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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라프 님의 서재입니다.

악당의 오빠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글먹이J
작품등록일 :
2022.10.30 21:41
최근연재일 :
2022.11.05 21:1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25
추천수 :
5
글자수 :
41,972

작성
22.11.01 23:44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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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4쪽

3화

DUMMY

단번에 고요해진 식당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그런데도 혼자 남은 고용인의 안색이 평온한 건 장원의 안주인을 믿어서였다.


‘분명 마님께도 소식을 전했겠지?’


막심 토발츠가 장기 임무를 받고 자리를 비운 후, 장원 일에는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는 망나니 후계자를 대신해 장원을 관리한 사람이 안주인인 소피아 토발츠였다.


그 때문인지, 혹은 계모란 불편한 위치 때문인지, 알렌은 저택에서만큼은 망나니짓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눈앞의 거만한 자는 겉모습만 알렌에게 빌린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한편 알렌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번 돕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지킬 힘이 없는 보물은 소유자에게 화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 토발츠의 미모는 그 어떤 보물보다 위험한 셈.


[경국지색]


국가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 만한 절세의 미인을 뜻하는 칭호는 불행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슬그머니 눈치나 보며 다 먹지 못한 음식을 몰래 먹고 있다지만, 애냐 토발츠의 시나리오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한 알렌은 이 칭호가 가져올 고난과 역경을 잘 알았다.


‘헤헤···’


알렌의 걱정과 달리, 애냐는 몰래 음식을 빼먹다 들키곤 멍청하게 웃어댔다. 알렌은 아빠 미소가 드러나지 않게 애써야 했다.


아무튼, 얼굴을 갈아엎지 않는 이상 그녀의 미모로 인한 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날 터였다.


문제는 알렌마저도 애냐 토발츠의 시나리오를 한 번도 클리어하지 못했다는 점.


그러니 돕기로 한다면 여느 때보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수룩하게 덤볐다간 예정된 최악의 미래를 맞닥뜨리게 될 터이니···


‘일단 소피아부터-’


극악한 난이도의 시나리오라도 처음부터 난도가 높지는 않았다. 다만 이득까지 챙기려면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알렌님. 다 모였습니다.”


식당에 모인 고용인의 숫자는 다섯. 안타깝게도 소피아는 보이지 않았다.


‘귀찮게 하는군.’


알렌은 속으로 혀를 차며 고용인들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칠세라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는 고용인들. 단 한 명은 예외였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혼자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었다. 게임을 통해 소피아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면 그녀를 소피아로 착각했을 만큼 당당한 태도.


‘꿩 대신 닭이라던가-’


그녀를 본 알렌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모르는 얼굴이지만, 뭐 하는 년인지 알 만했다.


알렌이 말했다.


“누구냐?”


묵직한 중저음이 고용인들을 압박했다.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 가운데, 유일하게 거기서 한 발 벗어나 있던 고용인이 나섰다.


“알렌님. 믿고 끝도 없이 무슨 말씀이시죠? 차분하게 말씀해주세요. 저희 애들이 잘못한 게 있다면 제가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그녀의 태도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 게임의 배경이 중세 유럽이 아니고, 또 그녀가 농노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름난 가문은 귀족의 먼 친척이나 사촌을 하녀로 쓴다지만, 토발츠 가처럼 역사가 짧은 가문의 하녀는 기껏해야 농노였다.


그리고 농노는 인간이 아니라 재산일 뿐.


‘저희 애들이라-’


추측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 알렌은 씩 웃었다. 거기다 특유의 거만한 눈빛이 어우러지자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자태가 연출됐다.


“건방지군.”


순간 거대한 위압감이 하녀를 압박했다.


“무슨-”


하녀는 망나니 따위에게 움츠러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목소리를 높이려고 했다. 그러나 알렌은 더 이상의 건방짐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 동생에게, 농노도 안 먹을 빵과 농노도 입지 않을 옷을 준 년이 너냐?”


알렌이 말을 끊어먹자, 하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여전히 건방졌다.


“마님의 명입니다! 알렌 님께선 남자라 모르시겠지만, 여자는 어릴 때부터 먹는 걸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살이 찌기에 십상입니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은 현재 모습이 정상이라 이건가? 좋다. 그럼 옷은?”


알렌이 반쯤 수긍하는 듯 보이자, 하녀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건 사치를 경계하라는 값진 가르침을 얻는 방편입니다.”

“다 내 동생을 위해서다?”

“그야 당연하지요.”


완벽한 변명이라고 생각한 하녀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먼저 알렌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하녀가 뭔가 이상하다, 불길함을 느끼던 찰나-


“주인을 기만한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르나?”

“아니-”


하녀가 다급히 변명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 전에 그녀의 뺨을 때리는 알렌의 손바닥.


퍽.


“악-!”


손바닥과 맞닿은 뺨에선 주먹으로 맞은 듯한 소리가 났다. 그대로 쓰러진 하녀의 볼은 움푹 들어갔고 턱은 어긋났으며, 코에선 연신 피가 흘러나와 땅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생각보다 이 몸의 힘이 강하다-’


생각보다 과하게 손을 썼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상대는 농노 아닌가.


알렌은 이 몸의 힘을 염두에 두면서 쓰러진 하녀 앞에 섰다. 하녀가 제 뺨을 붙잡고 원독에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나, 날 쳤어? 망나니가?”

“여전히 건방지군. 농노라서 그런가. 가르침을 줘도 배울 줄을 몰라. 멍청한 년.


일방적인 매도에 하녀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그녀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마님께서 이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부리는 이를 보면 주인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너 같은 멍청한 년을 수족이랍시고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 수준도 알 만하구나.”


매도는 하녀를 따라 계모에게까지 닿았다. 알렌이 그간 숱한 망나니짓을 벌였지만, 계모를 대상으로 한 적은 없었던 탓에 하녀는 물론이고 식당에 있는 일동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르렁-


알렌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제야 분위기 파악이 됐는지 하녀의 얼굴에서 원독이 빠지고 그 자릴 두려움이 대신했다.


“왜, 왜···?”


겁에 질린 하녀를 잠시 뒤로한 알렌은 다른 고용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누구냐?”


시퍼렇게 빛나는 검 끝 또한 방향을 같이했다. 고용인이 다급히 외쳤다.


“알렌, 알렌 님이십니다!”


검 끝이 바로 옆의 고용인에게 향했다.


“내가 누구냐?”

“막심 토발츠 경의 유일한 적자이며, 그분을 대리하며 장원을 지배하는 적법한 후계자십니다!”


알렌 토발츠는 이 장원의 유일한 후계자다. 이 몸의 주인은 그 점을 망나니짓에만 써먹었지만···


‘난 다르지.’


단번에 아랫것들의 기강을 잡은 알렌은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하녀를 돌아봤다. 그사이 하녀는 미래를 직감한 듯 주저앉은 채로 땅을 다리로 밀며 도망치고 있었다.


“여전히 건방져. 물러가라 명하지도 않았거늘, 제 마음대로 가다니?”


알렌은 하녀가 충분히 공포를 맛볼 수 있도록 느릿하게 그 뒤를 쫓았다. 아래로 내린 검 끝이 여전히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추적의 끝은 하녀의 등에 차가운 벽에 닿았을 때였다. 벽을 돌아본 하녀가 부르르 떨더니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마님! 마님! 도와주세요! 마님-!”


마치 계모 소피아가 유일한 구명줄이라도 되는 듯. 알렌은 일부러 시간을 주었다. 소란을 듣고 계모가 찾아올 수 있도록.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알렌! 이 무슨 황망한 짓입니까-!”


계모 소피아는 진한 갈색 피부와 풍만한 몸매가 인상적인 미녀였다.


물론 미녀라도 수준 차이가 있는 법. 어린데다 영양 부실인 애냐가 한 떨기 장미 같다면, 소피아는 들판에 널린 이름 없는 꽃 같았다.


소피아가 화려한 옷에 보석 장신구를 여럿 걸쳤지만, 그러한 감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랫것들을 교육하는 중입니다. 어머니.”

“어, 어머니?”


3년 전, 그녀가 계모가 된 후로 한 번도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은 알렌이었다. 그 탓에 소피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주춤했다.


알렌은 그런 사정을 알지 못했지만, 그로 인한 틈을 놓치지는 않았다.


‘배우가 모두 무대에 올라섰으니.’


아직 현실이라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전적이 있어서일까.


망설임은 없었다.


“네 죄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 안···”


하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빛살이 그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머리통이 몸과 작별해 바닥을 굴렀다.


분수처럼 터져 나온 피가 식당을 붉게 물들였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지는 시체.


그 순간이었다.


[경험치를 정산합니다. 상대 레벨이 너무 낮습니다. 경험치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시야 구석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떴다. 잠시 멈칫한 알렌은 내색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허업-”


얘기치 않은 살인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몸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태연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오직 일을 저지른 알렌 뿐.


돌아선 알렌은 피범벅인 채였다. 아래로 내린 검 끝에선 더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


소피아는 눈앞에서 총애하던 하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녀의 권위에 흠집이 난 순간이었다. 더 큰 문제는 고용인들마저 보는 앞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데 있었다.


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예전처럼 고용인들을 제 손발처럼 쓸 수는 없으리라. 그건 저택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그걸 알면서도 소피아는 입만 뻥긋거릴 뿐, 이렇다 할 말을 내뱉지 못했다.


제 수족을 알렌이 단칼에 죽이는 장면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거니와 알렌의 내려다보는 시선이 그녀를 압박해서이기도 했다.


그 형형한 시선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다음 차례는 바로 너라고.


소피아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헝겊을 다오.”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알렌은 여유롭게 움직였다. 특유의 깔보는 시선이 합쳐지자 오만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피와 검, 그리고 충격적인 살인 때문일까. 아니면 기존의 망나니짓과 달리 제대로 된 명분을 이용한 처분이기 때문일까.


알렌은 더는 망나니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용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진짜 푸른 피를 가진 귀족이라고.


“예! 알렌 님, 여기 있습니다.”


한층 빠릿빠릿해진 고용인들. 알렌은 헝겊으로 검을 닦은 후 검집에 넣었다. 검이 모습을 감추자 식당에 있던 일동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소피아 또한 안정을 되찾은 상태. 덜덜 떨리던 눈이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이젠 저택에서까지 망나니짓하려는 겁니까! 사람을 함부로 해하다니요! 아무리 후계자라 할지라도 그럴 권한은 없습니다!”


그녀는 알렌의 행동을 망나니짓이라고 규정했다. 수족인 하녀의 죽음을 막지 못한 실책을 덮으려는 수작이었다.


그녀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알렌은 후계자일 뿐, 장원의 주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재산인 농노를 함부로 처분할 권리 따윈 없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으로 소피아가 그냥 물러나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알렌은 미소를 지었다.


“사정을 들어보면 아버지도 이해하실 겁니다. 아니, 사랑해마지않는 딸을 기만한 아랫것을 편히 보내줬다고 혼내실지도 모르죠.”

“기만-?”


소피아가 기가 차서 알렌을 올려다봤다. 그녀를 불렀던 고용인은 식당에서 있었던 일의 자세한 사정까진 고하지 않은 듯했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애냐에게 살이 찌면 안 된다면서 농노나 먹을 음식을 주고, 사치를 부리면 안 된다면서 농노나 입을 옷을 주었지요. 다 어머니 명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요. 그게 기만 아닙니까?”

“그건 진짜 내가-”


알렌은 소피아의 말을 끊었다. 이번 무대에서 그녀의 역할은 조연이었다. 주연 역할은 이다음 무대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요. 어머니께서 한낱 농노처럼 생각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


알렌은 그녀가 농노 출신임을 돌려 깠다. 그녀의 역린이었다. 입을 꾹 다문 소피아가 부들부들 떨며 알렌을 노려봤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눈빛일 터.


“사치는 귀족의 의무입니다. 건강한 몸매는 미의 기준이죠. 이를 역행하면 다른 이들이 품위가 없다고 비웃을 테죠.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는 겁니다.”


아, 물론 어머니께서는 잘 아셨겠지만- 알렌이 덧붙인 말에 소피아가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부글부글 끌었다.


“···”


그러나 소피아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둘 다 함정이 있기 때문.


하녀가 그녀의 지시를 받고 그랬다고 하면? 딸을 사랑해마지않는 아버지가 돌아온 후의 뒷감당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몰랐다고 답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어쨌거나 저택의 관리는 그녀의 책임이었으니, 하녀를 관리하지 못한 죄를 인정하는 꼴이다.


외통수였다.


알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거만스럽게 웃어 보였다.


“주인을 기만하고, 죄가 드러나자 어머니의 명이라서 거짓말까지 한 농노입니다. 이제 제 처분이 얼마나 적법했는지 아시겠지요?”


숫제 가르치는 태도였다. 일부로 역린인 농노 출신인 점을 자극하는 거였다. 소피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분노를 삼킬 뿐, 말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고용인들의 시선이 차게 식었다. 수족처럼 따르던 하녀가 죽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 복수도 하지 못한 주인이 수족보다 못한 이를 도와줄 수 있을까?


알렌이 소피아의 한쪽 팔을 잘라내고, 저택에서 그녀의 영향력을 반 토막 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소피아의 수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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