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