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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울트라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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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2:17
최근연재일 :
2020.04.14 12:41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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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7,591

작성
20.03.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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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요원

DUMMY

스미스 요원 같은 복장의 사내들은 우 부장을 말없이 둘러쌌다.

분명 몹시 놀란 표정이 분명한데도 절제된 동작과 매끄러운 포위, 이런 것 들은 그들이 오랜 시간 온갖 경우에 대하여 훈련되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불사의 몸이긴 하지만 그 외에 아무런 물리력이 없는 우 부장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멀거니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무지막지했던 테스트로 인하여 늘 거의 헐벗고 지내기는 했지만,

정장 차림의 훤칠한 사내들 사이에서 불룩 나온 배를 드러내고 멀거니 발가벗고 서 있는 것은 여전히 불편했다.

대부분 정보기관에서의 심문방식, 오래전 불법적 수사방식에 있어서 늘 피의자를 발가벗겨 놓고 심문을 시작하는 것은 무의미한 관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수치심을 자극하여 항거할 수 있는 정신세계부터 무너뜨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으니까.

우 부장은 엉거주춤 그들 사이에 서서, 용광로로부터 탈출한 흔적들이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던 것들을 무심코 떼어내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음모, 발가락 사이 같은 곳에 엉겨 붙었다가 식어가고 있는 쇳물 방울들.

그가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는 것 들은 요란한 쇠붙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직 온도가 덜 내려간 쇳물 방울들이 푸시실 소리를 내며 식어가고 있었고, 말없이 그 행동들을 지켜보던 사내들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는 것을 우 부장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 부장은 슬슬 오기 같은 게 치밀어 올랐다.

“ 자, 이제 뭘 또 할 겁니까? 다 지겨우니, 뭘 하려거든 빨리하시지요.”


그들 중 제일선임으로 보이는 사내, 임묘한이 입을 열었다.

“ 아,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우 부장님. 회사에서 테스트한 자료 이미 확인은 했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요. 뭐 더는 필요 없겠네요. 이 이상 뭐가 더 있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

전혀 죄송해 보이지 않은 얼굴과 말투로 깍듯하게 고개까지 숙이는 임묘한을 보자, 우 부장은 더 성질이 슬슬 끓어올랐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삐딱하게 나 온 것은.

“ 아니, 뭐 그렇다면 만에 하나, 그들이 좀 쇼를 한 거라면 어쩔 뻔했습니까? 제가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당신들이 뭔지는 모르지만 막 그렇게 사람 죽여도 되나요?”

우 부장이 높은 음성으로 항의를 하자, 임묘한의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그 인상이 마치, 악어의 눈처럼 보여서 우 부장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 뭐,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사람 몇쯤 죽인다고 별로 신경 쓸 사람들은 아니기도 하고, 중요한 건 당신이 이렇게 멀쩡하다는 사실이죠.”

“ 그건 뭐 들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군인도 아닌 민간인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회사에서 어찌 들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보통 민간인 아닙니까.

내가 협조 하지 않겠다면 어쩔건데요. 나도 군대에서 나름대로 충성하고 나온 사람입니다. ”

예전 같지 않게 스미스 들에 대드는 마음이 어디에서 불쑥 생겨난 걸까.

그건 우 부장 스스로 못 느낄지 몰라도, 몇 달 동안 생각지도 못하던 시련들을 다 겪으면서 가슴에 쌓인 분노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런다고 자신을 죽일 능력이 저들에게 있을 리도 만무하고 말이다.

의외로 당차게 나오는 우 부장을 보는 임묘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 그렇군요.

뭐 그렇게 빡빡하게 나오신다면 부장님의 가족들도 한꺼번에 소환해서 검진과 테스트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우 부장님은 현재 국가에 ‘위해’가 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런 경우에는 부장님과 또 부장님 관련된 사람들 또한 테러리스트에 따르는 인물로 대접해 드릴 방법은 많습니다.

법이요? 법은 우리가 만드는 겁니다. 부장님은 아니죠.”

음정에 장단 고저가 없이,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입만 벙긋벙긋하며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는 임묘한의 말이 무섭다.

문득 우 부장은 어린 시절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부모님과 초등학교 선생들에게 들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 어디 가서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잘못 말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다. ”

밑도 끝도 없는, 마치 어릴 적 할머니께 들었던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 같은 이야기.

누가, 언제, 왜, 어디서, 어디로, 끌려간다는 내용도 없던 그 문장은 당시 어른들에게 흔한 말이었고 가장 강력한 금제이기도 했었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된 이후에야 실제로 그렇게 끌려갔었고,

그 이후 사람 구실을 못 하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수차례 세상이 바뀌면서,

인터넷으로, 온라인 방송으로 온갖 씨알 안 먹힐 이야기를 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한데도 별로 변치 않는 세상을 보면서 어느 정도 그런 ‘ 말을 함부로 한다’라는 것에 무덤덤해 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임묘한이라는 스미스는 속된 말로 쌍팔년도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그게 단지 겁을 주는 게 아닐 것 같다고 우 부장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들이라면, 아마도 개의치 않고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이다.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이름을 걸고 말이다.

우 부장은 갑자기 어깨가 축 처졌다.

힘이 빠진 우 부장은 속으로 투덜투덜했다.

‘ 국가, 국가. 국가가 대체 나에게 뭘 해준 게 있다고.

난 군대 의무복무도 길게 마치고, 샐러리맨이랍시고 세금도 또박또박 강탈해갔단 말이다. ’


사내들은 우 부장에게 뭔가 걸칠 것을 권유하지도 않고 말없이 세단 안으로 밀었다.

차량 내부는 처음 우 부장이 타고 와서 고철이 되었다가 용광로로 들어간 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운전석에는 기이한 이, 조수석에는 임묘한이 똑같은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이번 차는 선팅이 아니라 스틸 블라인드가 올라와서 뒷좌석에 탄 우 부장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게다가 앞 좌석과의 사이에 있는 유리 칸막이도 검정 유리라서 완전한 밀실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유리 칸막이에 조그만 디스플레이가 붙어 있었고, 그 화면에서는 비행기나 타면 나옴 직한 ‘미스터 빈’ 아니면 ‘퍼니 티브이’ 같은 영상이 쉬지 않고 반복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거의 죽어서 흔적도 없었을 사람을 벌거벗은 상태로 차에 태우고는 기껏 틀어준 영상이 외국식 우스개 영상이라니.

뭐 농담이라 생각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벌거벗은 채 시트에 앉아있는 우 부장은 이렇게 원치 않는 영상을 보아가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은 자포자기 상태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 부장은 누군가에 의해 계속 떠밀리는 인생을 살아왔다.

우 부장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본 일이 과연 언제인가 싶었다.

어린 시절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에 의해서.

공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로는 군대 상관,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 상사.

그 어디에도 자신의 순수의지는 없었지만,

그게 과연 그들의 탓인지 아니면 늘 무기력하게 저항도 못 하고 받아들인 자신에게 탓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문득, 아침부터 종일 하루가 길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출근길에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그를 배웅하던 가족들이 문득 떠올랐다.

이전에 만년 과장일 때 그를 배웅하는 건 집에서 키우는 잡종 개 한 마리뿐이었는데.

연봉이 느닷없이 오르고 직위가 올라간 그에게 가족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살가움을 표현하곤 했다.

단체로 현관에 나와서 배웅을 하고, 저녁에 들어가면 앞다투어 달려 나와 인사를 하곤 했다.

물론 그 뒤에는 늘 갖고 싶은 물건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뒤따라 언급되곤 하였었지만.

그래도 우 부장은 그렇게라도 가족들이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된 현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 해왔다.

원해서도 아니고,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던 해고의 상황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불사의 육신.

그것으로 한동안 심하게 대표에게 당하기도 했고, 오수처리장에서는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도 갔었지만, 그 이후 주어진 것들이 달콤해서 잠시 잊었었다.

정상이 아닌 자신의 육신과 그로 인해 주어진 새로운 일들이,

실은 얼마나 엽기적인 일들이었는지도 망각했었다.

그런 것들로 유명해지면, 그리고 그 유명세가 심각할 정도로 심해지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나설 것이고 어떤 문제가 생길지 정말 바보처럼 생각조차 않았었다.

그저 평범함이 지나쳐 무척이나 졸렬한 일생을 살아오던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불사의 육체로 얻어지는 것들이 생각보다 엄청나서 그저 행운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긴, 내게 그런 복이 있으려고. 그래도 지금껏 살아온 일평생 보다 훨씬 더 큰 것들을 한꺼번에 누리지 않았나. 그것으로 감사해야지. ’

어쩐지 과거와 같이 현실에 맞춰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우 부장이었다.

한참 여를 세단이 빠르게 나아가는 걸 느끼면서,

우 부장은 갑자기 속물처럼 느껴져 때로 얄밉기도 하던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할 수 있다면 그들과 함께 아무도 자신의 능력을 모를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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