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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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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132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18 18:10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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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챕터8-133. 전생- 전생의 기억 (2)

DUMMY


봄에서 여름 그리고 햅쌀이 나올 시기인 가을까지는 그야말로 집 안에는 쌀 한 톨조차 없었다.


어쩌다 제삿 날이나 생일 날만 빠끔 얼굴을 내밀고는 흰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쌀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비우면, 보리밥은 당당히 얼굴을 내밀곤 했다.


물에 만 보리밥에 조린 멸치와 무짠지며 짭짤한 막된장을 얹어 어둑시근한 부뚜막에서 먹는 맛은 서글프지만 행복한 맛이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수탈과 괴롭힘이 심해지면서 그마저도 사정이 녹록치 않아 모두가 배를 곯기 일쑤였다.


방안에 들어간 계순은 호롱불에 밝혀진 불을 보며 주린 배를 부여잡고 그대로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았다.


어느새 깊은 밤이 되어 그의 동생 경호는 양손에 ‘홍옥춘’이라고 부르는 동그란 제사상에 올리는 사탕을 쥐고 쌔근쌔근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계순의 할머니 역시 하루종일 바느질에 고되셨는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계순은 방안에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바느질을 하려 바늘을 들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힘든 하루를 보낸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신 역시 부지런히 바느질거리를 해 살림에 보태야 했다.


- 이럴 때 상순 언니가 있었으면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면서 밤새 바느질 했을텐데... 언니... 언니... 미안해....


계순은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가며 바느질에 집중했다.


원래 강식의 식구는, 강식의 처와 나이든 노모(老母), 딸 둘에 아들 하나였다.


큰 딸의 이름은 상순, 둘째 딸은 계순, 그리고 막내 아들은 경호였다.


강식의 처는 막내 아들 경호를 낳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럭저럭 먹고 살만했지만 삼년 전에 큰 딸 상순마저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강식을 비롯한 식구들은 상순이 죽고 나서부터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아무도 상순의 이름이나 상순과 관련된 과거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어느새 가족들에게 있어 죽은 상순을 상기하는 것은 금기가 되었다.


계순은 야물 딱진 잰 손놀림으로 그녀가 맡은 일감을 꼼꼼히 바느질하고 있었다.


언니 상순이 더이상 가족들을 지킬 수 없다면, 남은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것은 자신이 도맡아 해야할 일이었다.


이제는 자신이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계순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바느질에 집중했다.


잠이 먹구름처럼 짙게 내려 눈꺼풀은 한없이 내려앉았지만 계순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잠을 물리치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자기 스스로 뺨을 내리치는 모습이 기괴하다 하겠지만 계순은 지금 자신의 뺨이 새빨개지는 것은 하나도 여의치 않았다.





***





한편 그로부터 두 시간 정도 흐른 뒤였다.


어둠이 더 짙게 내린 산신당(山神堂) 안에서는 젊은 장정 열댓 명이 모여 낮은 소리로 이야기 중이었다.


“일본 나사사키 현(長崎県)에 있는 무인도인 하시마(端島) 섬에서 조선인들을 잡아다 강제로 노역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것을 ‘군함도’라고 부른다지?”


“들어가면... 죽기 전엔 못 나온답니다. 아니, 죽어서도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혀를 차며 분노해하는 와중에 그들 무리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가장 덩치가 큰 중년의 남자는 화가 잔뜩 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저 탄광에서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8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을 짐승처럼 끌고 가 우리 동포들은 해저 1000미터가 넘는 탄광에서 개처럼 죽어간다!”


그는 차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숨을 깊게 내쉬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평균 45도가 넘는 고온과 숨 막히는 습도, 유독가스 속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동물들도 먹지 않을 법한 사료나 비료에 쓰일 법한 찌꺼기로 겨우 끼니를 때운다! 독립단원이 알려온 정보에 의하면 수십 명의 조선인들이 3평 남짓한 목조건물에 웅크려 자야하고, 석탄을 캐는 과정에서 생긴 각종 부상과 피부병, 굶주림과 과로로 고통스러워하며 그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차분한 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어금니를 으스러지게 깨물며 분노에 차 두 눈이 이글거렸다.


어떤 이는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산신당 내부의 땅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분개해 씩씩 거리는 와중에 대장 같아 보이는 이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입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일본 총독부에서 내린 ‘국가총동원법’ 때문입니다! 모두 제국주의에 눈이 먼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지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커다란 눈만 꿈뻑꺼리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젊은 남자를 바라만 보았다.


젊은 남자는 그런 그들을 위해 쉽게 이야기해주었다.


“일본 놈들이 한국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중국까지 먹으려고 전쟁을 준비 중입니다. 이놈들은 일본 본토의 자원만으로는 전쟁 준비에 부족하니 한국 사람들을 데려다가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마련하라는 명령을 총독부에서 내린 겁니다!”


이내 그의 설명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1938월 4월 1일. 조선총독부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라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표했다.


제국주의에 눈이 먼 일본은 중국 침략을 위해 한반도에 본격적인 인력 수탈 정책을 감행한 것이다.


일본의 국가총동원법은 크게 노무(勞務)동원(강제징용)과 병력(兵力)동원(강제징병), 군 위안부(성착취)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됐다.


이 가운데 노무 동원은 광산이나 항만 공사, 군수공장과 같은 곳에 배치되었는데 그들은 임금과 식사는 커녕 강제적으로 끌려가 밤낮으로 중노동에 시달려 결국은 죽게 되었다.


도망가는 이들이 감시하는 일본인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비참하게 목이 잘리는 참수를 당하는 일은 예사였고, 설사 도망가지 않고 일을 한다 해도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 오래지 않아 곧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옥(地獄)이 따로 없겠구만...”


대장이 낮게 중얼거리자 바로 앞에 앉아있던 다른 젊은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면 되는디요?”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남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앞에 앉아있는 대장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일단은.... 아서(阿西)그룹부터 쓰러뜨려 망하게 해야 한다!”


대장의 말에 일동이 모두 숨을 멈춘 채, 산신당 안은 알 수 없는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아서 그룹'은 후쿠오카에서 아서 탄광을 운영하면서 조선인 강제 징용에 앞장섰다.


아서 그룹은 일본 정부에 뇌물을 바치며 갖가지 로비를 행했고, 조선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1939년에만 2000명 이상의 징용자들을 탄광에 노역자로 부릴 수 있었다.


그들이 놀라 산신당 내부에 조용한 정적만이 흐르는 이유는 사실 지금 그들이 있는 태백 철암 탄광마을 역시 아서 그룹의 관리 주도하에 있는 탄광마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서 그룹이 관리하는 태백의 철암 탄광마을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아사(餓死) 지옥'으로 불렸다.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는 것은 물론,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갱내에서 나오지 못했기에 조선인들은 항상 굶주린 채 일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은 허리춤에 칼을 찬 채 조선인들에게 무자비한 매질을 하곤 했는데 보통 케이블선이나 벨트, 나무 회초리 등으로 재미삼아 조선인들을 때리는 것이 흔하디 흔한 일상이었다.


조선인들은 낄낄 거리며 재미삼아 때리는 일본인들의 매질을 얻어맞으며 굶주림과 과로로 생사를 넘나들었다.


대장의 옆에 있는 총명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말했다.


“지금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군함과 전투기, 어뢰 등 핵심무기를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생산해야합니다. 일본 탄광은 물론, 군함도를 비롯해 우리 마을 역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에 석탄을 공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근디... 원돈아... 어째야 쓰냐?”


“쓰읍! 형님! 여기서는 이름 말하면 안 되는 것 모르시오?”


옆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사람을 향해 다른 남자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치며 정색을 하자 원돈이라 불리는 젊은 남자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형님! 지금부터 대장 님께서 말씀하실 겁니다.”


원돈의 말에 일동은 모두 눈앞에 서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중년 남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대장이라도 불린 그의 눈빛은 매섭기가 그지없었고, 결의에 차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폭파시켜야지!”


그의 말에 산신당 안에 있던 열 댓명의 남자무리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눈으로 대장을 쳐다보았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들이 쳐다보는 단장이라는 사람은 바로 '강식'이었다.




***




한창 산신당에서 마을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비밀리에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계순은 몰래 집을 빠져나와 지금은 작업을 하지 않은 폐광산 갱도를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계순은 한껏 떨리는 마음으로 소우타가 자신에게 몰래 건네준 양초에 불을 붙여 보이지 않는 캄캄한 암흑 속을 비춰가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몽실몽실 두근거리는 마음에 계순의 가슴은 바르르 떨려왔다.


밖은 어느새 부슬비가 추적추적내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폐탄광 갱도 안은 습하기는커녕 매캐한 석탄 냄새로 가득했다.


“여기!”


저 안쪽 깊숙한 갱도 내에서 바싹 몸을 웅크린 채 숨어있던 소우타가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계순은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소우타에게 얼른 다가갔다.


“나 왔어!”


계순은 소우타를 향해 수줍게 속삭였고, 소우타는 재빨리 계순이 들고 있는 양초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소우타는 계순을 향해 활짝 웃어보이며 그녀를 와락 끌어 안았다.


“계순아! 오늘 하루도 힘들었지?”


다정하게 말하는 소우타는 계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내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이 바알갛게 물든 계순이 소우타의 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이윽고 소우타는 그녀를 위해 깔아놓은 자신의 웃옷 위에 계순을 눕히고 그녀를 더욱더 세게 끌어 안았다.


소우타는 계순을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듯이 다정히 그리고 따스히 안아주었다.


계순은 탄탄한 소우타의 가슴에 안겨 문득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마을사람들은 탄광마을 뒤에 있는 작은 산을 애기산이라고 불렀고, 애기산을 지나 나오는 더 높은 뒷산을 흔히 어미산이라고 불렀다.


소우타와 처음 만난 날, 계순은 언니인 상순과 함께 어미산 속에서 쑥을 캐고 있었다.


초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희끗희끗 잔설(殘雪)이 남아 있었다.


계순은 추운 줄도 모르고 자신의 하나뿐인 상순 언니와 함께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쑥을 찾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작가의말

이 작품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상호, 단체명 그 밖에 일체의 명칭이나 사건 혹은 에피소드, 그리고 대사들은 모두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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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8-133. 전생- 전생의 기억 (2) 23.12.18 22 1 11쪽
132 챕터8-132. 전생- 전생의 기억 (1) 23.12.18 25 1 11쪽
131 챕터7-131(완).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4) 23.12.17 22 1 11쪽
130 챕터7-130.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3) 23.12.17 20 1 11쪽
129 챕터7-129.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2) 23.12.16 20 1 11쪽
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127 챕터7-127.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3) 23.12.15 20 1 11쪽
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1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3 1 11쪽
124 챕터7-124.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3) 23.12.14 25 1 11쪽
123 챕터7-123.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2) 23.12.13 24 1 11쪽
122 챕터7-122.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1) 23.12.13 27 1 11쪽
121 챕터7-121.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3) 23.12.12 30 1 11쪽
120 챕터7-120.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2) 23.12.12 27 1 11쪽
119 챕터7-119.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1) 23.12.11 23 1 11쪽
118 챕터7-118. 무명도사- 폭풍전야 (3) 23.12.11 24 1 11쪽
117 챕터7-117. 무명도사- 폭풍전야 (2) 23.12.10 24 1 11쪽
116 챕터7-116. 무명도사- 폭풍전야 (1) 23.12.10 27 1 11쪽
115 챕터7-115.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9) 23.12.09 27 1 13쪽
114 챕터7-114.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8) 23.12.09 2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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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챕터7-111.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5) 23.12.07 31 1 11쪽
110 챕터7-110.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4) 23.12.07 30 1 11쪽
109 챕터7-109.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3) 23.12.07 2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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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챕터6-104(완). 사이비(似而非)- 폐아파트 (9) 23.12.06 2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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