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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밖에 없는 정신병동

소녀, 소설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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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feel
작품등록일 :
2016.02.17 18:35
최근연재일 :
2016.12.29 12:0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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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6
추천수 :
475
글자수 :
213,345

작성
16.02.2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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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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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3화

DUMMY

사람은 생각에 몰두하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가는 걸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라비가 나가고 거의 바로 달이가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든 건 아마 그 탓일 것이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실제로 나는 달이가 나에게 말을 걸 때까지 녀석이 분재부실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렇다. 내 머리로는 해석이 너무나도 어려운 단어를 들었으니. 이럴 때는 명탐정 달이님께 문의하는 게 최선이지만, 친동생한테 러브레터란 단어가 들어간 이야기를 하기도 뭐했다.


"또 왔냐."

"오늘은 교수님이 불러서 나도 시간 없어. 분재만 조금 보고 가려고."

저 소나무 분재는 분명 내 취미로 산 물건일 텐데 달이가 더 사랑을 쏟아주고 있다. 유전자는 역시 거짓말을 치지 않는군.


물뿌리개를 찾던 달이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빨간 책가방에 멈췄다.


"우와, 미유 언니 벌써 다 써온 거야?"

열려 있지도 않은 책가방 하나만 보고서 바로 정답에 도달한 달이. 벌써 몇 번이나 봐온 장면이기에 별로 감흥은 없다.


"그런가 보네. 어디까지 써왔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주문한 것은 원작의 시점을 바꾼 두 가지 버전이었다. 어쩌면 아직 하나밖에 못 썼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안 열어볼 거야?"

라고 달이가 한 마디. 남의 책가방을 여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미유가 열라고 시킨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책가방을 개봉했다.


교과서. 잡다한 소설들. 메모장. 미유의 사생활이 가득 들어가 있는 그 혼돈 속에서 나는 겨우 찾아내었다. 꽤나 두꺼운 클리어파일. [탈옥은 만만한 일이 아니야!]라는 큰 제목 밑에는 '시점 변경'이라고 작게 쓰여져 있었다.


파일 속에 들어있는 것은 물론 종이더미. 하지만 절반은 굴림체로 깨끗하게 프린트되어 있는 A4용지였고, 나머지 절반은 손때가 꽤 타있는 자필 노트였다. 뭐지 이 조합은. 아무튼 대충 훑어보았다.


"언니 대단하다. 학교에서도 계속 쓰셨나 보네."

그야 그렇겠지. 그리고 아마 수업 시간에도 몰래 썼을 것이다. 그만큼 시간이 없었다. .......아니 잠깐만.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어제 밤에 이미 다 썼을지도 모르지."

나와 달이의 눈빛이 부딪친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아무런 긴장감도 없는 평범한 대화겠지만, 우리 둘은 알고 있다. 이것은 전쟁이다. 달이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나의 지적으로부터 시작되는, 논리의 대결이다. 참고로 지금까지의 전적은 31전 1무 30패.


하지만 이번엔 확실히 달이는 방심했었다. 그야 하룻밤 만에 이 두꺼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썼을 거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제 밤에 다 완성했다는 가능성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실 미유가 수업 시간에도 썼을 것이라곤 나도 생각한다. 시간이 하도 촉박했으니. 하지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다. 달이가 갖고 있는 정보 중에 그걸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이다.


달이는 내 책상 앞에 선 채로, 눈을 크게 떴다. 대결에 들어갔다는 신호다.


"일단 첫 번째. 이 노트."

내 책상 위에 있는 노트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선제 공격을 걸어오는 달이. 조금 낮아진 목소리 톤이다.


"다른 하나는 프린터기로 뽑았는데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자필이야. 손으로 쓰는 것보다 키보드로 쓰는 게 빠를 텐데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아. 시작부터 내 전장에 먹구름이 가득 들어차왔다. 그렇다고 시작하자마자 항복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반론을 넣었다.


"프린터 잉크가 다 떨어진 거 아니야?"

"이 학교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복사기가 있잖아. 그게 아니어도 편의점이나 문방구에 가면 인쇄 정돈 금방 할 수 있어."

중학생인 주제에 왜 그리 우리 고등학교를 잘 아는 건지, 나로선 그게 미스터리이다만.


"미유가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지."

점점 구차해지는 내 반론을 가볍게 무시하고, 달이는 다음 근거를 제시했다.


"두 번째. 언니는 피겨스케이팅부 연습 때문에 지금은 여기 없지만 책가방만은 여기로 보냈어. 그만큼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는 거지. 어젯밤에 다 쓴 거라고 하면, 조금 더 빨리 보여줬을 거야."

"내가 어딨는지 몰라서 방과 후 시간까지 기다린 거일 수도......"

내 목소리가 작아지는 게 느껴진다. 달이는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오빠는 5반. 미유 언니는 6반. 체육 수업을 같이 들으니까 이야기할 시간은 있었어."

잊고 있었지만 그랬다. 그런데 왜 난 오늘 미유를 본 기억이 없을까.


"오늘 체육 수업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오빠가 땀 흘릴 일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 5월. 내가 덥다는 이유로 땀을 흘리기에는 아직 여름은 멀었다. 내가 자발적인 육체 활동을 할 리가 없다는 건 만인이 아는 사실이었고.


"그러네. 네 말대로야."

거의 억지에 가까운 구차한 반론이 몇 개 남아있긴 했지만, 이쯤에서 패배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달이는 바로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얼굴을 풀고, 어린애처럼 환한 미소를 얼굴에 피웠다.


"헤헤."

실제로 어린애지만. 이걸로 32전 1무 31패.


아무튼, 지금 내가 해야하는 건 달이와의 무모한 대결이 아니었다. 내가 써오라고 시킨 두 개의 소설. 이거다.


"너, 한 번 읽어볼래?"

내가 읽기 싫었기에 나는 클리어파일을 달이에게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어제 거랑 시점만 다른 거지? 그럼 난 됐어."

달이 마음에 든 건 코미디 장면이었나. 확실히 시점만 달라 봤자 그리 큰 차이는 없겠지. 거기에 첫인상 탓인지 아직 달이는 미유를 거북하게 생각하는듯한 눈치다. 어쩔 수 없이 클리어파일을 다시 내 책상에 놓았다. 정말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달이는 분재 관리를 끝냈다. 이제 거의 전문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익숙해진 손놀림인데.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달이가 말했다.


"그럼 난 이제 가볼게. 오빠 열심히 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라는 건 그렇게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

중1의 입에서 나온 거라곤 생각하기 힘든 무거운 말이군. 기껏 동생이 응원해줬건만 의욕은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어떻게 하면 대충 넘어갈 수 있을지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그래도 일단은 읽어봐야 하겠군. 이렇게까지 열심히 써왔는데 읽지 않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라는 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이것마저 읽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잔머리조차 굴리기 힘들 거라는 판단.


달이가 나간 뒤, 나는 미유의 책가방을 다시 뒤져보았다. 역시 있었다. 어제 보여주었던 원본이다. 읽는다면 시점 변경판보다 먼저 이쪽을 읽어봐야겠지. 나는 독서를 시작했다.



* * *


어쩌면 올해 중에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일지도 모를 화창한 봄날. 나는 혼자 교실에 틀어박혀 고행의 텍스트 독파를 하고 있었다. 내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다고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


교도소라는 장소와 등장인물들의 소개로 소설은 시작된다. 여러 가지 설정은 있었지만 정리해보니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은 없는 평범한 교도소. 허술하지 않은 시설이라 탈옥 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강조하는 묘사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교도소가 오히려 드물 거라는 걸 생각하면 역시 평범한 교도소다.


그리고 이름이 아닌 저지른 범죄명으로 불리는 수감자들. 그리고 주인공 일행 세 명이 바로 사기범, 폭력범, 절도범이다.


이후로 여러 일들이 일어나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싹 넘어가자. 사실 잘 기억도 안 난다. 처음으로 기억에 남은 장면은, 이 잡범들이 사형 판결을 받는 곳쯤 이려나.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소설은 탈옥극이다.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선 필요한 장치겠지. 그것 치곤 너무 진부하지만, 그렇다해서 내가 다른 대안을 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불만은 없다.


그리고 탈옥 계획이 발동한다. 힘 쓰는 걸 담당하는 폭력범. 머리 쓰는 부분을 담당하는 사기범. 그리고 개그를 담당하는 절도범. 대충 이런 역할 분담이다. 달이 말대로 장면들 자체는 코미디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었다. 소설이라기보단 콩트를 보는 느낌이지만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주인공 일당들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같은 수감자라는 것이다. 물론 교도관들도 편안한 탈옥을 도와주려고 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취직한 건지 의심될 정도로 상당히 머리가 안 좋기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건 동료 수감자, 중에서도 특히 마약범이 요주의 인물이다.


처음엔 왜 그렇게까지 같은 수감자를 방해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지만, 에필로그에 가서야 이 마약범이 사기범한테 거하게 사기를 당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좀 더 빨리 써두라고.


아무튼. 탈옥 자체에는 딱히 이렇다 언급할 정도로 재밌는 부분은 없었다. 갑작스레 위기에 만나는 주인공들. 절박하게 노력하여 해결책을 찾아내지만 역시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대결. 노력의 성과와 함께 조금의 행운이 가미되어 주인공의 승리. 해피엔딩. 고전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진부한 구조다.


아니. 그렇게까지 재미 없었나? 그건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픽션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내가 끝까지 읽은 것이다. 어딘가에 분명 재밌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가.


아무튼 지금 읽은 건 원본. 아직도 읽어야 할 게 두 개나 남았다. 하지만 역시 익숙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피로해졌다. 일단 조금 쉴까.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미유의 소설이 담긴 클리어파일을 적당히 넘기며 훑어보았다. 남은 두 개의 분량을 확인하기 위한 거였기 때문에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잘못 끼어들어간 건지, 아니면 무슨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탈옥은 만만한 일이 아니야!]와는 전혀 관계 없는 소설이 그 두꺼운 클리어파일 속에 들어가 있었다.


양면인쇄된 종이 몇 장이 스테이플러로 엮어져, 마치 작은 책처럼 되어 있었다. 그 소설의 제목을 확인한 나는, 눈의 피로도 잊고 바로 그걸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소설의 뒷표지를 덮었다. 아직 미완성이라 분량은 별로 없었지만, 아까보다 집중해서인지 정말로 눈이 피곤해졌다. 이제 정말로 좀 쉬자.


"드디어 끝났어?"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들자,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지미가 눈에 들어왔다. 부장인 주제에 가장 늦게 오다니. 나는 공모전용 소설은 그대로 놔둔 채, 방금까지 읽고 있던 소설을 자연스럽게 책상 속에 숨겼다.


"지각이다."

"열심히 하고 있네. 웬일이야. 어제는 그렇게 싫은 얼굴 하더니."

내 지적은 가볍게 무시하며 그렇게 말하는 지미.


"어쩔 수 없잖아. 이것들을 써오라고 시킨 사람이 나니까."

"아, 그랬었지. 미유도 참 대단하네. 설마 하루만에 다 써올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지미는 어째서 미유가 이미 둘 다 완성시켰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달이에게 들었거나 혹은-


"걔랑 만나고 왔냐?"

"응 방금. 막 끝낸 참이던데. 샤워실에 갔다가 바로 오겠대."

역시 미유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던 거였군. 학교에 샤워실이 있다는 건 전에 한 번 듣고 이미 놀란 기억이 있으니 놀라지 않았다. 건망증 때문에 또 한 번 놀랄 뻔 했다는 건 비밀이다.


"그래서, 알 거 같아? 그 소설을 재밌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알 리가 없잖아. 나는 대답하는 대신 지미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이 소설 관련해서."

"아쉽지만 '괴멸적인 스토리'밖에 못 쓰는 나는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

장난스러운 얼굴로 지미가 말했다. 평소에 놀려왔던 게 이렇게 되돌아오다니.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대단한 질문은 아니고. 그냥 참고 삼아."

말하자, 지미는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접어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뭔데?"라고 재촉해오는 지미에게, 나는 조금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너, 이 소설이 재밌다고 생각하냐?"

지미답지 않게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네. 쓴 사람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했을 정도니까, 무언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

빙 돌려 대답해왔다. 하지만 나는 지미를 잘 알고 있다. '재미있었냐고? 아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로 변환해서 받아드린 후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무언가 좋은 방법을 쓰면 재밌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거기까진 나도 모르겠네. 소설 보는 눈에는 자신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 건 아마 나보단 너 쪽이 더 잘 알겠지."

이번에도 빙 돌려서 대답했지만, 지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읽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의 답변이다. 역시나 그랬군.


그렇다. 보편적으로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는 거다.


그 사실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물을 건 없었지만, 마지막에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았기에 나는 다시 지미에게 물었다.


"왜 내가 잘 안다는 건데."

"응? 자각이 없는 거야? 너 옛날부터 '그런 거' 잘 했잖아."

그런 거? 내가 이해를 못하고 있자, 지미는 대체할 표현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건지 얼굴을 찌푸리며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으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 그러고보니 라비는 이렇게 말했었어."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역시나. 당신은 사기꾼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어요, 라고 반복해서 들어봤자 내 기분은 유쾌해지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왜 라비와 지미는 그런 오해를 품게 된 걸까. 원인은 아마 그것 뿐이다.


"그 선동 사건이라면 재능이 있는 건 오히려 네 쪽이지. 그 스피치는 대본을 쓴 나조차도 감동해버릴 정도였으니까."

지미의 가녀린 외견만 보곤 상상할 수 없는 그 카리스마 있는 연설은 아직도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었다. 선동 사건의 승부는 거기서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뭐, 그 사건도 있지만은. 그것뿐만이 아니지."

"또 뭐가 있는데."

저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인 걸 보니 뭐 다른 게 있긴 한 건가. 그러고 보니 라비도 마지막에 묘한 말을 남기고 갔었지. 뭐였더라. 분명.


"러브레터 사건."

"......"

그래. 그런 느낌이었다.


라비에게 들었을 때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지미에게서 들으니 확실히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 러브레터 사건. 그런 일도 있었지.


"그 러브레터도 참 걸물이었지. 고백이 성공했는지 어떤지 까진 못 들었지만."

벌써 2년 전인가. 나와 지미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러브레터의 문장을 생각해달라는 의뢰가 나한테 들어온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지미에게 들어온 의뢰였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그 의뢰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아까 라비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저에게 러브레터를 보내셨잖아요'. 그 말은 즉슨 그 의뢰인이 러브레터를 보낸 상대가 라비였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라비가 그 말을 했을 때 바로 러브레터 사건을 떠올려내지 못했던 것인가. 난 확실히 건망증이 조금 심한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당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그건 이상해!'라고 당당히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그치만 의뢰인은 여자애였잖아!"

"......갑자기 뭔데."

당연히 내 혼잣말을 이해 못하는 지미. 여자애가 쓰는 러브레터이니까 당연히 남자한테 보내는 건 줄 알았고, 나도 그런 기분으로 썼었다. 그게 어째서 여자인 민라비에게 전해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파칵-!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이러다 심장마비라도 걸리면 나는 세 글자의 다잉메세지를 남기게 되겠지.


"미안! 늦었지?"

신미유. 얼굴보다 양갈래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가쁘게 거친 호흡을 하고 있는, 자칭 천재 소설가 님의 등장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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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8.1화 +1 16.12.21 248 9 12쪽
28 7.4화 +4 16.12.18 290 7 13쪽
27 7.3화 +2 16.09.06 359 8 15쪽
26 7.2화 +4 16.08.24 320 5 8쪽
25 7.1화 +3 16.08.19 325 12 10쪽
24 6.3화 +8 16.05.11 500 11 17쪽
23 6.2화 +7 16.05.01 383 13 16쪽
22 6.1화 16.04.20 367 13 16쪽
21 5.4화 +2 16.04.15 375 13 16쪽
20 5.3화 +1 16.04.09 396 12 16쪽
19 5.2화 +4 16.04.01 395 15 16쪽
18 5.1화 +4 16.03.28 443 20 19쪽
17 4.9화 (side story) +6 16.03.20 489 21 19쪽
16 4.4화 +9 16.03.17 422 15 14쪽
15 4.3화 +6 16.03.15 486 19 20쪽
14 4.2화 +5 16.03.12 630 16 25쪽
13 4.1화 +4 16.03.08 427 14 22쪽
12 3.2화 +2 16.03.07 458 12 12쪽
11 3.1화 +2 16.03.06 490 14 13쪽
10 2.5화 +4 16.03.03 471 16 20쪽
9 2.4화 +3 16.03.01 400 17 16쪽
» 2.3화 +3 16.02.28 580 14 17쪽
7 2.2화 +4 16.02.27 531 20 12쪽
6 2.1화 +4 16.02.25 629 17 18쪽
5 1.4화 +5 16.02.23 671 18 14쪽
4 1.3화 +3 16.02.21 713 21 16쪽
3 1.2화 +5 16.02.19 889 27 17쪽
2 1.1화 +3 16.02.17 1,347 32 15쪽
1 Intro +3 16.02.17 1,537 2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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