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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비행장

무한의 물자로 대한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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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멧돼지
그림/삽화
비행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4.08.15 17:16
최근연재일 :
2024.09.19 07:20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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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글자수 :
235,916

작성
24.08.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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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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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0쪽

충칭으로

DUMMY

결행일로부터 닷새. 태현과 심윤기, 이송헌이 겨우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 할 말 많은 얼굴로 태현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고, 태현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먼저, 동지 세 분께 묵념하겠습니다.”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묵념한 후 다시 앉았다. 태현은 평소처럼 조용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 고생 많으셨고요. 그 부대는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합니다.”


이송헌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하 참 진짜··· 와, 대장. 거기 정말··· 와.”


이송헌이 가방에서 징그러운 것을 만지는 것처럼 사진 뭉치를 꺼낸다. 굉장히 많았다.


“필름은 나만 아는 데 숨겼고, 인화를 해 왔는데··· 잘 찍혔는지 볼 자신이 없어 확인 안 했어. 대체 뭐야? 이 놈들, 마귀 새끼들이야?”


태현은 수십 장의 사진을 하나하나 살폈다. 태현이 마지막 장까지 다 보자 심윤기가 손을 내밀었지만 태현과 이송헌 둘 다 심윤기를 말렸다.


“이거면 충분하고도 남겠어. 필름은 영국이나 미국의 언론사에 바로 넘기는 게 가장 좋은데, 그게 아니라면 장제스에게 맡겨야하고.”


“나 그거 찍고 그저께까지 밥을 못 먹었다니까. 제기랄, 나는 내가 정신나간 놈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그런 것들이 다 있고, 어떻게.”


심윤기가 눈을 찌푸린 채 태현을 보았고, 태현은 사진을 주지 않고 그가 궁금해하는 걸 말해주었다.


“인체실험 결과들입니다. 자료를 찍은 사진이고, 부대가 다른 데 숨기 전에 확보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심윤기는 불쾌함에 얼굴을 씰룩거렸다. 태현은 사진을 가방에 잘 넣은 다음 이송헌에게 물었다.


“그래서 송헌. 넌 어떻게 나왔어?”


“소각로 옆에서 시체랑 누워있다가, 한 명 오는 걸 죽여서 옷 뺏고.”


“용케 안 들켰네.”


“죽인 놈 바로 소각로에 집어넣었거든. 그후 거기가 자료 파기하고 물건 내버리고··· 아직 살아있는 실험 대상들을 정리한다고··· 정신없는 틈에 나왔지.”


태현은 잠시 말하지 못하다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 필름을. 홍콩으로 가서··· 기자를 한 명 찾아서 건네는 게 좋겠어. 영국인이나 미국인.”


“내가 남쪽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좀 오래 걸려도 되지?”


“그렇게 해. 어차피 우리는 난닝에 배치될 거니까.”


“아, 그랬지. 이제 또 전투할 때지. 맞네.”


이송헌은 과장되게 숨을 길게 내쉰 다음 앞을 보았다.


“뭐, 이건 의형제가 죽을 때까지 말하지 말아달라고 한 건데···”


“그럼 말하지 마. 안 들을래.”


“에이 씨. 이걸 어떻게 나만 알고 있지. 아니 근데, 하하하하. 아니 어떻게 그래? 그 많은 사람들을 도대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들을.”


이송헌이 731부대에서 받은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듯했다. 태현은 계속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우리가 멈출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서양 언론이 이런 걸 가만히 놔둘 리는 없으니까.”


“몰라, 난. 하··· 진짜 형제를 쏴버려야 했나. 고통에서 해방되라고.”


태현이 대답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이제 충칭으로 가죠. 송헌은 거기서 홍콩으로 이동하고.”


“그러자고, 여기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어.”


심윤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일어나죠.”


하얼빈에서 충칭까지는 직선으로 3,000km 가 넘는 거리. 21세기에 비행기를 타고 가도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심윤기와 이송헌 두 사람은 계속 기차를 갈아타고 차를 몰고 밤에 걸어 움직이는 험난한 여정을 각오했지만, 태현은 많이 급했다.


“그러고보니, 형님도, 송헌도 비행기를 처음 타시네요.”


심윤기가 눈을 크게 떴고, 이송헌이 입을 딱 벌렸다.


“비행, 뭐?”


“우선 날아서 가려고. 그다음은 육로로 이동하고.”


“누가 조종해?”


“내가.”


심윤기가 멈춘 다음 손을 흔들며 뒷걸음질쳤고, 태현은 그 손목을 잡아끌었다.


“중간에 내릴 거니 괜찮아요. 형님. 어차피 연료 때문에 멀리도 못 가요.”


“음!”


“아뇨, 아니오. 타실 겁니다.”


태현은 심윤기는 붙잡을 수 있었지만 이송헌은 어려웠다. 그는 부대의 간부 중 가장 힘이 세기 때문에.


“나 대장이 비행기 모는 거 본 적 없는데! 2년간 한 번도! 아니 그전에, 비행기가 왜 있어?”


“얻었어. 몰 줄 아니까 걱정하지 말고. 폴리카르포프 R1이라고 꽤 괜찮은 비행긴데, 개조사양이라 셋이 탈 수 있어.”


“소련기네! 그걸 어떻게 얻어? 누가 줬는데! 그게 여기 왜 있고!”


“여긴 없고, 차로 반나절 가면 준비되어 있어. 가자.”


날아가다 전투기에 격추당할 거다, 밤에 날아갈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착륙하다 모두 죽고 말 것이다 등의 의견이 교환되기는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선택권이 없었다. 이동에 필요한 비용은 어차피 태현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셋은 두 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날이 밝기 전 만주국의 선양시가 보이는 위치에 내렸다. 다만 두 사람의 걱정이 근거없지는 않아서, 태현은 착륙 후 내려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이래서 한쪽 바퀴만 닿았구나.”


“내가 진짜 언제 대장 죽여버린다?!”


“자, 자. 여기서는 기차를 타자. 최대한 서쪽으로 간 다음 산시성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며칠 준비하고 서안까지 가고.”


두 명은 질린 표정으로 태현을 보았다. 태현은 잔잔히 웃는 얼굴로 둘에게 따라올 것을 강요했다.


“서안의 국민당군이 우릴 기다릴 거야.”


셋은 일본군의 점령지를 지나 산시성으로 넘어갔다. 1939년 지금은 산시성의 지배자 옌시산이 국민당과 협력 중이기에 그곳에서 서안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서안은 삼국지에 익숙한 사람에게 장안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으로, 한나라 때부터 고작 몇 년 전까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거대한 도시다.


그중 최근의 것은 1936년 이 곳에 찾아온 장제스가 그의 수하였던 장쉐량에게 감금당하고 공산당과 화해할 것을 강요당했던 시안 사건.


그때는 장제스가 공산당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직전의 상황이었지만, 시안 사건에서의 협상 및 중일전쟁의 발발로 국민당과 공산당은 협력하게 된다.


태현은 국민당의 군대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가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여기서부터는 말을 조심해야겠네···”


이송헌이 그 말을 받아 대답했다.


“그러니까. 막 부르지 말고 장제스 총통님이라고 높여 불러야지.”


국민당군은 태현을 확인하고는 비행기가 올 동안 머물 곳을 마련해주었다. 셋은 긴장을 풀고 이틀 쉴 수 있었고, 그후 충칭에서 온 DC-2 수송기가 서안의 비행장에 도착했다.


이송헌은 DC-2 를 보고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와아···”


미국에서 1934년에 완성된 날개폭 26m의 최신예 수송기. 셋이 타고 온 1920년산 폴리카르포프 R-1 과는 체급이 다른 물건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군인들이 먼저 태현에게 경례를 붙였고, 태현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조금 느리게 반응하고 손을 내리지 못했다.


이송헌만이 아니라 심윤기도 비행기의 안에 들어가고는 대도시에 온 시골쥐처럼 부산해했다.


“안에 들어오니 정말 크네. 좌석도 있고. 미국은 이런 걸 만들어?”


“나도 처음 봐.”


“하, 이런 거를 공장에서 턱턱 찍어낸다니. 대단해.”


국민당군은 셋을, 특히 태현을 정중히 모셨다. 결국 궁금함을 참다 못해 심윤기가 태현에게 물었다. 손가락으로 국민당군을, 그 다음 태현과 자신을 가리키며 표정으로.


태현은 간단히 답했다.


“제가 충칭에 이것저것 보내둔 게 많아서요.”


“음···”


비행기는 두 시간 반을 조금 넘어 충칭에 도착했고, 태현은 비행기에서 내리고 도시의 모습을 보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상황일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심윤기가 또 태현에게 표정으로 물었고, 태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일본군이 계속 폭격하고 있거든요. 도시를.”


도시의 상황에 질린 것은 이송헌도 마찬가지였다.


1939년 지금 기준으로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칠 규모의, 민간인 구역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을 한 국가는 일본 뿐이다. 처음에는 난징, 그후 우한, 지금은 충칭.


그것은 이후 일본 자신과 동맹국인 나치 독일의 도시가 폭격을 당하기까지 이전의 기록을 한참 뛰어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폭격이었고, 심윤기는 물론 이송헌조차 항공폭탄을 얻어맞은 민간인 도시라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셋은 안내를 받아 북적이는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한 막사 건물에 도착했고, 그 곳에서 부대장 김병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병두는 태현과 가까워지자마자 물었다.


“대장, 작전은?”


“잘 됐어.”


“다행이야. 그리고 오늘 저녁 다섯 시. 총통이 대장하고 나를 식사에 초대했어.”


“오늘? 당장?”


장제스는 분명 지금 중국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 중 한 명이다. 태현은 그가 생각보다 훨씬 반가워한다고 생각했다.


병두는 고개를 끄덕여 태현의 말에 대답한 다음 고개를 돌려 막사를 보았다.


“우리는··· 잘 기다리고 있고.”


“다들 정말 오랜만이네···”


“들어가자고. 모두 기다려.”


2층으로 된 긴 건물에 들어서자 몇 주간 못 본 대원들이 복도와 계단에 나와 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현이 그동안 모은 병력은 약 300이지만 지금은 그 절반 정도만 보인다.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태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말을 건넸다.


“뭐, 아픈 사람은 없고?”


“고생하셨습니다!”


한 명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잠시 후 건물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았어, 대장!”


태현은 그들이 반가우면서도 언제나처럼 마음이 복잡했다.


이들을 이끌고 다시 적과 싸우러 가야 하기 때문에. 탄환이 날고 폭약이 터지는 곳에 이들을 밀어넣어야 하니까.


태현은 웃는 얼굴로 천천히 복도를 가로질러 걸었다. 모두의 얼굴을 보려고. 보고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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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칭으로 24.08.17 251 8 10쪽
5 동지들 24.08.16 276 6 13쪽
4 최고의 무기 24.08.16 314 5 10쪽
3 하얼빈 공작 24.08.15 333 5 12쪽
2 별개의 목표 24.08.15 428 13 11쪽
1 간도의 게릴라 +2 24.08.15 576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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