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좌능선의 서재입니다.

울트라 매니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8 12:17
최근연재일 :
2020.04.14 12:41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692
추천수 :
7
글자수 :
127,591

작성
20.03.05 10:07
조회
63
추천
0
글자
9쪽

모르모트

DUMMY

처음 Z 프로젝트팀장에 영업팀장이 임명되었다고 할 때는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놈의, 비열하고 능글맞은 손에 내 운명을 맡긴다는 게 싫었었다.

하지만, 비록 이기적 속셈에 불과하긴 하겠지만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기뻐하는 얼굴을 들이밀던 마누라와,

집안에서의 서열이 갑자기 올라간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던 자식들 때문에라도 거부하진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한 지붕 아래 살긴 하면서도,

늘 돈 벌어오는 사람 외의 역할은 거의 미미했던 내게 가족들이 현관에서 출근 인사를 하고,

퇴근 때 문을 열어도 제대로 인사라곤 없던 가족들이 몰려나와 웃으며 맞아주던 게 몇 년 만인가.

처음에 집안에서 소외가 되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인지 명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세상의 잣대와 비교해도 경제력도 다른 발전성도 없는 만년 과장이 곧 나의 계급이고 위치였음을 알기에, 가족들에게 대접받는 기대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된 상태였다.

하지만 전혀 예기치 않았던 나의 일탈에서 시작된,

이유 모를 진급과 이전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대우가 좋아진 환경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가족이었다.

그랬다.

가족이라고 해도, 가장이라고 해도, 그 값어치를 못 하면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보통의 가정생활을 내가 다시 깨뜨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Z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실은 아주 단순한 내용이었다.

모텔에서 잠을 잔다는 거 빼곤, 회사 출근 시간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해가며 여러 보조원이 나를 상대로 온갖 실험을 하도록 허용하면 되는 거였다.


처음에 지 팀장을 세트장 앞에서 만나 삼엄한 보안팀의 경계 속에 출입문을 들어설 때만 해도,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코미디 같았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게 거대한 내부 공간과 컨트롤 타워,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나 하나의 실험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는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이토록 큰 비용을 오직 나 하나 때문에 들인 것이라면,

대표가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흡족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후에 내게 쏟아질 대표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불안감은 컨트롤타워 5층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 지 팀장과 마주 앉아서 모종의 서류들을 작성하면서 더 커졌다.

서류 내용을 보면 나는 일종의 실험 계약직이었다.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만 못하지만, 대체로 내가 받은 인상은 오래전 학창시절에 아르바이트로 해보았던 제약회사의 신약 임상시험 때 쓴 내용과 엇비슷했다고 기억한다..

어쨌든 실험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회사에 민형사상 구상권이 없다 운운.

내용도 잘 몰랐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계약서 끝에 적혀있는 임금에 대한 것이었다.

임원급에 해당하는 연봉과 더불어, 위험수당도 있었고 가족에 대해 법정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보험에 가입해 준다는 것도 있었다.

만에 하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면 역설적으로 가족들은 평생 놀고먹을 정도로 보상을 받는다는 아이러니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실험이 끝나고, 추후에 광고성 이벤트를 할 경우에는 급여 외에 200%의 수당을 건별로 받는다고 되어 있었으니 내 생전에 이런 후 한 대우를 받을 일이 과연 또 있을까 싶었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종합 검진을 비밀리에 받았다.

시설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해 보이는 진료용 의료장비들이 있었고,

정체 모를 의료팀이 와서 나를 검진했다.

시설에도 전담 의료진이 있긴 했지만, 정밀한 검측을 위해 전문가들을 따로 불러온 것으로 보였다.

내 평생 받아본 국가검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창한 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바로 문제가 생겼다.

혈액 채취 바늘이 아예 피부를 들어가지 못했다.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하는 간호사가 팔뚝에 쥐가 생길 만큼 내 정맥에 바늘을 꽂으려 애를 썼는데, 힘껏 누르면 바늘이 구부러져 버렸다.

보다 못한 의사 하나가 메스를 이용해서 피부를 채취하려 했으나 힘만 쓰다가 미끄러져 의사가 손을 베었다.

화가 난 의사가 사람의 몸 중에 가장 연약하다는 부분들인 허벅지나 항문 근처를 통해 시도했으나 불가항력이었다.

첨단 수술용 레이저메스까지 동원되었지만 나는 전혀 피부에 아무런 느낌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 내시경을 통해 내장기관 내부에서 내시경에 달린 바늘로 채취를 시도하자고 했다.

난 겁이 났지만, 바늘이 안 들어가니 수면 내시경을 쓸 방법조차 없었다.

내시경 튜브가 목을 넘어가도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구역질도 무엇도 없었는데,

한 시간가량을 모니터를 보며 끙끙대던 의사들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포기했다.

그 어떤 물질로도, 위장이나 대장의 세포 어디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고 했다.

나에겐 통증도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내 대소변과 타액, 내가 스스로 뽑아낸 머리카락 정도가 그들이 검사할 수 있는 샘플들이었고 검사 결과는 지극히 보통 사람 이어서 팀장이 역력히 실망하는 게 느껴졌다.

타액을 통한 유전자 검사도 지극히 정상.

CT 나 MRI 등의 장비를 동원해 봐도 그저 보통의 중년 남자의 몸 이란 결과밖에 없었다.


밖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 있는데 열린 의료버스 창틈으로 의료팀장 이란 친구가 Z 팀장에게 말하는 게 들려왔다.

“ 골격이나 유전자도 지극히 정상인 데다가 샘플 상으로는 완전히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육신에 닿으려는 자극들이 먹히질 않아요. 메스 건 레이저 건, 화학약품 이건, 심지어 불도 말이죠.

아까 내시경 들어갈 때 몰래 약물을 넣었거든요?

근데 안 먹히잖아요.

나중에 화가 나서 코끼리도 쓰러질 만큼 마취제를 넣었는데 반응이 없어요.

그야말로 온몸이 다이아몬드 같은 거죠.”

팀장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글쎄 한동안 저 새끼 몰래 우리도 나름대로 실험을 해봤다니까요?

사저에 보내드린 동영상 보셨죠?

그거 다 진짭니다. 황산을 끼얹어도 보고, 유독가스를 몰래 틀어놓기도 했었고요.

그건 아예 그랬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더라고요.

좀 위험한 생각이긴 하지만, 막말로 동원할 수 있는 독극물이란 독극물을 다 찾아서 저놈이 밥을 먹을 때 소스처럼 잔뜩 뿌려놓은 것들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재는 안 죽어요. 뭐로 두드려도.”

“ 근데 근력 테스트 같은 건 정말 평범합니다.

오히려 그 또래 운동 좀 한 사람보다 훨씬 못하죠.

엑스레이로는 안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게 생기는 거 같아요.

뭔가 생명을 위협하는 압박이 가해지면.” 의료팀장의 대답.

그제야 나는 한동안 내게 발생한 각종 사고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런 죽일 놈.

그간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우연해 보이던 사고들이 싫은 연출된 것이었다니.

분노가 치밀긴 했지만, 사실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으니 별로 와 닿지는 않았다.

의료팀이 체력검사를 할 때, 나는 재주껏 최대한의 힘을 내보려고 노력했었다.

나 역시도 원인 모르게 변해버린 내 몸뚱이에 대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그런데 정말 나는 그 결과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를테면 기계를 통해 러닝 테스트를 하면, 보통 시간이 지나 계속 달리면 숨이 차고 혈압이 올라 뛰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내게는 없었다.

혈압도 숨참도 없이 그냥 달리고 달렸다.

하지만 그런 좋은 조건에도 기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의료진의 말로는, 순환기 쪽은 너무나 정상인데 원래 갖고 있던 근육량이 적고,

그 근육량의 최대치를 쓰는 것은 맞는데 그 이상으로 기록이 나올 수는 없다는 것.

즉, 그 최대의 속도로 온종일이라도 달릴수는 있지만 그게 마라톤과 같이 달리기로 단련된 사람들의 기록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


실험하던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웃으며 말했다.

“ 우 부장님. 이거 참 부장님의 신체 반응은 저희가 배운 모든 의학지식뿐만 아니라 물리나 화학에 대한 지식까지를 다 뒤엎어 버리니 뭐라 말씀드릴 게 없네요.”

“ 뭐 문제가 있습니까? ”

나는 내 몸뚱이가 보기 좋다 생각한 적도, 자신감을 가진 적도 없었지만 바로 앞에서 내 몸뚱이를 마치 신기한 물건처럼 말하는 의료팀장이 썩 달갑지 않았다.

“ 아, 불쾌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사람이 뭔가 에너지를 쓰고 계속 움직이면 당연히 심폐기관들에 통증이 오고, 땀도 나고 그래야 하잖아요? 얼굴도 상기되고 말이죠. 근데 우 부장님은 숨도 차지 않고 땀도 안나요. 그러니 갈증도 안 생기죠? 심지어 체온 그래프도 똑같아요. 변함이 없어요. 마치 돌로 만든 사람처럼. 그런데 그런 좋은 조건을 가지고 힘을 쓰고 뜀박질을 해도 보통 운동 좋아하는 사람 만큼의 기록도 안 나오니 이게 뭔 말입니까.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울트라 매니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울트라 매니아를 마치며 +2 20.04.14 47 0 -
33 아마겟돈 20.04.14 42 1 7쪽
32 아마겟돈 20.04.10 37 1 9쪽
31 아마겟돈 20.04.08 44 0 8쪽
30 귀환 20.04.07 41 0 8쪽
29 침투 +2 20.04.06 43 0 10쪽
28 침투 20.04.02 41 0 9쪽
27 침투 20.03.31 42 0 9쪽
26 특임대 20.03.30 38 0 8쪽
25 특임대 20.03.27 48 0 8쪽
24 특임대 20.03.26 53 0 9쪽
23 특임대 20.03.25 54 0 9쪽
22 스미스 요원 20.03.23 54 0 10쪽
21 스미스 요원 20.03.20 51 0 8쪽
20 스미스 요원 20.03.19 63 0 9쪽
19 팬덤 20.03.18 61 0 9쪽
18 팬덤 20.03.16 60 0 9쪽
17 슈퍼맨 탄생 20.03.12 66 0 9쪽
16 슈퍼맨 탄생 +2 20.03.11 77 0 9쪽
15 모르모트 20.03.10 70 0 9쪽
14 모르모트 20.03.06 64 1 10쪽
» 모르모트 20.03.05 64 0 9쪽
12 모르모트 20.03.04 83 0 11쪽
11 Z 프로젝트 발진 20.03.03 89 0 9쪽
10 Unbreakable 20.02.29 100 1 9쪽
9 재수 없는 놈 20.02.27 113 0 9쪽
8 슈퍼맨이 되었다 20.02.26 113 0 9쪽
7 부활 20.02.25 115 0 8쪽
6 부활 20.02.24 121 0 8쪽
5 함정 20.02.21 126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