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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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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80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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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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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챕터7-114.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8)

DUMMY

순간 만월의 눈앞에 무언가 납작하고 평평한 형체가 보였다.


점점 더 깊어가는 수심(水深)에 만월은 주저없이 그 물체를 부여 잡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앞에 보인 것은 새파랗게 질린 어린 여자아이의 시체였다.


- 죽었구나! 이 아이... 물에 빠져 죽은 거야!


둥실 떠다니는 여자아이의 시신을 구명보트 삼아 만월은 서둘러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만월은 오른쪽 다리에 피를 흘리며 두 오빠를 잃었다는 정신적 충격에 빠져 패닉 상태였다.


지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두발과 두손을 미친 듯이 저으며 앞으로 향하던 만월은 어느샌가 ‘탁’하고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 벽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치켜 올려다 보았다.


그 곳에는 작은 철근이 박혀있는 간이 계단이 보였다.


미친 듯이 그 계단을 잡고 위로 올라간 만월은 조례터널 맞은편을 빠져나와 미친 듯이 달렸다.


절뚝이면서 오른쪽 다리에서 엄청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많은 피를 다리에서 쏟아내는 와중에도 어린 만월은 이를 악물고 앞만 보고 미친듯이 내달렸다.


만월은 달려야만 했다.


두 오빠의 목숨값을 치른 자신의 목숨이었다.


무조건 달려야했다. 설령 자신의 다리가 찢어지고, 다리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달려야만 했다.


만월은 절대로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작은 오빠 만원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러니 만월은 절대로 등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십여분을 미친 듯이 달렸을까.


어느새 민가(民家)인 듯한 초록색과 붉은 색 지붕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떤 낡은 주택 앞에서 만월은 미친 듯이 가정집 철문을 두드리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고통스럽다는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두 눈을 꼬옥 감고 과거를 회상하던 늙은 만월의 귓가에 여자무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례터널에서 죽은 영혼들이... 곧 저 아바이 수령 아들 놈도 잡아먹을 겁니다! 비참하게 고통스럽게 죽이고야 말 겁니다!”


무당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조례 터널에 귀신이라뇨? 그 때 죽은 원생들이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서도 거기 갖혀 있다는 거에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여자무당을 바라보며 묻는 만월을 향해 무당이 말했다.


“그럼요! 죽어서도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갖힌 귀신들은 악귀(惡鬼)가 돼서라도 그 아바이 수령 씨를 말려 죽이고 싶은 원한을 가진 것이지요. 다만... 지금 주례터널 입구가 시멘트 벽으로 막혀 있어... 그들이 빠져나오기가 힘에 부칠 뿐... 이제 거의 다 되었습니다. 거의 다 되었습니다!”


무당이 기쁜 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만월이 말했다.


“그러면.... 그러면 혹시 저희 작은 오빠도... 그 곳에 있나요?”


“글쎄요... 지금 대주 님 등 뒤에 큰 오빠 분만 보이는 것을 보면... 작은 오빠라는 분의 영혼은 아마 그 터널 안에 갖혀 계신 모양이네요...”


무당이 신당 한가운데 놓여진 낮은 테이블에 앉아 만월을 슬픈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아까... 대주 님 따님께서 좋은 인연 만나 백년해로 하신다 하셨지요? 따님과 만나고 있는 남자분이... 터널을 뚫어주실 수 있을 겝니다. 그러니 대주 님께서 부탁을.... 해보시겠어요?”


여자 무당의 말을 들은 만월은 믿기지 않는 듯이 두 눈을 꿈뻑이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여자무당이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터널이 다시 뚫리면... 갖힌 영혼들이 모두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작은 오빠라는 분도... 아마... 나오고 싶어 하시지 않을까요? 잘 한번 생각해보셔요...”


만월은 지금 무척이나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자신의 딸 수연에게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금시초문이거니와 그 남자가 터널을 뚫어 작은 오빠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지금 눈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 무당의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작은 오빠의 영혼이 빠져 나온다면... 천도할 수 있을까요? 큰 오빠도... 작은 오빠도 이제 편히 쉬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만월이 조심스럽게 묻자 여자 무당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 원한이 깊은 혼령은 악귀(惡鬼)로 변하기가 쉬우니... 작은 오빠의 혼령도 악귀가 되었을 확률이 큽니다. 악귀는.... 자신의 원한을 풀면... 스스로 소멸이 되기도 하거나 또 다른 원한을 만들어... 세상에 남지요...”


“혹시... 혹시... 천도 될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만월의 질문에 무당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귀(惡鬼)가 천도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고 힘든 일이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만월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자 여자 무당이 살짝 웃으며 만월에게 이제 그만 가라는 듯이 고개로 인사짓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무당의 행동에 만월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며 주섬주섬 자신의 낡은 가방에서 복채를 꺼내려 했다.


무당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서둘러 만월에게 다가와 한사코 복채를 마다하며 말했다.


“우리 착한 대주님! 저와 다시 뵙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복채는 됐습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저희 아버지 제사 음식 차려주신 거에 비하면 오히려 제가 대주 님께 극진히 대접을 해드려야 합니다! 대주님! 그리고 오늘은 무척이나 반가운 분을 만나실 테니 저 주시려던 그 돈으로 소고기라도 많이 사서 집에 들어가세요! 아셨죠? 꼭 제 말대로 하셔야합니다! 소고기를 사서 꼭 집에 가셔야 합니다?”


빙긋 웃으며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하는 여자 무당의 기세에 만월은 주춤거리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여자 무당을 만난 만월은 멍하니 그저 털래털래 길을 걷고 있었다.


자신이 오늘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실감이 나지 않던 만월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자신이 자주 찾는 부산역 근처 재래시장 정육점으로 향했다.


그렇게 여자 무당의 말에 이끌려 그녀는 생전 돈 주고 사본 적 없는 소고기를 두 근이나 샀다.


힘 없이 털래털래 소고기를 가득 담은 검은 봉지를 쥐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만월은 생각했다.


- 내가 미쳤지! 돼지고기나 살 걸! 무슨 소고기람! 가서 환불도 못하고! 에잇! 그래! 우리 수연이나 원 없이 배불리 먹으래야지!


진이 빠진 만월의 걸음은 물먹은 솜 마냥 축축 늘어졌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모든 것이 지치고 힘들었다.


가뜩이나 조례터널 탈출 당시 못에 박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된 탓에 그녀의 걸음은 한걸음 한걸음이 위태롭고 힘겨웠다.


그 때 였다.


“만월아!”


저 멀리서 자신의 집 앞에서 울음에 가득 찬 낯선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월아! 만월아!”


다시한번 큰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만월은 그만 오른손에 쥔 소고기 담긴 검정 봉지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너!.... 너!!!”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하는 만월을 향해 미친듯이 뛰어오는 사람은 열열이었다.


“그래! 나 열열이야! 만월아!”


파르르 떠는 만월을 껴안은 열열의 머리 역시 하얗게 흰머리가 내려있었고, 얼굴에는 주름이 져있었다.


그녀들은 어느새 50대 중년이 되어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만월이 그대로 비탈길에 주저앉았고, 그런 만월을 뒤에서 받친 사람이 있었다.


만월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어떤 젊은 남자가 만월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고, 그 남자 뒤에는 얼마나 울어댔는지 눈가가 잔뜩 부어 있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 수연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김기범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향해 공손하게 깍듯이 인사를 하는 젊은 남자를 향해 얼떨결에 인사를 한 만월이 그 남자와 딸 수연을 번갈아보며 바라보았다.


그러자 엄마 만월을 향해 수연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수연이는 소리내 울었는지 어느 새 목도 다 잠겨 잔뜩 쉬어 있었다.


“흑... 엄...엄마! 왜 숨겼어! 왜 나한테! 왜 나한테.... 말을 안했어! 나한테는 말하지! 왜 숨겼어!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어떻게 버텼어! 왜 말 안 했어! 얼마나 힘들었을텐데! 왜 말 안했어!”


수연의 눈에서 닭똥같은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만월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어루만지고 있는 어릴 적 동무 열열이를 바라보았다.


“열열아... 이게 다 무슨...”


“얘! 만월아! 내 동무 만월아!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부다. 내 아들 기범이가 글쎄... 니 딸 수연이랑 만나고 있었대! 결혼하고 싶다질 모니! 우리 다시 만나게 해주려고 이 아이들이 만났나 봐! 만월아, 내 동무 만월아! 살아 있었구나!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다, 내 동무!”


어린 열열과 만월이 엘림복지원에서 탈출한 뒤, 어느덧 근 4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40년이라는 시간동안 열열과 만월은 서로 만날 수 없었다.


서로를 찾으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열열은 그대로 복지원을 탈출해 무작정 시외버스를 타고 경상남도 마산으로 도망갔던 것이다.


고향도 아니고, 아는 이도 없었지만 무작정 버스터미널에서 구걸을 해 모은 돈으로 끊을 수 있었던 버스표는 ‘마산행’이었던 것이다.


마산에 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결혼까지 해 아들을 낳았으니 그 아이가 바로 기범이었다.


기범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부산에 발령을 받았고, 아들 기범이 부산에 발령받자 ‘부산’이라는 단어를 들은 열열은 인생의 악연(惡緣)이라며 몸서리를 쳤다. 그 후로 열열이는 아들을 보러 부산에는 절대 내려가지 않고, 무조건 아들 기범이를 마산에 오게했다.


하지만 어느 날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 자신에게 주정을 부리는 아들 기범 때문에 만월을 찾아올 수 있었다.


열열의 하나뿐인 아들 기범은 ‘우리 이쁜 수연이가 만월 여사님 때문에 결혼 못 한대요! 저 수연이 없이는 못 살아요! 엄마가 수연이 어머님 좀 만나보세요! 만월 여사 님 좀 만나주세요!’ 라며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술에 잔뜩 취해 있는 대로 자신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만월은 자신의 무릎 옆에 놓인 검정 봉지를 멍하니 쳐다 보았다.


“우리.... 우리 소고기 먹자! 배터지게 먹자! 소고기 먹자!”


소고기를 먹자며 환하게 웃는 만월이었다.


떨리지만 기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만월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런 만월을 껴안고 깔깔 대고 웃어대는 열열의 눈 역시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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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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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0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2 1 11쪽
124 챕터7-124.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3) 23.12.14 2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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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챕터7-116. 무명도사- 폭풍전야 (1) 23.12.10 2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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