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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642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3:08
조회
1,413
추천
47
글자
19쪽

38화. 친구들의 동태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수르는 쥬맥이 돌아오면 이제는 자신이 호위가 되어 항상 옆에서 친구를 지켜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그러나 하루도 쉼 없이 무술 연마에 열심이지만 큰 기연이 없다 보니 아직도 수신(修身)단계인 이류무사(二流武士)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쥬맥이 온갖 기연으로 제신(諸神)단계인 절정(絶頂)의 경지에 이른 것이지 사실 그 나이에 수신단계는 보통이었다.


각 부족에서는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여러 무관에서 무사 수련을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하였다.


이에 수르도 비율신 대족장 산하의 정심무관(正心武官)이라는 곳에 다니면서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는 중이다.


도법(刀法)을 주 무기로 익혔지만 은신술(隱身術)과 활쏘기, 암기 투척 등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도법은 현천도법(玄天刀法) 열두 초식을 익혔는데 아직 공력이 약하여 검기를 쓸 수는 없지만, 휘두르는 도에서는 제법 바람소리가 윙윙거렸다.


오늘 정심무관에서는 그동안 생도들이 배운 것을 점검하는 날이라 아침부터 관장과 생도들이 바삐 움직였다.


“야, 수르!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 곧 무관님이 오신다.”


무관이 온다고 아침부터 관장이 설치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종주먹을 댄다.

대족장 산하의 무관이 내려와서 지켜보는 가운데 집단의 무술 시범이 있는 날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상대끼리 조를 이루어 비무(比武)까지 펼치는 것이었고.


수련 시의 비무는 보통 목검이나 목도로 이루어졌으나, 오늘은 실제로 무기를 사용하는 진검승부(眞劍勝負)로 진행되므로 모두가 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실제로 비무 중에 다쳐서 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무사가 다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무사가 될 수 없었다.


수르의 상대는 같은 도를 쓰는 화문수라는 친구인데, 수르보다는 세 치 정도 키가 더 크고 몸도 우람하여, 도에 실린 힘이 엄청난 친구였다.


대신에 동작은 수르보다 약간 느렸다. 어릴 때부터 수르가 쥬맥과 잘 어울리는 것을 눈꼴사납게 쳐다보던 친구여서, 이번에도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주려고 벼르고 있는데······.


‘이 녀석, 어디 한번 혼 좀 나 봐라.’


마침내 수르의 차례가 되자 진행관이 큰 소리로 양쪽 대결자를 불렀다.


“다음은 야수르와 화문수의 대결이다. 둘 다 앞으로 나와!”


“예!”


두 사람이 호출과 동시에 대답을 하면서 앞으로 뛰어나갔다. 둘이 마주 보고 진행관 지시에 따라서 포권을 한 다음 도를 빼 들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화문수는 우에서 좌로 도를 비스듬히 치켜들고 서 있고, 야수르는 도첨(刀尖)을 아래로 향하여 좌에서 우로 비스듬히 내려 뜨리며, 각자가 익힌 도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때 화문수가 수르를 바라보더니 히죽거리며 비웃듯이 웃었다. 너 정도는 간단히 혼내 줄 수 있다는 듯이.


수르는 무심한 척하면서 배운 대로 심공(心功)을 운기하며 도에 진기를 서서히 모았다.


드디어 진행관이 올렸던 손을 빠르게 내리며 뒤로 물러섰다. 시작 신호다. 그러자 서로 상대를 노려보며 빙빙 돌더니 화문수가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앞으로 나서며 직도황룡(直搗黃龍)처럼 천지를 양단할 듯이 도에 힘을 실어서 내리그으며 첫 초식을 출수했다.


도에 실린 힘이 매우 위맹했다. 맞받으면 수르가 밀리기 쉬우니 옆으로 비켜서며 도를 비스듬히 올려서 흘려 보냈다.


그러나 흘려 보낸 도가 바로 방향을 틀어서 가슴을 베어 왔고, 마침내 둘의 도가 부딪쳐 ‘쨍!’하는 소리와 함께 서로 도를 맞대고 미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자 문수가 얼굴을 수르의 눈앞에 들이밀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야, 이 쥬맥의 쫄개야! 쥬맥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그놈이 돌아오기 전에 넌 오늘 내 손에 죽을 거다.”


“누가 먼저 죽을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지 않을까?”


수르는 당황하지 않고 힘으로 싸우면 불리하기 때문에 미는 힘을 비틀어 한쪽으로 흘리며 한발 물러섰다.


문수는 힘으로 누르고자 하였으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자 화가 치밀었다. 이에 오늘 못해도 팔이나 다리 하나는 잘라 버리겠다며 앙심(怏心)을 품고, 번개처럼 다음 초식을 전개하여 연속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러나 수르는 배운 대로 차분하게 보법(步法)을 밟으며 흘릴 건 흘리고 받을 건 받으면서, 재빠른 동작으로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노렸다.


어느 순간 힘으로 도를 휘두르며 압박하던 문수의 몸이 한쪽으로 쏠리며 빈틈이 드러났는데······.


수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체를 숙이며 번개처럼 횡으로 허리 부분을 올려 치면서 옆으로 비켜났다.


“아악!”


결국 수르에게 일격을 당한 문수. 옆구리에 한 뼘 길이의 도상(刀傷)이 생기며 붉은 선혈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악에 바친 문수는 피를 흘리면서도 너 죽고 나 죽자고 저돌적인 공세를 퍼부었으나, 이미 보법이 흐트러져 침착한 수르의 수비에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급기야 다시 한 번 수르가 빈틈으로 내리그은 도에 팔뚝이 긴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러니 화가 더 날 수밖에!


이제 문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오늘의 창피를 만회하는 길은 수르를 쓰러뜨리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수련을 했다지만 아직 이류무사인지라 서투른 점이 많은 것이다. 특히 감정 관리에 취약했다.


보법을 제대로 밟지 않으면 초식(招式)이 꼬이기 마련인데, 씩씩대며 홧김에 도를 힘으로 휘두르니 힘만 잔뜩 들어 있지 빈틈이 더 많이 드러났다.


어느 순간, 수르가 횡소천군(橫掃千軍)처럼 횡으로 쓸어 오는 도를 번개처럼 막아 내면서 빙글 돌더니 도를 문수의 목에 가져다 댔다.


살갗에 도가 살짝 파고들자 피 한 방울이 도신(刀身)을 타고 흐른다.


“중지!”


진행관이 외치는 소리와 함께 비무가 끝났다. 수르가 도를 거두고 뒤로 돌아서서 물러나는데, 그때 화를 참지 못한 문수가 번개처럼 수르의 뒷등을 향하여 검을 내리그었다.


뒷골이 오싹하며 순간적으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수르가 잽싸게 몸을 빙글 틀었는데도 칼날이 왼쪽 어깨를 스치고 말았다.


황당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며 팔뚝을 오른손으로 잡고 지혈을 시키는데, 진행관이 걸어 나오더니 소리쳤다.


“야수르 승! 화문수는 규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오늘 비무가 모두 끝나고 나에게 온다. 알았느냐?”


문수는 홧김에 일을 저질렀으나 아차 싶은지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뒤로 물러났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뭐가 그리 불만인지 수르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십 년 전에 반인족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했던 문수의 아버지가 쥬맥 때문에 풍토병이 전염되어 죽었다.


그 뒤로는 쥬맥과 친한 친구였던 수르와 유리까지도 모두 한통속으로 보여서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던 것!


그런데 풍토병을 전염시킨 당사자인 쥬맥은 살아 있다고 하니 억울한 마음에, 그 친구였던 수르라도 오늘 창피를 안겨 주고 싶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도리어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말았으니 나름 억울한 것일 터!



쥬맥의 또 다른 친구인 유리는 아룡관을 마친 뒤에 틈틈이 검술을 수련하며 의술(醫術)을 배웠다.


신녀관을 찾아가서 매일 식물도감을 보고 약초와 독초의 선별법과 그 효용을 배우며, 일반 환약과 영초로 단약을 만드는 연단술을 익혔다.


의술을 배우는 곳에는 여러 명의 남자 생도들도 끼어 있었고, 일부는 무사지만 야전(野戰)에서의 의학 지식이 필요하여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창 이성에 눈뜨는 민감한 시기라 생도들 안에서도 여러 사람이 서로 눈이 맞아서 연애(戀愛)를 하고 있었는데, 유리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한번 사랑의 불길에 휩싸이면 이성(理性)에 눈이 멀듯이, 한창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는 유리. 그 마음속에서 쥬맥은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 버린 지 오래였다.


코흘리개 시절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 사랑의 맹세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보이지 않는 곳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사람 하나를 잊지 못하는 것보다, 매일 보면서 눈에 불꽃이 튀는 그리고 가슴이 콩닥거리는 사랑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말이다.


여자의 마음을 달리 갈대라 하던가?


눈앞에 잘생기고 멋진 몸매에 의술까지 뛰어난 친구가 맨날 붙어 앉아서 치근덕거리니 내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냥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수밖에. 오늘 밤도 달이 밝은데 누군가 유리의 천막 문에 조그만 돌을 던졌다.


기쁨에 차서 활짝 웃던 유리가 내림문을 들어올릴 때는 얼른 시큰둥하게 표정을 바꾸더니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그토록 기다리던 남자친구 안명의 얼굴이 달빛 아래 드러나자, 본심을 감추고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유리다.


“명이구나. 왜? 나 지금 공부하느라고 바쁜데······.”


겉으로는 바쁜 척하지만 속으로는 혹시 그냥 가 버릴까 봐서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콩닥거리고 있었다.


더구나 안명은 한울의 손자요 안율의 아들이다. 저런 집안에 시집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 집안만 좋은가? 얼굴도 갸름하고 미남에 늘씬하며, 무술과 의술도 뛰어나니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닌가? 절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라고 다 맹한 것은 아니다. 안명도 겉으로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뚱했다.


“그래? 그냥 달빛이 좋아서 함께 걸을까 했는데 바쁘면 놔두고······.”


그러면서 정말로 돌아서려고 한다. 아니다, 이 일은 만사를 제치고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공부가 문젠가?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유리의 잔머리가 이럴 때는 휙휙 돌아간다. 잽싸게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래? 그러고 보니 달빛이 좋네. 바쁘지만 네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냥 보낼 순 없고···, 잠깐만 같이 걷지 뭐.”


서둘러서 차림새를 살피며 몰래 엄마의 연지를 찍어 바르고, 몇 번이나 위아래를 살핀 뒤에 천막을 나섰다.


바보처럼 조금 걷다가 금방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 조바심에 속이 탄다.


문을 나서니 저기 달빛 아래서 멋진 미래의 낭군감이 손을 흔들고 서 있다. 마음 같아서는 뛰어가고 싶지만 본심을 감추고 조신하게 천천히 걷는 유리.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하천의 다리를 건너며 걷다 보니, 제법 멀리 나와서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옛날에 쥬맥이 더럽혀진 가죽신을 저 다리 밑의 하천에서 깨끗이 씻어 주던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팔짱이라도 껴주지 바보처럼 맹하네. 이거 혹시 완전 숙맥 아냐?’


유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일부러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안명이 덩굴 채 굴러 들어오는 호박을 그냥 놓칠 리가 없었다. 잽싸게 부축하는 척하면서 실수인 양 풀밭으로 넘어지며 유리를 아래로 깔아 뭉개는 안명!


‘기회는 이때다!’


그 반동으로 잽싸게 유리의 입술에 자기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가 뗐다. 입술에 닿은 촉촉한 감촉이 아쉽고···, 가슴은 정신없이 콩닥거리고······.


“이크, 실수! 미안해. 넘어지면서 몸이 쏠린 거야.”


“아이, 어떡해! 난 아직까지 뽀뽀도 한 번 안 해 봤단 말이야.”


위에 있는 안명의 가슴을 치고 앙탈을 부리며 속으로는 딴말을 하고 있었다.


‘에이, 바보 같은 녀석! 하려면 제대로 해 주지. 이게 뭐야?’


눈치도 없는 녀석이라고 속으로 투덜거린다. 기껏 기회를 만들어 주니 이게 뭐야?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유리야, 우리 지금부터 제대로 사귀자.”


안명의 말에 그제야 유리의 마음이 풀렸다. 일단 상대도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진도를 더 나가도 된다.


“장난으로 하는 거 아니지? 정말 나 확실하게 책임질 거야?”


이럴 때 못 빠져나가게 확실히 코를 꿰어 놓아야 한다.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 남아 일언은 중천금이지. 내가 남자 중의 남자 안명이잖아.”


“증~말?”


약간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못 이기는 척 품으로 안기는데, 입에서는 벌써 달뜬 숨결에 단내를 풍기고 있었다.


눈을 감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황홀한 표정이 묘하다. 이 남자가 과연 못 이기는 척하고 넘어갈까?


아무튼 이렇게 또 젊은 남녀의 인생 연극 한 막이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서 휘장을 올리고 있었다.


그 미래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이 젊음이라는 특권이 아닐까?


* * * * *


한편, 여기는 우르고원의 동쪽 끝자락이다. 발라라 대륙의 정중앙쯤에 위치한 평균 고도 천삼백 장(3,900m)에 이르는···.


지겹게도 십 년을 쫓겨 다닌 야차족의 마린챠 모녀가 뒤를 쫓아온 일당들에게 포위되었다.


이제 미라챠도 열여덟 살이라 칠 척(2.1m) 정도까지 자랐다. 어머니인 마린챠가 팔 척(2.4m) 정도이니 거의 다 자란 셈이다.


어미의 모진 마음은 딸을 살리기 위해서 지난 십 년의 추격을 힘들게 버티어 냈지만, 오늘은 결국 물러날 길이 보이지 곳까지 몰리고 말았다.


“결국 잡히고 말았구나! 이를 어쩌니.”


끝없이 넓은 고원에서 추격자(追擊者)들에게 둘러싸이니 그동안의 고생이 허망하고, 말없이 내려다보는 저 하늘이 원망스럽다.


‘이제 와서 날더러 어찌하라고?’


내가 이 자리에서 죽어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천 번 만 번이라도 그리 하겠건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여섯이나 되는 건장(健壯)한 놈들에게 둘러싸여서 이처럼 가녀린 여자 둘이 어찌하라는 말인가?


“아~ 하늘이시여! 우리 모녀는······.”


그런데 가만히 모습을 살피니 쫓아온 놈들은 더 먼 길을 추격해 와서 그런지 헐떡이고 있었고, 마린챠와 미라챠는 비교적 숨이 덜 찬 상태였다.


두 모녀는 그동안 쫓기는 와중에도 쥬맥이 가르쳐 준 대로 토납술을 익히며, 틈이 날 때마다 하단전(下丹田)에 축기(蓄氣)를 해 왔다. 그게 어느덧 십 년!


그래서 그런지 몸이 힘들 때도 운공을 하면 금방 활력이 돌아오곤 하였다. 십 년 가까이나 해 오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제법 내공이 쌓인 것이다.


이제 뒤로 물러날 길은 없었다. 죽든지 살든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밖에···.


이제는 정말 부딪쳐서 생사의 결단을 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결연한 표정으로 미라챠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는 마린챠.


“얘! 이제 도망갈 곳도 없고 도망 다니기에도 지쳤다. 오늘 여기서 죽던 살던 사생결단을 내자. 혹시라도 중간에 너라도 도망갈 수 있으면 가도록 해라. 한 사람은 살아야지.”


“엄~마는, 나 혼자 살아서 뭐해?”


겁은 나지만 모녀는 용기를 내어 그동안 축기한 기운을 온몸에 퍼뜨리며 결사(決死)의 의지를 다졌다.


쫓아온 녀석들이 둘러싸고 보니 달랑 여자만 둘인데, 남자가 여섯이면 이건 식은 죽 먹기 아닌가? 여자를 잡는 데에 무슨 칼이 필요하겠는가?


차라리 맨몸으로 격투를 하면서 붙들고 뒹구는 것이 더 짜릿하지 않을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칼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손가락을 꺾어 우드득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다가섰다.


“하하하! 정말 재미있겠는데······.”


도망갈 생각을 않고 늘씬한 두 미녀가 맨몸으로 덤비려고 한다. 좋아서 입이 찢어지게 웃음이 나와 귀에 걸렸으나, 그것은 얼마 못 가서 곧 허망(虛妄)한 꿈처럼 깨지고 말았다.


늘씬한 두 모녀가 비호(飛虎)처럼 여기저기로 날뛰면서 주먹을 내지르는데, 진기가 실린 주먹에 한 번 맞으면 어찌나 아픈지 ‘아이고!’ 하는 비명이 절로 나온다.


결국 덩치가 큰 여섯 놈이 두 모녀를 당하지 못하고 풀밭에 널부러졌다.


어떤 놈은 뼈가 부러졌는지 혹은 엄살인지 계속 죽겠다고 끙끙거리고.


막상 싸우고 나니 헛웃음이 절로 난다. 자신들의 몸이 계속 운기(運氣)와 축기(蓄氣)를 하면서 내공이 쌓여 일반인과 달라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결단을 내려서 혼쭐을 내줄 것인데······.


칼들을 한쪽으로 모으고 여섯 놈을 앞에 꿇어앉혔다. 이들도 이제 자신들이 모녀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우리가 그래도 야차족 중에서는 뛰어난 용사들인데 여섯이 여자 둘에게 당했다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무슨 비술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얻어 배울 수는 없을까?


미라챠는 엉성하게 철로 만든 칼들을 한쪽에 몰아 놓고 팔짱을 끼고서 지키고 있었다. 남자들은 어른인 마린챠가 나서서 무언가 정리를 해야 했다.


“너희들 이 자리에서 다 죽을래, 아니면 우리 부하가 되어서 함께 살래?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마. 죽고 싶다면 아프지 않게 지금 단칼에 목을 잘라 주지. 어쩔 거야?”


그러자 한 놈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우리가 부하가 되면 싸우는 법을 좀 가르쳐 주실 겁니까?”


“너희들이 평생 나를 배신하지 않고 부하가 되어 따르겠다고 야차족의 맹세를 하면 그것을 가르쳐 주마.”


그런데 이 야차족의 맹세란 것이 조금 묘한 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웃지못할 사건도 많았고 말이다.


부하가 되면 싸우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그것을 배우면 야차족의 누구와 싸워도 이길 것 같았다.


여섯 놈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말.


“야차족의 맹세를 하겠습니다.”


그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살길을 택했다. 어차피 진심으로 우러나서 진신챠에게 충성한 것도 아니고, 죽기보다는 살아서 전투 기술도 배우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니겠는가?


“그럼 한 놈씩 이리로 와서 맹세해.”


그러면서 마린챠가 양 발을 넓게 벌리고 섰다. 야차족은 옷을 입지 않으니 묘한 모습이 연출되었는데······.


누구도 당연하다는 듯이 웃지 않았고 한 놈씩 가랑이 밑으로 기어 들어가면서, 혀를 내밀어 다리 밑을 한 번씩 핥아 대는 것이 아닌가?


정말 웃긴 일이지만, 이것은 아직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야차족(夜叉族)에만 남아 있는 아주 동물적인 행위였다. 우리가 흔히 보는 행위, 즉 동네에서 암캐 한 마리를 놓고 여러 마리의 수캐가 뒤를 핥는 것과 다름없었다.


야차족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배신하지 않고 부하가 되겠다는 맹세를 할 때는, 주인으로 모실 상대의 다리 밑을 핥으며 맹세를 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남자끼리나 여자끼리 하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마찬가지였다.


결혼이라는 제도도 없고, 아직 짐승의 태(胎)를 온전히 벗지 못하여 마음에 맞는 이성과 어디서든 마음대로 사랑을 나누는 종족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그중에 젊은 놈 하나가 마지막으로 기어가면서 맹세를 하던 중에 뭔가를 잘못한 모양이다. 혹시 엉뚱한 데를 핥았나?


“으악!”


······?

38화 마린챠 모녀의 위치 지도.png

38화 마린챠 모녀의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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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9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13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6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91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70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72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8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8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82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71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07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65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12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20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95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61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68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18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76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98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50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46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670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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