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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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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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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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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심검의 시작

DUMMY

“잠깐! 잠깐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


팽덕영이 다급히 부르짖고,

그의 외침에 염황교는 흉흉하게 내뻗던 기운을 거둬들였다.


“ 뭐냐? ”


염황교가 무서운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팽덕영을 쏘아 보았다.

그는 팽덕영의 부친이 자신과 호형호제하는 것과,

그의 아들이 환관 따위의 앞잡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 생각할 만큼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만약 팽덕영이 자신의 아버지를 핑계로 환관 무리에게 출세를 의탁하는 심성이라면 이 자리에서 베어버려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 그 강룡금장의 외동아들 이름은 강치우라고 합니다.

그는 개방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으며 이른바 ‘개황’이라 불린다고 하고요.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 그가 강시당의 장로를 격파하고,

잠시 행방불명 되었던 자가 불과 몇 달 만에 나타나서 포달랍궁에서 보낸 고수들이 아미파 장로들을 핍박하였는데, 그 포달랍궁 고수 여럿을 혼자 물리쳤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초 공공에 의하면,

그의 가문에서 전해지는 심법을 익히면 오성이 크게 일깨워져서 모든 무공을 보는 대로 흉내를 낼 수 있고 보통 무인들이 이루기 어려운 경지를 빠르게 달성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무공이 본래 황실 비전의 장생술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요. ”


팽덕영이 빠르게 주워 넘기는 말을 들을 염황교의 표정에 강한 호기심이 깃들었다.

청성의 선우 공덕이나 당가령도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팽덕영을 바라보았다.

“ 그게 사실이냐?

네 말은 무림 사의 상궤 常軌를 한참 벗어나는 이야기다.

본디 무공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평생 고련 苦鍊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거늘,

네 말대로라면 그가 익힌 가전 내공만으로 무공들도 쉽게 익히며 내공의 고수가 된다는 말 아닌가? ”


염황교는 본래 무공에 미친 자다.

본인이 스스로 타고난 오성도 대단하고,

무공에 대한 집착도 커서 남해 검문 개파이래 가장 최고의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입문하고 익힌 사문의 검법을 더 발전시키고 강호에서의 비무행을 통해 더더욱 기괴한 검술로 만들어나간 것이 그다.

사람들은 ‘기괴하다’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경지를 뛰어넘는 염황교의 천재성을 달리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 팽 위사장,

우리에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잖소.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솔직히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오.

나는 사문의 무공에 자부심이 강하긴 하지만 아미파 장로들을 이길 정도의 포달랍궁 고수들과 홀로 싸울 자신은 없소.

그런데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은 거요? ”


선우 공덕 장로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팽덕영을 나무랐다.

당가령 또한,

당문에 대한 자부심은 넘치는 자였지만,

당가의 방계 고수였던 당묘가 개방의 항룡십팔장에 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강치우가 개방의 고수라는 사실만으로도 껄끄러운 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알려지지 않은 무공의 소유자라고 하니 등골이 서늘하다.


“ 그건 사실 초 공공의 지시로 일부 금의위를 제외하곤 극비에 속하는 일이오.

지금 어쩔 수 없이 염 대협을 설득하기 위해 말을 꺼내긴 했지만,

나도 그게 옳은 일인인지는 모르오. ”


“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 걸 보니 사실은 사실인가 보구나.

무림에서 소문이란 늘 과장되고 사실보다 왜곡이 심한 법.

하지만 그가 정말로 그 정도 기간 무공을 익혀 포달랍궁의 고수들을 이겼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과거 나는 비무행에서 포달랍궁의 고수에게 진 적이 있다. ”


뜻밖의 말에 팽덕영과 두 장로는 깜짝 놀랐다.

염황교가 누군가.

그가 과거에 저지른 문제로 거의 반은 스스로 수뢰옥에 갇혀서 그렇지 만약 강호에서 제대로 활동을 하였다면 무림 십 대 고수에 들고도 남을 실력자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안다.

다만 오랜 기간 강호에서 사라졌으니 그에 대한 소문만 있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세월이 길어 흐지부지된 지 오래.

그가 만약 남해 검문이라는 사문의 이름을 걸고 정상적인 활동을 했다면,

개파이래 최고로 남해 검문이 성장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나기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어디에고 얽매이지도 않고,

정사지 간에도 구속받지 않는 제멋대로의 성품이었다.

게다가 타고 난 오성과 무공에 대한 집착으로 거칠고 강한 무공의 달인.

그런 그가 포달랍궁의 고수에게 진 적이 있다는 말에 세 사람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친 염황교가 말했다.


“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놈들.

너희들은 서장의 무공이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들이 괜히 강한 게 아니다.

당나라 때를 생각해보면 왜 그들이 그토록 강한지 알 수 있을 텐데? ”


『 634년 손첸캄포는 당나라의 선진적인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방법을 논의하였고, 가르통첸은 당나라의 황제에게 혼인을 청할 것을 권했다.

이에 따라 손첸캄포는 당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국혼을 하고자 한다는 의향을 전달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대로한 손첸캄포는 당나라에 공주를 내놓지 않으면 당나라를 정벌하겠다고 선포했다.

실제로 손첸캄포는 25만의 군사를 이끌고 송주(지금의 쓰촨 성 쑹판 현)까지 진격했다.

태종은 병부상서 후군집을 보내 티베트의 군사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으나 이 일로 태종과 손첸캄포는 서로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문성공주는 본래 황족 출신이 아니었으나 어려서 부친과 함께 궁중에 들어갔다가 당 태종의 눈에 띄어 문성공주로 책봉되고 후궁에서 지내게 되었다.

혼사가 결정되었을 당시 공주는 스물세 살로 외모가 아름다웠으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천문과 지리에 정통하고 점을 칠 줄 알았으며 불교도 조예가 깊었다.

문성공주는 자신이 티베트에 시집가야 한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실망하였으나 가르통첸에게서 어떤 나라인지 자세히 듣고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혼인이 한족의 문물을 티베트에 전수하는 의미 있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에 사서오경과 아상가의 《유가사지론》, 《예림삼백육십법보감》(藝林三百六十法寶鑒), 《공예 육십법》(工藝六十法)을 비롯한 많은 양의 서적과 석가모니 불상 등을 가지고 가기로 했고,

티베트의 풍토에서도 견딜 수 있는 순무 종자 등도 챙겼다.

641년(정관 15) 문성공주는 이도종의 호위 하에 티베트로 향했다.

장안에서 티베트까지 가려면 큰 강을 건너야 했는데 강의 물살이 완만해지는 시기가 겨울이었던 터라 공주 일행은 한겨울에 길을 떠나야 했다.

청해에 다다른 공주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 천하의 강물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가건만, 나만 홀로 서쪽으로 가는구나!”

공주 일행이 티베트의 변경인 하원에 도착하자 손첸캄포는 라싸 근방까지 마중 나가 영접을 하였다.

그는 당나라의 사위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당나라에서 보내온 옷을 입었는데 이로써 한족의 옷을 입은 최초의 티베트 사람이 되었다.

손첸캄포는 공주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서적과 당나라 장인들의 기술의 도움을 받아 포탈라궁을 지었다.

또 손첸캄포는 불교 신자인 공주의 영향으로 불교를 제창하고 대소사(大昭寺)라는 절을 지었다.

1649년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고종은 손첸캄포에게 부마도위로 제수하고 서해군왕(西海郡王)에 봉하였다.

649년 손첸캄포가 병사한 뒤에도 공주는 당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티베트에 남았다.

680년 문성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티베트는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그녀를 손첸캄포의 묘에 합장시켰으며 이를 역사에 기록했다.

현재 포탈라궁 내부의 법왕동(法王洞)에는 손첸캄포, 가르통첸과 함께 문성공주의 채색 조각상이 남아 있으며, 대소사에는 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 외에도 손첸캄포와 문성공주의 조각상이 있다. 』 위키 지식.


“ 서장의 무공은 포달랍궁이 있기 이전부터도 강했다.

그러니 그들과 겨루어진다는 것은 창피할 일이 아니지.

나는 그 덕분에 세상이 넓고 강자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심검을 구상하게 된 것이니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


“ 심검! ”

‘ 역시! “


선우 공덕과 팽덕영이 동시에 탄식했다.

당가령은 잘 모르겠지만,

검과 도를 배우고 익힌 청성파와 팽가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심검’이라는 화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전설에 가깝고, 실제로 목격했던 사람도 없던 검술 궁극의 경지.


” 그 강치우라는 자가 얼마나 대단한 황실 무공을 배웠을지 모르지만,

내 심검이 그를 이기지 못한다면 아마 당금 무림에서 그를 능가할 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


광오한 염황교의 말에 선우 공덕과 당가령은 어안이 벙벙한데,

팽덕영은 은밀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그가 강치우와 겨루는 일에 흥미를 끌어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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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잠룡대황력 +2 20.09.04 132 2 8쪽
85 대결 +1 20.09.02 128 2 8쪽
84 해전의 시작 +1 20.08.26 156 2 8쪽
» 심검의 시작 +2 20.08.25 158 2 9쪽
82 반전 +1 20.08.24 170 2 8쪽
81 심검 +1 20.08.14 204 2 8쪽
80 아귀 餓鬼 염황교 +1 20.08.06 196 2 8쪽
79 탄지신통 +1 20.08.04 200 4 8쪽
78 진퇴양난 +1 20.08.03 193 4 8쪽
77 용왕도 +1 20.07.31 228 2 8쪽
76 일양지 +1 20.07.30 214 3 8쪽
75 검신합일 +1 20.07.29 202 3 8쪽
74 복수의 길 +6 20.07.28 218 5 8쪽
73 대결 +1 20.07.27 203 3 8쪽
72 타심통 打心通 +1 20.07.24 237 2 9쪽
71 육합창 +1 20.07.23 204 4 8쪽
70 천강북두 天康北斗 +1 20.07.22 223 3 7쪽
69 전진교 +1 20.07.21 251 3 7쪽
68 포구 +1 20.07.20 240 4 9쪽
67 거래 +1 20.07.17 262 3 8쪽
66 해적 +1 20.07.16 289 3 9쪽
65 군노 軍奴 +1 20.07.15 299 3 9쪽
64 신창 양가 +1 20.07.14 289 3 8쪽
63 양가 창법 +1 20.07.13 268 2 8쪽
62 이화창 +1 20.07.10 291 3 7쪽
61 천문채 +1 20.07.09 305 3 7쪽
60 산 너머 산 +1 20.07.07 325 4 8쪽
59 응어리 +1 20.07.06 347 4 8쪽
58 토사구팽 兎死狗烹 +2 20.07.03 37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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