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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라프 님의 서재입니다.

악당의 오빠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글먹이J
작품등록일 :
2022.10.30 21:41
최근연재일 :
2022.11.05 21:1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24
추천수 :
5
글자수 :
41,972

작성
22.11.01 23:15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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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4쪽

1화

DUMMY

김정우는 백미러를 곁눈질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될 딸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좌석에 닿아 짓눌린 찹쌀떡처럼 변한 볼살의 유혹이 치명적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이 절로 꿈틀댄다.


“녀석 잘 자네.”

“평소에는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잠꾸러기가 새벽같이 일어나 재촉했으니 별수 있나?”


보조석에 앉은 아내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직 애라니까.”

“그래도 이런 날이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딸의 사춘기가 머지않았다. 아빠와 결혼하겠다던 딸은 곧 접근도 불허하겠지.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정우도 알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미련이 남을까.


“사춘기를 모르고 지나가는 애도 있다던데.”


사실 지혜는 또래보다 조금 늦은 편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꿈 깨셔. 나이 먹고 오면 더 골치니까.”

“너무 냉정한 거 아냐?”

“자기가 너무 무른 거야. 평소엔 칼 같은 사람이 왜 딸한테만 푸딩처럼 변하는지.”

“딸 가진 모든 아빠가 다 그렇지 않을까.”

“글쎄.”


소희가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정우는 아차 했다. 아내는 고아였다.


“그, 미안-”

“같은 처지에 웬 사과?”


사내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고아란 공통점 덕분에 급속도로 친해져 결혼에 성공한 부부였다.


소희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한창 바쁠 시기에 놀러 가도 돼?”

“주말인데 뭐 어때?”

“개발팀에 언제부터 주말이 있다고.”


슬쩍 정우의 눈치를 본 소희가 말을 이었다.


“힘들다고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항상 내가 옆에 있다는 거 기억해. 힘들 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부부잖아.”

“우리 한 여사님. 또 무슨 말을 들었길래?”

“장난치지 말고. 개발 일정 간당간당한다며?”

“누가 그래?”

“정 이사가. 완전히 벼르고 있던데.”


정우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자기가 내민 손 안 잡았다고?”

“어. 자존심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잖아.”

“참나. 실력도 나쁘지 않은 양반이 왜 사내 정치에 목숨을 거는지 몰라.”

“목표가 높은 거겠지. 자기도 그런 점은 본받아 봐.”

“집에선 잠만 자고, 회사에 올인하는 워커홀릭? 난 못해. 그깟 회사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거든.”


목표를 높게 가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정우의 답에 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그녀 역시 가정이 최우선이었다.


실수를 만회한 정우도 히쭉 웃었다.


“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 개발은 이미 끝났고, 테스트로 버그만 잡으면 완성이니까.”

“정말? 정 이사는 왜 반대로 알아?”

“솔직히 말하면 꼬투리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켠 정 이사가 가만있겠어? 기한을 줄이거나 되지도 않는 아이디어 추가하라고 들이밀었을걸?


그제야 소희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졌다. 그녀는 우쭐한 표정의 남편에게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올, 우리 남편. 팀장 되더니 머리를 다 써?”

“내가 안 써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그 대단한 머리로 지혜 게임이나 어떻게 해 보지? 어릴 때부터 게임에 빠지면···”


게임 개발사에 다니는 부모 때문일까. 딸 지혜는 어릴 때부터 바비 인형보다 게임기를 더 좋아했다. 지금도 게임기를 쥔 채였다.


“왜 또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


정우는 질색하면서도 속으로 웃었다. 배려 넘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가진 그는 분명 행복했다.


때아닌 소란에 일어난 지혜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마까지 해주자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더는 진정시킬 수 없었다.


“아빠. 매직 패스 끊는 거 맞지?”


비록 사특한 목적이 있는 아부였지마는. 행복의 크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 모두가 미소 지을 때였다.


백미러로 빛이 쏟아졌다.


뒤에서 달리는 화물차의 라이트가 터널에 진입하면서 자동으로 켜진 거였다. 그제야 정우는 화물차가 너무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화물차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도.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찰나의 순간, 정우는 액셀을 강하게 밟는 한편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며 차선을 바꾸려고 했다.


터널이란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불안감이 더 컸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쾅-


화물차가 그가 탄 차를 덮쳤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에 걸맞은 충격에 정신을 잃은 정우.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운명이라 생각했던 아내 한소희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김지혜도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아-”


행복의 정점에 있던 한 가족의 가장은 이제 불행의 한 가운데서 오열했다.




아내와 딸이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일이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장례식이 치러졌고, 회사에선 권고사직을 당했다.


사실 회사로선 오래 기다려준 편이었다. 사고 후 정우는 영혼 빠진 인형처럼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 퇴근하곤 했으니까.


직후엔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아내와 딸과 재회할 방법은 꿈뿐이었다. 비록 백에 아흔아홉은 사고 당시의 악몽을 꾸었지만.


‘바쁘다고 약속을 미뤘으면 어땠을까-’

‘놀이공원이 아니라 아쿠아리움이었다면-’

‘트럭을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다면-’


수많은 가정이 끈적한 손이 되어 그를 얽어맸다. 그는 점점 피폐해졌다. 앙상하게 변한 그에게선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듯했던 과거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우야. 네 책임이 아니야.”


그를 길러준 원장 수녀는 달마다 찾아와 그를 위로했다.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그럼 누구 책임인가-’

‘많고 많은 사람 중 왜 우리 가족이지?’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아내와 가족이라곤 부모뿐인 딸이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차라리 같이 죽었어야 했다.’


분에 넘치는 행운을 욕심내지 않았다. 그저 남들만큼만 살기를 바랐는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소희도, 지혜도 네가 이러는 걸 원치 않을 게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니?”


기가 막힌 것은 죽을 것 같던 슬픔이 서서히 옅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걸 명확하게 느낀 건 원장 수녀가 켜 놓고 간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봤을 때였다.


그냥 켜져 있으니 본다는 느낌이었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정우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웩-”


그런 자신이 역겨웠다. 구역질이 났다. 고작 일 년이었다. 한낱 예능이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슬픔을 이기는 데 필요한 시간은.


용납할 수 없었다.


정우는 그제야 아내와 딸의 유품을 정리하며 다시 슬픔을 되살렸다. 멀어지려는 그것의 끈을 억지로 붙잡았다.


그 과정에서 딸이 하던 게임이 눈에 띄었다. 일곱 마녀에게서 세상을 구하는 용사의 모험이 주된 스토리인 게임.


게임을 켠 정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김지혜]


용사의 이름은 딸의 이름과 같았다. 딸이 게임을 시작할 때 제 이름을 써넣은 거였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딸이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덕분일까. 한 번도 쉬지 않고 끝을 봤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메인 시나리오를 클리어하자 서브 시나리오가 열렸다. 이용자가 일곱 마녀 중 한 명을 선택해 살아남는 게 목적이었다.


정우가 선택한 캐릭터는 타고난 미(美)로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만든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마녀 애냐.


애냐는 딸 지혜와 여러모로 흡사한 점이 많았다. 그 탓일까. 정우는 침식을 잊고 게임에 몰두했다. 마치 이 캐릭터를 살리면 아내와 딸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는 듯-


그러나 애냐를 살리는 건 쉽지 않았다.


- 날 이렇게 만든 건 세상이에요. 내겐 이 세상에 복수할 권리가 있어요.

- 복수가 허무하다고요? 그건 해 보지 못한 위선자들이나 할 법한 말이죠.


애냐는 복수심에 불탔다. 그 불꽃이 제 몸을 갉아 먹어도 멈추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말하는 애냐 위로 아내와 딸이 겹쳐 보였다.


정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애냐가 살아남을 때까지. 그러나 무슨 수를 쓰던 애냐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마치 결과가 정해진 것처럼-


“빌어먹을.”


쾅-


던져버린 게임기가 벽에 맞고 튕겨 나왔다. 액정이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깨진 화면 속 애냐가 말했다.


- 복수를 포기하라고요? 그럼 뭐가 달라지죠? 날 이렇게 만든 자들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텐데요? 또 내 한은 어떻게 풀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정우는 가족을 앗아간 사고를 검색했다.


“집행유예···?”


애냐의 말이 옳았다.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죄인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정의로워야 할 법은 오히려 면죄부를 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부들부들 떨던 정우는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애냐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 날 이렇게 만든 자들도 똑같이 당해 봐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될 테죠. 이건 복수가 아니라 정의에요.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주요 구간에서는 화물차 휴게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사 식당은 물론, 각종 편의시설이 제공되는데, 개중 하나인 수면실에선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에이 시발, 패가 왜 이리 안 붙어?”


산만 한 덩치에 팔에 문신을 한 화물차 기사가 패를 보더니 와락 인상을 구겼다. 도박을 시작할 땐 수십만 원이 쌓여 있던 그의 앞자리엔 이제 만 원짜리 몇 장이 전부였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이지.”

“뭐시여? 지금 나 놀리는 겨?”


패를 돌리던 화물 기사가 실실 웃어대자, 문신남은 살쾡이 같은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다른 기사가 다급히 중재에 나섰다.


“왜들 이러나? 아직 게임이 끝난 것도 아닌데. 존버라는 말 몰라? 끝까지 버티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이 도박판이여.”

“니미. 퍽이나 그렇겠다.”


문신남은 제 패를 엎고 옆에 놔둔 검은 비닐봉지에서 소주를 꺼냈다. 같이 자리한 기사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이, 잠깐 눈만 붙였다 간다면서?”

“소주 한 병 먹는다고 운전 못 하나? 한 병이면 간에 기별도 안 가겠구먼.”


병 채로 소주를 마시는 문신남. 그를 가만히 보던 기사 중 한 명이 눈을 내리깐 채로 말했다.


“그쪽, 왠지 익숙하다 했더니, 전에 뉴스 나왔던 그 기사 아닌가? 왜, 저쪽 터널에서 음주운전으로 일가족 밀어버렸다던···”


기사들의 시선이 쏠리자, 문신남은 바닥을 보인 소주병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술이 불콰하게 취한 얼굴에다, 전적까지 있는 문신남이었다. 기사들이 시선을 피했다. 그를 알아본 기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꼼짝없이 감방 신세를 질 줄 알았는데···”

“흐흐, 감방은 무슨. 변호사가 하라는 데로 반성하는 척하니까 집유 뜨던데?”

“일가족을 밀어버렸는데?”

“덕분에 돈 좀 깨졌지. 씨발. 그래서 내가 꼭 따야겠다 이 말이야. 자, 빨리 패 돌려.”


문신남의 재촉에 패를 들고 있던 기사가 다시 패를 돌렸다.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판돈이 올라감에 따라 다시 활기를 띠었다.


모두 좋은 패를 쥔 듯 이어지는 레이스. 문신남의 옆엔 빈 술병이 늘어나 있었다. 그를 알아본 기사가 툭 내뱉었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닌가?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 좀 자제하는 게 어때?”


문신남이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오히려 피해자는 나야! 시발. 아는 사람만 아는 지름길에, 심지어 새벽에 웬 승용차냔 말이야!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그놈들 때문에 괜히 돈만 나갔다니까?”

“그래도 집행유예면 조심하는게···”


문신남의 눈이 가늘어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동자가 살쾡이처럼 흉흉했다.


“어이, 무슨 속셈이야?”

“속셈이라니?”

“그딴 말로 날 흔들 속셈인 거 모를 줄 알아? 시발. 올인이다. 다들 패 까봐.”


승자는 문신남이었다. 그가 계속 말을 건 기사를 흘기며 히쭉 웃었다.


“이거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디서 같잖은 수를 써? 내가 그딴 것에 당할 줄 알고!”

문신남이 돈을 회수하고 일어났다. 지갑이 도박을 시작했을 때보다 배로 빵빵해졌다. 그를 알아본 기사가 그를 올려다봤다.


“더 안 하고?”

“흐흐, 게임은 끗발 죽일 때 끝내야 하는 거야.”

“설마, 안 자고 가게?”

“여기 더 있어 봐야 다시 게임하자고 귀찮게 굴게 뻔한데 내가 왜? 잘들 있으쇼.”


문신남이 건들거리며 수면실을 빠져나갔다. 매점에서 담배와 물을 산 그는 냉큼 제 화물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시동을 걸고 화물차를 몰았다.


새벽녘의 도로는 조용했다. 도박의 긴장감이 해소되고, 라디오에선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자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화물차가 차선을 침범하며 비틀댔다. 술에 취한 문신남은 알지 못했다. 그러다 확 꺾이는 곡선 구간에 진입했을 때였다.


문신남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뉴스에 나왔던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생각보다 흔했다. 연쇄추돌이 아니고서야 뉴스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더욱이 음주운전을 한 사람의 얼굴은 가해자의 인권도 인권이라며 절대 안 나왔다.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 순간, 백미러로 빛이 쏟아졌다. 바로 뒤에 화물차가 꼬리를 물고 있었다. 졸음 때문인지, 아니면 술 때문인지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안전거리 준수는 밥 말아 먹었나!”


그가 뒤차를 욕할 때였다. 빛이 강해짐과 동시에 거대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쾅!


끼이이익---!


문신남이 탄 화물차는 난간을 뚫고 추락했다. 그렇게 만든 뒤차도 그 뒤를 따랐다.


그 운전석에 앉은, 문신남을 알아봤던 기사는 먼저 땅에 처박혀 폭발하는 화물차를 눈에 담으며 씩 웃었다.


“그래. 복수는 허무하지 않아.”


곧 거대한 충격이 정우를 덮쳤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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