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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밖에 없는 정신병동

소녀, 소설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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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feel
작품등록일 :
2016.02.17 18:35
최근연재일 :
2016.12.29 12:0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6,194
추천수 :
475
글자수 :
213,345

작성
16.02.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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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2.1화

DUMMY

나한텐 언니 한 명이 있거든. 원래는 대학생이었는데 지금은 그만뒀어. 교수들 중에 자기보다 멍청해서 말을 들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절반, 자기보다 똑똑해서 무슨 말 하는 건지 못 알아먹겠다는 사람이 절반이라나. 아무튼 그래서 지금은 자택근무.


무슨 자택근무냐고? 그야 소설을 쓰는 거지. [파란의 기사]라고 들어본 적 없어? 몰라? 이번에 영화화도 된다는 이야기인데. 아, 역시 부장은 뭘 좀 아네. 응. 맞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그 신미라 작가야.


여기까지만 들으면 참 훌륭하고 좋은 언니 같지? 그게 또 아니란 말이야. 내가 소설 쓰고 있다는 건 다들 알지? 내가 뭔가 써서 완성시킬 때마다 언니는 굳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쓴 걸 읽고 나한테 말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응. 일단 소설로서의 가치는 없네.

혹시 이건 '지루함'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행위예술이야?

너한테는 재능이 없어. 선천적인 거든 후천적인 거든.

빨리 다른 취미를 찾아보는 편이 지구를 위한 에너지 절약이 될 텐데.


짜증나지? 나도 당연히 화가 났어. 자기가 지금 좀 잘 나간다고 해서 천재 소설가한테 그런 말을! 용서할 수 없었지.


그치만 역시 눈에 보이는 실적이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되잖아. 그래서 언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인 공모전에 나도 도전해보기로 한 거지. 무슨 공모전이냐고? [파블로출판 청소년 단편소설 공모전]. 이름이 다 말해주고 있으니 굳이 더 설명할 필욘 없지?


응. 잘 아네. 엄청난 출판사지. 그리고 여기서 최우수상을 받은 세 명은 그때부터 저 출판사의 서포트를 받으며 진짜 작가로 거듭나는 거고. 우리 언니가 실제로 그 중 한 명이었지.


그래. 다시 말해서 이 공모전이 바로 언니를 향한 내 복수이자 내 작가인생의 시작을 열어줄 열쇠라는 거야!



* * *


미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노골적인 한숨이 나오는 것을 열심히 참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년도가 그 세 번째 도전이 되는 거라고."

중2때 한 번. 중3때 한 번. 죄다 예선조차 못 넘고 떨어졌다고 한다. 하아......


방과 후. 분재부실을 찾아온 미유는 당장 자신의 '부탁'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 작가님 말씀대로 정말로 재능이 없는 거겠지. 포기하는 게 어때."

"오빠, 말이 좀 심하잖아."

그런가. 나로서는 상당히 순화시킨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했던 모양이군. 나는 미유를 향해 고개를 돌려 다시 말했다.


"반대로 물어보는데, 너가 그 공모전에 붙을 수 있다는 근거는 뭔데."

"그야, 난 천재 소설가니까."

정신이 황천으로 가버릴 뻔한 걸 겨우 붙들고,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두 번이나 예선에서 떨어진 건 뭐고."

"음......대기만성?"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부탁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데?"

지미의 질문. 미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공모전 마감이 바로 다음 주 월요일까지거든. 내 소설도 일단 완결까진 완성되어 있긴 한데."

"그럼 문제 없네."

라는 건 내 소망일 뿐. 미유는 고개를 좌우로 젓더니 말을 이었다.


"부족해. 아무리 봐도 저번 공모전 때랑 크게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안 든단 말이야. 이대론 안 된다고 생각했지."

굳이 내 눈을 직시하며 말할 필요가 있는 건가? 의문이 들긴 했지만 열정적인 미유의 연설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을 찾았는데, 내 주변엔 소설을 써본 사람이 없었단 말이야! 어떻게 그 많은 애들 중에 한 명이 없을 수가 있어?"

그걸 나한테 따져봤자.


"그때 [우주비행사 폴]을 쓴 사람이 이 학교에 있단 걸 들은 거야! 신이 나한테 선물이라도 보내주신 줄 알았어!"

"......"

내가 생각해도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난 미유에게 물었다.


"그래서 날 찾으려고 표절 소설을 신문에 올렸다고."

"응."

역시 이상하다.


"그러니까 우리 오빠가, 미유 언니가 쓴 소설을 읽고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말해주면 된다는 거에요?"

부탁의 내용을 정리하는 달이. 미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충 그런 셈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확실히 [우주비행사 폴]을 쓴 사람을 곧 죽어도 찾아야만 한다면 지금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소설을 수정해달라는 부탁은 꼭 나를 찾지 않아도 달리 방법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그렇게 위험한 방법을?


아무튼 난 피곤했다.

더 이상 이야기가 멋대로 굴러가면 피곤해질 것은 분명하다. 나는 확실히 한가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피로의 늪에 자진해서 입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빠른 결착을 위해 미유에게 말했다.


"너, 뭔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열심히 날 찾은 미유에겐 미안한 사실이지만, 나는 소설이라곤 아는 게 없는 까막눈이다. 그걸 알면 미유도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해서 말을 꺼냈지만, 미유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반문해왔다.


"뭐가? [우주비행사 폴], 너가 쓴 거 아니야?"

"......뭐, 그야."

순간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통탄스럽게도 그건 거짓말이 된다. 별 생각 없이 쓴 문장 쪼가리가 이렇게까지 내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아, 그럼 혹시 너도 공모전에 나가는 거야?"

"그럴 리가 있냐."

말하자, 미유는 승리의 미소를 얼굴을 띄우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응. 그럼 문제 없어. 나 그 소설, 엄청 좋아하니까."

당했다. 미유는 [우주비행사 폴]이라는 명백한 증거품을 갖고 있다. 적어도 내가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진 않다는 증거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달이에게 눈빛으로 SOS 신호를 보냈다.


"음......확실히 우리 오빠라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내 기대는 시원하게 배신당했다.


"응응, 역시 그렇지?"

어제의 분위기는 뭐였냐 싶을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는 달이와 미유. 달이는 또 뭘 근거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내가 소설이라곤 딱 한 번밖에 써본 적 없단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나 빼고는 없는 거냐? 네 주위엔 없다 해도, 찾아보면 학교에 소설 쓰는 애가 한두 명은 있을 거 아니야."

"응. 꽤 있을걸.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세 명은 있으니. 다들 나랑 면식은 없지만."

"그럼 나 대신 그 녀석들한테 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미유는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안 돼. [우주비행사 폴]을 쓴 사람이 아니면."

"......"

독심술은 못 쓰지만, 그런 게 필요 없을 정도로 미유에게선 확실하게 특이한 감정이 느껴졌다.


'집착'이라는 감정. 내가 버린 자식인 [우주비행사 폴]에게 엄청나게 강하면서도 복잡한 집착을 품고 있었다. 표절이라는 위험천만한 방법까지 써가면서까지 날 찾은 그 집요한 행동도 그렇다. 대체 왜? 예술가들의 세계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튼 아무튼. 우선 읽어 봐."

"오, 혹시 가져온 거야?"

지미가 묻자, 미유는 대신 책가방에서 무언가 종이다발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게 자기가 쓴 소설인가?


"말해두는데, 난 네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한 건 아니니까 말야."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읽어 보고 생각해 봐."

글씨가 가득 인쇄되어 있는 A4용지가 호치키스로 묶인 종이다발. 나뿐만 아니라 지미와 달이에게도 한 부 씩 갔다.


"읽어보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아? 어차피 우린 아무 활동도 안 하니 남는 게 시간이잖아."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완전히 읽을 수밖에 없는 흐름이 되었군. 미유가 만든 분위기에 완전히 말려버렸다.


하지만 소설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지적 유희를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이다. 글자를 읽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렇게 싫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 기분으로 나는 종이를 손에 쥐었다. 어느새 달이는 집중 모드를 켜고 종이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괜찮겠냐 활자 공포증."

이름 대신 병명으로 불린 지미는 불만을 담은 표정을 만들며 반박했다.


"난독증인 건 아니거든. 읽어야 하는 거면 읽을 수 있어."

"그러냐. 다행이네."

실은 활자 공포증이란 병명도 내가 멋대로 붙인 거였지만.


난 미유가 건네준 A4 용지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한 면만 인쇄되어 있는 종이가 14장 정도. 공모전 이름대로 단편 소설이었다. 우선 소설의 제목.


[ 탈옥은 만만한 일이 아니야! ]

명사가 아니라 문장이다. 게다가 느낌표까지 들어가 있다. 이건 또 새로운데. 요즘 유행하고 있는 건가? 아무튼 소설의 내용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쁜 제목은 아니어 보인다.


"......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기억이 애매했기에 열심히 떠올려보았다. 수십 초 정도 걸려서 겨우 기억을 꺼내온 나는, 미유에게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말이지."

"응. 뭔데?"

나는 일부러 헛기침을 몇 번 한 뒤에 말을 이었다.


"요전에 교도소 견학 신청을 했다고 소문이 돌았던 여학생이라는 게. 혹시 너냐?"

"아마 나일걸? 다른 사람도 했단 이야기는 들은 적 없으니까."

진짜냐. 아무래도 이 녀석은 그냥 '요즘 애들'이 아닌 모양이다. 걔네들은 인터넷으로 대충 검색해서 그럴듯한 자료 몇 개 모으고 만족하는데.


"그래서, 정말로 다녀온 거냐. 교도소."

"응. 개인은 안 된다고 해서, 종교 단체에 꼽사리 껴서 가봤어. 결국 별로 도움은 안 됐지만."

별 거 아니라는 듯 덤덤한 미유의 목소리. 이 녀석에게 있어서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 모양이다. 열심히 읽고 있는 달이에게 미안하니 담소는 여기까지 해둘까. 나는 소설의 본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


국립 세르메니아 교도소는 지리적으로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좀도둑질 좀 했다고 잡혀 들어갈만한 곳이 아니란 말이다. 원래는 고속도로가 함께 건설된 예정이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고속도로가 사라졌기 때문에, 특별한 용무가 없는 이상 험한 길을 타고 이 구석진 교도소까지 내려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장기수였다. 당연히 대부분이 흉악범들이다. 비교적 보안이 잘 되어 있는 국립 세르메니아 교도소가 흉악범 격리소라는 역활을 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도소는 썩을대로 썩어있다. 오랫동안 교도소에 있었던 죄수, 통칭 대선배와 교도관의 진한 유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도소장마저 그걸 알고서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아마 이 유착이 끊어질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오늘은 바람이 시원한 날이었다. 5월 8일. 며칠 있으면 기록적인 대 호우가 있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은......


>>


이건 한계를 넘었다. 안 되겠다. 이게 혹시 서점에서 펼쳐본 소설이었다면, 나는 당장 이걸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서점에서 탈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읽는 척을 시작하기로 했다.



* * *


드디어 독서의 시간이 끝났다. 읽는 척 한다는 게 이렇게 고행이었을 줄이야. 처음 알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지미였다.


"응, 꽤 재밌는 이야기네."

난 알고 있다. 정말로 재밌는 것을 접한 지미는 절대 저런 심심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지미에게는 꽂히지 않은 모양이군. 그걸 들은 미유는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얼른 내 감상을 들려달라고 말하는듯한, 기대에 찬 눈빛이다.


"어떤 거 같아?"

나인가. 감상을 말하고 싶어도, 실제로는 첫 부분 정도밖에 읽지 않았으니. 나는 머리를 잠시 굴려본 뒤, 미유에게 물었다.


"이 소설의 개요를 알려줘."

"응? 방금 직접 다 봤잖아. 왜 굳이?"

미유의 당연한 반응. 난 변명을 시작했다.


"쓴 사람이 생각하는 거랑 읽은 사람이 느끼는 게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럴듯한 말투로 그럴듯한 말을 하자, 미유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완전히 넘어갔군.


"한 마디로 설명하면 부조리 코미디 탈옥극이야. 세 명의 죄수가 힘을 합쳐서 탈옥을 하는 과정을 그린 거지."

코미디 소설이라. 괜히 의미심장하고 무거운 소설보다는 내 취향에 가까우니 다행이라고 해둘까. 그 코미디가 실제로 웃기냐 안 웃기냐가 중요해지겠지만.


"등장인물은."

"주인공 세력이 절도범이랑 사기범, 그리고 폭력범 이 셋. 대립 세력이 교도관이랑 다른 죄수들이고."

주인공 세력이라는 것들이 제일 악역처럼 들리는데. 탈옥을 주제로 삼은 소설이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그래서 줄거리는 어떤데. 세 줄 이내로."

"아, 간략하고 알기 쉬운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거지?"

아니, 내가 긴 이야기를 듣기 싫은 것 뿐이다. 미유는 잠시 동안 고민하더니 이내 줄거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세 죄수들이 억울하게 사형 판결을 받게 돼서, 탈옥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시작되지. 그리고 여러 밑 준비를 한 뒤, 실제로 행동에 나가."

두 줄이다. 앞으로 한 줄로 완결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미유도 그걸 의식한 건지, 거기서 잠깐 말을 멈추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오는데, 주인공의 활약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결하고 결국 탈옥에 성공하게 돼."

음. 세 줄이라는 조건은 통과했지만 자기도 무언가 부족한지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미유. 줄거리는 그냥 평범한가.


나는 거기까지 듣고 달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얼굴은 아니다. 재밌어 보였기에 조금 건드려 보기로 했다.


"어땠어? 너는."

당황. 망설임. 곤란. 이런 감정들을 그대로 형상화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달이. 달이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걸 안 좋아한다. 거짓말을 하기 싫다는 것도 있겠지만, 연기가 엄청 서투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


달이는 망설이면서도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저는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코미디 부분은 정말 잘 쓰신 거 같아요. 한참 웃었어요."

그러고보니 웃고 있었지. 다른 사람이 보면 그냥 무표정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인생을 같이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내가 보면 알 수 있다. 유머에 대한 내성이 강한 달이가 그랬다는 건, 확실히 그 부분은 잘 쓴 모양이다. 나야 안 읽어서 모르지만.


하지만 달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건 그 부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달이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 부분을 빼면 독자들이 이 소설을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못 찾겠어요."

강렬하다. 저게 남을 비난하거나 상처 주기 위해서 일부러 날카롭게 한 말이 아니라는 점이 더더욱 강렬하다. 장하다. 과연 자랑스러운 내 동생이야.


"응. 역시 그렇지? 내가 읽어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 정도니까."

미유는 화를 내긴커녕 오히려 조금 기뻐 보였다. 자칭 천재 소설가답게 남의 지적에 역정을 내는 장면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나도 참 심술궂은 녀석이군.


그런 미유의 말에, 긴장하고 있었던 달이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남한테 솔직한 말 했다가 험한 꼴 많이 본 녀석이니 말이지.


"그래서. 대체 이 소설을 어쩌라는 건데."

내가 반 쯤 내던지듯 그렇게 말하자, 미유는 눈동자를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뜨더니 내 얼굴을 직시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이 소설을 재밌게 만들 수 있는지, 알려줘!"

"알까 보냐."

아차. 그만 본심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실수했다. 나는 빠른 수습을 위해 얼른 머리를 굴렸다. 머리를 굴리는 방면에서는 이미 옛날옛적에 달이에게 패배를 인정한 나지만, 잔머리를 굴리는 거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사실 내가 이 녀석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의무는 없으니, 가장 단순한 해결법은 그냥 내가 싫다고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미유에게서 느껴지는 집착이란 감정을 생각하면, 그냥 거절은 통할 거 같진 않았다.


"정보가 부족해."

그러므로 여기선 잔머리가 필요한 것이다. 내 말을 들은 미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정보?"

"그래. 이거 하나 읽은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는 거지."

사실 난 이거 하나조차 읽지 않았지만.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다음에 꺼낼 말을 즉석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네. 지금은 절도범의 시점으로 써져 있으니까. 적어도 사기범이랑 폭력범의 시점으로 쓰여진 걸 하나씩 읽어보기 전까진 나도 알 수 있는 게 없을 거 같네."

이거와 같은 분량을 두 개 더. 시점을 바꾸는 것뿐이긴 해도, 도저히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까 들은 바로는 공모전의 마감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 오늘은 벌써 목요일이다. 도저히 시간이 맞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보가 부족하다는 나한테 무턱대고 요구하는 것도 뻔뻔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미유가 취할 행동은 한 가지뿐. 나에게 부탁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시점으로 두 개......"

하지만 미유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의 임기응변은 여러 가지 선택들 중 가장 나를 피곤하게 만들,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 두 개를 내일까지 써오면 되는 거지?"

미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소리쳤다.


"응! 해볼게!"

불타오르듯 반짝이는 눈동자. 흥분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는 미소. 붉게 상기된 얼굴. 나는 그런 미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까지 써오란 말을 한 기억은 없다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57 디소디
    작성일
    16.02.26 02:03
    No. 1

    미유는 언니의 재능에 주인공은 여동생의 재능에 뒤떨어지니 지미나 다른 등장인물도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느끼려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ALLfeel
    작성일
    16.02.26 21:53
    No. 2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달이는 남한테 열등감은 별로 안 느낄 거 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
    정말 그런지는 본인만 알겠지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소울K
    작성일
    16.03.16 09:57
    No. 3

    흠... 추천글 읽고 와봤는데
    달이의 말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19.03.07 21:29
    No. 4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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