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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울트라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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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2:17
최근연재일 :
2020.04.14 12:41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693
추천수 :
7
글자수 :
127,591

작성
20.03.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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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스미스 요원

DUMMY

나는 몹시 불편할 자세로, 뒤틀린 자동차 내부에 접혀 있었다.

무지막지한 유압 프레스로 인하여 몇 번 뒤집히며 몇 겹으로 차체가 접혔고,

나는 그 틈새에 깨어진 유리창, 터진 시트 등과 엉킨 채로 일정한 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온몸을 꼼짝달싹할 수도 없고 어두컴컴하게 접힌 철판 무덤 속이었으나,

그래도 틈바구니로 빛이 스며들고 바람도 들어와서,

나는 이 덩어리가 그 상태 그대로 트럭 같은 것에 올려져 이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체가 접히고 뒤틀린다 해도 내 몸을 짓누른다거나 하는 상태는 못 된다.

나는 멀쩡한 몸의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 구부러진 철판들을 벗어날 힘은 없어서,

마치 겹겹이 접힌 철판 속에 든 단단한 공처럼 웅크려진 모양으로 속수무책 담겨있었다.

움직이지는 못해도 고통은 없었으나, 새로운 걱정거리가 다시 밀려왔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오·폐수 장에서의 감금이 다시 떠올랐다.

이놈들이 나를 그런 곳에 이 상태로 처박으면 어떡하지,

혹시 이대로 바다에 던지는 것 아닐까.

정말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 그대로.

끔찍하다.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 일방적으로 갇히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차는 의외로 멀리 가지 않은 듯했다.

다시 무엇인가가 덩어리를 집어 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곤 다시, 어딘가로 옮겨지는 느낌. 그리고 다시 던져진 느낌.

뭔가에 풍덩 하듯 빠진 느낌. 그러나 물은 아니었다.

물처럼 풍덩 잠긴 게 아니라 뭔가 나를 감싼 덩어리가 서서히 기울어가는 느낌?

아주 진한 진흙탕 같은데 빠지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눈부실 만큼 밝은 노란빛이 구부리고 접힌 차체 여기저기로 스며들었다.

먼저 순식간에 나와 엉켜있던 소파들에 불꽃이 바로 붙더니 순식간에 타올랐다.

차 안의 탈 수 있는 물질들은 불이 붙으며 연기를 낸다.

주변의 유리 조각들이 흐느적거리며,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시계들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그 서슬에 여기저기 빈틈이 생기며 간신히 몸을 일으킬 공간들이 생겼다.

나를 휘감았던 철판들이 초콜릿 녹듯 점점 흐느적거린다..

이곳이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이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것같다.

이것은 쇠를 녹이는 용광로 속인 것이다.

주변에는 육중한 비중을 가진 쇳물들이 끓어 넘친다.

차체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녹아 흐느적거리자 내 힘으로도 철판을 구부려 틈을 벌릴 수 있었다.

차체가 주변 쇳물보다 가벼우니 아주 천천히 가라앉는 모양이다.

그 틈을 비집고 나는 노랗게 달아오른 쇳물 위로 내려섰다.

내 몸은 비중이 작으므로 오히려 둥실 떠올랐다.

이미 옷은 다 타 버린 지 오래라 또다시 알몸뚱이.

주변에 녹은 쇳물들이 끓다시피 거품을 튀겨대고 있다.

나는 낑낑대며 반쯤 잠긴 몸을 끌어내었다.

다행히 비중은 높으나 이미 충분히 녹은 쇳물은 비중이 가벼운 나를 가두지는 않았다.

비중 차이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용광로의 끄트머리로 걷다시피 이동했다.


다행히 용광로는 단지 형태는 아니라서,

조금만 발돋움을 하면 탈출이 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약간 기울어져 있기도 했고.

어쩌면 차가 다 녹아버리면 쇳물을 외부에 부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쇳물과 함께 쏟아져서 그대로 굳어 버린다면.

그건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산지옥이 될 터였다.

나는 허우적대며 용광로의 모서리를 잡고 기어올랐다.

연기가 자욱했지만 거리낄 게 없었다.

모서리에 올라 한숨을 돌리자, 펄펄 끓는 쇳물의 한가운데 내가 조금 전까지 갇혀있던 승용차가 절반쯤 녹아 잠기는 게 보였다.

허공에 떠 있는 부분들에 들어있던 무언가가 터지는지 펑펑, 소리가 났다.

용광로 모서리에 걸터앉았던 나는 아차, 하는 순간 나는 용광로 위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약간의 느낌 이외엔 아무렇지 않으니 서둘러 용광로 아래를 벗어났다.

언제 저 쇳물이 쏟아질지 모르니까.

다시 콘크리트 덩이와 같은 전신을 옥죄는 무언가에 갇혀 지내기는 싫었다.

내가 떨어져 내린 용광로 아랫부분에는 무슨 금속 원통들이 주르르 깔린 컨베이어같이 보였는데,

나는 서둘러 벗어나기에 바빠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

용광로를 벗어나자 주변 풍경이 보였다.

보통의 공장처럼 어둡고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가득하고,

높은 공장 천장에 붙은 이동형 대형 크레인에 ‘안전제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리고 용광로로부터 제법 떨어졌다. 생각하고 한숨을 돌릴 때.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지켜보는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있어서 그들의 표정까진 알 수 없었지만,

일제히 끼고 있던 팔짱을 푸는 모습으로 보아 그들이 조금 당황하는 듯 보였다.

한두 번 본 반응이 아닌지라,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황량하고, 자못 살벌해 보이는 철공장 안에서 배가 불룩 나온 알몸의 사내가 걷는 것은 기괴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테스트를 받느라 늘 벗고 지내다시피 했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짜고짜 사전 설명도 없이 테스트하는 저들에게 좀 화가 치밀기도 했으나,

이 또한 치르고 지나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알게 무엇이며 무엇을 믿을 것인가.

결국, 저들도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거다.

원한 건 아니지만 이곳에 나는 팔려온 것이고,

저들에게서 도망칠 만한 수단은 없다.

어차피 죽지는 않지만 내 체력으로 저들보다 더 빨리 뛰거나 할 그 무엇도 없다.

게다가 나는 이곳이 정확히 어느 곳인지도 모른다.

달리기 나 무엇으로 해도 결국 저 들에 붙들릴 것이었고, 알몸뚱이로 과연 어디를 갈 것인가.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인간이란 때때로 아주 쉽게 길든다.

군대에 가서 처음에는 그 이질적인 문화와 강요되는 폭력에 질리고 얼어붙어서 화장실에도 못 갈 정도로 위화감을 느끼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그 체제에 적응하고 맞춰 살아간다.

교도소라는 폐쇄공간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에 적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서도 각자 견뎌내고 지내는 것이다.

과거 고대에 강제로 국가에 차출되어 성벽을 쌓거나 운하를 파는 노역을 수년간 했던 사람들.

전쟁에 패배하거나 노예 상인에게 사로잡혀서 일평생을 배 밑바닥에서 노를 젓거나,

아니면 머나먼 대서양 항해 기간 가축만도 못하게 겹쳐져 지내야 했던 노예들.

그들의 짐승보다도 못한 삶이 반드시 비참만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는 비참하고 구역질 나는 반인간적 삶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조차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하고 순응을 했다는 것이 기록이다..

그런 면에서 나조차 테스트를 처음에 받을 때,

그 인간적이지 못한 상황들과 불타버리거나 찢겨 늘 벌거벗고 움직이던 상황에서,

처음에는 모욕감과 수치심을 크게 느꼈지만, 나중에는 그냥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인 경험이 없지 않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앞에 보이는 스미스 요원들을 향하는 길이 제법 멀었다.

내가 걸을 때마다 몸 여기저기에 묻은 쇳물들이 식으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철컹, 철퍽.

때로는 아직 덜 식은 쇳물은 마치 녹은 젤리처럼 몸에서 떨어져 내리고,

금세 식어버린 쇳물들은 찰캉 소리를 내며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따금 덜 굳은 쇳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눈동자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나는 빗물을 쓸어내듯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훑어서 흩뿌렸다.

스미스 요원들에게 다가갈 수록 그들의 표정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들의 무표정했던 얼굴들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보인다.

어떤 자는 눈만 커다랗게 떠서 놀람을 표시하고,

어떤 자들은 입을 바보처럼 헤, 하고 벌린 상태였다.

그 무리들의 중앙에 나를 이곳에 데려온 임묘한, 기이한이 서 있었다.

그 둘만큼은 주변의 스미스 들과 달랐다.

여전히 그 두 명은 아무것도 느낀 게 없다는 듯 무표정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보고서 파일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이윽고 나는 스미스 들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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