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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라프 님의 서재입니다.

악당의 오빠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글먹이J
작품등록일 :
2022.10.30 21:41
최근연재일 :
2022.11.05 21:1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28
추천수 :
5
글자수 :
41,972

작성
22.11.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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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DUMMY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일었다. 과음한 것처럼 머리가 무겁기도 했다. 눈을 뜨자 멀미하듯 어지러움이 더해졌다.


“살았어···?”


정우는 제가 살았음을 믿지 못했다. 확실한 복수와 더불어 먼저 간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결행 장소를 낭떠러지로 잡지 않았던가.


먼저 떨어진 놈의 화려한 마지막을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장소 선정이었다. 그걸 보고 곧 아내와 딸을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고작 두통과 어지러움 조금이라고?”


더 웃기는 점은 가족과의 재회가 불발된 데에 따른 실망감보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더 일찍, 그리고 크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두통과 어지러움, 거기에 자신을 향한 역겨움이 구역질하게 했다.


“웩-”


한바탕 쏟아내자 정신이 한결 또렷해졌다. 여긴 나무로 된 낡은 창고였다. 침대라 생각했던 건 허리 높이까지 쌓인 마른 짚이었고.


밖엔 황금빛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와 회반죽으로 쌓아 올린 집들도 보였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흡사한 풍경.


무슨 상황인지 알 길이 없던 정우가 멍하니 풍경을 눈에 담을 때였다.


“알렌님.”


막 창고 옆집에서 나오던 사내가 그를 발견하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낡고 거친 재질의 옷을 입은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알렌?’


사내는 정우를 알렌이라고 불렀다. 익숙한 이름. 정우는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며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러는 동안 내려앉은 침묵에 고개 숙인 사내가 덜덜 떨었다.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이 힌트가 되었다.


“알렌, 토발츠?”


사내의 허리가 더욱 굽어졌다.


정우의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비틀거리며 사내를 뒤로한 그는 근처 우물가에서 멈춰 섰다.


두레박에 가득 찬 물속에 밝은 금발에 곱상한 외모, 특히 깔보는 듯한 삼백안이 인상적인 청년이 들어 있었다. 퍽 거만한 인상이었다.


정우는 이런 외모의 사내를 알고 있었다.


“알렌 토발츠-”


어찌 모를까? 딸아이가 했던, 딸아이를 그리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게임 캐릭터인데.


비록 등장 빈도가 낮은 엑스트라지만, 맡은 역할이 중요했다. 주요 인물, [경국지색]의 마녀 애냐 토발츠의 하나뿐인 오빠였기에.


정우, 아니 알렌은 상체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중세 촌락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게임 속에 들어왔다는걸. 그리고 엑스트라 캐릭터로 빙의했다는걸.


“이게 무슨-”


새벽같이 일하러 나오던 농민들이 그런 알렌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한 점 미동 없는 모습에서 그들의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이 몸의 주인, 알렌 토발츠는 악명 높은 망나니이기도 하니까.


알렌은 비틀거리며 걸었다. 이건 꿈일까? 아니면 죽기 직전 폭발적으로 나온다는 엔도르핀으로 인한 환상?


그렇다고 보기엔 주변 풍경과 역병 걸린 사람을 대하듯 거리를 벌리는 마을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이 너무 생생했다.


깨어나기 전 마지막 기억은 복수의 대상과 함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거였다.


그런데 게임 캐릭터로 빙의라니? 심지어 주요 인물인 애냐 토발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엑스트라라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바라던 건 복수와 하늘나라에서 기다릴 아내와 딸과 재회하는 거였으니.


“음-”


그때, 허리춤에 찬 검의 폼멜에 손이 스쳤다. 밤새 차가워진 금속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래,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다.


스르렁-


매끄러운 소리를 내며 검집을 빠져나오는 칼은 잘 관리되어 있었다. 망나니라도 기사의 아들이라 이건가.


빠져들 것 같은 매혹적인 은빛 검신을 내려다보며 알렌은 생각했다.


이 검으로 제 목을 베면 아내와 딸이 기다리고 있을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시퍼렇게 빛나는 검 끝이 방향을 바꿔 서서히 알렌의 목을 겨눴다.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건 검 끝이 목을 파고들기 직전이었다.


“알렌?”


장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저택을 등진 채 알렌을 내려다보는 소녀가 있었다.


“지혜야···?”


때마침 저택 지붕 위로 고개를 든 태양이 그녀를 감싼 탓일까? 한순간이나마 알렌의 눈엔 천국에서 저를 마중 나오는 딸로 보였다.


그게 아님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그녀는 딸과 조금 닮았을 뿐.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알렌과 같은 금발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삐쩍 말랐는데도 빛나는 미모 등은 자연스럽게 한 인물을 떠올리게 했다.


“애냐-”


게임을 클리어하려면 무찔러야 하는 일곱 마녀 중 하나이자 [경국지색]의 마녀 애냐 토발츠. 그녀가 눈살을 찌푸린 채 마녀의 상징인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하- 아무리 보기 싫어도 그렇지, 그래도 남매인데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을 쉬어?”


딸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잔뜩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완전한 착각임을 깨닫게 했다.



장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저택은 본관인 3층 건물과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게임에서 봤던 것처럼-


애냐를 따라 얼떨결에 저택으로 들어온 후에야, 알렌은 자살을 고민하던 사이에 몸이 알아서 집을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귀소본능도 아니고-’


자살로서 아내와 딸을 만나겠다는 고민은 잠시 뒤로 미뤄놨다. 만약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면, 눈앞에서 형제가 자살하는 끔찍한 기억을 어린 소녀한테 새겨주게 될 테니까.


나중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일을 치를 생각이었다.


“알렌님.”

“오셨습니까.”


알렌을 발견한 고용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마을 농노들과 비슷한 모양새. 그의 악명은 저택 내부에서도 통용되는 듯했다.


그것보다 더 눈길이 갔던 것은 앞장선 애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그 원인이 두려움이라 할지라도 알렌에겐 극진했던 태도가 애냐에겐 정반대였다. 그것은 무시라고 해야 옳은 모습이었다.


더 꺼림직한 점은 대놓고 무시당하는 애냐가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렇게 취급받는 게 당연하다는 듯-


그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암시했다. 순간 무심코 흘려보냈던 텍스트 한 줄이 뇌리를 스쳤다.


[막심 토발츠가 장기 임무로 자리를 비운 사이, 애냐는 계모에게서 구박받고, 오빠에게서는 무시당하는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애냐는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게임 캐릭터에 불과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은 많은 창작물에서 흔히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언짢을까? 불쾌한 상황은 식당에서도 계속됐다.


“배고파. 빨리 밥 줘-”


애냐 쪽에 더 가까웠던 고용인은 대답하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알렌을 바라봤다.


“알렌님. 식사, 준비할까요?”


알렌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용인이 눈 한 번 마주하지 못하고 물러나자, 그 자리를 샐쭉한 표정의 애냐가 채웠다.


“여기서 먹을 거야?”

“···그래.”


애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죽으려고 결심할 때는 언제고. 식사를 챙겨 달라고 말한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알렌도 마찬가지였다.


“웬일로? 언제는 구역질이 나서 같이 못 먹겠다더니?”


알렌과 애냐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어머니가 애냐를 낳다 돌아가시자, 알렌은 애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편애 또한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한 원인이었다.


‘분명 그런 설정이었지-’


“오늘은, 아니다.”

“흥.”


애냐가 콧방귀를 뀌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음식은 애냐 앞에 먼저 차려졌는데, 음식이라고 해 봐야 진갈색의 호밀빵이었다.


발효된 시큼한 냄새가 나는 데다, 딱딱해서 뜯기도 힘든 빵이었다. 그런데도 애냐는 능숙하게 입에 넣고 침으로 녹여 먹었다.


‘영지 사정이 어려운가?’


게임에서는 식사를 보여주지 않았기에, 알렌은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아버지 막심 토발츠의 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봉신 계약을 맺은 터라 토발츠 가의 장원이 작기도 했고.


그런 생각은 알렌 몫의 식사가 나오자 깨끗하게 사라졌다.


결이 곱고 색이 밝은 빵과 채소스튜, 거기다 구운 고기까지 포함된, 애냐의 빵과 비교하면 진수성찬이라 할 만한 상.


꿀꺽.


애냐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침을 흘리며 진수성찬을 보던 애냐가 알렌의 시선을 느끼고 반대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


문제는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알렌은 무심코 넘어갔던 애냐의 모습을 다시 마주했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몸과 농노들이 입었던 거친 재질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타고난 미모가 아니었다면 기사의 딸이 아니라 농노의 딸로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계모에게서 구박받고, 오빠에게서는 무시당한 애냐는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텍스트로 읽은 것과 직접 경험한 것의 차이는 컸다. 이건 결코 단 한 줄로 단순하게 설명해서는 안 되는 성장 환경이었다.


“먹어라-”


알렌은 제 앞에 놓인 음식을 애냐의 쪽으로 밀어냈다. 순간 식당에 있는 고용인들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가장 놀란 건 당사자인 애냐 토발츠였다. 그녀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알렌을 올려다봤다.


“···설마 음식에 독이라도 탔어?”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대놓고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던 애냐는 한참을 머뭇거린 후에야 알렌이 건넨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그렇게 한입 먹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찡그렸던 인상이 얼음 녹듯이 풀렸다.


음식을 오가는 그녀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제대로 씹고 삼키는 건지 걱정될 정도.


‘웃으면 이렇게 예쁜데···’


알렌의 얼굴에 아빠 미소가 떠올랐다. 고용인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알렌의 것과 의미가 달랐다.


피식-


그건 분명 비웃음이었다.


애냐는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부당한 대우가 계속된 나머지 당연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일종의 가스라이팅처럼-


‘이 몸의 본래 주인도 책임이 있다.’


아버지 막심 토발츠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애냐를 보호할 사람은 알렌뿐이었는데. 놈은 오히려 원망하고 질투하며 동생을 방치했다. 그건 암묵적인 동조였다.


그러니 알렌이 같이 있는데도 고용인들이 겁 없이 주인의 딸을 무시하는 거겠지.


고용인 둘은 한술 더 떠 수군거렸다. 집중하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사흘 굶은 거지도 저 정도는 아닐걸?”

“누가 아니래? 다 흘리고 먹는 것 좀 봐. 더럽게 먹으라고 시켜도 이렇게는 못 할 거야.”

“으, 끔찍해. 난 도저히 청소 못 하겠어. 이젠 청소까지 시켜볼까?”

“누가 저걸 보고 기사의 딸이라고 생각할까? 차라리 내가 더 어울리지 않아?”


확실히. 거지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탐하는 애냐는 품위가 없었다. 다만 그게 고용인이 주인의 딸에게 막말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만큼 익숙해진 건 애냐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말문을 잃은 알렌은 잠시 애냐를 바라봤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한낱 고용인마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이 애냐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이게 꿈이 아니고, 내가 자살하면?’


알렌은 저택에서 유일하게 애냐의 편인 아버지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기마저 자살하면 애냐는 혼자가 된다는 뜻.


본래 애냐 토발츠의 스토리 또한 불우하기 그지없지만, 더 최악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빌어먹을.’


뻔히 그런 미래가 올 것을 알면서도 어린애를 혼자 놔둘 만큼 알렌은 무정하지 않았다.


드르럭.


알렌이 일어나는 소리에, 애냐가 음식으로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로 올려다봤다. 알렌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물이 닿은 것처럼 질색하는 애냐.


알렌의 미소는 애냐를 등지고 고용인을 마주하자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 자리한 건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시선.


“고용인들을 모두 불러와라.”


비정상적인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진 고용인들은 한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진 까닭을 알지 못했다. 곧 그들에게 닥칠 위기 또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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