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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78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0:05
조회
1,483
추천
49
글자
19쪽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나무에 달린 수많은 열매들을 보니 모두 제 것인 양 마음이 뿌듯하다.


“와! 생각보다 산에 먹을 것이 참 많구나.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이제 한 가지 걱정은 덜었다. 산속에서 홀로 살면서 식량 걱정만 안 해도 그게 어디인가?


먹음직스러운 색색의 과일들도 많은데 작은 원숭이 같은 짐승과 새들, 다람쥐처럼 오색의 털을 가진 작고 예쁜 동물들이 그것을 따 먹고, 한편으로는 저장하려고 집으로 가져가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옹달샘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찬찬히 살펴보니, 꿈속에서 형과 함께 따 먹던 과일과 똑같이 생긴 것들도 꽤 많이 있었다.


그 생각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하나를 따서 살짝 맛을 보았다. 그러자 매우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육이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입 속을 맴돈다.


허겁지겁 몇 개를 따서 먹으니 꿈속에서 형과 먹던 맛과 똑같아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니 항상 곁에 있겠다고 했던 형이 고맙고 더 그립다.


“형이 이럴 줄 알고 미리 꿈속에게 나에게 알려 준 것일까?”


그 생각에 몇 개를 더 따 먹고 몇 개는 따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점심을 잘 먹은 것처럼 뱃속이 든든하다.


배가 부르고 주머니에 먹을 것이 있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어린 마음에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말이다.


“아아~ 이제 살겠네!”


아파서 그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뻐근한 몸을 이끌고 드디어 산 위에 올라선 쥬맥은 기함을 할 듯이 놀랐다.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대협곡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고 자신은 그 낭떠러지의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전에 살던 아리별에서도 이렇게 깊고 거대한 협곡은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게 내려앉은 계곡에는, 양쪽 절벽에 커다란 나무들이 멋지게 자라 있고 기암절벽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깊은 계곡 아래에는 하얀 안개가 끼어 있지만 물이 흐르는 듯했고······.


그런 협곡이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쥬맥이 서 있는 곳에서는 그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쥬맥은 대자연의 웅장함에 도취된 채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깊이는 천 장(3km)이 다 될 듯하고, 폭은 좁은 곳이 칠십 장(210m) 넓은 곳은 이백 장(600m)이 넘어 보였다.


천인족이 정밀하게 측정하여 나타낸 지도에는 길이가 천팔백칠십 리(748km)에 폭이 가장 좁은 곳이 70장(210m)이요 가장 넓은 곳은 삼백 장(900m)이었다. 그리고 깊이는 가장 낮은 곳이 칠백삼십 장(2.2km)이요 가장 깊은 곳은 천이백 장(3.6km)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거대한 협곡인가?


천인족은 이 협곡(峽谷)에 우르대협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땅이 쭉 찢어진 것처럼 드러난 커다란 틈새가 마치 대륙이 뚝 부러진 균열 부위 같은데 보기만 해도 아득하다.


절벽은 대부분이 천 장 낭떠러지에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곳곳에 용암이 흘러나온 듯한 크고 작은 동굴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이 절벽의 중간에 뚫려 있어서 사람이나 동물이 드나들 수 없는 위치였다. 절벽 곳곳에는 괴목이나 노송들이 오랜 세월 기이한 형상으로 자라 있어서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가만히 대협곡을 살펴보니 서 있는 곳보다 조금 아래 부분의 낭떠러지에, 급경사이긴 하지만 비좁은 틈새가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길이 비밀 통로처럼 숨어 있는 것!


‘일단 저 절벽들에 있는 동굴 중에서 하나라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을 찾아낸다면, 앞으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주거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틈새를 이리저리 비집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힘드니 투덜거림이 절로 난다.


“에이~ 정말 힘드네!”


힘에 부쳐서 중간에 잠깐씩 쉬는데 그때마다 바라보는 풍경이 신비하면서도 너무 아름답고 장엄했다.


한 시진을 넘게 내려와서야 겨우 바닥에 닿았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치 천 길 우물에 빠진 것처럼 양쪽으로 까마득한 절벽들이 올려다보였다.


의외로 바닥 여기저기에는 넓은 평지와 늪지 그리고 조그만 호수들도 눈에 띄었고, 거기에서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위로 걸어서 올라가니 제법 넓다란 평지가 나온다. 그런데 그곳엔 사람처럼 커다란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큰 메가네잠자리들도 먹이를 찾아서 날고 있었고.


수르, 유리와 함께 봤던 그 잠자리다.


향긋한 꽃향기 속에 벌과 나비도 꿀을 찾아 무수히 날고 있어서 마치 천상의 꽃동산에 놀러 온 것만 같았다.


내려오던 산 위의 풍경(風景)은 분명히 과실이 익어 가는 가을이었는데 이곳은 지대가 낮아서 그런지 마치 꽃피는 봄날과 다름없다.


“정말 아름답구나!”


그 모습에 취해서 바라보다가 문득 이 풍경이 낯익은 것처럼 느껴지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얼마 전에 형과 꿈속에서 놀았던 곳과 매우 흡사했다.


‘그렇다면 혹시 동굴도?’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꿈속 비슷한 방향으로 따라서 가 보니, 내려온 절벽과 마주 보는 반대쪽 절벽에 정말로 꿈속의 동굴 같은 것이 보였다.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조그만 동굴의 입구(入口) 같은 것이 보일 듯 말 듯이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올려다보니 그리 험하지도 않아서 올라 다닐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십 장(150m) 가까이 절벽의 돌 틈새를 타고 올라가니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다.


절벽 중간에 튀어나온 넓다란 바위틈으로, 수천 년을 묵은 듯이 보이는 노송(老松)이 멋들어지게 가지를 내려뜨리고 있는 뒤쪽이었다. 그곳에 밑에서 보았던 동굴이 깊게 뚫려 있었는데···.


밑에서 볼 때는 입구가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막상 앞에 와서 보니 어른이 서서 들어가고도 한 길은 남을 듯했다.


“안쪽도 제법 넓어 보이는데······.”


동굴 앞쪽에 크게 튀어나온 넓직한 바위에 올라설 수 있는 길은 쥬맥이 타고 올라온 곳 하나뿐이었다.


그곳을 돌이나 나무로 막아 놓으면 아무도 올라오지 못할 천험(天險)의 요새였다.


쥬맥은 너무 지쳤다. 그래서 넓은 바위 위에서 하늘을 보고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양쪽의 높은 절벽 끝에 틈새처럼 파란 하늘이 보이고, 돛단배 같은 흰구름 한 조각이 떠가고 있다.


“와~ 꼭 한 폭의 그림 같애!”


그동안 겪었던 마음 고생이 모두 끝난 듯 속이 후련하건만 아직 어려서 어쩔 수 없는 외로움도 밀려왔다.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야. 세상에 나처럼 이렇게 멋진 곳에 집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러다 보니 또 친구가 생각났다.


“수르야! 유리야! 너희들 이곳에 놀러 와라. 그리고 형아! 꿈속에서 이 동굴을 알려 줘서 정말 고마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건만 혼자 두런두런 떠벌리며 외로움을 달래 본다.


해가 벌써 서쪽으로 기우는지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번지기 시작해서 또 다른 멋진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잠자리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굴 안을 기웃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용암(鎔巖)이 녹아서 흘러나온 듯 둥그런 원형의 동굴이 바닥은 평평한 형태라 마음에 들었다.


안쪽은 보이지 않을 만큼 깊숙한데, 당장은 무서워서 깊이까지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저 ‘설마 뭐가 있겠어?’ 하면서 스스로를 자위(自慰)하며 안심시켰다.


동굴 속이지만 앞부분 벽에는 이끼와 잡초 같은 것이 많이 자라 있었고 해를 넘겨서 죽어 있는 풀들도 많았다.


그래도 다른 동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고 말이다.


그중에 부드러운 풀들만 골라서 단도로 잘라 낸 다음, 약간 파이고 우묵한 곳을 골라 바닥에 두껍게 깔았다. 그러자 제법 아늑하고 푹신한 잠자리가 꼭 새의 둥지처럼 만들어졌다.


동굴 저 깊이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면 그 어느 것도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가만히 둥지 같은 잠자리에 누워 있으니 어디서 물 흐르는 소리가 조그맣게 졸졸졸 하고 들렸다.


“아니, 동굴에 웬 물소리지?”


궁금해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천장을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투명하게 맑은 물이 바닥에 웅덩이를 이루었고 벌어진 돌 틈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손가락을 담가 보니 아주 시원하다.


올라오느라고 더러워진 손을 웅덩이 아래로 흐르는 물로 깨끗이 씻고,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시원한 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가니 기분이 상쾌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이제 물을 길으러 다닐 고생 하나를 덜었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됐다. 오늘은 여기에서 그냥 자자.”


봇짐을 챙겨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아무리 밝은 달이 뜬다고 해도 밤에 혼자 움직이는 것은 어린애로서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산등성이를 오르면서 따 두었던 과일들을 꺼내니 부딪쳐서 많이 뭉개졌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가 고프니 달콤하고 너무 맛있었다.


“아~ 이제야 정말 살 것 같네!”


육포도 조금 꺼내서 먹고 내일 아침에 먹을 것을 남겨 두었다. 이제는 스스로 먹고살 것을 챙겨야 하니까 말이다.


화섭자(火攝子)가 있지만 사용이 서툴고 무엇보다도 불을 피우면 동물이나 다른 종족에게 들켜서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자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잠자기에는 또 너무 이른 시간이라 동굴 앞 너른 바위로 나가 보았다. 마치 자기집 앞뜰에 산책을 나가는 것처럼...


좁게 보이는 하늘은 온통 붉은 저녁노을이 뒤덮었고 벌써 하나둘 밝은 별이 빛나는 것이 보인다.


어슴푸레하게 어둠에 잠겨 가는 계곡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여 필설로는 이루 다 형언하기 어려웠다.


어젯밤부터 너무 힘든 하루였다. 어리고 지친 심신(心身)에 자신도 모르게 잠이 쏟아지니 그 자리에서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마치 세상을 홀로 떠돌다 이제야 집에 돌아온 한 마리 지친 아기 새처럼!


약간 서늘한 기운에 단잠에서 깨어나니 차가운 돌 위에서 달빛을 이불 삼아 덮은 채 자고 있었다. 깊은 대협곡을 달빛이 교교하게 비추고 있었고···.


하늘에는 온통 은하수의 별들이 협곡을 따라 길게 수놓여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밤에 움직이는 새소리가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음산하게 들려오는데······.


간혹 멀리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짐승들의 울부짖음 소리도 들려왔다.


‘에구! 무서워라.’


약간 겁을 집어먹고 잠자리로 들어와 누우니 포근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쥬맥이 홀로서기를 하는 첫날 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 *


그런데, 쥬맥이 자고 있는 절벽 위에서는 무언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짐승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데, 앞에 도망가는 둘은 어른과 아이처럼 덩치가 달라 보인다.


전신에는 은빛이 자르르한 짧고 고운 털이 나 있고, 육감적인 몸매에 세 자 정도의 끝이 뭉툭한 꼬리도 달려 있었다.


악마처럼 뾰족한 귀, 날카롭게 튀어나온 위아래 송곳니, 8척 정도의 큰 키가 언뜻 얼굴만 봐서는 마치 야차(夜叉)를 보는 듯한데······.


눈동자는 뱀의 눈처럼 세로로 찢어졌다. 어른은 노랑색이고 어린애는 푸른색을 띠고 있었고.


달빛에 드러나는 외관 형상이 틀림없이 야차족(夜叉族)이었다. 천인족이 지도를 만들 때 여러 정보를 수집했고, 그 정보에 따르면 우르산맥의 뒤쪽에 살고 있다는 그 야차족 말이다.


그런데 도망가는 둘은 여자로 보이고 뒤쫓는 무리는 남자들로 보이는데, 털 색깔이 붉은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고 은색도 함께 섞여 있었다.


왜 이 달밤에 모녀로 보이는 두 은모야차가 그들의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쫓기고 있는 것일까?


“마린챠, 거기서라! 어린 미라챠를 데리고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이 나쁜 놈들!”


“이미 세상이 바뀌었다. 옛정을 봐서 살려줄 테니 어서 항복해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난 죽어도 좋다. 그렇지만 내 딸만은 꼭 살릴 것이다.”


서로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追擊戰)이 계속되었다.


실은 이 모녀는 야차족의 전대(前代) 야신(夜神 야차족 최고수장)의 여자와 그 딸이었다.


전대 야신을 죽이고 새로 야신이 된 적모(赤毛)야차인 진신챠가 전대 야신의 여자와 딸을 죽이려고 부하들을 보내서 뒤를 쫓고 있는 것!


원래 야차족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마음에 맞는 이성과 만나 사랑을 나눈다.


나이가 들어 성인(成人)이 되면 자유롭게 짝을 찾아 다녔고,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른 뒤에 내보내서 독립을 시켰다.


그렇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만의 여자를 여럿 거느렸다. 최고수장인 야신은 궁전 같은 큰 집에 살면서 자신만의 여자를 수십 명 거느렸고 다른 이성과의 교제도 금하였다.


물론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인 야차족 사회에서는 공개적으로 야신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여자를 빼앗을 수도 있었다. 능력만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권력에 맛들인 야신들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 보다는, 자신의 강력한 수하들을 내세워서 사전에 힘을 빼게 한 뒤에 마지막에 나서기 때문에, 좀처럼 야신이 바뀌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신의 여자 중에 애를 낳지 못하는 여자를 진신챠가 꼬드겨서 음식에 독을 타게 하였고, 독에 중독된 야신을 밤에 몰래 들어가 암살(暗殺)을 한 것인데······.


새로 야신이 된 진신챠는 전대 야신의 수신호위 대장이었다. 그런데 지켜야 할 주인을 배반(背反)하고 등 뒤에서 비겁하게 칼을 찌른 것이다!


전대 야신의 여자들이 수십 명 있었으나 그중에서 마린챠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물건처럼 자기가 차지하기 위해서는 미라챠라는 딸이 성가시니 몰래 죽이라고 시킨 것이고.


이를 눈치챈 마린챠가 딸과 함께 도망쳐 나왔다. 그러자 야신은 추적대를 보내서 딸을 죽이고 마린챠만 데려오되, 힘들면 둘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


지금 쫓아오고 있는 부하들은 실은 전대 야신 밑에서 권력에 빌붙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놈들이었다.


모시던 야신이 진신챠에게 죽임을 당하자 이제는 새로운 권력에 빌붙었다.


옛 영화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나서 두 모녀를 뒤쫓고 있는 것. 새로운 상전께 바치려고 말이다.


우르산맥 서쪽 너머에서 시작된 추격전(追擊戰)이 그 높다란 산맥을 넘어 일 년이 다 되도록 계속되고 있으니, 자식을 살리려는 어미의 마음은 참으로 모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는 법이 없으니 하늘 아래 자식을 가진 어미만큼 위대(偉大)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 인심이란 것이 어디나 할 것 없이 참으로 야박한 것이었으니.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손해가 있으면 못 참고 내지르고,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는 곳에는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서 빌붙으려는 인간들이 너무도 많으니 참으로 애석하지 않은가?


자신이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던 상전의 여자를 이제는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다. 악마를 닮은 야차신을 숭배하는 저들의 종교보다도 저들의 사특한 마음이야말로 진짜 야차를 닮았다.


야차족은 이름 뒤에 열에 아홉은 ‘챠’자를 붙이는데, 이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큰 뱀의 이름이었다.


이십 장(60m)에 이르는 큰 뱀을 항아리같이 아래가 넓고 구멍은 작은 큰 구덩이에 넣어서, 먹이를 주면서 키워 그들의 야차신 비슷하게 우상으로 섬겼다.


이종족이나 적을 사로잡으면 이 뱀에게 먹이로 던져 주며, 정적을 살아 있는 채로 먹이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먹은 ‘챠’ 라는 뱀이 몇 백 년에 한 번 정도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뱀 새끼를 낳는다.


이 인면사(人面蛇)를 ‘챠왕’ 이라고 하는데 해독제가 없는 극독(劇毒)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치명적인 독을.


그런데 이 뱀에게 적이나 정적을 죽이라고 주술로 저주를 걸어서 보내면, 거의 열이면 열 모두 의도대로 죽일 수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야차족이 대부분 이름 끝자에 ‘챠’ 자를 넣는 것은 그 뱀을 신성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름에 챠 자가 들어가면 인면사 챠왕이 피해 간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밤의 쫓고 쫓기는 경주는 점점 거리가 좁혀지며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은모야차 마린챠 모녀는 쫓기는 와중에 이 근처까지 왔던 적이 있어서 주변 지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저놈들을 해치울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라.”


야차족은 급할 때 고양이처럼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여 번개처럼 내달리는데, 두 모녀도 그렇게 달리면서 이 추적자들을 끌고 바람처럼 달렸다.


두 모녀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지자 추적자들도 손과 발을 모두 써서 고양이처럼 힘껏 달리면서, 곧 도약하여 뒷목을 낚아채려고 서둘렀다.


그런데 바로 앞에 시야를 가리는 높은 바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두 모녀가 펄쩍 뛰어서 고양이처럼 바위 위로 올라가더니 바로 아래로 껑충 뛰어내렸다. 마치 그냥 바위 위에서 힘차게 도약이라도 하듯이······.


뒤따르던 무리들도 행여 놓칠세라 비호처럼 내달려서 바위로 뛰어오르자마자 더 멀리 도약하여 힘껏 뛰어내렸다.


이번엔 꼭 붙잡겠다는 욕심에 말이다.


그런데 웬걸? 앞서 뛰어내린 모녀는 보이지 않고 눈앞에 천 장 낭떠러지만 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한참을 떨어진 뒤에야 상황을 알아차렸고 죽음의 공포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그러나 이미 늦어서 몸은 천 장 낭떠러지로 정신없이 떨어져 내린다.


바위 뒤에는 한 사람이 숨어서 들어갈 만한 둥그런 틈새가 있는데, 긴 세월 동안에 비바람이 만들어 낸 멋진 자연의 예술품 같은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추적자들에게 바짝 쫓기는 두 모녀의 생명줄이었고!


사전에 이것을 알고 있던 두 모녀는 발과 손을 다 써서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바위 위에서 힘껏 도약하는 척하면서 실은 바로 몸을 낮추어 이 틈새에 숨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자칫 잘못하면 천 장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위험한 모험(冒險)이었다.


정말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고······.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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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10.10 00:12
    No. 1

    어린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는 게
    참으로 안쓰럽지만 어쩜 이것이 기회가 되어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대해 봅니다.
    야차모녀와 운명적인 만남도 말이죠^^ 딸과 친구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에요^^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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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0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4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1 50 18쪽
»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4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2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8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2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2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3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3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499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5 5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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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12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86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1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57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06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58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0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0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27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4 21.06.28 4,628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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